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 여행기/'10년 간수(감숙)성

샤허(夏河)(2) - 라브랑(Labrang) 사원

Lesley 2010. 8. 13. 14:28

 

 

1. 앗, 살다보니 이런 날이...!

 

  7월 11일 새벽 5시, 전날 밤에 맞춰놓은 핸드폰 알람 소리에 눈을 떴다.

  전날 만났던 한족-회족 커플(?) 택시 기사들이 6시에 우리를 데리러 온다고 했기 때문에, 평소보다 1시간 반 이상 일찍 일어난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진쥔이 이미 일어나서 짐을 챙기고 있었다...! @.@  이번 여행 중, 아니 지난 4월의 베이징 여행이나 작년 쓰촨 여행 중 진쥔의 집에 머문 기간까지 합쳐도, 진쥔이 나보다 일찍 일어난 건 이 날 하루 밖에 없다...!  (살다보니 이런 날도 다 있군... 오래 살고 볼 일이야... ^^;;)

  너무 놀라서 '너 어디 아프냐, 아니면 미친 거냐?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났냐?' 했더니, 춥기도 하고 침대가 아닌 바닥에서 자려니 너무 불편하기도 해서 거의 잠을 못 잤단다.  그러면서 '너는 정말 달게 잘 자더라.' 하며 반쯤 감탄하고, 반쯤 어이없다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

 

 

 

2. 라브랑 사원(Labrang Monastery : 중국명은 拉卜(라부루어쓰)임)

 

  라브랑 사원은 샤허에 있는 티벳 불교의 유명한 절이다.

  티벳 불교의 최대 종파인 황모파(黃帽派 : 노란모자파)의 6대 사원 중 하나로, 약 150개의 건물로 이루어진 대규모 사원이다.  특히 3킬로미터나 되는 전경통(轉經桶)이 유명하다.  이 사원은 교육쪽으로 특화되어 있어서, 젊은 승려들이 이 곳에서 불경, 전통 의술, 전통 음악 등을 배운다.  시장(西藏)자치구는 과거 티벳 영역의 대부분을 차지하며 티벳의 중심지인 라싸가 있는 곳이지만, 종종 발생하는 독립운동이나 민족간 충돌 등으로 시장자치구의 출입이 자유롭지 못 한 경우가 생긴다.  그래서 많은 티벳인들이 라싸로 성지순례를 갈 수 없는 경우에, 티벳의 변방에 위치한 이곳으로 대신 온다.

 

※ 황모파(黃帽派 : 노란모자파)

 

  티벳 불교의 종파는 특이하게 각 종파의 승려들이 쓰는 모자의 색깔별로 이름을 붙여 황모파, 홍모파, 흑모파, 백모파 등으로 불린다.

  그 중 황모파가 최대 종파인데, 대부분의 종교가 그렇듯이 티벳 불교도 역사적으로 종파간 피비린내 나는 분쟁를 겪었다.  수행에 정진하고 민중의 정신적인 지주가 되어야 할 종교집단이 세속의 권력과 부를 탐내서 분쟁을 벌인 것도 문제인데, 가장 큰 문제는 이런 내부 분쟁에서 승리하겠다고 외세를 끌어들였다는 점이다.  황모파는 몽골의 군사력을 빌어 가장 강력한 경쟁자인 홍모파를 굴복시키는데 성공했고, 그 후 중국 청나라 황실의 힘을 빌어 티벳에서의 지배력을 굳건히 했다.

  하지만 이렇게 지배층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외세와 야합한 것은, 당연히 티벳에서 외세의 영향력을 키워놓았고, 결국에는 현재 티벳이 중국에 병합된 원인 중 하나가 되어 버렸다. (국가의 지도층이 자기들 이익을 위해 국내 문제에 외세를 끌어들일 경우, 나라가 결딴난다는 걸 보여주는 무서운 예임.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국내 문제는 국내에서 해결합시다...!) 

 

 

  이번 여행 중 하마터면 이 라브랑 사원에 못 갈 뻔했다.

  둔황의 명사산에서 만난 광저우에서 왔다는 중국 아가씨가 라브랑 사원이 일반인 출입금지가 되었다고 말해줬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일단 직접 가서 현지에서 자세한 사정을 알아보자고 했다.  설사 라브랑 사원에는 못 들어가도라도 그 근처의 샹커초원에는 갈 수 있을테니, 헛걸음 하게 되지는 않을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샤허에 도착해 택시 기사에게 물어보니, 다행히 라브랑 사원의 출입금지가 해제된 상태라고 했다.

  라브랑 사원이 한동안 일반인 출입금지였던 이유는, 2008년 봄 티벳 라싸에서 일어난 독립시위 때 라브랑 사원의 일부 승려들도 샤허에서 시위를 일으켰기 때문이다.  당시 라브랑 사원의 고위급 승려들이 시위에 참가한 승려들을 비난하는가 하면, 시위가 진압된 후에 한국, 일본 등 외신기자들이 중국 관계당국이 동행하는 가운데 라브랑 사원의 취재에 나서자 일부 젊은 승려가 기자단에게 자신들에게는 자유가 없다며 기습시위를 하는 둥, 중국의 지배를 두고 티벳 불교 내부의 분란도 있는 듯 하다.

 

  사실 이제와서 티벳의 독립은 불가능해 보인다.

  과거에는 많은 국가들이 중국의 티벳 점령을 비난하고 티벳에 호의적이었다.  하지만 1990년대 들어서 중국이 무서운 속도로 경제성장을 거듭하고, 국제사회에서 정치와 군사면에서 패권을 쥐면서, 사정이 바뀌어버렸다.  결국 국제사회에서는 각 나라가 도덕적 논리보다는 자기 나라의 이익에 따라 움직이게 되어있는만큼, 티벳보다는 중국과 친밀한 관계 유지하는 게 유리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아직은 세계 최강국이라는 미국의 대통령 오바마도 2009년 중국을 방문하며 '티벳은 중국 영토의 일부다.' 라고 공개적으로 선언했을 정도니... (그러고는 자기도 좀 뻘쭘했는지 '중국 정부가 달라이 라마 측과의 대화를 조속히 재개해 갈등을 해결하기 바란다.'라고 한 마디 덧붙임. -.-;;) 

 

 

라브랑 사원 앞에 있는 석판 표지. (왼쪽은 중국어, 오른쪽은 티벳어)

 

  약속대로 6시에 온 택시를 타고 다시 샤허(夏河)로 갔다.

  먼저 그 곳 유스호스텔에 가서 짐을 맡긴 후, 이 날의 목적지인 라브랑 사원(Labrang Monastery)으로 갔다.  라브랑 사원의 매표소가 8시부터 문을 연다고 해서, 그 동안 사원 주위와 사원 마당을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위) 라브랑 사원의 정전.

(아래 왼쪽) 아침부터 분주히 움직이는 승려들.

(아래 오른쪽) 저 하얀색 탑은 티벳 마을마다 하나씩 다 있던데,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지 모르겠음. 다른 불교의 불탑과 비슷한 건가?

 

 

오른쪽에 세워놓은 티벳의 솟대(?).

(우리나라 솟대와 비슷한 모양이고, 그 아래에는 성황당 아래 돌무더기 비슷하게 돌맹이들이 쌓여있음.) 

 

 

아침부터 참배하러 온 티벳 노인들.

(중년 이상의 여자들이 머리를 양갈래로 땋고 다니던데, 특이한 것은 양갈래 끝을 서로 묶는다는 것.) 

 

 

라브랑 사원 근처의 유채꽃밭과 그 너머로 보이는 전경통(轉經桶).

(길게 뻗은 기와집 같은 것이 3킬로미터나 되는 걸로 유명한 라브랑 사원의 전경통임.)

 

  그런데 저 아름다운 유채꽃밭은 동물 응가는 물론 사람의 응가도 엄청 많이 숨어있는 똥밭이었다...! ㅠ.ㅠ

  유명한 관광지라 근처에 큰 공중화장실도 있건만, 아무래도 순례 온 티벳 사람들이 산골짜기에서 문명과 동떨어져 지낸 사람들이라 그런지, 그냥 자연스럽게 꽃밭이나 풀숲에서 일을 해결하는 듯 했다.

  그런 사정을 몰랐던 내가 겉으로 보이는 아름다움에만 취해서, 멀쩡한 길 두고 꽃밭을 가로질러 전경통 있는 곳으로 가자고 했다.  진쥔도 처음에는 선선히 그러자 하며 내 뒤를 따랐는데, 잠시 후 꽃밭의 숨겨진 것들을 발견한 후 나를 원망하고... ㅠ.ㅠ  사실 동물의 것과 사람의 것을 보는 느낌은 완전히 달라서, 나도 토악질 나오는 걸 겨우 참아가며 걸었다. ㅠ.ㅠ 

 

 

3킬로미터나 되는 길이로 유명한 전경통(轉經桶).

 

  티벳 사람들은 저 전경통을 돌리며 걷는 것이 불경을 외우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단다. 

  그래서 티벳 각지에서 온 많은 티벳인들(대부분 노인층, 장년층)이 저 긴 전경통을 돌리며 걷고 또 걷는다.  우리도 따라서 해봤는데, 볼 때에는 전경통만 돌리면 되니까 수월할 것 같았는데, 막상 해보니 계속 전경통 돌려야 하는 오른팔이 꽤나 아프다.  성질 급한 어떤 티벳 사람들은 내가 너무 느리다고 생각되는지, 내 어깨를 밀치듯 하며 나를 추월하기도 하고... ㅠ.ㅠ  보다 못한 진쥔이 내 뒤에서 '하나씩 전부 돌릴 필요없어.' 라고 하고... -.-;;

 

 

 

라브랑 사원에 속한 어떤 건물 대문의 복잡하고도 정교한 조각.

 

 

(위 왼쪽) 티벳에서 종종 볼 수 있는 검은 돼지. (저 녀석은 아무래도 임신한 듯... ^^)

(위 오른쪽) 저 흰 돼지를 찍었더니, 진쥔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흔한 돼지를 왜 찍냐고 타박하고... ^^;;

(아래) 라브랑 사원 한복판에 있던 양.  나름 신성한 양인지, 알록달록한 천을 몸에 달고 다니는데, 관광객이 너무 가까이 다가가며 뿔로 받으려 듦. ^^

 

 

공탕링(貢唐靈)탑이 있는 건물 앞. 

 

  라브랑 사원의 전경을 보려면 저 공탕링탑 또는 라브랑 사원 앞 산에 올라가야 한다.

  우리는 전경통을 지나 좀 더 걷는 김에, 안으로 들어가 이 공탕링탑으로 올라갔다.  아침 8시도 안 되었건만, 벌써부터 많은 티벳 노인들이 저 건물 앞에서 또는 건물 안으로 들어가 참배 중이시고...

 

 

공탕링탑 위에서 바라본 라브랑 사원의 전경.

(건물이 150 여개라더니, 정말 대규모 사원이다...!)

 

 

이것도 공탕링탑 위에서 본 풍경.

 

  공탕링탑 위에서 사방을 둘러보니, 절로 감탄이 나왔다.

  확 트인 라브랑 사원의 모습과 그 뒤로 보이는 아침 안개 낀 산, 푸른 하늘...  너무 뻔한 소리지만, 정말 한 폭의 그림이 따로 없을 지경이다.  상쾌한 고원의 아침 공기와 참배객 우글거리기 전의 고요함, 이제 막 아침 여는 활기참이 어우러진 보기 좋은 광경이었다. ^^ 

 

 

 

3. 샤허의 유스호스텔과 티벳 아가씨들

 

(위) 우리가 묵었던 샤허의 유스호스텔의 1층 로비. 위에 매단 만국기 한 가운데에 우리 태극기가 확 보임. ^^ 

(아래 왼쪽) 유스호스텔 대문.  티벳 분위기가 물씬 남.

(아래 오른쪽) 유스호스텔 담에 붙은 유스호스텔 표지.  상당히 자연친화적인 느낌? ^^

 

  오후에 비가 오기 시작해서 예정보다 일찍 숙소로 돌아왔다.

  2인실이 다 예약이 찼다 해서 4인실로 갔더니, 항저우(杭州 : 항주)에서 왔다는 갓 대학 졸업했다는 중국 여자애가 먼저 들어있었다.  며칠 전부터 감기 들어서 다른 곳에 가지도 못 하고, 다른 여행자들도 없어서 그 동안 혼자서 4인실에 머물렀단다. 

 

  그런데 곧 이 지방 사람이라는 두 명의 다른 여자애들(모두 티벳 아이들인데, 알고 보니 내외종 자매. 어쩐지 얼굴이 닮았더라니... ^^)이 항저우 아이를 찾아왔다.

  항저우 아이 말이, 자기가 샤허 도착하던 날 같은 버스 타고 와서 알게 된 아이들인데, 감기로 꼼짝 못 하는 동안 그 애들과 어울렸단다.  그러면서 자기들은 그만 나가서 논다고 해서, 우리도 손 흔들어줬는데... 

  조금 전에 나갔던 애들이 곧 다시 돌아왔다.  나가는 길에 '너희가 방금 전에 본 그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한국인이다.' 라고 했더니, 그 두 티벳 아이가 나와 얘기하고 싶다고 해서 돌아온거란다. ^^  그래서 잠깐 이야기를 했는데, 확실히 한어(중국어)가 좀 서툰 편이었고, 발음도 한족 아이들과 달랐다.  좋게 말하면 부드러운 느낌, 나쁘게 말하면 어눌한 느낌이라, 알아듣는게 힘들었다.  외국인인 나한테는 물론이고 쓰촨성에서 왔다는 진쥔에게까지 큰 호기심 나타내는 것이, 관광객이 몰리는 곳에서 살기는 했어도 개별적으로 외지인들과 접한 적은 거의 없는 듯 했다.

 

 

(위) 다정한 티벳 내외종 자매.

(아래 왼쪽) 이쪽이 이미 대학 졸업하고 칭따오(靑島 : 청도)에서 여기 고모네로 놀러왔다는 언니.

(아래 오른쪽) 이쪽은 란저우대학 재학 중 여름방학 맞아 집에 온 동생.

 

  상커초원에서 민박집 티벳 식구들 보면서도 느꼈던 건데, 티벳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다 미인이다.

  워낙 척박한 환경 속에서 사는 탓에 얼핏보면 깨끗하지 못하다는 느낌만 들지만, 찬찬히 뜯어보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이목구비가 뚜렷뚜렷하다.  고원의 쨍쨍한 햇볕에 피부는 새까맣게 탔고 머리카락은 윤기 없이 부스스하며, 물이 귀한 탓에 제대로 씻지도 못 한 상태지만(사실 우리도 티벳 여행하는 동안 제대로 못 씻었음.), 그래도 자세히 보면 다들 한 인물함을 알 수 있다. ^^  유스호스텔에서 만나 두 여자애들은 역시나 도회지 물 먹어 그런지, 찬찬히 살펴볼 것도 없이 그 타고난 미모가 빛을 발하고... ^^

 

  그 날 오후는 이 티벳 아이들과 어울리며 시간을 보냈다.

  이 애들이 자기들과 같이 나가겠냐고 해서, 함께 티벳 기념품점에 가서 진쥔은 팔찌와 귀걸이를, 나는 미니 크로스백을 샀다.  역시나 그 고장 사람이 가서 그 고장 말로 흥정을 붙이니, 그 전에 우리끼리 갔을 때와는 다르게 가격이 팍팍 떨어졌다. ^^;;

 

  헤어질 때 자기들끼리 티벳어로 뭔가 의논하는데, 눈치를 보니 우리를 자기네 집에 초대하고 싶어하는 듯 했다.

  문제는 우리가 전날 상커초원에서 원시생활(?)을 즐긴 덕에 거의 이틀 동안 세수도 양치도 못 했다는 점이다. (세수는 1회용 물수건으로 대신하고, 양치는 자일리톨 껌으로 대신하고... ㅠ.ㅠ)  도무지 그 꼴로는 남의 집 갈 엄두가 안 났다.  거기에 하루라도 샤워 못 하면 큰일 나는 남방인 진쥔은 당장 숙소로 돌아가 샤워하고 싶어 안달 난 상태였다.  그 애들도 우리가 다음 날 아침 7시 40분 차로 떠나야 한다는 말에 포기하는 눈치고...  사실 현지인 집에 초대받는 일은 아무 때나 겪을 수 없는 소중한 기회인데, 그 점이 지금도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