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얼빈 생활기/'09~'10년 흑룡강대학 어학연수기

운동회 휴가 동안 생긴 일(3) - 흑룡강대학 운동회

Lesley 2010. 6. 4. 13:11

 

 

  5월 27일, 28일 이틀간에 걸쳐 열린 흑룡강대학 운동회의 이틀째인 28일 아침 7시, J군과 디카 하나씩 들고 흑룡강대학 운동장으로 갔다.

  우리와 번갈아가며 후쉐를 하는 '양'이 이 날 자기 과 대표로 200미터 달리기에 나간다고 해서, 응원도 할 겸, 운동회 풍경을 디카에 담기도 할 겸 하여 나선 것이다.  사실은 그 전날, 갑작스레 생긴 약속을 세 탕이나 소화했더니 몸이 땅 속으로 꺼질 것처럼 축축 늘어져, 잠이나 원없이 잤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들었다.  하지만 모처럼 양이 과 대표씩이나 되어 뛴다는데, '아니, 무슨 운동회를 아침 댓바람부터 하냐...' 하고 투덜대면서도 B취의 운동장으로 갔다.

 

 

(위) 격년으로 열린다는 흑룡강대학 운동회가 올해로 43회째를 맞았음.

(아래) 단과대학별로 뭉쳐 앉은 중국학생들이, 역시 같은 단과대학이라는 표시로 똑같은 운동복과 똑같은 모자를 쓰고 있음.

 

  올해 운동회 기간 동안은 너무 강한 햇살 때문에 좀 힘들 정도로 날씨가 좋았다.

  그런데 푸다오 선생인 '류디'의 말로는 흑룡강대학에서 운동회 하는 때에는 비가 오기 일쑤란다.  그런데 학생들 사이에서 떠돈다는 그 이유가 재미있다.  잘 알려져있다시피, 지금 중국에서 쓰는 한자는 고대에 쓰던 번체자(우리 한국에서 지금 쓰고 있는 한자)가 아니라, 획수를 줄인 간체자이다. 그 간체자로 운동회를 '运动会' 라고 표기하는데, 공교롭게도 세 글자 모두 '구름 운(云)'이 들어간다.  그렇게 구름이 많으니 비가 오는 게 당연하다는 것이다. (오, 이거 정말 말 된다~~~ ^^)

 

 

(위) 젖 먹던 힘까지 다 해서 뛰고 있는 여자 200미터 달리기 선수들.

(아래) 트랙 안쪽으로 들어가 양이 뛰어오면 사진찍을 준비하고 있는 J군. (개인정보보호 위해 얼굴은 살짝 가려주는 센스~~~ ^^)  J군 너머로 보이는 응원석 중간에 앉은 학생들이 양이 속한 법과대학 학생들임.

 

  그런데 두 명씩이나 사진기사 노릇한다고 갔건만, 양이 달리는 모습을 한 장도 못 찍었다. -.-;;

  여자 200미터 경기가 시작했는데, 그 많은 학생들이 한꺼번에 달릴 수는 없으니 대여섯명씩 한 조가 되어 뛰었다.  양이 몇 번째 조로 뛰는지 알 수가 없어서, 저 멀리 출발선에서 선수들이 뛰기 시작하면 우리는 양이 뛰는지 안 뛰는지 모른 채 대기해야 했다.

  양의 모습을 잘 찍어보겠다고 우리딴에는 머리를 썼다.  위의 사진에도 나왔듯이, J군은 트랙 안쪽으로 들어가 준비하고, 나는 나대로 트랙 바깥쪽에서 대기했다.  그런데 양보다 먼저 뛴 선수들의 사진만 잔뜩 찍었을 뿐인데, 공교롭게도 우리 두 사람의 디카 모두 배터리가 얼마 안 남았다. (일이 안 되려면 이렇게 죄다 엉키고 꼬이는 법이다... ㅠ.ㅠ)

  그러다가 드디어 양이 뛰게 되었는데, 여기서 그만 황당한 일이 생겼다.  J군은 양처럼 분홍색 티셔츠 입고 뛰는 여학생이 양이라고 생각하고, 그 엉뚱한 여학생 사진만 찍었다.  J군이 뒤늦게 양을 발견했을 때는, 이미 양이 지나가 버린 뒤였다. -.-;;  나는 나대로 점점 내 쪽으로 다가오는 선수들을 디카 통해 보니 양의 얼굴이 안 보이기에, '이번에도 양은 없군' 하며 다 떨어져가는 배터리 아끼려고 디카를 껐다.  그런데 디카가 꺼지는 순간에야 양을 발견하고 '어떡해~~' 하며 디카를 다시 켰지만, 양은 결승선 지나가 버렸다... ㅠ.ㅠ

   

 

할머니 부대(?)의 태극권 시범.

 

  이 태극권은 흑룡강대학 내 교직원 아파트 주민들과 학교 근처 주민들이 함께 공연했다. 

  젊은 나는 첫 학기 때 태극권 배우다가 제일 간단하다는 24식의 초식 중 절반을 못 외우고 '그래, 이건 내 길이 아니야...' 하며 때려치웠는데, 저 할머니들 정말 대단하시다.  옆에서 보면 흐느적 대는 것이 엄청 간단해 보이지만,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이 직접 해보면 만만치 않다. ^^;;

 

 

라라뚜이(拉拉 : '치어리더'라는 뜻 ^^)경연대회 나가려고 대기 중인 모 단과대학 여학생들

 

  사진에 나온 저 치어리더들이 옷은 하나로 맞춰입었으면서 스타킹 색깔이 제각각인 게 이상했다.

  그래서 J군에게 '스타킹 색깔이 다 틀려. 왜 저러지?' 했더니, J군이 '일부러 그렇게 한 거겠죠. 같은 색깔끼리 한 쪽으로 모이거나 그럴 거에요.' 라고 했다.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는데, 곧 저 치어리더들이 운동장 가운데로 나가 한국 가요에 맞춰 율동을 하는 것을 보니, J군의 예상이 틀렸음을 알 수 있었다.  저 다채로운(?) 색깔의 스타킹은 그냥 막 신은 거였다...! -.-;;  J군도 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그게 아니었군요. 아무 생각없이 아무 색깔이나 신고 왔나봐요.' 라고 하고... ^^

 

  그런데 우리 눈에 조금 황당했던 일 하나...

  한눈에도 학교측 높은 인사들로 보이는 10여명의 어르신들이, 마치 고위 정치인이 산업시설 시찰하는 것같은 모양새로 느릿느릿 운동장을 한 바퀴 돌았다.  그럼 그 높으신 양반들이 막 지나치는 응원석의 단과대 학생들이 일사분란하게 일어서서, 마치 막 입대한 이등병 마냥 뭐라고 고함을 질러댔다.  그러면 그 분들은 다시 느릿느릿 앞으로 나가고, 그럼 이미 지나친 응원석 쪽 아이들은 자리에 앉고 대신 그 분들이 막 다가간 응원석 쪽 아이들은 벌떡 일어나 또 뭐라고 고함을 지르고...

  경기 끝나고 트랙 바깥의 인공잔디에 주저앉아 쉬던 양에게 '저 학생들이 뭐라고 하는 거냐?'라고 물었더니, 학교의 높은 선생님들에게 '당신들을 열렬히 환영합니다. 당신들을 존경합니다' 하는 거란다. -.-;; 나랑 J군은 '헐~~' 하는 기분이 되어 버렸고... ^^;;

 

  이 운동회는 이 날 한나절 내내 계속되었다.

  저 치어리더들의 공연만 지켜보다가, J씨와 같이 미용실 가기로 약속한 9시가 다 되어서 양에게 작별인사하고 일어섰다.  그런데 오후 5시쯤에 잠깐 학교 밖에 나갈 일이 있어서 운동장 옆을 지나치는데, 그 때서야 운동복 차림에 파김치가 된 학생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아침 8시 반부터 저녁 5시까지 행사를 했으니, 선수들이야 말 할 것도 없고 응원석에서 죽어라 고함치르며 손뼉치던 학생들도 고생이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