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얼빈 생활기/'09~'10년 흑룡강대학 어학연수기

이별... 또 이별...

Lesley 2010. 7. 21. 21:49

 

 

 

  6월 말부터 하얼빈에서 인연 맺은 사람들과 차례로 이별을 했다.

  이 무렵 한편으로는 겨우 일정 확정된 여행 준비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귀국 짐 정리하고, 택배회사 알아보는 일에, 은행 일에, 기숙사와 학교 관련 일에 정신이 하나도 없없다.  그러다보니 1년 넘는 하얼빈 생활 중 정이 많이 든 친구들과의 이별이건만, 솔직히 주뺘오(☞ '본격적인 작별 시작 - 주뺘오와 작별하다. (http://blog.daum.net/jha7791/15790731)' 참조)와 이별할 때만큼 섭섭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 (미안하이, 친구들~~~ 그대들에 대한 정이 주뺘오에 대한 정보다 옅은 건 절대 아니야.  하지만 정말 그 때는 너무 바빠서 마음의 여유가 하나도 없었다네~~ ㅠ.ㅠ) 

 

 

 

 ◎ 6월 24일 - 류디

 

 

  이번 학기 함께 공부했던 푸다오 선생 류디와 6월 24일 마지막 수업을 했다.

 

  류디는 그렇잖아도 내 귀국짐이 많을테니 크기가 작으면서, 동시에 중국적인 것이 좋을 거라 생각하고 골랐다며, 수제 나무빗과 거울을 줬다. 

  공교롭게도 저 수제 나무빗은 SY 부부가 왔을 때 자신들이 쓰려고, 그리고 한국에 돌아갔을 때 몇 친지들에게 선물로 주겠다며 흑룡강대학 옆 쓰따오제에서 몇 개 사간 것과 같은 것이다. ^^  파마 머리 아닌 사람에게는 꽤 괜찮은 선물인 듯...  지나치게 비싸지 않으면서, 나무로 된 것이라 은은한 향이 나고, 머리 빗을 때 느낌도 확실히 플라스틱빗과는 다르니 말이다.

 

  류디의 경우, 작년 푸다오 선생이었던 진쥔이나 징신만큼 함께 시간을 많이 보내지 못 해서, 깊게 교류하지 못 했다.

  류디가 대학원생이기 때문에 수업 시간도 빡빡하고(중국은 학부 과정, 대학원 과정 할 것 없이 한국보다 이수단위가 높음.), 외국어 공부에 다른 푸다오 수업에 벌여놓은 일이 워낙 많아서리...  또 이전 푸다오 선생들에 비해 외국인과의 교류에 관심 있는 것 같지도 않고...  하지만 그래도 자기 일에는 최선을 다하려는 성격이었고, 항상 열심히 사는 듯 했는데, 막상 헤어지려니 조금 아쉽기도 했다. ^^

 

  그리고 류디와 얽힌 일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앙드레 김' 사건...

  내가 5월 1일 노동절 휴가 기간 동안 만저우리 다녀오는 사이, 우리나라 연예인인 장동건-고소영 커플이 결혼을 했다.  평소에 한국 연예계에 관심 많은 류디가 인터넷 통해 두 사람의 결혼식 관련 동영상을 봤던 모양이다.  노동절 이후 다시 만나 푸다오 수업 하게 되었을 때, 나한테 묻기를 '장동건 결혼 때 온통 하얀 옷 입고, 덩치 크고, 머리는 대머리이고, 무섭게(?) 화장한 사람이 옆에 서있더라. 정말 놀랐다. 그 사람 누구냐?' 라고 물어서 조금 난감했다... ^^;;

 

 

 ◎ 6월 26일 - 리위엔

 

  6월 25일 저녁에는 각자 곧 귀국해서 헤어지게 될 같은 반 아이들과 가볍게 맥주 한 잔 했다.

  그 때 리위엔('운동회 휴가 동안 생긴 일(1) - 대단한 중국 여학생 (http://blog.daum.net/jha7791/15790722) 참조' )이 문자를 보내서 다음날 만날 수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내가 귀국하기 전에 얼굴 한 번 보자는 뜻인 줄 알았다.  그런데 알고보니 곧 치르게 되는 기말고사의 회화시험 준비를 해야 하는데, 그것 좀 도와달라는 뜻이었다...^^;; 

 

  하여튼 겸사겸사하여 다음날인 26일 아침에 내 방에서 만났다.

  어차피 1학년의 회화수업이었기에 선생님이 미리 준비하라고 알려준 문제라는 게 뻔했다. '당신이 한국어를 배우는 이유는 뭡니까?', '당신이 좋아하는 한국음식은 무엇입니까?', '당신 가족에 대해 설명해보세요.' 등등...  문제에 쓰인 언어만 중국어로 바꾸면, 서울에서 처음 중국어 학원 다니던 시절 우리가 우리 초급 교과서에서 봤던 것들이다. ^^;;

  그러니 뻔한 답변에 적당한 수식어 몇 개 붙이니 그럴싸한 모범답안이 나왔다.  전에도 후쉐를 여러 번 해봐서 비슷한 문제에 대한 한국어 답안을 만들어본 나로서는 식은 죽 먹기였지만, 리위엔은 '언니, 이렇게 빨리 이렇게 좋은 답안 만들다니...! 언니 머리는 정말 좋은가봐요~~~' 하며 감탄하고... ^^;;

 

  내가 그렇게 만든 한국어 답안을 리위엔이 매끄럽게 읽도록 발음 연습하는 걸로 반나절을 보내고, 한 번도 학교 근처 한국식당 가 본 적 없다는 리위엔과 아지트에 가서 점심을 먹었다.

  그리고 '당신이 좋아하는 한국음식은 무엇입니까?'라는 문제에 대한 답안 소재로 썼던 불고기를 먹었다. (먹어본 적 없는 불고기에 대해 '나는 한국 불고기를 좋아합니다, 불고기는 영양이 풍부하고 맛도 좋고...' 하며 답안을 만들어 달달 외웠으니... ^^)

  그런데 어찌나 잘 먹던지, 조금 놀랐다.  내가 하얼빈에서 생활하며 그렇게 밥 잘 먹는 중국아이는 진쥔 이후로 처음 봤다.  우리나라 어르신들이 보면 '오~ 참 복스럽게 먹는군.' 하며 좋아할 스타일이었다. ^^

 

 

 ◎ 6월 27일 - 왕산산

 

  왕산산(☞ '운동회 휴가 동안 생긴 일(4) - 왕산산과의 작별(http://blog.daum.net/jha7791/15790725)' 참조 )은 따공(아르바이트)으로 워낙 바쁜 몸이라, 우리 둘 다 지난 5월 운동회 휴가 때 만난 것이 마지막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27일에 유학생 사무실 다녀오는 길에, 예술학원 앞에서 산산이 나를 불렀다.  산산은 핸드폰 요금 내고 기숙사로 돌아가는 길이었다는데, 문득 옆을 보니 내가 지나가고 있더란다. ^^

 

  산산은 하얼빈 떠날 날짜가 정해졌느냐고 묻더니, 그럼 내가 떠나는 날(7월 2일) 오전 중에 정확히 몇 시에 학교 어디에서 출발할지 문자를 보내 알려달라 했다.

  저녁에는 따공이 끝나기 때문에 시간 낼 수 있으니, 기차역까지 전송하겠다 했다.  너무 번거롭게 하는 것 같아 미안해진 내가 그냥 학교에서 헤어지자고 했지만, 언제 다시 보게 될 지 알 수 없으니 전송하겠단다.

 

  그 날 그렇게 헤어졌는데, 결국 7월 2일에 보지 못 했다.

  따공 하는 곳에 일이 생겨 근무시간이 연장되었다 했다.  떠나던 날 못 만나게 될 줄 알았으면, 미리 기숙사 쪽으로 찾아가 잠깐이라도 얼굴 보고, 졸업 축하 겸 대학원 입학 기념으로 한국에서 가져간 간단한 기념품이라도 줬을텐데...  어차피 하얼빈 떠나는 날 다시 보게 될 거라 생각해서, 그 때 주면 된다고 생각한 게, 그만 그리 되어 버려 무척 아쉬웠다.

 

 

 ◎ 6월 29일 - 리양 

 

 

  1년 넘게 후쉐를 한 양이 헤어지면서 선물로 준 쿠션 커버다.

  이거 받고 굉장히 당황했다.  한편으로는 고마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저것을 수 놓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을 게 뻔하기 때문이다.  기껏 화장품 하나 준비했던 나로서는 상당히 민망한... ㅠ.ㅠ 

  양의 말인즉슨, 원래는 내 띠인 뱀을 수 놓아 선물할 생각이었단다.  하지만 반 쯤 수놓았을 때, 어디서 어떻게 잃어버렸는지 알지도 못 한 채 잃어버렸단다. (아이고, 거기에 들인 시간 아까워서 어떻게 해~~ ㅠ.ㅠ)  그래서 다시 수놓을 재료 사러 갔다가, 저렇게 한국 신랑, 신부 그림을 보게 되어, 그걸 선택했단다.

 

  양은 수를 웬만큼 놓았을 때야, 그림이 쿠션 커버 중앙에 놓인 게 아니라 한 쪽에 치우친 걸 발견했다며 아쉬워했다. ^^

  하지만 나로서는, 설사 그림이 쿠션 커버 한 쪽에 치우친 정도가 아니라, 아예 한 귀퉁이에 몰려있다 한들, 그저 고마울 뿐이다.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간 소중한 선물인 것을 알고 있으니 말이다.  나도 그에 상응하는 정성을 보이고 싶기는 하지만, 중.고등학교 시절 가정.가사 시간의 바느질이나 뜨개질을 싫어하는 수준이 아니라, 증오(?)하고 저주(?)했던 나로서는 도무지 저런 선물을 할 방법이 없다. ㅠ.ㅠ

 

 

 ◎ 6월 30일 - J씨 가족과 J군

 

我的錯都是大人的錯(내 잘못은 모두 어른의 잘못이에요)의 표지

 

  6월 30일에는 J씨 가족과 이번 학기 들어 유독 바빠 바로 옆 방에 살건만 '뵙기 힘든 분'이 되어 버린 J군과 함께 아지트에서 저녁식사를 했다.

  이 자리에서 J씨가 지미(幾米 : 기미)의 我的錯都是大人的錯를 두 권 주었다.  한 권은 내 귀국 선물이고, 또 다른 한권은 작년 봄학기를 마치고 귀국한 M에게 전해달라 했다. 

☞ 대만의 일러스트북 작가인 지미(幾米 : 기미)에 대해서는

 '향좌주 향우주 (向左走 向右走)(http://blog.daum.net/jha7791/15790523)' 참조

 

  그런데 이 책 때문에 작은 소동이 있었으니...

  J씨의 큰아들이 아이들의 응석을 잘 받아주는 J군에게 재잘재잘 이런저런 얘기 하는 사이 J씨가 나에게 책을 줬는데, 나중에야 그 사실을 알게 된 이 아이가 자기가 주고 싶었다며 울먹거리고... ^^;;  결국 J군이 이미 내 가방 속에 들어간 책을 꺼내어 아이에게 주며 '네가 다시 전해줘라.' 라고 하고, 나는 나대로 '나는 네 엄마한테 받기 싫다, 꼭 너한테 받고 싶다.' 라고 달래서, 겨우 사태 수습했다.^^

 

 

예쁜 일러스트와 짤막하면서도 함축적인 문장으로 채워진 지미의 책.

 

  나는 지미의 책을 3권 가지고 있다.

  첫번째 것은 흑룡강대학에서의 첫 학기 내 생일 때 진쥔이 생일 선물로 준 것이다.  두번째는 그 책 보고 반해서 내가 직접 구입한 것이고, 이번에 J씨에게 받은 것이 세번째이다.

 

  지미의 책은 모두 '어른을 위한 동화책'이라는 느낌을 준다.

  생 떽쥐베리의 '어린 왕자'나 바스콘셀로스의 '나의 작은 라임오렌지 나무'와 분위기가 비슷하다.

 

 

나도 나 자신이 완벽한 아이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지만, 당신들도 완벽한 부모였던 적이 없잖아.

그래서 우리는 서로에 대해 인내심을 갖고, 노력하면서 강하게 살아가야 하는 거야.

 

 

 "아이들은 모두 생동감 있고 흥미로운 한 권의 이야기책이다." 라고 어른이 말한다.

 "어른들은 모두 딱딱하고 재미없는 한 권의 교과서이다." 라고 아이가 말한다.

 

  그래서 중국어 학습하는 외국인에게 적당한 책이다. 

  일단, 지미의 책은 미대 출신의 작가가 쓴 책답게 예쁜 삽화가 가득하고, 글은 적은 편이라, 외국인이 보기에 지루하지 않다. ^^;;  하지만 그저 글이 적기만 해서 좋은 게 아니라, 비록 얼만 안 되는 글이건만, 문장 하나 하나가 많은 뜻을 함유하고 있어서, 책을 다 읽고 덮었을 때 뭔가를 생각하게 한다. (J씨, 잘 읽을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