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얼빈 생활기/'09~'10년 흑룡강대학 어학연수기

중국의 외국어 공부 / 한국어 공부하는 중국학생들

Lesley 2010. 4. 11. 01:25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여기 중국 대학생들도 외국어 공부를 열심히 한다.
  여기도 우리나라처럼 영어 광풍이 분 덕에, 영어는 좋든 싫든 무조건 해야 하는 분위기이다.  그리고 영어 이외의 다른 외국어를 공부하는 학생들도 곧잘 눈에 띈다.

 

 

 

 

 1. 중국의 교과과정 중 외국어

 

  여기서 잠깐 중국 교과과정 중 외국어 학습이 어떤 식으로 되어 있는지 설명하자면...


  우리나라에서는 기본적으로 학생들이 두 가지 외국어를 배우게 되어 있다.

  내가 학교 다니던 시절에는 중학교 때부터, 요즘은 초등학교 때부터 제1외국어인 영어를 배운다.  그러다가 고등학교에서 제2외국어로 중국어, 일본어, 불어, 독일어 등을 배운다. (단, 조기교육 바람이 분 요즘에는 제2외국어도 좀 더 일찍 배우는 경우가 제법 있다 들었음.)  그렇게 우리나라에서는 영어는 누구나 다 배우고, 그 밖의 외국어는 사람마다 다르게 배운다.


  그런데 중국에서는 영어, 러시아어, 일본어 등 3개 언어가 같은 선상에 놓여 있다.

  즉, 영어를 배우는 사람은 영어만 배우고, 러시아어 또는 일본어를 배우는 사람은 영어를 안 배우고 해당 언어만 배운다.  까오카오(高考 : 우리나라로 치면 대학수학능력시험에 해당하는 대입시험)를 볼 때, 이 3개의 외국어 중 하나를 선택해서 봐야 한다.  물론 중국에서도 영어를 배우는 사람이 절대다수이고, 러시아어나 일본어를 선택하는 학생 숫자는 그다지 많지 않다고 한다.

  단, 이것은 대학입학을 목표로 하는 중.고등학교 과정에서 그렇다는 말이다.  대학에 들어간 후에는 사정이 좀 달라진다.  예를 들어, 원래 영어만 배운 학생이, 대학 입학 후에 자신의 필요 또는 취향에 따라 러시아어나 일본어, 또는 까오카오에 포함 안 되는 한국어, 불어, 독일어를 따로 학원 다니면서 배우는 경우가 종종 있다. 

 

 

 2. 중국에서 인기 있는 제2외국어

 

  중국 대학생들의 외국어 학습 열기를 반영하듯 흑룡강대학 교정 여기저기에 붙은 학원 광고물을 보면, 영어 다음으로 인기 있는 외국어가 한국어와 일본어인 듯 하다.


  물론 하얼빈을 비롯한 흑룡강성은 러시아와 가깝다는 이유 때문에, 러시아 학습자층이 다른 지역보다 두꺼운 편이다.

  흑룡강대학 근처에 있는 흑룡강대학부속중학교가 러시아어를 가르치는 학교이고, 또 여기 흑룡강대학의 러시아어과는 전 중국에서 1위라고 내놓을 수 있을 정도로 수준이 높고 규모도 크다.  오죽하면, 영어과 · 불어과 · 스페인어과 등이 서양어대학으로, 한국어 · 일본어 · 아랍어 등이 동양어대학으로 묶인 것과는 다르게, 러시아어과는 그 하나만으로 독자적인 단과대학으로 편성되어 있을 정도이다.  이전 푸다오 선생인 징신의 말로는, 흑룡강성 지역의 대입수험생 중 10% 정도는 까오카오를 치를 때 러시아어를 선택한다고 했다.

  하지만 아무래도 중국어와 공통점이라고는 없는데다가 워낙 배우기 힘든 언어라 그런지(내가 동사 변화에 질려 불어와 스페인어 배우다가 학을 떼고 포기한 사람인데, 러시아어는 그런 불어와 스페인어 따위는 명함도 못 내밀게 동사 변화가 심한 모양임.), 중학교 때부터 러시아어를 배웠거나 대학에서 러시아어를 전공한 학생들 빼고는, 따로 러시아어 배우겠다는 학생은 거의 없는 듯 하다.


  그에 비해 한국어나 일본어는 아무래도 같은 한자 문화권의 언어라 중국어와 서로 통하는 부분이 어느 정도 있고, 한국과 일본의 드라마와 영화가 중국에서 인기를 끌다 보니, 이 두 언어를 배우고자 하는 학생들 숫자가 제법 있다.

 

 

 3. 비(非) 한국어 전공자인 중국학생들이 한국어 배우려는 이유

 

  첫째, 바로 위에 쓴 것처럼 영화나 드라마의 영향, 또는 한국에 대한 호기심으로 배우는 경우이다.

 

  내 후쉐인 '양'이 바로 이런 경우이다.

  양은 '신주'의 룸메이트 중 한 명이라는 인연으로 나와 엮이게 되었다. ('중국인 학생 기숙사 방문 (http://blog.daum.net/jha7791/15790492)' 참조)  사실 양은 법학을 전공하는 학생이라, 한국하고는 아무 상관없다.  단지 한국 드라마나 영화를 자주 보고, 또 어찌어찌하여 나를 비롯한 몇몇 한국인과 알게 되어 한국인과 교류하려는 생각에 한국어를 공부하게 되었다.

  다만, 그 동안은 나와 또 다른 한국학생인 J군과 공부하면서 별 효과를 못 봤다.  아무래도 우리가 전문적으로 한국어 가르치는 사람도 아니어서 후쉐를 하는 것만으로는 진도가 잘 나가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 학기부터 주말마다 학원에 나가 한국어를 배우게 되었다.  겨우 3주일 학원에 가서 공부했을 뿐인데도, 지난 1년 나와 같이 공부한 것보다 진도가 훨씬 많이 나갔다. -.-;;  덕분에 우리의 후쉐 수업도 이제야 제대로 돌아가는 분위기이고... ^^  


  양의 말인즉슨, 학원의 한국어반이 꽤 인기라고 한다.

  학원의 한국어 기초반 들어갔더니, 한 반에 40명이 넘는 사람들이 우글거리며 공부하는 통에, 원래 2인용인 책상에 3명씩 붙어 앉아 공부를 해야 하는 지경이라 했다.  그래서 내가 '걱정마, 내가 아는 중국학생(징신)도 그 학원에서 배웠는데, 2달쯤 지나면 대부분 포기해서 8명 정도만 남는대.' 라고 했더니, 양이 막 웃었다. ^^

  그리고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양이 공부하는 기초반에 러시아 유학생이 한 명 있다는 사실이다.  러시아 학생이 중국어로 진행되는 한국어 수업을 듣는다니, 생각만 해도 정말 재미있다. ^^

 

  이 블로그에 간간히 등장하는 J씨도 최근 남편의 학우인 두 명의 중국 박사과정 학생들과 후쉐를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 두 사람이 J씨네 식구들과 오가며 지내면서 한국에 관심을 갖게 되어, 그렇게 되었다 했다.  J씨는 이번 학기부터는 어학연수 수업을 안 받아서 중국인과 접할 기회가 적은데, 그렇게 중국인과 후쉐하게 되었으니, 중국어 회화 연습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인 셈이다.

 

  둘째, 대외한어과 학생들이 졸업 후 직장생활 할 때를 생각해서 배우는 경우이다.

 

  대외한어과 학생들 중에서 따로 시간 내어 한국어를 공부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대외한어과 학생 중 상당수는 장차 유학생들에게 중국어를 가르치는 선생님이 되는데, 유학생 중 한국 학생이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한다. (러시아 학생이 가장 많은 하얼빈과 베트남 학생이 가장 많은 광조우(廣州 : 광주) 등 몇몇 지역을 빼고는, 중국 전역의 유학생 중 한국 학생이 가장 많다고 들었음.)  그래서 대외한어과 학생들이 한국학생들과 교류하거나, 한국학생들을 이해하기 위해서 배우는 경우가 있다.  내 이전 푸다오 선생인 '징신'이나, 지난 주부터 나와 후쉐를 하게 된 '장수아이(張帥)'가 이런 경우에 해당한다.


  징신은 내가 흑룡강대학에서 공부를 막 시작한 작년 3월부터 학원에 가서 한국어 공부를 했다.

  하루에 8시간씩(!) 6개월간 죽어라 학원 수업을 듣더니, 일상회화는 문제 없을 수준으로 한국어를 구사하게 되었다. (혹시 천재???)  물론 여전히 현재형과 과거형이 뒤섞이는 등의 몇 가지 문제가 있지만, 어차피 외국어 배우는 사람은 누구나 그런 문제는 다 겪는 거고, 어학연수를 받지도 않았는데 6개월만에 한국인과 그럭저럭 이야기 나눌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는 건 정말 대단한 일이다. (1년 넘게 어학연수 받고도 여전히 버벅거리는 나는 도대체 뭐냐? ㅠ.ㅠ)


  장수아이는 작년 3월 학기 때 진쥔과 함께 우리반에 교생실습 왔던 대외한어과 학생인데, 그 때 나와 친하게 지내다가 귀국한 B의 푸다오 선생이기도 했다.

  지금은 대학원에 진학해 공부 중인데, 최근 우연히 나와 다시 만나게 되었다.  한국어를 배우면 선생님이 되었을 때 도움이 될거라며 배우고 싶다고 해서, 나와 후쉐를 하기로 했다.  내가 '양'과 '징신'의 경우를 말하며, 후쉐 하는 것만으로는 효과가 크지 않으니 학원수업을 들으라고 충고했다.  그랬더니 자신도 그러고 싶지만 지금은 시간이 없다면서, 시간이 많았던 대학 4학년 때 한국어를 배워야 했다고 무척 아쉬워했다.


  그리고 소문을 들으니, 이번에 다른 반에 교생실습 들어온 대외한어과 4학년 학생의 한국어 실력도 대단하다 했다.

  징신처럼 겨우 6개월 한국어 배웠다는데, 소문이 짜하게 돌 정도로 한국어를 잘 한다고 한다.  그래서 그 반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이해가 안 가는 것들이 있으면, 쉬는 시간에 그 학생에게 한국어로 물어볼 수 있어 편리하다 했다.

 

 


  어떤 이유에서든간에, 외국인들이 우리나라에 관심 갖고 우리나라의 언어를 배우려고 하는 것은, 한국인으로서는 가슴 뿌듯한 일이다.

  우리나라가 별 볼 일 없는 나라라면, 한국에 관심 갖는 외국인도 드물테고, 그렇게 한국어 배우겠다고 하는 외국인도 없을테니까...  그래서 나도 한국어 배우려는 외국인에게는 내 능력 닿는 범위에서 자세하고 친절하게 가르쳐주려고 애쓰는 편이다.
  앞으로도 많은 중국인, 그리고 그 밖의 외국인들이 우리나라에 관심을 갖고 우리말을 배웠으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