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얼빈 생활기/'09~'10년 흑룡강대학 어학연수기

다음 달에 HSK를 봐, 말아?

Lesley 2010. 3. 24. 01:05

 

 


  지난 금요일(3월 19일)에 하얼빈사범대학에 갔다가 헛걸음 했다.

  학교 수업 들어가기 전에 시간이 남아 인터넷 접속했다가, 하얼빈사범대학에서 4월에 시행하는 HSK의 접수가 시작되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인터넷상으로도 접수가 가능하기는 했는데, 중국에서 겨우 한 두 차례 볼 HSK 때문에 인터넷뱅킹 이용하느라 이런저런 프로그램 설치하는 것도 번거로울 듯 하고, 또 시험 장소인 하얼빈사범대학에 직접 가봐야 시험 때 헤매는 일 없을 듯 해서, 직접 가서 신청하기로 했다.  마침 금요일은 오전 수업 밖에 없는 날이라, 점심 먹고서 버스를 타고 갔다.
  그런데 막상 도착해서 접수장소인 유학생 기숙사 1층에 붙은 공고를 보니, 그 날은 신청기간이 아니었다.  21일부터 26일까지 신청 받는단다. ㅠ.ㅠ  내가 접속했던 사이트에 ‘인터넷 접수기간’과 ‘현장 접수기간’에 대해서 별도로 공지되어 있지 않아, 이미 접수 받는 중이라기에 당연히 현장 접수도 시작된 걸로 알았다.  그런 것 좀 친절히 알려주면 어디가 덧나기라도 하는지, 원...

 

  그래서 일요일(3월 21일)에 다시 하얼빈사범대학에 갔는데, 이번에도 헛걸음 했다. ㅠ.ㅠ

  공고에는 분명히 ‘21일부터 26일까지’라고 해놓고는, 유학생 기숙사의 직원 왈 ‘오늘은 일요일이라 접수 안 받는다.’ 는 것이다...!  ‘저 공고에 21일부터 접수 받는다고 되어 있다.’ 라고 했더니, 그 여직원 무표정한 얼굴로 ‘오늘은 일요일이라 사무실에 사람이 없어서 안 된다. 저 공고가 잘못된 거다.’라고 했다.
  ‘아니, 저 공고에는 오늘부터 접수받는 걸로 되어 있어?’ 라고 놀라거나 하는 것도 아니고, 너무 태연하게 ‘저 공고가 잘못된 거다.’ 해서 나를 기 막히게 한 그 여직원...  거기다가 ‘오늘은 weekend잖아. 그래서 사무실 문 안 열어.’ 라고 친절히(?) 영어로 가르쳐주기까지 하는 센스로 확인사살까지... ㅠ.ㅠ

 

  그렇잖아도 금요일에 갔을 때 접수비 보고 너무 놀라서, 이 시험을 꼭 4월에 봐야 하나 했다.

  그런데 이렇게 두 번이나 헛탕 치는 일까지 생기니, 이거야 말로 '이번에는 시험을 보지 말아라.' 는 하늘의 뜻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  자꾸 일이 어긋나는 것을 보니, 어째 조금 기분이 그렇다.


  사실 이번에 시험을 보려 했던 건, 좋은 성적을 기대할 만큼 시험 준비를 잘 해놓아서가 아니다. (귀국해서 3주 정도 정신없이 놀았지, 하얼빈으로 돌아와 개강해서는 허구헌날 숙제에 치이며 살고 있지, 시험 준비는 무슨 시험 준비... -.-;;)

  올해부터 전면적으로 개정된 HSK의 주관기관인 한반(汉办 : 中国国汉办의 약칭)의 일처리가 어찌나 엉망인지, 3월에 첫 시험 시행하면서 개정된 시험 요강은 각 급수별로 지난 12월 말부터 1월 초에야 차례로 발표했다.  덕분에 이미 첫 번째 시험이 시행되었고, 두 번째 시험 접수 들어간 지금까지도, 제대로 된 참고서나 문제집이 없다. (사설학원에서 조급하고 불안한 수험생들 마음 이용해서 돈 벌 생각으로, 뚝딱뚝딱 마구 만들어낸 것은 몇 권 있는 모양임.)  그래서 HSK 준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일단 새로 개정된 시험을 쳐보자. 직접 쳐보면 바뀐 내용이나 난이도를 알 수 있겠지.’ 하는 분위기가 생겨났다.  나 역시 그 방법이 최선이라 생각해서 이번에 보려 했던 것이다.

 

  그런데 금요일에 하얼빈사범대학에 가서 본 공고에 난 접수비가 정말 후덜덜 하다. ㅠ.ㅠ

  도무지 '어떤 시험인지 한 번 쳐보자' 는 식으로 볼 수 있는 시험이 아니다.  무조건 좋은 점수를 받아야만 하는 그런 아.주. 비.싼. 시험이다.ㅠ.ㅠ
  아직도 기존 형태로 치르는 북경어언대학 HSK(왜 아직도 기존 형태로 치르는 시험이 있는지는 아래 단락을 참조...)는 고급(9~11급)이 400위안(한화 약 71,200원), 초.중등(3~8급)이 250위안(한화 약 44,500원)이다.   그런데 이번에 바뀐 것은 고급(6급)이 650위안(한화 약 115,700원)이고, 기존의 초.중등(5급)이 550위안(한화 약 97,900원)이다.  고급은 약 65%가 올랐고, 초.중등은 무려 220%나 인상되었다...!! -0-;;  무슨 이런 날강도 같은... ㅠ.ㅠ  문제 숫자도 줄었는데, 어째서 가격은 이렇게 터무니없이 오른 것이냐?  더구나 기존의 시험 접수비가 ‘회화시험’ 이 포함된 가격인데 비해, 개정된 시험은 필기시험과 회화시험이 분리되어서 회화시험 접수비는 별도로 받는단다...!! -0-;;

 

 

 ※ 한반(汉办)과 북경어언대학(北京語言大學)으로 양분된 HSK

 

  사실은 이 부분도 완전히 블랙 코미디다.

 

  중국어 학습에서 공신력이 가장 높은 시험이 바로 이 HSK이다.

  그런 HSK의 주관기관이 그 동안 두 곳으로 나뉘어 있었던 것도 황당한데, 올해부터는 아예 두 기관에서 별도의 문제 형태와 등급으로 각각 HSK를 시행하고 있다. -.-;;

  원래 HSK의 주관기관은 대외한어 부문에서 최고 명문대학인 북경어언대학이었다.  그런데 최근 급증한 해외의 중국어 학습자를 효율적으로 관리할 필요도 있고, 또 중국어를 영어처럼 여러 나라에서 통용되는 언어로 만들겠다는 중국정부의 야심찬 계획도 있어서, 중국정부가 이 한반이란 기관을 만들었다.  그 후 기존의 주관기관인 북경어언대학과 새로운 주관기관인 한반 사이에서 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 같은 HSK를 두고 밥그릇 싸움이 벌어졌다.  그리고 결국에는 각각 다른 형태의 HSK가 시행되는 지경까지 왔다. -.-;;

 

  뭐, 두 기관 간의 갈등의 원인을 어느 쪽이 먼저 제공했는지, 현재 이렇게 양분된 HSK 문제를 어떤 식으로 해결할 것인지, 그런 문제야 일개 외국인 학습자인 나로서는 알 도리가 없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한반이 HSK의 주도권 잡겠다는 욕심에, 일을 너무 성급하고 엉망으로 벌인 듯 하다.  위에 이미 썼듯이 올해 3월에 시행되는 시험의 요강을 지난 연말과 올해 초에야 겨우 발표한 것도 그렇고, 이제 필기시험과 분리된 회화시험 같은 경우는 아직 시행조차 못 하고 있고 또 언제 시행할지도 정해지지 않았다는 점도 그렇고...  또 이렇게 모든 걸 어설프게 처리했으면서도, 접수비는 터무니없이 올린 것도 그렇고... (특히 이 접수비 문제는 도무지 용서가 안 됨...! ㅠ.ㅠ)

  

  전에 진쥔도 엄청 흥분해서 한반 욕을 한바탕 한 적이 있었다.

  한반에서 주관하는, 대외한어과 학생들이 많이 응시하는 교사 자격증 시험이 있었다 한다.  그런데 예정된 시험일 불과 몇 달 전에 갑자기 시험을 없애버려서, 오랜 시간 동안 시험 준비하던 학생들이 정말 황당해했다고 한다. -.-;;  한반에서는 해외에 파견할 중국어 교사가 많이 필요한데, 대외한어과 학생들 중 자격을 갖춘 사람들이 많지 않아 공급이 달린다고 말한단다.  하지만 진쥔이 보기에는, 한반의 일처리가 엉망이라 우수한 실력을 갖추고도 해외로 못 나가는 대외한어과 학생이 많은 거라며, '한반은 밥만 축낸다(吃白 - 우리나라나 중국이나 할 일은 안 하고 월급만 받아먹는 사람들 욕할 때 쓰는 표현이 비슷해서 정말 재미있음. ^^)' 라고까지 말했다. ^^;;

 

 

  정말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다.

  그래도 시험이라는 것을 준비해야 공부를 정말 열심히 하게 될 것 같기는 한데, 저렇게 비싼 시험 쳤다가 점수 형편없이 나오면 돈 아까워서 밤에 잠도 안 올 듯하다.  그러면 좀 더 내공을 쌓고 5월 시험을 치르는 게 나으려나?  아, 정말 이 웬수 같은 HSK를 봐, 말아?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