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에 뜻밖의 4일짜리 연휴를 맞았다.
흑룡강대학에서 운동회를 한다고 하여 목요일(5월 27일)과 금요일(28일)에 학교 전체가 휴강을 했다. 그런데 바로 그 다음이 주말이니, 4일짜리 연휴가 생긴 셈이다. 뜻하지 않게 맞은 연휴에 마음 잡고 공부 좀 하자 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자잘한 일들이 연이어 일어나는 통에 바쁘게 나돌아다니게 되어, 공부 따위는 저기 안드로메다 너머로 날아가 버렸고... -.-;;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렇게 줄줄이 일어난 일들이 나쁜 일은 아니었다는 점...^^)
연휴 바로 전날인 수요일 저녁, 방에서 혼자 TV를 보고 있는데, 누가 방문을 두드렸다.
으레 기숙사 직원이겠거니 하며 문을 열었는데, 뜻밖에도 여학생 두 명이 서 있었다. 방을 잘못 찾아온건가 하며 쳐다봤는데, 그 중 한 사람이 뜬금없이 ‘Can you speak English?’ 하고 말을 걸었다. 당황해서 ‘A little’ 이라고 겨우 한 마디 했더니,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다시 물었다. ‘Korean’ 이라고 했더니 못 알아들어서(젠장, 내 발음이 그리 안 좋은 거니...! ㅠ.ㅠ), 한궈런(韓國人)이라고 했더니 ‘중국어 할 줄 알아요?’ 하며 좋아했다. ^^;;
두 학생의 말인즉슨, 자신들은 각각 이 흑룡강대학의 한국어과, 영어과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인데, 외국학생과 이야기도 하고 서로의 언어도 배우며 교류하고 싶단다. 내가 의아해서 ‘그런데 이 방에 한국인이 사는지 어떻게 알았냐?’ 했더니, 자기들도 몰랐다고 했다. 그저 5층과 6층의 방을 전부 두드리는 중이란다. -0-;; 내가 ‘너희 정말 대단하다, 나는 감히 그렇게 못 한다.’ 했더니, 수줍게 웃었다. 그렇게까지 적극적으로 나선 어린 학생들(둘 다 1학년이라 했음.)에게 감탄해서 도와주고픈 마음이 들어서, 연휴 동안 특별한 일이 없으니 시간 나면 연락하라 하고 서로 핸드폰 번호를 교환했다.
그리고 다음날 오전에 모처럼 '개뼈다귀 그리기(서예 ^^)' 연습을 하고 있는데. 핸드폰이 울리며 화면에 리위엔(李元)이라는 이름이 떴다.
전날 왔던 여학생 중 한국어과 여학생이었다. 운동회가 막 끝났다면서, 내가 시간이 된다면 만나서 함께 이야기를 했으면 했다. 그래서 기숙사 1층 로비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400미터 계주를 막 끝내고 왔다는 리위엔은 반팔에 반바지를 입고도 땀을 흘리며 로비로 들어섰다.
그렇게 그 날 3시간 정도 함께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이제 겨우 1학년이라는 리위엔은 나이답지 않게 당차면서 심지가 굳다는 느낌이었다.
어떻게 유학생들의 방문을 일일이 두드릴 생각했느냐고 물었더니, 처음에는 한국 친구를 사귀기 위해서 ‘중한(中韓)문화교류회’ (흑룡강대학의 동아리 중 하나)에 참석했단다. 하지만 분위기가 진지하지도 않고, 밥 먹고 술 마시는데 돈을 많이 써야 해서, 돈이 없는 자신은 그 모임에 가고 싶지 않다 했다.
사실 그 모임에 대한 느낌은 나도 마찬가지다. 그 모임은 표면적으로는 ‘문화교류회’라는 뭔가 있어 보이는 이름을 내걸고 있지만, 실제로는 문화교류와는 별 상관없다. -.-;; 그저 호기심 반 우쭐함 반으로 외국인과 놀고 먹자는 분위기이다. 한국에도 외국인과 어울리면 자신의 격이 한 단계 올라가는 것으로 생각하는 한심한 사람들이 좀 있는 모양이던데, 내가 보기에는 이쪽 애들에게서 그런 분위기가 풍긴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외국인 대상으로 푸다오(과외) 자리 구하려는 아이들이, 이 모임을 무슨 과외 알선소 비슷하게 생각하며 모여드는 듯 하고...
또 방학 때 하얼빈에서 톈진(天津 : 천진, ‘베이징’ 바로 옆에 있는 항구도시)으로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는데, 돈이 없어서 20시간을 잉쭤를 타고 왕복했단다. (난 만저우리 다녀오면서 14시간 동안 잉쭤 타고도 힘들어 죽는 줄 알았는데... ㅠ.ㅠ) 그리고 여행경비 문제 때문에 여행 중간중간 식당에서 잠깐씩 일하며 숙식을 해결했다니, 이래저래 대단하단 생각이 들었다.
보통 그 또래 중국학생들이 나에게 한국 연예인이나 드라마 등에 대해 많이 묻는 것에 비해, 남북한 관계, 한국의 현 대통령이 왜 그렇게 미국을 좋아하는가(그래, 나도 우리 대통령님께서 왜 자꾸 그러시는 건지 누구한테 좀 묻고 싶다... -.-;;) 등등 진지한 질문을 하는 것도 달랐다.
한국에 대한 감상도, 덮어놓고 한국을 동경한다든지, 반대로 은근히 깔아뭉개려 하는게 아니라, 균형이 잡혀있다는 느낌이었다.
60, 70년대 한국의 경제 기적,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전자산업의 발전, 중국에서는 문화대혁명을 겪으며 많이 사라진 전통 예의범절을 간직하고 있는 것 등에 대해 중국이 본받아야 한다고 감탄했다. 동시에 요즘 젊은 애들은 별 관심 없는 태극권과 서예에 관심을 보이며 배우는 등 자기 나라의 문화와 전통에 대해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다. 나는 한국이 옛날에 중국의 속국이었다는 뉘앙스 풍기며 은근히 우월감 나타내는 중국인도 정말 재수없게 생각하지만, 덮어놓고 자기 나라는 죄다 나쁘고 남의 나라는 죄다 좋다는 식으로 생각하는 자존심 없는 사람들도, 그게 우리 한국인이든 외국인이든 간에 마음에 안 든다. -.-;;
이래저래 마음에 드는 아이인데, 유감스럽게도 너무 늦게 만났다.
이번 학기 초에 만났더라면, 내 힘이 닿는 수준에서 그 애의 한국어 공부도 도와주고, 이런 저런 이야기 나누며 잘 지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하얼빈 떠날 날이 겨우 한 달 남짓 남은 상황에서 만났으니, 앞으로 몇 번이나 더 만날 수 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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