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시 다 되어 둔황고성을 나와 양관(陽關)과 옥문관(玉門關)에 차례로 갔다.
시안(西安 : 서안)에서 시작한 실크로드(Silk Road, 비단길)는 여러 갈래로 나뉘는데, 그 중 가장 오래된 한 갈래 길이 란저우를 거쳐 둔황까지 이어진 다음, 둔황에서 양관과 옥문관 두 갈래로 나뉜다.
양관은 둔황에서 남서쪽에 있기 때문에, 양관을 통과하는 길을 남도(南道) 또는 서역남로라고 한다. 옥문관은 둔황의 북서쪽에 있기 때문에, 옥문관을 통과하는 길을 북도(北道) 또는 서역북로라고 한다. 그 당시 이 양관과 옥문관은 중국의 서쪽 끝이었고, 이 두 지역을 넘어서면 중국의 지배력이 닿지 않는 온갖 모험과 위험이 가득 찬 타클라마칸 사막이 시작된다.
타클라마칸이란 이름이 '한 번 들어가면 돌아올 수 없는 곳' 이라는 뜻이라니, 옛 사람들이 양관과 옥문관에서 어떤 심정을 느꼈을지 짐작할 수 있다. 이 두 곳에서 서쪽으로 떠나는 상인 또는 군대는 가족, 친구들과 눈물을 뿌리며 이별을 했고, 덕분에 많은 시인들이 이 두 곳에서 이별을 슬퍼하는 내용의 시를 짓기도 했단다.
1. 양관(陽關)
양관은 둔황 시내에서 남서쪽으로 75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한나라 무제(武帝) 때에 세워진 방어 요새다.
지금은 과거의 양관이 있던 자리에 양관 박물관을 만들어 그 시절의 서역, 유럽과의 교역품이나 갑옷, 무기 등을 전시해놓고 있다. 그리고 박물관 옆으로 파수대 등 소규모의 성채를 복원해놓았다.
양관 박물관에 앞마당에 서있는 장건(張騫)의 동상.
장건(張騫)은 한나라 때의 외교관이며 여행자인데, 이 사람을 빼놓고 실크로드 이야기를 할 수 없을 정도로 실크로드사에서 중요한 인물이다.
2세기 중엽, 흉노(匈奴)가 점점 세력이 강해져서 한나라를 자주 공격하자, 한나라는 자기들처럼 흉노에게 큰 피해를 입은 대월지(大月支)와 동맹을 맺기로 한다. 그래서 장건을 우두머리로 한 사신단을 조직해서 대월지에 파견했다. 하지만 대월지로 가려면 흉노의 영역을 지나야 했기 때문에, 중간에 흉노에 붙잡혔다. 흉노의 선우(單于 : 흉노의 군주의 명칭)는 장건을 10년 넘게 붙잡아뒀고, 장건은 그 곳에서 흉노족 아내와 살며 아이까지 낳았다.
그렇지만 결국 탈출해서 대월지로 가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이미 10년 넘는 세월이 흘러 국제 정세가 변했기 때문에, 대월지는 흉노와 전쟁을 벌이는데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동맹을 맺는데 실패했고, 장건은 고국으로 돌아가는 길에 또 다시 흉노의 포로가 되었다. 하지만 1년 후 또 다시 탈출해서 13년만에 고국으로 돌아갔다. (13년만에 Come Back Home이라니, 이 사람 의지의 중국인이었나 보다... ^^;;)
비록 원래 목적인 대월지와의 동맹 수립은 실패했지만, 13년 동안 서역에서 머물며 서역 여러 민족의 언어, 풍습, 정치 및 군사 상황에 대해 한나라 사람 누구보다도 많은 지식을 갖고 돌아왔다. 한나라는 장건이 알아온 정보로 서역 여러 나라에 대한 외교, 군사 정책을 새롭게 세울 수 있었고, 장건은 그 공으로 높은 관직에 오르게 되었다.
나중에는 또 흉노에 대적하기 위한 동맹을 맺기 위해 서역의 다른 나라에 파견되기도 했고, 흉노와의 전쟁에 나가기도 했다. 그가 세상을 뜬 후에도, 그가 생전에 흉노에 대해 제시했던 여러 정책 덕분에, 한나라는 흉노에 대해 차음 우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 이야기에서, 나는 왜 장건의 흉노족 아내와 아이가 어찌되었을까 궁금하지...?
장건이 장안으로 컴백했을 때 함께 떠났던 100여명의 수행원 중 겨우 둘만 데리고 왔다는 것 봐서는, 아내와 아이는 함께 오지 못 했던 듯 하다. 그렇다면 흉노 입장에서는 장건이 돌로 쳐죽일 나쁜 놈이니, 그 시대에 죄인의 처자식을 가만히 두었을 것 같지는 않다. 그 처자식은 죽임을 당했거나, 운이 좋아봤자 어디에 노비로 팔려가지 않았을런지... ㅠ.ㅠ (알고보니 장건의 흉노족 아내는 두번째 탈출 때 당나라 장안으로 함께 돌아갔다고 함. 오해해서 미안해요, 장건씨~~~ ^^;;)
(위 왼쪽) 양관 박물관. 저 안에 고대의 갑옷, 무기, 수출품, 수입품 등을 전시해놓고 있음. 개별 관람은 안 되고, 박물관 가이드를 쫓아다녀야 함.
(위 오른쪽) 고대 성곽 중 남은 부분.
(아래 왼쪽) 끝없이 펼쳐진 거친 모래로 된 사막.
(아래 오른쪽) 벼랑 끝에 세워놓은, 이 곳이 양관 유적지라는 표시.
이 날 양관에 들렸을 때 심하게 황사가 불었는데, 황사도 그런 황사는 또 처음이다.
바람 자체도 거센데다가, 양관 주위 사막의 모래는 명사산의 모래와는 달리 입자가 굵고 거칠어, 바람 속의 모래가 얼굴을 때리는데 따가울 지경이었다. 게다가 입을 꼭 다문다고 다물었는데도, 입 안으로 모래가 들어와 꺼끌거리고... ㅠ.ㅠ 머리카락이 헝클어지는 걸 막으려 야구모자를 눌러썼는데, 그 모자도 날아가려고 해서 입고 있던 후드티의 모자를 야구모자 위에 덧쓰고 후드티에 달린 끈을 턱 밑에 꽁꽁 묶고 다녔다. (덕분에 여기서 찍은 내 사진은 죄다 웃기게 나옴. -.-;;)
진쥔은 안경을 썼는데도 모래 알갱이가 안경 너머 눈으로 들어가 아프다며 눈물을 줄줄 흘렸고, 내 눈은 멀쩡하긴 했지만 모래 알갱이들이 안경 렌즈를 얼마나 때렸는지 렌즈에 흠집이 여러 개 났다. ㅠ.ㅠ
2. 옥문관(玉門關)
양관에서 옥문관으로 가는 길에 택시 안에서 꾸벅꾸벅 졸다가, 진쥔이 팔을 잡아 흔드는 통에 일어났다.
진쥔이 창 밖을 보라 해서 봤더니, 택시가 사막 한 복판에 있는 푸른 포도밭을 지나는 중이었다. 아침부터 오후까지 질리도록 사막만 보다가, 천정이 온통 포도덩쿨로 가득찬 아치로 된 길을 지나갈 때의 그 상큼하고 시원한 기분이란...!!! 중간에 온통 황토로 만들었고 사각형 구멍을 잔뜩 낸 건물들이 보이기에, 진쥔에게 뭐냐고 물었다. 그게 바로 포도를 건조시켜 건포도로 만드는 곳이란다.
(위) 과거의 옥문관 성채의 일부.
(아래 왼쪽) 성벽 중 남은 부분.
(아래 오른쪽) 일부 남은 성벽이 한나라 시기의 성이었다는 걸 알려주는 표지.
옥문관은 둔황에서 북서쪽으로 100킬로미터 정도 떨어져있는데, 위에서 이미 설명했듯이 고대에는 실크로드의 주요 길목 중 하나였다.
옥문관(玉門關)이란 이름이 붙은 이유는, 이 옥문관을 통해 옥(玉)의 무역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라는데, 지금은 과거의 성곽 일부만 남아있어 황량하다. 그나마 양관은 고대 성의 모양을 본 따 만든 양관 박물관도 있고, 박물관 밖으로도 이런저런 시설을 만들어놓았는데, 여기는 정말 저 유적 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
황량함을 즐기는 여행자 또는 이미 택시를 전세내어 최대한 많은 것을 보기 위해 부지런히 움직이려는 사람이라면 괜찮지만, 돌무더기, 황토더미 몇 개 있는 곳에 가자고 20위앤(3,600원)의 입장료와 택시 대여비 내기 싫은 사람이라면 그냥 안 가는 것이 나을 듯 하다.
(위) 옥문관 사막 바로 앞에 펼쳐진 늪지대. 하얀 것은 얼음이 아니고 암염(岩鹽)임.
(아래 왼쪽) 이렇게 소금기가 많은 지역에도 식물이 성장하는 걸 보면, 정말 신기함.
(아래 오른쪽) 생물의 적응력이란... 사막색과 구별하기 힘든 옷(?)을 입은 도마뱀.
옥문관의 전경을 찍으려고 좀 높은 바위에 올라갔다가, 온통 사막인 옥문관 근처에 뜻밖에도 늪지대가 있는 걸 발견했다.
온통 황토색인 사막에 갑자기 파란 풀이 나타난 것도 신기한데, 풀 틈으로 하얀색이 많이 띄여서 '설마 이 날씨에 얼음이 있는건가?' 했다. 가까이 가서야 그것이 책 같은데서나 본 암염(岩鹽)이라는 걸 알았다. (물론 그것이 꼭 암염이라는 증거는 없음. 다만 우리 두 사람이 암염이라는 데 의견 일치했으니, 그냥 암염으로 결론 짓고... ^^;;) 둘이서 상대방에게 '정말 소금 맞는지 네가 먹어봐~~' 하다가 그만 두고... ^^;;
그러다보니 어느덧 6시가 넘어 이 날의 하이라이트인 야단지질공원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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