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얼빈 떠나기 전 1주일은 시간이 어찌 지나갔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정신 없이 바빴다.
그 많은 사연들을 시시콜콜 쓰자면, 아마 포스트 10개 정도는 너끈히 채울 수 있을 것이다. ㅠ.ㅠ 하지만 그렇게 할 수는 없고, 그 파란만장한 사연 중 최고의 사연 하나만 골라 쓸까 한다. 어학연수생활 막바지에 맹장염(!) 걸린 지지리로 운 없는 한국학생과 중국 병원의 돌팔이 의사에 얽힌 사연이다...! -.-;;
내가 하얼빈에서 생활하면서 가 본 병원은 흑룡강대학 정문에서 도로 하나 사이에 두고 있는 '인민해방군 제211의원' 하나 뿐이다. (※ 중국어에서 '의원'은 한국어의 '종합병원'에 해당함.)
이 인민해방군 제211의원은 이미 내 블로그에서 한 차례 큰 센세이션을 일으킨 적이 있다. (☞ '중국 병원에 가다.(http://blog.daum.net/jha7791/15790520)' 참조 ) 내가 이 블로그 운영하면서, 특정 포스트 조회수가 3자리가 되는 것을 그 때 처음 경험해봤다. -.-;; 그만큼 그 때 올린 이 병원에 대한 사연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생소하고 황당하게 비춰졌다는 건데...
그래도 그 때의 사연이 아무리 황당하다 한들, 이번에 겪은 사연에는 비할 바가 못 된다. -.-;;
1. 다시 찾은 '인민해방군 제211의원(人民解放軍 第211醫院)'
하얼빈에서 마지막으로 맞는 월요일이었던 6월 28일, 아침부터 비가 내렸지만 시원하게 내리지도 않아, 기온은 그다지 높지 않지만 습도는 무척 높아 끈적거리는 불쾌한 날씨였다.
여행 떠나기에 앞서 머리 좀 손질하려고 미용실 다녀온 사이, 우리반 A에게서 부재중 전화가 왔다. 그래서 A에게 연락해봤더니, 뜻밖에도 병원에 함께 가달라고 부탁했다. 며칠 전부터 배가 아팠는데, 그 전날 밤에는 잠을 설칠 정도로 아파서 아무래도 병원에 가봐야겠다고 했다.
문제는 어느 병원으로 가야 하는가 인데...
예전에 겪은 인민해방군 제211의원에 대한 안 좋은 기억 때문에 '그런데 어디 병원으로 갈거야? 학교 앞 병원은 다른 사람 아플 때 따라가봤는데, 영 아니던데...' 라고 말했다. 그러자 A가 '중국친구가 좋은 병원 안다고 알려준다고 했어요. 거기 가면 되요.' 하기에, '괜찮은 개인병원이라도 알려주려나 보다' 하고 생각하며 안심했다.
그 날 오후 2시쯤 나와 A와 만난 후, A가 그 중국친구에게 전화를 해 '네가 말한 좋은 병원이 어디며, 어떻게 가야 하느냐' 고 물었더니, 자신이 우리와 동행하겠단다. 아무래도 외국인 두 명이서 가는 게 좀 불안하던 차에 잘 되었다 싶었는데... A의 그 중국친구가 말한 '좋은 병원'이란 곳이 바로 문제의 '인민해방군 제211의원'이었다...!!! (이게 도대체 뭥미~~ ㅠ.ㅠ) 알고보니 그 중국친구는 현역 군인인데, 자신이 군인이다 보니 자신의 동료들이 있는 병원으로 우리를 데려간 것이다. -.-;;
2. 돌팔이 의사를 만나다
나중에 들으니, A도 자신의 병을 맹장염으로 의심했었다 한다.
다른 곳도 아니고 오른쪽 옆구리가 아팠다니 말이다. 아는 한국학생에게 자신의 증상을 설명하자, 상대방도 대뜸 맹장염부터 생각하더란다. 그 일 있고 하루, 이틀 지나 만난 J씨나 옛 푸다오 선생인 징신도 나에게 이야기를 듣더니, 모두 맹장염부터 떠올렸다. 그렇게 의학의 '의'자도 모르는 일반인들은 한국인, 중국인 할 것 없이 죄다 맹장염을 의심했건만...
정작 그 날 A를 진찰한 의사는 뜬금없이 신장 결석을 의심하며, 초음파 검사를 받게 했다. -.-;;
하지만 검사 결과 정상으로 판명나자(정상으로 나온 게 당연함. 신장은 아무런 문제 없었으니까... -.-;; ), 별 문제 없다고 했다. 그저 그 무렵 하얼빈 기온이 엄청나게 올라 사람들이 에어컨 자주 켜고 밤에 창문 열어놓고 자는 통에 탈이 난 것 뿐이라 했다. 또한 그렇게 덥다고 움직이지 않은 탓도 있으니, 운동장을 뛴다든지 하며 자주 운동을 하라고 했다. (나중에 A는 그 의사 욕을 하면서, 자신이 의사 말대로 정말 운동했으면 아마 맹장이 터져서 죽어버렸을 거라 했음. -.-;; )
그 와중에 언어가 안 통해 벌어진 웃긴 사건도 하나 있었고...
의사에게 별 탈 없다는 이야기 듣고 진찰실을 나오면서, A의 그 중국군인 친구가 우리가 의사 말을 못 알아들었을까봐 '너 쇼우량(受凉 : 감기에 걸리다, 한기 들다)이야.' 라고 설명했줬다. 하지만 쇼우량이란 말을 처음 들어본 우리가 무슨 뜻인지 몰라 어리둥절해 하자, 이번에는 '량(凉)이라고!' 하고 다시 설명했다.
나는 여전히 '쇼우량? 량? 그게 뭐지?' 하며 고개만 갸우뚱 하는데, A는 미리 앞질러 엄청난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눈을 커다랗게 뜨고는 '언니, 지금 얘가 나 암 걸렸다고 하는 거에요?' 라고 했다. -0-;; 내가 '암은 무슨 암?' 이라고 했더니, '지금 '량'이라잖아. 종양(腫瘍)의 '양(瘍)'을 중국애들이 그렇게 발음하는 거 아니에요?' 라고 했다. ^^;;
듣고 보니 정말 그럴 듯 해서, 겁 먹어 직접 물어볼 생각도 못 하는 A 대신 '지금 네가 말하는 '량'이라는 게 암이란 뜻이냐?' 라고 물었다. 그러자 그 중국군인 표정이 딱 -.-;; ← 이렇게 변했다. ^^;;
하여튼 그 날은 의사의 별 문제 없다는 말을 믿고, 병원을 나와 헤어졌다.
A는 기숙사로 돌아가 누워 쉬겠다며 그 중국국인 친구와 학교로 돌아갔다. 나는 나대로 병원 다녀오느라 귀국 비행기 출발장소 변경하는 문제를 해결하러 아시아나 항공 하얼빈 지점으로 가는 일이 늦어져, 허겁지겁 택시를 잡아 타고 갔다. (하지만 예정된 시간보다 2시간 늦게 가는 통에, 그 새 충칭(重慶 : 중경)발 비행기표를 다른 사람이 차지해 시안(西安 : 서안)행으로 바꿈. -.-;;)
3. 결국 맹장염으로 밝혀지다
병원 다녀온지 이틀이 지난 6월 30일, 이 날도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원래 내 귀국짐을 한국으로 배달해주기로 한 물류회사 사람이 그 다음 날 오기로 했는데, 물류회사측 사정으로 이 날 갑자기 오게 되었다. 덕분에 초특급으로 짐을 싸느라 고생했다. (그렇게 서둘러 짐 싸서 보냈더니 미처 챙겨보내지 못 한 짐 몇 개를 하얼빈 떠나던 날에야 발견했고, 덕분에 여행길 내내 11킬로그램짜리 배낭에 눌려 지냈음. -.-;;)
그러다가 짐 부치는 일 관련해서 역시 같은 반인 J(왜 이렇게 내 주위에는 이니셜이 J인 사람이 많냐... -.-;;)에게 전화를 했는데, 여기에서 뜻밖의 소식을 들었다. A의 병이 맹장염이라는 게 그 날에야 밝혀져서, 급하게 그 다음날 아침 일찍 출발하는 귀국 비행기표를 예약했단다. -0-;;
A에게 전화를 했더니, 아파서 꼼짝도 못 하는 통에 귀국짐도 못 싸고 누워있다고 했다.
제일 큰 문제는 다음 날 환자인 A 혼자서 공항에 간다는 거다. (이건 또 무슨 황당 시츄에이션??? -0-;;) 하필 A가 병이 난 시기가 학기말이라 다들 자기 귀국 문제나 다른 지역으로 옮기는 문제로 어수선 할 때이기도 하고, 급하게 귀국하느라 아침 8시 반 비행기를 탄다고 하여, 공항까지 전송할 사람이 없는 듯 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응급환자 옆에 두어 시간 같이 붙어 있을 사람이 없다는 게 말이 되나...
결국 내가 공항에 같이 가기로 하고, 공항에 갈 자동차를 수배했다. (SY 부부 왔을 때 이용했던 조우 선생의 빵차 ^^)
그리고 일단 그 날 A의 방으로 가서 상태가 어떤지 보기로 했다.
J씨도 나한테 사정을 듣고는, 비록 안면조차 없지만 같은 한국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걱정하며 함께 갔다. 한국에서 간호사로 근무했던 J씨는 A가 병원에서 받아온 검사표를 보면서 상태가 많이 안 좋다고 걱정했다. 그리고 한국에서 가져간 약을 건네주며 몇 가지 주의사항을 말해주고 돌아갔다.
사실 이런 경우는 J씨가 가져다 준 약 자체가 큰 효험이 있다기 보다는, 같은 한국인이고 병원에서 근무한 경력 있는 J씨가 다녀갔다는 것이 큰 위로가 되었던 셈이다. 가져다 준 약이야 어차피 비상용이라 임시방편일 뿐이고, 그 황당한 돌팔이 의사에게 질린 나머지 그 날 저녁 당장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병원측 권고를 무시하고 무리하게 귀국하는 A로서는 '믿을만한 사람'이 자신의 상태를 잠시나마 봐줬다는 게 심리적으로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4. 요란벅적 급거 귀국
그 후에 나와 A의 룸메이트가 A 대신 귀국짐을 쌌는데...
아무래도 자신의 짐이 아니다 보니 뭐가 뭔지 알 수도 없고 시간도 촉박해서, 대형 캐리어 속에 짐들을 아무렇게나 쑤셔넣었다. 덕분에 나중에 A가 뭐 좀 내달라고 했을 때, A의 룸메이트나 나나 분명히 그 물건을 봤는데도 어디에 넣었나 알 수 없어 못 찾는 일도 생겼고... -.-;;
차곡차곡 정리한 게 아니다 보니, 짐을 넣을 공간이 더 부족했을 것이다. 그러나 상황이 그러니 어쩌겠나... 넣을 공간이 없어 귀국길에 못 가져가는 물건들을 그냥 방바닥이나 침대에 아무렇게나 늘어놓았다. (덕분에 다음 날 아침 공항 가려고 들렸을 때, 방 꼴이 말이 아니었음. 그 층 담당하는 푸우위엔 아줌마가 나중에 청소하며 틀림없이 욕했을 듯... ^^;;)
다음 날인 7월 1일, 새벽 댓바람부터 일어나 간 공항에서 또 난감한 상황 발생...
하얼빈의 태평공항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모르겠지만, 다른 중국공항에 비해 검색이 심하고 출국 절차도 색다르다. 다른 공항에서는 일단 항공사 카운터에 가서 좌석표 발부받으며 수하물을 부치고서, 가벼운 기내용 짐만 들고 보안검사 등 다른 절차들을 밟으면 된다. 그런데 하얼빈 태평공항은 기내용 짐에 수하물로 부칠 짐까지 다 끌고서 온갖 절차를 밟은 후, 겨우 수하물을 부칠 수 있다. 즉, 당장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경고를 받고서 무리해가며 귀국하는 환자가 그 무거운 짐을 혼자 끌고 그 절차들을 다 밟아야 하는 것이다. -.-;;
하지만 어쩌겠나, 다른 사람이 출국 심사장으로 함께 들어갈 수도 없는 노릇이니, 혼자 가는 수 밖에... 그나마 다행인 건, 공항 가는 차 안에서는 무척 괴로워했던 A가 막상 공항 도착해서는 한결 나아진 모습이었다. A는 나와 자신의 졸업식도 빼먹고 나와준 중국친구(위에 등장한 그 중국군인 말고, 흑룡강대학 4학년생인 다른 중국친구. 공교롭게도 이 날이 중국학생들의 졸업식이었음.)를 뒤로 하고 웃으며 출국 심사장으로 들어갔다.
정말이지, 외국에서 생활하다 보면 자기 나라에서는 별 일 아닌 온갖 일들이 다 복잡한 일이 되는데, 그 중에서도 최악의 상황이 몸이 아픈 일일 것이다.
이건 말이 통하기를 하나, 외국 병원의 접수 절차나 비용처리 문제에 대해 잘 알기를 하나, 나중에 귀국해서 보험료 청구하는 일도 꽤나 성가신 일이라 하고... 지금 이 순간 하얼빈에서, 아니 하얼빈 뿐 아니라 전 중국, 그리고 전 세계에 나가 공부하고 있는 우리나라 학생들, 부디 공부하는 내내 항상 건강에 신경 써서, 해외에서 병원 신세 지는 일만은 없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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