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얼빈 생활기/'09~'10년 흑룡강대학 어학연수기

3월 30일에 일어난 소소한 일들

Lesley 2010. 3. 31. 17:16

 

 

 

  어제(3월 30일)는 평범한 하루였다. 
  하지만 나름 재미있는 작은 일들이 몇 가지 있어서, 떠나가는 3월을 전송하는 기분으로 블로그에 올려볼까 한다. ^^

 

 


  첫 번째, 올해 들어 처음으로 하얼빈에 비가 내렸다.

 

  사실 이건 재미있는 일이라고 말하기는 참 뭣하다.
  지난 주 금요일까지만 해도 잠깐이기는 했어도 걸을 때 얼굴을 들기 힘들 정도로 눈이 펑펑 쏟아졌다.  하지만 이제는 낮 최고기온이 영상으로 오른 덕에 눈 대신 비가 내렸으니, 봄이 늦게나마 성큼 다가오나 보다 하며 기뻐하는 게 맞을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못 하다.

 

  작년에 한국영화 '호우시절' 덕분에 봄비에 관한 두보의 시 '춘야희우'를 알게 되었다. (☞''호우시절'과 두보(杜甫)의 춘야희우(春夜喜雨)(http://blog.daum.net/jha7791/15790609)' 참조)

  덕분에 모처럼 봄비에 대해 특별한 감정을 갖게 되었건만, 오늘 하얼빈에 내린 봄비는 그런 낭만적인 시와는 상.당.히. 거리가 먼 비였다.  낭만은 무슨 낭만... 낭만적이기는 커녕, 기온이 영상으로 올랐건만 뼛속으로 스며드는 기분 나쁜 추위를 동반한 스산한 비였다. ㅠ.ㅠ

 

  도대체 하얼빈에 봄이 오기는 오는 건지...

  그러고보면, 작년에도 4월이 다 저물어 갈 때야 겨우 봄꽃다운 봄꽃을 구경하게 되었던 기억이 난다.  덕분에 한국에 있을 때는 화초를 잡초 보듯 하고, 잡초를 봐도 화초와 뭐가 다른지 몰랐던 무심한 내가, 봄꽃에 환장할 지경이 되기까지 했었고... ^^;;  아무래도 올해도 그렇게 목을 빼고 봄을 기다리게 생겼다.

 

 

  두 번째, 오늘 정독 수업 시간에 있었던 일인데, 이건 꽤 재미있는 일이었다. ^^

 

  작년 내가 배정받은 반은 전부 한국인 아니면 러시아인이어서 좀 단조로운 느낌이었는데, 이번 학기 우리 반 구성원은 아주 다채롭다.
  10여 명의 한국인, 두세 명의 러시아인, 두 명의 일본인, 그리고 미국인, 독일인, 카자흐스탄인, 스페인인이 각각 1명씩이다.  거기에다가, 무슨 사정인지는 모르겠지만 습관어 수업 때만 들어오는 예멘 출신 학생까지 두 명이 있다.

 

  그런데 그 중 스페인 출신인 '보커(아, '보커'가 아니라 '보거'였던가? -.-;;)' 덕분에 오늘 모두 한바탕 웃었다.
  보커는 중국생활 한 지 이미 7, 8년이 되었다는데, 그 동안 영어를 쓰며 살아서 그런지 중국어 실력은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니다.  하지만 성격도 좋고, 수업에도 열심히 참여하며, 항상 맨 앞자리에 앉아 맞든 틀리든 선생님의 질문에 열심히 대답하는 열성적인 학생이다.  열정은 넘치나 능력이 따라주지 못 해 가끔 동문서답을 해서, 지루한 수업시간에 웃음을 선사하기도 한다. ^^

 

  정독을 담당하시는 담임 선생님은 본문 진도를 나갈 때, 몇몇 학생을 지목해서 본문 내용으로 질문을 만들게 하고 다른 학생들에게 대답을 하게 하는 방법을 쓰신다. 
  오늘도 한 학생에게 질문을 만들라 했다.  요즘 배우는 게 우리나라에서도 유명한 '손자병법'의 저자 손자(孫子)에 대한 내용이어서, 그 학생이 '손자가 어느 나라 사람인가?'라고 질문을 하고 보커가 대답을 하게 되었다.  본문의 내용인즉슨, 손자는 원래 제나라 사람인데 자신의 능력을 펼치기 위해 오나라로 갔다고 되어 있다.  그러니 정답은 '제나라 사람'이고, 설사 틀린 답이 나오더라도 '오나라 사람' 이라는 대답이 나올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보커는 역시 우리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보커의 입에서 나온 대답은 '중국인'이었고, 덕분에 학생들이나 선생님이나 모두 뒤집어져서 웃어댔다. ^^   

 

 

  세 번째, 오후 수업은 '한어(중국어)와 중국문화'였는데, 오늘 재미있는 내용을 배웠다.

 

  이 수업은 내가 이번 학기 신청한 과목 중 제일 좋아하는 과목이다.
  몇몇 학생들은 선생님의 설명이 좀 지루하다고 하고, 특히 서양쪽 학생들은 동양 사상이나 문화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어서 많이 버거워하는 과목이다.  하지만 나로서는 책만 들이파지 않고 영화, 다큐멘터리 등등 시청각 자료 이용하는 이 과목이 무척 좋다.  또 지겨운 어법(문법) 따지지 않아도 된다는 점도 마음에 들고, 이 과목 담당하시는 선생님 목소리도 어찌나 또랑또랑한지 귀에 쏙쏙 잘 들어온다. ^^

 

  그런데 오늘 배운 부분이 노자(老子)와 도교(道敎)에 대한 것이었다.
  노자란 인물은 분명히 철학자였으나, 세상을 뜬 후 후세인들에 의해 신격화되어, 인간과 신의 이중적인 성격을 갖게 되었다 한다.  그렇게 신격화된 노자에 관한 전설을 다룬 시청각 자료를 본 후 선생님이 설명하시는데, 웃겨 죽는 줄 알았다. ^^  이 전설에 의하면 노자의 어머니가 강에서 빨래하다가 떠내려온 무슨 과일을 먹은 후 노자를 잉태하게 되었고, 무려 81년의 임신기간을 거쳐서 노자를 출산했다 한다.  비록 갓난아이라지만 어머니 몸 안에서 이미 81년이나 보내고 태어났기 때문에, 태어날 때 벌써 머리카락과 눈썹이 하얗게 샌 상태였다고 한다.  그래서 그 어머니가 아들에게 늙었다는 의미의 노(老)씨 성을 붙여주었다는 것이다. (이 사연 정말 지못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