- 중국 여행기/'10년 간수(감숙)성

둔황(敦煌 : 돈황)(3) - 둔황고성(敦煌古城)

Lesley 2010. 8. 4. 12:27

 

 

  둔황에서의 이틀째인 7월 7일은 아침부터 날씨가 흐렸다.

  하긴 비 오는 날씨만 아니라면, 차라리 적당히 흐린 것이 움직이기에는 낫다. (하긴 저녁에는 결국 비도 조금 오긴 왔음... ^^;;)  택시 기사 아저씨는 보통의 경우 7월 둔황의 날씨는 40도나 되어서 여행객들이 힘들어하는데, 전날도 그렇고 이 날도 그렇고 30도가 채 안 되었으니 우리 두 사람은 정말 운이 좋은 거라 하셨다. ^^ 

 

 

 

1. 사주(沙州)시장 - 야시장을 아침에? ^^

 

  아침에 역시나 늦잠 자는 진쥔 계속 자게 두고, 혼자서 산책 겸 거리 구경도 할 겸 돌아다녔다.

  둔황에 도착한 바로 전날(7월 6일)은 도착하자마자 숙소에 짐만 두고서 막고굴로, 명사산으로 돌아다니다가 밤 10시 반 넘어서야 숙소로 돌아갔기 때문에, 둔황 시내 돌아볼 시간이 없었다.  심지어 아침 겸 점심으로 대강 한 끼 먹고서 저녁도 굶은 통에 배가 너무 고픈데도, 엄청나게 피곤해서 대강 씻고 잠들었을 정도니...

 

  내가 산책 장소로 고른 곳은 사주(沙州 : 둔황의 옛 이름, 사막 지대라 이런 이름을 붙였다 함.)시장이라는 둔황의 유명한 야시장이다. 

  야시장이란 이름에 걸맞지 않게 아침부터 벌써 좌판 펼치고 물건 파는 곳이 많아서, 천천히 돌아다니며 구경했다.  그러다가 위구르 분위기 흠씬 풍기는 가죽 지갑 하나를 기념품으로 샀다. (사실은 크로스백을 사고 싶었는데, 내 배낭이 이미 온갖 짐으로 가득 차서 크로스백이 들어갈 공간이 없어서 포기함. ㅠ.ㅠ)  그리고 건조한 사막답게 말린 과일이나 견과류를 많이 팔기에, 돌아다니며 입 심심할 때 먹을 생각으로 말린 무화과 반 근, 살구씨 한 근을 샀다. (이것들을 여행 내내 진쥔과 둘이서 먹고 또 먹다가 결국 다 못 먹고, 귀국하기 전날 란저우의 호텔 나오면서 버리고 왔음. -.-;;)

  사주시장은 저녁에 가면 볼거리, 먹거리가 제법 많다 한다.  하지만 둔황행 기차에서 만났던 강아지 데리고 탄 남학생들('둔황(敦煌 : 돈황)(1) - 막고굴(莫高窟) (http://blog.daum.net/jha7791/15790745)' 참조)의 말로는, 물건값이 비싼 편이라 정작 현지인들은 안 가고 관광객만 들리는 곳이라 했다.  간단한 물건이나 먹거리는 괜찮지만, 좀 값 나가는 물건은 절대로 사지 말라 충고했다.

 

 

 

2. 둔황고성(敦煌古城) 

 

  이 둔황고성은 '고성(古城)' 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역사가 짧은 곳이다. ^^;;

  그도 그럴 것이, 이 곳은 오래 전에 지어진 문화 유적지가 아니라, 1980년대 일본과 중국이 합작한 영화 '대둔황'을 촬영하면서 만든 야외촬영소이기 때문이다. ^^;;  촬영소라고는 해도, 규모나 정교함 면에서는 꽤 괜찮기 때문에, 지금도 다른 영화나 드라마 촬영소로 재활용(?)하면서, 동시에 관광지로도 사용하고 있다. (참 알뜰하게도 쓴다~~ ^^)  처음 촬영한 '대둔황'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이 나라 저 나라의 영화 및 드라마 40편을 촬영했다.  몇 년 전 방영했던 '장보고'의 일대기를 소재로 한 우리나라 드라마 '해신'도 여기서 촬영했다고, 둔황고성 앞 표지판에 떡하니 써있었다.

  나도 진쥔도 영화 촬영소로 만든 둔황고성에 별 관심 없어서, 딱히 가겠다는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기사 아저씨가 이 날 일정 중 가장 중요한 '야단지질공원(雅丹地質公園)'은 저녁 7시는 되어서 가야 일몰과 월출의 멋진 광경을 볼 수 있는데, 둔황고성을 빼먹으면 낮에 시간이 너무 남아돈다며 가자고 해서 그리 하기로 했다.

 

  그런데 택시 기사 아저씨가 이 둔황고성에 대해 재미있는 에피소드 하나를 말씀해주셨다.

  일개 촬영소라기에는 워낙 대규모고 나름 정교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둔황시에서는 처음부터 이 둔황고성을 '대둔황'의 촬영이 끝난 후에도 그대로 남겨 재활용 할 생각이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촬영이 끝난 후, 이 고성의 건립에 들어간 돈을 놓고 일본측 제작자와 둔황시 사이에 문제가 생겼단다.  일본 제작자가 뒤늦게 자신의 분담금이 많다며 자신이 낸 돈 일부를 돌려달라 한 것이다.

  이 문제로 티격태격하다가, 일본 제작자가 '당신들이 돈을 주지 않는다면 둔황고성을 불태워버리겠다.' 고 협박했다.  자신이 그렇게 세게 나가면, 둔황시에서도 어쩔 수 없이 돈을 줄거라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런데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고, 둔황시는 일본 제작자보다 한 술 더 떴다.  '좋다, 불태우고 싶으면 불태워라. 다만 그런 큰 불 내서 환경 오염되는 것에 대한 비용은 너희가 다 물어야 한다.' 라고 맞받아친 것이다. -0-;;  결국 일본 제작자는 두 손 두 발 다 들고 둔황고성을 남겨둔 채 떠났다는, 믿거나 말거나 식의 이야기... ^^;;

 

 

(위 왼쪽) 둔황 고성 들어서면 보이는 옛 저자거리를 재현한 거리.

(위 오른쪽) 군대의 주둔지.

(아래 왼쪽) 성벽 쪽에 놓인 고대 무기를 재현한 것들.

(아래 오른쪽) 고성의 성벽. 밖으로는 온통 끝없는 사막이 펼쳐져 황량한 느낌이 더 함.

 

  영화나 드라마 촬영 기간에는 꽤 볼만하다는데, 지금은 촬영이 없어서 너무 황량했다.

  황량하더라도 오랜 세월로 인한 황량함이나, 끝없는 사막을 바라봤을 때의 황량함 같은 '뭔가 있어 보이는 황량함'이면 괜찮다.  그런데 이건 촬영 없다고 관리를 제대로 안 해 먼지와 쓰레기 투성이인데다가, 다른 관광객도 없이 우리 둘만 달랑 돌아다니려니, 무슨 폐가에 온 듯한 기분이었다. -.-;;  진쥔도 나와 같은 느낌이라며 '이런 곳을 40위엔(한화 약 7,200원)이나 받다니...' 하고 한숨을 쉬었다. ^^;;

 

 

막고굴의 모습을 베낀 듯한 밀실(?)이 있는 곳.

 

  그래도 사진에 나오는 저 약왕묘(藥王廟)는 볼만했다. 

  사진에서 보이는 것처럼 겉에서 보기에는 그저 불상 하나만 있는 걸로 보여, 별 기대없이 들어섰는데...  뜻밖에도 불상 옆으로 작고 컴컴한 골목이 이어져 있었다.  마침 전날 막고굴에서 사용한 손전등이 크로스백 안에 들어있어서, 그걸 켜들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막고굴을 베낀 듯한 석굴 모양의 밀실이 여러 개 미로처럼 서로 이어진 채 모습을 드러냈다.  어떤 것은 오래된 폐허의 느낌 내느라 일부러 파괴된 듯한 모습으로 있고, 어떤 것은 공포스럽게 불상과 벽화 인물들의 눈이 모두 없는 모양으로 있고...  다만 벽이나 불상을 손으로 툭툭 치면, 석조물이 아닌 목조나 스트로폼으로 된 것이 확 드러나, 실망하게 된다. ^^;;

 

 

촬영소품실에서 죄인을 참수(!)하려는 진쥔. ^^;; 

 

  둔황고성 안을 어슬렁거리다가 촬영소품을 모아놓은 커다란 방을 발견했다.

  오랫동안 사용 안 해서 소품마다 먼지가 뽀얗게 내려앉아있는데, 주로 고대의 감옥, 칼(무기로 쓰는 칼(刀) 뿐 아니라, 춘향이가 변학도 수청 거절하다가 갇혔을 때 목에 쓴 것 같은 그런 칼도... ^^), 가마, 엉터리(?) 낙타 등이 있었다.  시체 또는 죄수로 출연(?)하는 마네킹들도 제법 있고...      

  좀 유치하다는 느낌이 없지 않은데, 사진 찍기에는 딱이었다.  목조 감옥이나 가마 안에 들어가서 포즈를 취하기도 하고, 칼이나 창 들고 나름 위압적인 모습 선보이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