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얼빈 생활기/'09~'10년 흑룡강대학 어학연수기

5월 16일에 벌어진 일들(上) - HSK, 아이크림, 라이터

Lesley 2010. 5. 16. 16:52

  

 
  한국 현대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박정희가 군사정변 일으킨 날인 5.16...!
  뭔가 심상치 않은 이 5월 16일에, 나에게도 심상치 않는 이런저런 일들이 있었다.

 

 

 

 1. 처음 본 신(新) HSK

 

  오늘 오전에 하얼빈사범대학에 가서, 시험접수 과정에서 무진장 파란만장했던 HSK를 치렀다.

 

☞  하얼빈사범대학 때문에 내가 미쳐... ㅠ.ㅠ (http://blog.daum.net/jha7791/15790709)

     정말 하얼빈사범대학 때문에... ㅠ.ㅠ (뒷이야기 덧붙임) (http://blog.daum.net/jha7791/15790715)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했다.

  하얼빈사범대학은 시험접수 처리도 엉망진창으로 하더니만, 오늘 시험감독 과정에서도 어리버리 한 것이, 모든 게 어설프기 짝이 없었다.  이건 외국인 상대로 하는 시험에 감독으로 들어온 사람들이 여권을 어떻게 보는지도 몰라 쩔쩔매지를 않나...  수험표 관련한 황당한 사건으로 안면인식장애 심한 나조차 기억하게 된 접수 담당자는, 자기가 수험생들에게 뽑아준 수험표에 적힌 한자 이름 보고 ‘분명히 전에는 수험표에 한자 이름은 없고 영어 이름만 있었는데?’  하며 당황해하지를 않나... (아니, 그럼 지금껏 수험표 교부하는 일을 했으면서, 수험표가 어떻게 변했는지 한 번도 쳐다보지 않았던게요? -.-;; )

 

  이미 신(新) HSK 본 사람들이 인터넷에 소감 올린대로, 열독은 시간이 많이 부족했다.
  이전의 시험에 비해 시험 난이도가 낮아지고, 시험에 출제되는 단어량도 줄었다고 하는데, 문제 숫자에 비해 시간이 너무 많이 부족하다 보니 체감 난이도는 꽤 높은 편이었다. 
  덕분에 처음에 본 팅리(廳力 : '듣기'라는 뜻)만 해도 그럭저럭 치렀는데, 두 번째로 본 열독(閱讀 : 원래는 '독해'란 뜻인데 이번에 바뀐 HSK에서는 기존 HSk의 어법(語法)이나 종합(宗合)도 포함되어 있음.)은 눈이 핑핑 도는 느낌으로 쳐서, 결국 시간 내에 풀지 못 하고 찍은 문제들도 생겼다. ㅠ.ㅠ  열독을 끝내고 나니, 내 머릿속 뇌(腦)의 주름들이 전부 확 풀어져버린 느낌이 들 정도로 머리가 멍해졌다. -.-;;  덕분에 마지막 작문 치를 때 집중이 안 되어 애먹었을 정도다.

 

  게다가 그렇잖아도 어려운 열독 때문에 정신이 하나도 없는데, 배는 어찌나 고프던지... ㅠ.ㅠ
  아침에 초코바(스티커즈) 하나와 우우 한 컵 마시고 갔는데, 없는 실력 짜내느라 안 돌아가는 머리 억지로 굴렸더니만, 에너지 소비가 심했나보다.   부정행위 막기 위해 필기도구와 수험표 등을 제외한 물건은 가방에 넣어 교탁 앞에 내놓게 했는데, 혹시나 하여 그 가방 안에 여분으로 하나 더 넣어온 초코바가 너무 먹고 싶었다.  시험 시작하기 전에 미리 먹어둘 걸... ㅠ.ㅠ

 

  그래도 이 날 시험 중 재미있는 일도 하나 있기는 했다.
 시험 시작하기 전에 헤드폰에 문제 있는지 확인하려고, 미리 헤드폰 쓰고 헤드폰 통해 흘러나오는 소리를 듣게 했다. (이 학교에서는 팅리(듣기)시험을 그냥 스피커 통해 시험장에 틀어주지 않고, 각자 헤드폰 쓰고 듣게 함.)  그런데 뜻밖에도 한국어가 흘러나오기에 ‘어, 이게 뭐지?’ 했는데, 좀 더 들어보니 ‘미칠이 저게 또 사고친거지?’, ‘설칠이는 어쩌고 있어?’ 하는 것이 몇 년 전에 한국에서 방영했던 드라마 ‘소문난 칠공주’였다. ^^

 


 2. 무려 27,000원씩이나 주고 산 미샤 아이크림...!

 

  어제 저녁에 씻고서 보니, 아이크림이 바닥났다.
  아이크림이 다 떨어져가는 걸 며칠 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여분으로 새 것이 하나 더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분 화장품을 보관해두는 서랍을 열어보니, 새 것이 없는 것이다...! -0-;;
  이제 중국에서 지낼 날이 두 달 정도 밖에 안 남았건만, 자외선 차단제는 1년은 쓸 수 있을 만큼이나 있고(왜 자외선 차단제만 이렇게 넉넉한지, 당최 알 수가 없다는... -.-;;), 아이크림은 아예 없다.

 

  난감한 기분으로 인터넷 들어가 옥션이나 G마켓 같은 곳에서 해외배송 가능한지 알아봤더니, 여의치 않다.

  그렇다면 일단 그런 곳에서 서울집으로 배달시킨 후, 다시 우리 식구 중 누군가가 그 아이크림을 중국으로 EMS 통해서 보내는 수 밖에 없는데...  그럼 나 한 사람 때문에 여러 사람 번거로워지는 것도 문제고, 무엇보다 그 작은 아이크림 하나 때문에 EMS 이용한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돈 낭비다.  그럴 바에는 그냥 여기서 한국보다 비싼 가격 주고 하나 사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오늘 HSK 끝낸 후에, 아이크림을 사려고 중앙다제(中央大街 :중앙대가)로 나갔다.
  하지만 하도 오래간만에 나갔더니만, 작년에 잠시 들려 구경했던 한국 화장품 팔던 곳 위치가 기억이 안 나 좀 헤맸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무슨 5월 중순 날씨가 이리 추워...’ 했는데, 오늘따라 햇볕이 어찌나 뜨겁던지...  그렇게 뙤약볕 아래 힘들게 찾아간 미샤 매장에서 아이크림 가격 묻고 기절하는 줄 알았다.  158위안(한화 약 26,860원)...! 어흐흑... OTL  한국에서 미샤 아이크림을 2만원대로 산다는 게 가당키나 하나...  한국에서 같으면, 인터넷 통해서 산다면 아마 라네즈 아이크림도 이 가격에 살 수 있을 거다. ㅠ.ㅠ

  그러나 어쩌리요...  한국 화장품이 중국땅에서 터무니없이 비싼 거 몰랐던 것도 아니고(☞ '중국에서 인기 높은 한국 화장품 (http://blog.daum.net/jha7791/15790626)' 참조), 그저 먼저 번 귀국 때 필요한 물건 제대로 못 챙긴 나 자신을 탓하며 그냥 감수해야지...

 

 

 3. 라이터 빌리러 온 중국 아저씨

 

  그렇게 아이크림 사서 지친 몸 이끌고 기숙사로 돌아왔다.
  아침 7시도 안 되어 초코바랑 우유 먹은 후로 아무 것도 못 먹어, 무척 시장했다.  하지만 몸이 천근만근 같아 학생식당 나가는 것조차 귀찮았다.  마침 기숙사 방안에 먹을 게 좀 있어서, 그걸로 늦은 점심을 먹고 있었는데... 

 

  그런데 누군가가 급하게 연달아 방문을 두들기는 것이다.
  무슨 급한 일인가 보다 하면서 조금 긴장해서 문을 열었더니, 기숙사 직원이 아닌 낯선 아저씨가 서 있는 것이다.  ‘방을 잘못 찾았나?’ 하며 멀뚱히 쳐다봤더니, 그 쪽도 처음에는 내 얼굴 보고 조금 당황하는 듯 했다.  그러더니 곧 손에 쥔 담배갑을 들어보이며 하는 말이, 불 좀 빌려달란다. -0-;;
  내가 황당해서 ‘나는 담배 안 피워서 불 없다.’라고 했다.  그러자 그 아저씨의 다음 말이 진짜 걸작이다. ‘그럼 이 층에 사는 사람 중 누가 불 가지고 있나?’ -0-;;  아니, 내가 그걸 어떻게 아냐고요~~~  내가 이 층에 사는 유학생을 몽땅 아는 것도 아니고, 또 안다고 한들 담배를 피우는지 안 피우는지 어찌 알겠나...  그 사람들이 나한테 '나는 담배 피운다' 하고 보고하면서 피우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  그리고 학교 안에 널린 게 작은 슈퍼마켓들인데, 어지간하면 거기 가서 라이터 하나 살 것이지, 일반 투숙객으로 보이는 중국인이 왜 굳이 유학생들 사는 층까지 내려와 불을 빌리려고 하는 건지...  정말 뿌넝랴오지에(不能了解 : 이해할 수 없다)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

 

 


  큰 사건이 있었던 건 아니지만, 소소한 일들은 연이어 일어난 5월 16일이 다 지나가고 있다. 
  그 동안 밀린 빨래거리 세제 푼 물 속에 담가놓고 이 포스트 쓰고 있다.  하지만 지금 너무 피곤해서 저 빨래는 잠시 미뤄둬야겠다.  잠깐 눈 좀 붙이고 이따가 저녁에 일어나, 내 머릿속에만 울려퍼지는 자진모리장단에 맞춰 해치워야 할 듯 하다.
  아이고~~ 얼른 이불 속으로 점프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