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얼빈 생활기/'09~'10년 흑룡강대학 어학연수기

처음 만난 스리랑카 유학생

Lesley 2010. 3. 11. 01:04

 

 

 

  오늘(3월 10일) 점심 먹고서 딱히 할 일도 없고 하여, 미리 서예 수업하는 교실에 갔다. 
  아무 생각없이 교실로 들어섰는데, 누군가 의자를 몇 개 붙여놓고 그 위에 누워있어서 깜짝 놀랐다.  그 쪽도 갑자기 교실문이 열리며 사람이 들어서자 놀란 표정으로 일어섰는데, 동남아시아 쪽 사람인 듯 했다.  그 쪽에서 먼저 '이 교실에서 수업 있냐?'라고 묻기에 '1시 반에 서예수업이 있다.' 라고 했더니, 자신은 초급 A반 학생이란다. (서예수업 있는 교실이 원래 초급 A반 교실임.)  그렇게 이 '웨이지(維基)'라는 스리랑카 남학생과 30분 정도 대화를 하게 되었다. (아마 원래 이름은 따로 있을테고, 이 '웨이지'라는 이름은 중국어로 음역한 이름인 듯함.)

 

  웨이지가 자기를 스리랑카에서 온 초급 A반 학생이라고 소개한 순간, '아, 그 사람이구나~~' 싶었다.
  사실은 어제(3월 9일) 같은 반 한국 학생 A와 함께 점심 먹은 후 A의 기숙사 방에 잠깐 들렸는데, 공교롭게도 A의 룸메이트에게서 웨이지의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흑룡강대학의 유학생 중 대다수는 러시아인과 한국인이고, 그 밖의 나라 사람들이 좀 있지만 스리랑카 유학생이 있다는 건 A의 룸메이트에게 처음 들었다.  한국인 이외의 아시아권 유학생은 거의 일본 학생 아니면 몽골, 카자흐스탄 등 중앙아시아 쪽 학생이다.  그래서 이 추운 하얼빈에 더운 동남아시아 사람이 공부하러 왔다는 게 의외였다.
  하여튼 그 A의 룸메이트 말이, 자기 반에 '좀 이상하고 짜증나는'(!) 스리랑카 남학생이 한 명 있다고 했다.  팅리(듣기) 시간에 선생님이 틀어준 카세트 녹음을 그냥 안 듣는 정도가 아니라, 아주 작정하고 귀에 이어폰 꽂고 음악을 듣더란다. -.-;;  선생님이 팅리 시간에 녹음을 들어야지 왜 그러냐고 했지만, 계속 그러더란다.  나도 그 이야기를 듣고 '수업 듣기 싫으면 차라리 그냥 결석을 하지, 기껏 들어와서 선생님이나 다른 학생들 맥 빠지게 뭐 하는 짓인가.  꽤나 건방지네.'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역시 같은 사람이라도 어떤 상황에서, 그리고 어떤 입장에서 만나느냐에 따라 인상이 달라지는 법이다.

  팅리 시간에 있었던 이야기 들으니 보나마나 그 반에서는 '안하무인에, 재수없는 사람'으로 찍힌 듯 한데, 같은 반이 아닌 그저 말동무로서는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 ^^
  스리랑카에서 왔다는 말에, 내가 '실론티'와 '타밀 호랑이 반군' 이야기를 했다. (사실 스리랑카에 대해 아는 건, 저 두 가지가 전부임. -.-;; 솔직히 스리랑카가 우리나라와 교류가 활발한 나라는 아니잖는가? ^^;;)  그런데 겨우 한 두 문장 밖에 안 되는 그 이야기만으로도, 웨이지는 한국인이 스리랑카에 대해 아느냐며 굉장히 기뻐했다. (분위기 보아하니, 그 동안 다른 나라 사람들이 자기 나라에 대해 아는 게 하나도 없는 게 너무 속상해서, 한이 맺혔던 모양임. ^^;;)  그러더니 나보고 어느 기숙사에 사느냐 물었다.  자신과 같은 C취 기숙사에 산다는 대답에, 자신이 실론티를 하얼빈까지 가져왔다며 나중에 같이 마시잔다. 

 

  하지만 내가 이 웨이지라는 스리랑카 사람에게 가장 놀란 건, 한국 민요 '아리랑'과 '닐리리야'를 부를 줄 안다는 것이다...!! @.@
  처음에는 한국어로 '안녕하세요' 라는 말을 하는데, 그저 '네 한국어 발음 좋다'라고 웃으며 칭찬했지, 놀라지는 않았다.  흑룡강대학에 한국 유학생이 워낙 많다보니, 러시아 유학생들이나 그 밖의 다른 나라 학생들도 '안녕하세요(^^)', '오빠(-.-;;)', '어떻게~~(-0-;;)' 정도의 한국어는 귀동냥으로 배워 말할 줄 아는 경우가 제법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 노래를, 그것도 한류 덕분에 아시아 각국에서 유명해진 가요가 아닌, 민요를 부를 줄 알다니...!
  내가 놀라서 '같은 반 한국 학생이 가르쳐준거냐?' 라고 했더니, 스리랑카에서 배웠단다...!  자기가 음악을 좋아해서 스리랑카에서 다른 나라 노래도 배웠었는데, 그 때 아리랑과 닐리리야도 배웠단다.  그러면서 그 노래들의 가사가 무슨 뜻인지 중국어로 풀이하기까지 했다.  내가 실론티와 타밀 호랑이 반군 이야기 했다는 이유로 웨이지가 금새 친근감 표시했듯이, 나 역시 아무래도 우리나라 노래를 안다니 급호감이 들고... ^^


  한국 노래 할 줄 아는 웨이지가 자기 반에서 얄미운 인간으로 찍힌 게 좀 안타까운 생각이 들어, 같은 반 한국인들에게 한국어 노래 불러준 적 있냐고 물었더니, 역시나 없단다.

  '네가 한국인들에게 그 노래 불러주면, 한국인들이 틀림없이 너를 좋아할거다' 라고 했더니, 그냥 씩 웃기만 한다.  팅리 시간에 귀에 이어폰 꽂고 음악 듣는 짓은 하지 말라고 하려다가, 처음 만난 사이에 그런 이야기 하는 건 좀 지나친 듯 하여 그만 뒀다.

 

  그렇게 이런 저런 잡담 나누다가 서예수업 시작할 시간이 다 되자, 웨이지는 '시간 나면 실론티 함께 마시자' 는 말 남기고 나갔다.

  웨이지는 우리나라 TV 프로그램인 '러브 인 아시아'에서 본 거 말고, 현실에서 직접 본 최초의 스리랑카 사람이다.  오늘 그렇게 만난 게, 앞으로 정말로 종종 만나 따끈한 실론티 한 잔 하며 담소 나누는 인연으로 이어질지, 아니면 그냥 잠깐의 인연으로 끝날지는 두고 볼 일이다.

 

 

 
  '갑자기 갈라진 교실 바닥' 사건 후일담


  내 인생 최초로 스리랑카 사람을 만난 나름 뜻깊은(?) 오늘 오전, 담임 선생님 시간인 정독(精讀) 수업의 쉬는 시간에 다른 반 선생님이 오셨다. 
  우리 담임 선생님이 무슨 일이냐고 물으시니, 그 다른 반 선생님 왈 "이 반 학생들이 너무 큰 소음을 내서, 이 반 바로 아래에 있는 우리 반 수업에 영향 준다."는 것이다.  담임 선생님이 어리둥절해하며 "우리 반 학생들은 수업시간에 아주 조용하다." 라고 하시자, 그 다른 반 선생님이 "평소에는 조용한 거 안다. 하지만 어느 날 이 교실 한 쪽이 엄청나게 시끄러워서, 우리 교실 천장이 흔들릴 정도였다.  그 뒤로 우리 반 학생들이 무서워서 그 쪽에 앉으려고 하지를 않는다.(-.-;;)" 라고 하셨다.
  그제서야 그 문제의 '큰 소음'이란 것이 무언지 눈치채신 담임 선생님이, 그 다른 반 선생님에게 우리 반의 지진(?) 현장
(☞ '갑자기 갈라진 교실 바닥(http://blog.daum.net/jha7791/15790668)' 참조)을 보여드렸다.  "갑자기 이렇게 되어 우리도 많이 놀랐다." 라는 설명과 함께...  갈라진 교실 바닥을 보시는 다른 반 선생님의 얼굴에 '허걱...!' 하는 표정이 떠올랐다. ^^;;

 

  교실 바닥이 그렇게 갈라졌을 때 '교실 바닥이 확 꺼져버리면 우리 어떻게 해~~' 하는 생각만 했다.

  그런데 다른 반 선생님이 자기네 반 학생들이 겁먹을 정도로 그 반 교실의 천장이 흔들렸다 말씀하시는 걸 들으니...  음...  교실 바닥이 꺼지는 것보다, 교실 천장이 무너져내리는 쪽이 훨씬 공포스러울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