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 여행기/'10년 간수(감숙)성

둔황(敦煌 : 돈황)(1) - 막고굴(莫高窟)

Lesley 2010. 8. 1. 00:28

 

 

1. 또 잉쭤(硬座)... ㅠ.ㅠ

 

  7월 5일 저녁 6시 다 되어 둔황(敦煌 : 돈황)행 기차에 탑승했다.

  14시간 이상 걸리는 기차여행이라 당연히 침대표를 구하고 싶었지만, 란저우에 도착하던 날 표를 사려니 이미 침대표는 매진이었다.  아쉬운대로 란쭈어(부드러운 의자 : 우리나라 기차의 좌석과 거의 비슷함.)라도 타려 했지만, 그것도 매진이란다. ㅠ.ㅠ  할 수 없이 잉쭤(딱딱한 의자 : 제일 안 좋은 좌석, 등받이가 90도인데다가, 좌석 자체도 좁아서 불편함.)표를 샀다.

  잉쭤로 14시간 반을 갈 생각을 하니, 지난 5.1 노동절 때 하얼빈에서 만저우리를 잉쭤로 왕복했던 악몽이 떠오르고... ㅠ.ㅠ ( '만저우리(滿洲里 : 만주리 가는 길(http://blog.daum.net/jha7791/15790704)' 참조)  그 때도 14시간 거리를 잉쭤로 오가느라 엉덩이에, 허리에, 목까지, 아주 온 몸이 다 쑤셔 죽는 줄 알았다.  중국 기차 상황이 지금보다 훨씬 안 좋았던 10년 전에, 2박 3일씩 잉쭤 타고 여행했다는 배낭여행자들은 도대체 어떤 사람들인지...  나 같으면 차라리 여행 포기한다. ㅠ.ㅠ

 

  역시나 각오했던대로 14시간 내내 고생했다. ㅠ.ㅠ

  그나마 먼저번 만저우리 갈 때는 중간역에서 사람들이 많이 내리는 통에, 남은 승객들이 거기서부터는 두세 자리씩 차지해서 누워 가기도 하고, 맞은편 자리에 발을 올려 다리를 쭉 펴기도 하면서 가서, 사정이 좀 나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어찌된 영문인지 죄다 우리처럼 종착역인 둔황까지 가는 사람들이라, 도착할 때까지 모두들 좁은 자리에서 고생했다.  몸은 무척 피곤하건만, 자세가 너무 불편해서 도무지 잠을 잘 수 없었다. 

 

 

우리 맞은편 자리의 남학생들이 무임승차(!)시킨 강아지. ^^ 

 

  집이 둔황이라는 우리랑 마주보는 자리에 앉은 중국 남학생이 자기 친구들을 집으로 데려가느라 기차를 탔는데, 강아지 한 마리를 종이박스에 넣어 몰래 기차에 태웠다.

  역무원이 수시로 왔다 갔다 하는 동안에는, 강아지가 낑낑대거나 말거나 밖으로 꺼낼 수 없었다.  하지만 밤 12시가 넘자 역무원들도 피곤하긴 마찬가지니, 더 이상 객차를 순찰하지 않았다.  그 때 그 남학생이 이 녀석을 꺼내다가 좌석에 올려줬다.  그 날 그 객차에서 편히 두 다리(아, 이 경우에는 '네 다리' 라고 해야 하나? ^^;;) 뻗고 잔 것은 이 녀석 하나 뿐이었다.  나와 진쥔은 몸이 너무 괴로웠기 때문에 저 강아지처럼 편한 자세로 잘 수 있도록, 차라리 한 마리 개가 되고 싶었다...! ㅠ.ㅠ

 

 

 

2. 엽기적인 욕실, 혹시 러브 호텔...? -.-;; 

 

  7월 6일 오전 8시 반쯤 둔황역에 도착해서, 역 앞에서 만난 택시 기사 부부의 택시를 둔황에 머무는 동안 전세내기로 했다.

  어차피 둔황의 볼거리라는 게 대부분 둔황시내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서, 개별적으로 공공교통 이용해 움직이는 건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택시를 전세 내거나, 여행사의 1일 투어 또는 2일 투어 등에 참가하는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우리 둘 다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가능성이 높은 둔황에서의 일정을, 말많고 탈많은 여행사 투어로 때울 생각은 없었다.

 

  택시 기사 아저씨가 진쥔이 말한 '저렴하면서 깨끗한 숙소'를 우리에게 추천해줬다.

  가격이 우리가 생각했던 가격과 얼추 맞아서 체크인을 했는데, 몇 가지 문제가 있었다.  다른 건 사소한 문제니 그냥 넘길 수 있는데, 한 가지 정말로 난감했던 것은 욕실의 벽이 유리로 되어 있다는 것이다. (뭥미~~ 여기 혹시 러브 호텔? ㅠ.ㅠ)  진쥔도 너무 기가 막혔는지 계속 한국어로 '어떡해~~' 라고 하고... ('어떡해'는 진쥔이 할 줄 아는 몇 안 되는 한국어 중 하나임. ^^;;)  그나마 불투명 유리라 다행이기는 한데, 우리 둘 중 한 사람이 욕실을 쓸 때면 샤워 중인지 화장실을 쓰는 건지 정도는 알아볼 수 있을 정도였으니...ㅠ.ㅠ 

 

 

문제의 러브호텔식 욕실. -.-;; 

 

 

 

3. 막고굴(莫高窟)

 

  엽기적인 욕실로 놀란 가슴 진정시키고, 밖에서 사 온 자장면(사실 자장면이라고 보다는 볶음면에 가까울 정도로 기름이 뚝뚝 묻어남... ㅠ.ㅠ)으로 대강 아점을 먹은 후, 11시쯤 기사 아저씨와 만나 막고굴(莫高窟 : 중국명 '모가오쿠')로 갔다. 

 

 

(위) 막고굴 중앙.  저 목조건물을 중심으로 양옆으로 각각 800미터 정도씩 석굴이 이어짐. 

(아래) 문화대혁명 때 봉건주의의 잔재라는 이유로 피해를 크게 입은 막고굴이 더 이상 훼손되지 않도록, 신경써서 보존 중임.

 

  막고굴의 역사를 설명하자면...

  막고굴은 오호십육국(五胡十六國)시대인 4세기 중반 '낙준(樂樽)'이라는 승려가 둔황의 산에서 황금빛이 나는 것을 보고 신기하게 여기며 불상 등을 모신 석굴을 건립한데서 비롯된, 중국 불교 미술의 보고이다.  그 후 원나라 시대에 이르기까지 약 1000년 동안 후세 사람들이 계속해서 석굴을 만들었다.

  하지만 실크로드가 쇠퇴하면서('간수성(甘肅省) 소개 및 간수성 여행 노선 (http://blog.daum.net/jha7791/15790747)' 참조) 둔황도 잊혀졌고, 막고굴의 중요성도 수백년 동안 묻혀졌다. 

  그러다가 1900년에 석굴 관리를 담당했던 도교의 도사 '왕원록(王圓祿)'이 막고굴의 제16굴을 청소하다가 우연히 그 굴 안에 있는 밀실(제17굴)을 발견했다.  그 안에서 5만 점이나 되는 고문서가 쏟아져 나왔는데, 불경은 물론이요, 고대 기독교와 마니교의 경전, 의학서, 역사서, 문학서, 악보, 계약서 등 종류도 다양했고, 문서에 쓰인 언어도 중국어 뿐 아니라, 범어(산스크리트어), 위구르어, 티벳어, 몽골어, 페르시아어(이란어) 등 다양했다. 

  이 소문은 곧 중국 내로 퍼져서, 마침내 중국으로 역사학과 고고학을 연구하러 왔던 서양 학자들 귀에까지 들어갔다.  그들은 왕원록에게 돈을 주고서 둔황 문서를 밀반출했다.  1907년에는 오렐 스타인(Aurel Stein)이 가치가 높은 약 7,000점의 유물을 추려서 영국으로 가져갔고, 1908년에는 폴 펠리오(Paul Pelliot) 역시 7,000점의 유물을 프랑스로 유출했다. (삼국시대 신라의 승려인 혜초(慧超)의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도 오랜 세월 막고굴에서 잠자던 중, 이 때 폴 펠리오 손에 들려나가 지금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있음.)  그 후에는 일본의 승려인 오타니 고즈이(大谷光瑞)도 5,000점의 유물을 일본으로 가져갔다. (오타니 고즈이는 혜초가 당나라 승려가 아닌 신라의 승려임을 증명했다니, 다른 나라 문화재를 몰래 반출해나갔다는 이 사람에게 우리는 고맙다고 해야 하는 건가? -.-;;)

 

  막고굴 관람은 다른 문화 유적지 관람보다 까다롭다.

  막고굴은 약 1,000개(실제로는 800여개. ^^;;)의 동굴로 이루어졌다고 해서, 천불동(千佛洞)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오랜 세월 풍화작용으로 사라지기도 했고, 문화대혁명 때 무지한 홍위병들이 파괴하기도 해서, 지금은 약 500개만 남았다고 한다.  하지만 남은 것도 규모가 방대해서 지금도 발굴작업과 보존작업이 계속 되는 중이라, 500여개의 동굴 중 관람객에게 공개하는 것은 50개도 되지 않는다.  하지만 공개 중인 약 50개의 석굴도 다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160위앤(한화 약 28,800원)의 기본 입장료가 효력(?)을 미치는 석굴은 32개 뿐이다.  그나마 이 32개를 다 보여주는 것도 아니고, 막고굴 관리소측에서 정해주는대로 하루에 15개 정도만 볼 수 있다. (이건 또 어떤 시츄에이션...? ㅠ.ㅠ)  만일 어떤 사람이 특정 석굴을 너무 보고 싶어하더라도, 그 사람이 구경하러 간 날 가이드가 그 석굴을 안 보여주면 그걸로 끝이다. -.-;; (막고굴은 허가를 받은 학자나 기자 등 특수한 경우 빼고는, 개인 참관이 엄격히 금지되어 있어서 어느 정도 관람객이 모이면 가이드를 따라 다니며 구경해야 함.) 

  그리고 32개 이외의 특별(?) 석굴은 별도의 입장료를 내야 볼 수 있는데, 그런 식으로 공개 중인 약 50개의 석굴을 일일이 보게 될 경우 입장료가 무려 1,000위앤(한화 약 180,000원)에 육박하게 된다...!!! -0-;; 

 

  물론 우리는 기본 입장료만 내고 관람했다.

  진쥔이 한 말처럼 우리는 보통 사람이지 역사학자가 아니니까, 굳이 1,000위안씩이나 주고 다 볼 필요는 없지 않겠나... ^^;;  그래도 나는 다행인 것이, 여기는 중국학생 뿐 아니라 중국학교에 재학 중인 유학생도 할인 해주는 곳이기 때문에, 흑룡강대학 학생증으로 50% 할인 받아 80위앤만 냈다.  이미 대학은 졸업했고 대학원은 아직 입학 전인 백수(?) 상태의 진쥔은 내가 할인받는 것 보며 배 아파했고... ^^     

 

  그리고 막고굴을 관람할 때는 그냥 촬영 금지가 아니라, 아예 카메라 반입 금지이다.

  관람 전에 카메라는 입구 맞은편 보관소에 반드시 맡겨야 한다.  관람 중 가방 안에 카메라가 있나 없나 검사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어차피 개인 참관이 금지되어 있고 가이드 뒤를 쫓아다녀야 하기 때문에, 몰래 카메라를 가져간다 한들 촬영할 수 없다. 

  '그렇다면 가이드와 멀찍히 떨어져 몰래 사진 찍으면 되는 것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하시는 분이 계시다면, 그만 일찌감치 포기하시기 바란다.  모든 굴은 자물쇠로 잠겨있어, 가이드가 열쇠로 따고 들어가 설명한 다음에 관람객을 몽땅 내보내고 다시 잠근다.  즉, 가이드랑 떨어져서 관람하는 게 아예 불가능하다. -.-;;

 

  덕분에 막고굴 내부의 벽화 사진은 한 장도 찍지 못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중국인 가이드의 설명을 3분의 1도 못 알아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막고굴은 확실히 볼 가치가 있다...!  시대마다 확연히 다른 불상의 모습과 화려하고 생동감 넘치는 비천(飛天)은 지금도 기억에 선명하다.

 

  아, 관람 팁 하나...!

  중국어 가이드 뿐 아니라, 한국어 가이드, 영어 가이드, 일본어 가이드도 있으니 생각 있으신 분은 이용하시기 바란다.  다만 중국어 이외의 외국어 가이드는 추가 요금이 든다는 사실 잊지 마시기를... (중국에는 공짜란 존재하지 않음. ^^;;)

 

 

막고굴 맞은편의 사막.

 

  막고굴을 다 보고서 나와, 그 맞은편에 있는 막고굴 중 유명한 벽화가 그려진 석굴들을 재현해서 벽화를 모사한 여러 방이 있는 전시관에 갔다. 

  막고굴은 문화재 보호 차원에서 전등을 설치하지 않아, 가이드의 손전등과 관람객이 알아서 준비한 손전등만으로 봐야 한다.  그래서 벽화의 전경을 한 번에 볼 수가 없고, 손전등 불빛이 비치는 곳만 차례로 볼 수 있다.  비록 진품이 아닌 모조품일 뿐이지만 정교하게 재현했으니, 막고굴 가시는 분들은 이 전시관에 꼭 들리시기를...

 

  그리고 그 전시관 옆으로는 무척 넓은 사막이 있다.

  둔황의 유명한 사막은 명사산이지만, 이 사막에서 미리 사막의 맛을 보는 것도 좋을 듯 하다. ^^  더구나 이집트 사하라 사막처럼 고운 모래로 이루어진 명사산과는 달리, 이 사막은 입자가 크고 거친 좀 다른 사막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