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 여행기/'10년 간수(감숙)성

샤허(夏河)(1) - 상커(桑科)초원

Lesley 2010. 8. 11. 17:12

 

 

1. 샤허(夏河)

 

  샤허(夏河)는 간난장족자치주에 속하는, 해발고도는 보통 3000m 정도이고 가장 높은 곳은 4636m에 달하는 고원지역이다.

  인구는 약 8만명 밖에 안 되는, 우리로 치면 '군'쯤 되는 작은 지방이다.  하지만 이 작은 동네는 서장자치구(西藏自治區 : 우리가 흔히 티벳이라 부르는 지역의 대부분이 여기에 속함.) 밖의 티벳 불교 사원 중 가장 큰 라브랑(Labrang) 사원(중국명은 拉卜寺(라부루어쓰)라고 함.)이 있고, 샤허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풍경이 아름다운 상커(桑科)초원도 있어서, 최근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다.

 

 

 

2. 그림같은 상커(桑科)초원

 

  7월 10일, 란저우에서 아침 7시 반에 출발하는 샤허(夏河)행 시외버스를 타고 12시 반쯤 도착했다.

  샤허 버스터미널에서 한족-회족으로 된 관광객 상대로 하는 택시 기사 한 쌍을 만났다.  그들이 우리를 샤허에서 조금 떨어진 상커(桑科)초원까지 태워주기로 하고, 샹커초원 안에 있는 장족 민박집도 알선해주겠다 했다.  그런데 초원 입장료 5위앤(한화 약 900원)을 받는 게 좀 의아했다. -.-;;

  그리고 이 사람들 거의 도착할 무렵 우리보고 어디에서 왔냐고 묻더니, 한국에서 왔다는 나한테 '중국어 잘 한다.' 고 했다.  문제는... 그 날 그 택시 타고 가면서 내 입에서 나온 중국어라고는 '피곤하냐?' 는 회족 아저씨 말에 '괜찮다' 고 한 마디 한 게 전부라는 점이다. -.-;;  즉, 중국어 잘 한다는 말은 순전히 손님에 대한 립서비스였다. ^^;;

 

 

(위) 우리가 묵었던 민박집.  벽은 진흙을 굳혀 만들었고, 집 내부는 아궁이와 온돌을 씀. (단, 우리 전통 온돌과는 조금 다름.)

(아래 왼쪽) 화장실 옆에 묶인 티벳개(장고우(藏狗)).  티벳에서 소, 양떼들을 지키는 사나운 개임.

(아래 오른쪽) 민박집의 화장실. 문도 없고, 지붕도 없고, 그저 바닥의 큰 구멍에 걸쳐놓은 널빤지 두 개가 있을 뿐...  비 오는 날에는 우산 쓰고 볼 일 봐야 할 판국... ㅠ.ㅠ

 

  민박집 식구 중, 실제로 민박집을 운영하는 사람은 뜻밖에도 이제 2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티벳 처자였다.

  그 어머니와 남동생으로 보이는 청년이 이 주인장 처자를 돕고 있었다.  민박집에는 우리 말고도 대학생으로 보이는 중국애들 한 무리와 세 명의 중국 아저씨들이 이미 넓은 방 하나씩 차지하고 있었다.  나중에 우리보다 늦게 한쌍의 중국 남녀와 서양인 여행자도 와서 묵었다.

 

  우리에게는 부엌 바로 옆의 맨 마지막 방이 떨어졌다.

  7월이라지만 해발 3000미터 정도의 고원지대라 최고 기온이 20도가 안 되는데, 그래도 여름이라고 아궁이에 불을 때지 않았다.  덕분에 온돌방을 냉돌방(?)으로 이름 바꿔줘야 할 판국이었다.  그래도 두꺼운 이불 깔고나니 나름 아늑해서, 원래 추위도 안 타고 한국에서 침대 안 쓰던 나는 오히려 오래간만에 바닥 생활하게 되었다고 들뜨기까지 했다.  하지만 여지껏 침대 생활만 한 남방인 진쥔은 좀 난감해 하는 표정이었다. ^^;; (같은 중국인이라도 북방인, 특히 하얼빈 등 동북지방의 중국인 중에는 온돌집에서 살아본 경험있는 사람들이 제법 있음. ^^) 

  어찌되었거나 잠자리와 점심 및 저녁 두 끼를 50위앤(한화 약 9,000원)에 제공받기로 했으니, 우리 둘 다 괜찮은 조건이라 생각했다.  비록 화장실은 문짝도 지붕도 없고, 물 쓰는 것도 여의치 않아 1박 2일 동안 세수도, 양치도 못 했지만... ^^;;

 

 

그림같은 샹커초원에서 승마를...!

(말 타는 우리와 잠시 쉬는 동안 말을 돌보시는 민박집 주인장의 어머니.)

 

  짐만 방에 놓고서, 곧장 고대했던 말타고 초원 돌아다니기에 나섰다.

  말타는데 시간당 31위앤(한화 약 5,580원)이라기에, 30위앤이면 30위앤이지 옆에 붙은 1위앤은 도대체 뭔가 했다.  그 1위앤은 초원 사용료란다. -.-;;  우리나라에서는 당연히 무료인 강이나 들판에 입장료 붙이는 것도 모자라서, 사용료까지 따로 붙이다니...!  도대체 우리나라가 유별나게 인심 후한 건지, 중국이 유별나게 돈 밝히는 건지... 에구... 이제는 나도 모르겠다... ㅠ.ㅠ

 

  어찌되었거나 민박집 주인장 처자의 어머니가 말몰이꾼 노릇을 하며 우리를 데리고 다니시게 되었다.

  그런데 이 분은 간단한 단어 몇 마디 빼고는 중국어를 거의 못 하셨다.  주인장 처자가 어머니를 대신해서 우리 둘 중 누가 말을 타 본 적이 있냐고 물었다.  진쥔이 나를 가르키자(몇 년 전 중국 정저우(鄭州)에서 다른 사람이 끌어주는 말 1시간 정도 탄 게 유일한 경험. ^^;;), 나보고 말 혼자 타라고 하고 진쥔은 자기 어머니가 끄는 말 타랜다.  내가 '허걱~' 하는 반응을 보이자, 말몰이꾼이 한 명이라 어쩔 수 없고 말도 아주 순해서 위험하지 않단다.

 

  과연 그 말은 순했다.

  사실 지.나.치.게. 순했다... -.-;;  너무 얌전히 걷기만 해서 답답할 지경이었다.  그래서 옆구리를 차기도 하고, 손으로 말엉덩이를 때리기도 하고, 고삐를 거칠게 흔들기도 해봤지만, 도무지 뛸 생각을 안 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달려서 좀 신난다 싶으면, 또 천천히 걷고... ㅠ.ㅠ  게다가 먹을 건 어찌나 밝히던지, 툭하면 초원에 널린 풀 뜯어먹느라 멈추기 일쑤라, 말고삐 잡아당겨 얼굴을 풀밭으로 못 숙이게 해야 했다. (참 골고루 한다~~ -.-;;)

  내가 그 때마다 답답해서 '제발 그만 먹고 좀 움직여라~~' 하고 한국어로 말하자, 앞서 가던 진쥔이 말 등에서 고개를 돌리며 '그 말은 한국말 못 알아들어~~ 중국말이나 장족말(티벳어)로 해~~' 하고... ^^;;  

 

 

초원 여기저기에 피어난 거상화(格桑花).

 

  거상화(格桑花)는 이 상커초원에서는 물론이요, 그 후로도 우리가 돌아다닌 티벳의 여기저기에서 자주 본 꽃이다.

  진쥔이 말하기를, 티벳 사람들에게 이 거상화는 행복, 길상(吉祥)을 의미한단다.  진쥔이 탄 흰말을 끌고 가시던 '아마'(진쥔이 민박집 주인장의 어머니를 '아마'라고 부르던데, 아줌마란 뜻인가?)가 거상화를 꺽어 진쥔에게 주자, 진쥔은 좋아 어쩔 줄 몰라하고... (그 거상화는 진쥔의 배낭 속에 실려서, 여행 끝난 후에 쓰촨성의 진쥔네 집까지 갔음. ^^)  

 

 

내가 탄 말을 돌보시는 아마(민박집 주인장 처자의 어머니). 

 

  아마는 우리보고 돌아다니며 사진 찍으라고 시간을 주시고, 그 동안 두 필의 말을 알뜰히 보살피셨다.

  그런데 내가 탔던 말을 가까이서 사진 찍으려고 다가서자, 기겁하며 물러서라고 손짓하셨다.  내가 어리둥절해하자, 자신의 발로 말이 뒷발길질 하는 시늉을 내시며 안 된다고 손을 내저으셨다. ^^;;

 

  그리고 아마가 입으신 저 티벳 복장...

  보면 볼수록 참 독특하다.  저 옷은 두툼해 보이는 천으로 된 것인데, 발목 또는 발등까지 닿는 기다란 코트 모양이다.  그런데 우리 같으면 저렇게 햇빛 좋은 날에는 차라리 저 거추장스러운 두툼한 옷을 벗어버릴텐데, 티벳 사람들은 안 벗는다.  저렇게 상반신 부분만 벗어서 폭이 넓은 천으로 된 허리띠 이용해서 그 상반신 부분과 기다란 소매를 허리 부분에서 질끈 묶어 버린다.  아니면 마치 승려들이 입는 가사 마냥, 한쪽 팔에는 소매를 꿰어차 옷을 입고 다른쪽 어깨는 드러낸 차림으로 등허리 쪽에 소매 하나를 치렁치렁 매달고 다닌다.

  다음 날 라브랑스 사원에 갔을 때 저 옷을 입고 다니는 젊은 여자애들 몇 명을 봤다.  얼굴이 새까맣게 타서 티벳인과 구별이 안 될 정도라, 진쥔은 처음에 그 애들을 티벳 사람이라고 생각했다가 나중에야 한족이라는 것을 알고 웃었다.  하지만 나는 한 눈에 그 애들이 한족인 것을 눈치챘다.  옷 입은 모양새가 티벳 사람들과 너무 달라, 어색해보였기 때문이다.  똑같은 옷이건만, 어째 그 애들이 입으니 일본의 기모노처럼 보였다. -.-;;  

 

 

이 날 점심으로 먹은 티벳 음식. 내 구미에 딱 맞았음~~ ^^

 

  3시간 동안 초원 누비다 돌아와 방에서 쉬고 있는데, 주인장이 우리의 늦은 점심을 차려놨다고 해서 옆 방으로 가서 먹었다.

  그냥 뻔한 밥 생각하며 갔더니, 뜻밖에도 티벳식 음식을 차려놓았다.  위의 사진 왼쪽 위편에 보이는 작은 숟가락 꽂힌 노란색 덩어리는 마오뉴(毛牛 : 직역하면 털소? ^^  티벳에서 키우는 털투성이 소를 말함.)의 젖으로 만든 버터다.  그 아래 황토색으로 보이는 것은 칭커(稞 : '쌀보리'를 말함.)를 미숫가루처럼 빻아 말려 약간의 물로 뭉쳐놓은 것이다.  그 밖의 좀 퍼석퍼석한 빵 몇 조각(몇 조각인데 어째서인지 은근히 배부름.)과 뜬금없이 등장한 한 접시의 백설탕, 그리고 역시 마오뉴한테서 짜냈다는 우유를 따끈하게 데운 것이 이 날의 점심이었다.

 

  원래도 빵, 우유, 버터, 미숫가루 등을 좋아해서 그런 걸로 끼니 잘 때우는 나는 맛있게 잘 먹었다.

  하지만 쌀밥에 고기요리가 있어야 제대로 된 끼니로 치는 진쥔의 표정은 영 아니올씨다 였다. ^^  자기와는 다르게 너무 맛있게 잘 먹는 나를 보더니 '이번 여행 하면서 네가 이렇게 즐거운 표정 짓는 것 처음 봤어.' 라고 했다.  그래도 이것저것 조금씩 맛 보더니, 역시나 자기 구미에 안 맞는지 그 뒤로는 우유만 몇 잔 마셨다.

  하지만 진쥔이 입맛에 맞아 하거나 말거나 나 혼자서 신나게 계속 먹었더니, 진쥔이 좀 황당한 표정 지으며 '귀국하지 말고 그냥 여기에서 살아. 아마한테 결혼 안 한 아들이 있을 거야. 그 사람이랑 결혼하면 네가 좋아하는 이런 거 계속 먹을 수 있잖아.  그냥 여기서 결혼해서 살아~~~' 하고... ^^;; 

 

 

(위) 하루 종일 들판에서 노닐며 풀 뜯다가, 저녁이 되어 주인과 함께 집으로 돌아가는 마오뉴(毛牛).  내 머리숱만큼이나 얘네들 털 정말 덥수룩한 것이, 이 마오뉴는 천상 시원한 고원지대에서만 살아야 할 동물임. ^^

(아래 왼쪽) '뭘 봐?' 하는 듯 한 마오뉴(毛牛)의 표정. ^^ 

(아래 오른쪽) 어쩌다가 무리에서 떨어져나와 혼자 외롭게 나앉은 마오뉴 송아지.

 

  늦은 점심을 먹고 저녁 때 다시 디카 들고 나갔다.

  끝을 알 수 없는 넓은 초원 여기저기에서 소떼, 양떼가 무리 지어 다니고 있고, 간간히 말타고 지나가는 단체 관광객들도 보이고...  말 그대로 목가적인 풍경이었다. ^^

 

 

티벳의 양떼들.  모양과 색깔이 제각각임. 

 

  그런데 얼핏 보면 아름답기만 한 초원인데, 소똥, 양똥, 말똥이 어찌나 많던지... ㅠ.ㅠ

  처음 택시에서 내려 이 상커초원을 봤을 때만 해도 탁 트인 광경에 감탄해서 '그래, 저 너른 벌판 한가운데에 누워 파란 하늘을 보리라...!'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말 타고 돌아보고, 다시 두 발로 걸으며 돌아보니, 초원에 눕는 게 불가능하다는 걸 알았다.  온 초원이 똥천지다... ㅠ.ㅠ  정말 한국에서 평생 동안 본 동물 응가를 다 합친들, 티벳을 6일간 여행하면서 본 응가의 반의 반의 반도 안 될 것 같다...!!! ㅠ.ㅠ

 

 

이 날의 하이라이트...!  MS사의 Windows 화면...! ^^ 

 

  이 사진은 내가 찍은 게 아니라 진쥔이 찍은 건데, 이 사진 보고서 둘이 엄청나게 웃었다.

  MS사의 Windows에 깔린 배경화면과 너무 비슷하기 때문이다...!  혹시 MS사 직원이 여기로 와서 그 배경화면 찍은 거 아니냐면서 깔깔대고 웃었다. ^^

 

  9시 다 되어서야 나온 저녁을 먹고서, 잠자리 들기 전에 밤산책을 나갔다.

  조금 걷다가, 공기가 맑은 시골인데도 별이 달랑 두 개 밖에 안 보이는 걸 이상하게 여기며, 민박집으로 막 돌아서는 길이었다.  갑자기 진쥔이 '별이다!' 하기에 하늘을 보니, 아까 하늘 쳐다보고 겨우 1, 2분 지났을 뿐인데 별이 수십 개 정도 보였고, 특히 북두칠성은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선명하게 보였다.  그렇게 계속 쳐다보는 동안, 별 숫자가 무서울 정도 빠르게 늘어났다...!

  계속 목을 뒤로 젖히고 하늘을 쳐다본 덕에 목이 다 아플 즈음에는, 온 밤하늘이 별로 가득 차는 것으로도 모자라, TV나 책으로만 본 은하수까지 보게 되었다.  그렇게 많은 별을 한 번에 본 것도 처음이었지만, 역시나 고원지역이라 하늘에 가까워서 그랬는지 별의 크기도 한국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컸다.

 

  이 날 본 풍경은 낮의 그림같은 초원도, 밤의 무수히 많은 별이 박힌 하늘도 너무 멋졌다.

  다만 디카에 담은 사진이 원래 아름다움의 반의 반도 나타내지 못 한 게 너무 아쉬울 뿐이다.  내가 너무 안타까워하자, 진쥔이 '당연한 거다. 만일 사진이 실제 풍경과 똑같다면 누가 여행을 가겠냐, 그냥 사진만 보겠지...' 라고 했다.

  특히 밤하늘의 풍경은 평생 가도 두 번 다시 못 볼 광경이었다.  하지만 상커초원은 도시처럼 밤에도 훤한 곳이 아니라, 몇몇 티벳 민가 빼고는 온통 깜깜한 탓에 둔황 막고굴에 쓴 손전등 불빛에 의지해 걸어야 할 정도였다.  그런 암흑천지에서는 도무지 사진을 찍을 수가 없었다.  그 점이 지금도 너무 아쉽다.  한편으로는 그게 인간의 손이 닿을 수 없는 자연의 가장 깊숙한 신비로움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