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변기에 빨려들어간 양말
홍상수 감독은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이라는 영화를 찍었는데, 난 여기서 '양말이 변기에 빠진 날'을 한 편 찍어야 할 듯 하다. -.-;;
오전에는 HSK 보느라, 점심에는 아이크림 사느라, 나름 바쁘고 피곤했던 하루가 그럭저럭 저물어 가나 했더니만, 이건 또 무슨 황당 시츄에이션... ㅠ.ㅠ
아까 낮에 올린 포스트(☞ '5월 16일에 벌어진 일들(上) - HSK, 아이크림, 라이터 (http://blog.daum.net/jha7791/15790718)' 참조) 말미에도 썼듯이, HSK 끝내고서 기숙사로 돌아와 그 동안 밀린 빨래를 세제 푼 물에 담가놓고는 잠시 눈을 붙였다. 그리고 저녁에야 빨래를 조물락 거리며 빨았는데, 구정물을 변기에 버릴 때 그만 문제가 생겼다. 구정물 안에 양말이 한 짝 남아있는 걸 미처 보지 못 했던 것이다. 구정물과 함께 변기 안으로 들어가는 양말을 보며 '어, 저거 양말이잖아?' 했을 때는, 이미 양말은 변기 안쪽으로 떠내려가버렸다. ㅠ.ㅠ 어떻게 이런 황당한 실수를 다 저지르는지, 나 자신이 완전히 바보가 된 느낌이었다.
하도 어이가 없어 진쥔에게 핸드폰 문자로 이 사연을 알렸는데, 곧 답장이 날아왔다.
진쥔의 말인즉슨, 그래도 나는 양말을 잃어버렸으니 운이 좋은 편이란다. 자신의 대학 동창은 하필이면 변기 물을 내리는 순간 핸드폰이 변기에 빠져서, 핸드폰도 망가지고 변기도 망가졌다고 한다. -.-;; 그리고 또 다른 동창은 쇼핑 중 손에 쥐고 있던 쓰레기를 쓰레기통에 버린다는 게 엉뚱하게 핸드폰을 버렸단다...! 그것도 구입한지 얼마 안 되는 새 핸드폰을...! 나중에 집에 도착해서야 자기 손에 들린 게 핸드폰이 아니라 버렸다고 생각한 쓰레기라는 걸 알았다니, 참... (정말 지못미다... ㅠ.ㅠ)
나보다 더 운 나쁜 이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 기분이 갑자기 좋아졌다. (네, 저는 이 정도 밖에 안 되는 인간입니다요... ^^;;)
2. 대한민국 옷
오늘(5월 16일) 아침에 HSK 보러 기숙사를 나서 C취 남문 쪽으로 가다가, 정말 혼자 보기 아까운 광경을 봤다.
아침에 책가방 챙기면서, 하얼빈에 온 후로 언제나 가지고 다니는 디카를 가져갈까 망설였다.
한편으로는 시험보러 가는데 굳이 디카를 가져갈 필요가 있을까 싶기도 한데, 다른 한편으로는 꼭 디카 안 가지고 나간 날에 뭔가 찍을거리와 마주치게 되기에, 디카를 가방 안에 넣어 갔다. 그리고 그렇게 디카를 가져간 보람이 있어, 결국 대박 사진을 찍고야 말았다...! ^0^
C취 남문으로 향하는 내 앞에 어떤 여학생이 반쯤 뛰다시피 급하게 가고 있는데, 그 여학생이 입은 옷에 큼지막하게 박힌 '대.한.민.국' 4글자...! 아, 어쩌면 좋아... ㅠ.ㅠ 아마도 저 여학생, 한국 학생은 아닌 듯 하다. 물론 우리 한국학생들 애국심 철철 넘쳐나지만, 그래도 옷 앞판에 작게 새겨진 것도 아니고, 뒷판에 저렇게 큼지막하게 새겨진 옷은 좀... ^^;;
☜ 대~~ 한민국...! ☞ (짝짝짝짝짝~~)
어쩌면 지나가는 다른 중국학생들 눈에는 내가 변태로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무슨 급한 일이라도 있는지 반쯤 뛰다시피 하며 정신없이 가는 저 여학생을, 허겁지겁 뒤쫓으며 몇 번이나 사진을 찍었으니 말이다. 남들이 보기에는 '저 인간 뭐니? 왜 남의 뒷모습을 몰래 찍어? 혹시 수상한 인간 아냐?' 또는 '이상한 사람일세... 왜 여자가 같은 여자를 스토킹하는 거야?' 하는 생각이 들었을지도 모른다. ^^;;
흔한 광경은 아니지만, 하얼빈 온 뒤로 가끔 저런 상황을 보게 된다.
의미가 전혀 통하지 않는 이상한 한글이 새겨진 옷, 또는 한국인 입장에서는 폭소 터져나오게 하는 한글이 새겨진 옷을 입고 다니는 중국인이 있다. 물론 그 중국인은 그게 무슨 뜻인지 모르니까 입고 다니는 것이다. 하긴 우리가 한국에서 입고 다니는 영어가 새겨진 옷 중에서도, 영어권 사람들이 보면 뒤로 넘어갈만한 문장 새겨진 것들이 제법 있다 들었다. ^^
하여튼 조금 심란한 마음으로 시험 보러 가고 있었는데, 저 여학생 덕분에 한결 유쾌해진 기분으로 가게 되었다. 그러니 이 자리를 빌어, 비록 저 '대한민국' 처자는 알지도 못 하겠지만, 그래도 심심한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자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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