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얼빈 생활기/'09~'10년 흑룡강대학 어학연수기

하얼빈을 떠나며 / 하얼빈 생활기를 끝맺으며

Lesley 2010. 7. 25. 21:55

 

 

 ◎ 하얼빈을 떠나며 - 안녕, 하얼빈...

 

  2009년 3월 10일부터 시작되었던 하얼빈 생활이 2010년 7월 2일에 끝났다.

  지금 돌이켜보면 좋은 일도 많았고 나쁜 일도 많았던 하얼빈 생활에 대해, 시원섭섭하고 달콤씁쓸한 느낌이다.  하지만 정작 떠나던 순간에는 특별한 감정을 느끼지 못 했다.  그 날 저녁 7시쯤 흑룡강대학을 떠났는데, 아침 7시부터 오후 4시까지 온갖 일을 처리해야 했다.  그러다보니 정작 떠나는 순간에는 몸도 마음도 모두 파김치가 되어, 어떤 감흥도 없었다...! ㅠ.ㅠ

  기숙사 퇴실수속부터 시작하여, 학교를 완전히 떠나는 일에 관련된 서류를 처리해야 했는데, 무엇 하나 매끄럽게 진행이 되지 않았다.  덕분에 30도 넘는 날씨에 기숙사 프론트 데스크를 두 차례, 학교의 유학생 사무실은 세 차례씩 오가야 했다.  게다가 떠나기 전 1주일은 정말 바빠서, 마지막 날인 그 날까지도 이 사람 저 사람 만날 약속이 4건이나 되어 더욱 정신이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바로 5월에 치른 HSK 성적표를 수령한 일이다.  바로 전날까지도 성적표가 학교에 도착하지 않았다고 해서, 까딱하면 성적표 못 받고 귀국하는 거 아닌가 싶었는데...  떠나는 날 오후에 유학생 사무실 가보니 성적표가 도착해 있었다. (그런데 도착했으면 도착했다고 공고문 좀 붙여주면 어디가 덧나나... 하마터면 성적표 온 줄도 모르고 그냥 하얼빈 떠날 뻔했음... ㅠ.ㅠ)

 

  저녁 7시가 다 되어 주뺘오와 J군의 방으로 갔다.

  오전 중에 기숙사 방을 비워야 했기 때문에, 여행짐을 바로 옆 방 J군의 방에 맡기고서 이런저런 일을 처리했다.  J군은 이번 학기 들어서 눈코 뜰 새 없이 바빠 언제나 잠이 부족했는데, 내가 찾아갔을 때도 낮잠 자다가 깨어 제정신이 아니었다.  나 또한 나를 기차역까지 전송하겠다던 후쉐 '양'과 만날 시간이 다 되어 마음이 급했고...  결국 아쉽게도 J군과는 작별을 하는 둥 마는 둥 헤어졌다.  그 다음 날 기차 안에서 전화 통해서 겨우 제대로 된 작별을 했다. ^^;;

 

  주뺘오가 내 여행용 큰 배낭을 나 대신 짊어지고, 나는 크로스백만 매고 C취 남문으로 갔다.

  거기에서 양을 만나, 세 명이서 함께 택시를 타고 하얼빈 기차역으로 갔다.  역에서 30분 정도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8시가 다 되었을 때 두 사람에게 그만 가보라고 했다.  서울과는 달리 해 떨어지면 인적이 금새 드물어지는 곳이라, 두 사람이 학교로 늦게 돌아가는 게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미 기말고사 시작한 양이 다음 날 시험봐야 하는 것도 마음에 걸렸고...

  그래도 원래는 양만 오기로 했기 때문에 여자애 혼자 어떻게 보내나 은근히 걱정했는데, 남학생인 주뺘오가 같이 와서 안심이 되었다. ^^

  

  두 사람과 헤어진 뒤, 베이징에서 하얼빈으로 단체여행 왔다가 나와 같은 기차로 베이징으로 돌아가시는 할아버지, 할머니 부대에 둘러쌓여 질문 공세를 받았고... ^^

  보통의 경우, 우리나라를 그냥 '한국'이라고 호칭하는데 이 분들은 뜬금없이 '남한'이라고 하시면서, '이승만이 어떻고, 김일성이 어떻고~~~~' 하며, 제대로 못 알아듣는 나는 제쳐두고 자신들끼리 열띤 토론(?)을 벌이셨다.  그러더니 이 분들 공교롭게도 나와 같은 칸에 타셨는데, 내가 자신들의 자리를 지나칠 때 '난한 샤오제(南韓  小姐 : 남한 아가씨) 안녕~~' 하고 합창하다시피 하시는데, 솔직히 좀 난감했다. ^^;;

 

  그렇게 7월 2일 밤 9시 10분에 출발하는 베이징행 기차를 타고, 더운 날씨에 온종일 온갖 일 처리하느라 지친 몸을 침대칸에 누이는 걸로, 1년 4개월간의 하얼빈 생활을 끝맺었다.

 

 

 

 ◎ 하얼빈 생활기를 끝맺으며 - 내 마음의 하얼빈

 

  정작 하얼빈 떠나던 순간에는 그냥 피곤하다는 느낌과 다음 날 베이징에 도착해서 란저우행 기차 갈아탈 때까지 남는 5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까 하는 생각 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니, 1년 4개월 동안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었고, 여러 좋은 친구를 만났던 하얼빈이라, 무척 복잡한 기분입니다.  다시 하얼빈에 가보고 싶기도 하고, 중국에 다시 갈 일이 있더라도 하얼빈은 그다지 안 끌릴 것 같기도 하고...  저도 제 감정이 정확히 무엇인지 알기 힘들 정도로 복잡하고 미묘한 기분입니다.

  그리고 귀국한지 겨우 1주일이 지났을 뿐인데, 벌써 몇 달 전 일처럼 멀게 느껴지는군요.

 

  또한 지금 쓰는 이 포스트가 '하얼빈 생활기' 카테고리에 올라가는 마지막 포스트입니다.

  한국에 있는 친구들에게 제가 어찌 지내고 있나 알리고, 저처럼 흑룡강대학으로 공부하러 오실 분들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앞으로 세월이 많이 흘렀을 때 추억을 되새기기 위해서 쓰기 시작한 '하얼빈 생활기' 입니다.  처음 시작했을 때는 아마 1주일에 한 편 정도 해서 50여편 정도 쓰게 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제 하얼빈 생활이 워낙 스펙터클하고 다사다난한데다가, 예정보다 한 학기 더 머물게 되는 통에 100편을 훌쩍 넘겨버렸습니다. ^^;;

 

  비록 힘든 일도 많았지만, 하얼빈 생활은 제 인생에서 결코 지울 수 없는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앞으로 하얼빈에 다시 갈 기회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하얼빈은 평생 동안 아주 특별한 곳으로 기억될 것입니다.  안중근 의사의 의거가 있었던 곳이고, 제가 좋아하는 박경리님의 토지의 무대 중 한 곳이며, 국적과 나이를 초월한 좋은 인연을 여럿 만났던 장소인지라, 하얼빈 이 석 자가 제 마음 한 귀퉁이에 영원히 자리 잡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