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얼빈 생활기/'09~'10년 흑룡강대학 어학연수기

허걱, 공산당 입당시험이라니...! @.@

Lesley 2010. 5. 27. 11:12

 

 

 

  내가 머물고 있는 중국은 분명히 ‘사회주의’ 라는 간판을 내 건 국가다.
  그것을 분명히 알고 있건만, 여기에서 지내다보면 그런 사실을 의식하지 못 할 때가 많다.  경제적인 부분에서는 이미 상당히 자본주의화 되어서, 일상생활에서는 사회주의니 공산주의니 하는 것을 피부로 못 느끼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가, 자본주의 국가인 한국의 부동산 투기는 감히 명함도 못 내밀 수준으로, 중국에서는 훨씬 심한 부동산 투기 광풍이 몰아치고 있다는 것이다. (투기야 말로 자본주의의 꽃(?)이 아니던가...!!!)
  하지만 그래도 때때로 ‘아, 맞아, 여기 공산당이 지배하는 국가였지.’ 하고 깨달을 때가 있다.  가령, 선생님이 수업시간에 문법 설명하면서 ‘공산당’ 이란 단어 들어간 문장을 예문으로 드신다든지, TV 뉴스에서 공산당에서 무슨 정책을 결정했네 어쩌네 하는 것을 볼 때라든지...

 

 

 

  그러다가 지난 주 목요일(5월 20일)에 ‘역시 여기는 공산주의 국가였어!’ 하고 제.대.로. 느꼈다.

 

  매주 목요일은 양과 함께 후쉐를 하는 날인데, 시간에 맞춰 내 방으로 온 양의 얼굴이 말이 아니었다.
  안경을 쓰고 있건만, 안경 렌즈 안쪽으로 너무나 선명히 보이는 다크써클...!  정말이지, 팬더 한 마리가 동물원 탈출해서 내 기숙사 방으로 찾아온 줄 알았다. -.-;;  어디 아프냐고 물었더니, ‘입당(入黨)’을 위한 시험 준비하느라 너무 피곤해서 그렇단다.  양의 말을 한 번에 못 알아듣고 ‘입당? 그게 뭐야?’ 하고 물었더니, 양은 양대로 ‘이런 뻔한 걸 왜 묻나’ 하는 의아한 표정으로 ‘당연히 공산당 입당이지!’ 라고 했다. 

   허걱~~ 공... 산... 당... 이라니...!  이게 무슨... -0-;; 

 

  하마터면 ‘너 공산당에 왜 가입해?’ 하고 소리칠 뻔했는데, 겨우 정신 수습해서 그 질문은 목구멍 안쪽으로 밀어 넣었다. ^^;;
  그리고 ‘너는 아직 대학생인데 공산당 가입할 수 있어?’ 라고 민감하지 않은 질문으로 바꿔 물었다. ^^;;  양의 말인즉슨, 중국에서는 직장과 대학 이상의 학교에서 매년 공산당 당원을 뽑는데, 합격은 둘째 치고 시험 볼 수 있는 기회도 아무에게나 주지 않는단다.  양의 전공학과를 예로 들면, 한 학년이 150명인데 매년 학생회에서 일하는 학생 또는 성적 우수한 학생 등 5명에게만 시험 기회를 준다 했다.  이번 학기에 양과 양의 룸메이트 중 한 명인 ‘양양’의 성적이 좋아서, 그 5명 중에 나란히 끼어 시험을 보게 되었단다. (양, 양양~~ 얘네들 이름 들을 때마다, 참... ^^) 
  그렇게 시험 칠 기회 얻으면 공산주의, 모택동주의, 공산당 역사에 대해 공부해서 시험을 봐야 하는데, 시험만 잘 본다고 끝이 아니라고 한다.  가족이나 친척 중 공산당원이 있어야 한단다. (누가 꽌시(關系 : 관계, 우리 식으로 말하면 '연줄' 정도의 의미라고나 할까?)의 나라 아니랄까봐... ^^)  자신은 아버지가 공산당원인데다가(양의 아버지는 교육직 공무원이고, 중국에서 공무원은 거의 100% 공산당 신분임.), 양의 부모님이 모시고 사는 외할머니도 입당한지 60년이나 된 공산당원이라(60년이 되면 무슨 특별 공산당원이라고 혜택과 명예를 주는 모양인데, 그 부분은 제대로 알아듣지 못 했음. ^^;;), 시험만 합격하면 그 후의 면접 같은 건 문제 없을 거란다. 
  
  ‘대학원 시험 준비한다더니, 포기하고 공산당 가서 일하는 거냐?’ 라고 물었더니, 그건 아니란다.
  정치인이 되려는 사람 아니면 공산당원이라도 직접 공산당 관련 일을 하지는 않는단다.  다만 공산당원이 되면 나중에 졸업하고 직장 구할 때도, 직장에서 일할 때도 유리하다고 한다.  공무원, 교사, 군인, 경찰, 국영기업 직원이 되려고 하면 가산점도 주고, 사영기업이라도 승진할 때 좀 더 유리하단다. 

  내가 공산당 입당에 대해 이것저것 물으며 관심 보이자, 양이 ‘한국에서는 공산당 입당하는 사람이 적냐?’ 라고 물었다. -.-;;  ‘적은 게 아니라 아예 없다. 한국에서 공산당은 불법이라 없다.’ 라고 했더니 좀 놀라는 눈치였다.  내 중국어 실력으로 그 치열한 냉전시대를 배경으로 한 남북한의 단독 정부 수립과 대립에 대해 설명하는 건 불가능하니, 그냥 ‘조선(북한)과 전쟁을 했기 때문에, 한국에서는 공산당이 불법이다.’ 라고만 했다.  양도 그냥 그런가 보다 하며 수긍했다.
  그러더니 조금 걱정스런 표정으로 ‘그럼 내가 공산당원이 되면, 나중에 한국에 여행 못 가는 거냐?’ 라고 물었다. ^^;;  ‘걱정하지 말아라. 공산당원은 한국에 못 간다면, 한국에 온 그 많은 중국 여행객과 중국 노동자들은 다 뭐냐?’ 했더니, ‘아, 그러냐...’ 하며 웃고...

 

  나는 내 머리가 제법 말랑말랑하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초등학교 시절 받은 반공교육의 효과는 어쩔 수 없나 보다.
  몇 년 전 여기 중국 동북지방을 여행하면서 한국의 태극기와 북한의 인공기가 나란히 걸린 모습을 봤을 때도 ‘헉~~’ 했었다.  단동(丹東)에서 김일성, 김정일 찬양하는 그림과 문구 투성이인 북한 우표집을 기념품으로 사면서, ‘나 이거 갖고 귀국하다가 인천공항에서 잡혀 국정원 같은데 끌려가는 거 아닐까?’ 하고 나름 심각하게 고민했고... ^^;;
  중국에서도 이제 와서 공산주의라는 사상에 감동받아(?) 공산당 들어가는 사람이 없다는 것은 나도 알고 있다.  정치나 사상과는 무관하게, 그저 엄청난 취업난과 빡빡한 스트레스로 가득한 사회생활에서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더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고자 하는 발칙한(?) 뜻으로 입당하려는 것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주위에서 공산당에 가입하겠다는 사람이 나타나니, 무척 당혹스러운 기분이었다.

 

  어제(5월 26일) 점심 때, 양과 J군을 만나 함께 훠궈를 먹었다.
  그 자리에서 입당 시험 잘 봤냐고 물었더니 그런대로 잘 봤단다.  그러면 언제 입당하는 거냐고 다시 물었더니, 합격해도 이런저런 절차가 있어서 내년(!) 12월에나 입당할 수 있단다....! -0-;; (정말 만만디를 제대로 실천하는구나, 뭐가 이렇게 오래 걸리냐...)

  한편으로는 너무 오래 걸리는 시간에 황당하다는 느낌도 들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다행이라는 느낌도 들었다.  양이 입당하게 되면 축하인사를 해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싶었는데, 내년 12월이면 나는 하얼빈에 없을 테니 말이다.  ‘양, 공산당에 입당하다니 대단하구나. 정말 축하해~’ 라고 말하는 게 살짝 거부감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