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2월 28일)은 2010년 3월 학기 개강 전날이며, 동시에 음력 1월 15일, 즉 정월 대보름이기도 하다.
중국에서는 정월 대보름을 위앤샤오제(元宵節 : 원소절)라고 하는데, 설날부터 보름째 되는 이 날까지 설의 연속으로 보기 때문에, 설 기간의 마지막 날인 이 위앤샤오제를 우리의 정월 대보름보다 훨씬 더 떠들썩하게 지낸다. 이 포스트를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학교 주위에서 온통 불꽃을 쏘아대는 통에, 밤하늘은 무슨 번개라도 치는 것처럼 번쩍 거리고, 사방에서 요란벅적한 폭죽 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오고 있다. 벌써 2시간 넘게 저러고 있는데, 오늘밤 내내 저러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 ^^
오늘 아침과 점심을 아점으로 어중간하게 먹었더니, 오후 5시도 안 됐는데 배가 고파서 C취 학생식당으로 갔다. 뭘 먹을까 하며 영업하는 코너를 왔다 갔다 둘러보다가, 위앤샤오(元宵) 또는 탕위앤(湯圓)이라고 불리는 음식을 발견하고 먹었다.
이것은 중국에서 대보름날 먹는 음식인데, 마침 오늘이 대보름이라고 학생식당에서도 특별히 내놓은 듯 했다. (하필이면 평소에는 가지고 다니는 디카를 안 가져간게 무척 아쉬웠음. 꼭 디카 안 가져간 날은 뭔가 찍을거리가 생기니, 원... ㅠ.ㅠ) 이 위앤샤오(元宵) 또는 탕위앤(湯圓)은 그 생김새가 우리나라 동지 때 먹는 팥죽의 새알심처럼 생겼고, 재료 또한 새알심처럼 찹쌀이다. 다만, 새알심과는 달리 찹쌀로 만든 둥근 덩어리 안에 설탕, 팥, 콩, 땅콩, 고기 등으로 소를 넣는다. (오늘 내가 학생식당에서 먹은 것은 참깨랑 설탕이 들어간 것이었음.) 이 덩어리를 물에 넣어 끓여서 내놓은 것이 위앤샤오(元宵) 또는 탕위앤(湯圓)이다. 물 속에 따로 설탕이나 소금 등으로 양념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눈으로 보기에는 찹쌀 덩어리 말고는 아무 것도 없는 맹물이다.
그래서 마치 속에 참깨와 설탕 넣은 송편을 맹물에 끓인 듯 한 맛이었다. ^^;; 이왕 중국에서 대보름을 맞았으니 우리나라의 오곡밥이나 나물 대신으로 먹어본 거지, 따로 먹어보라면 안 먹을 듯 하다. 하긴 내가 먹은 게 학생식당에서 만든 저렴한 것이라, 맛이 그냥 그랬을 수도 있다. 상하이나 청두에 있는 유명한 식당에서는 대보름 몇 주 전에 미리 예약하지 않으면 먹을 수 없을 정도로 맛있고 비싼 위앤샤오(元宵) 또는 탕위앤(湯圓)을 판다니 말이다. ^^
그런데 여기서 대보름과 상관없는 이야기 하나...
학생식당에서 저녁을 먹고서는 산책 겸 혹시나 내일 개강 때 무슨 변동사항이라도 있을까 하여, A취로 가서 게시판을 봤다.
게시판에 붙은 반편성표를 보니 지난 학기에 비해 어학연수생 숫자가 많이 줄어들었다. 지난 학기에는 14개 학급이 개설되었는데, 이번에는 9개 학급 밖에 안 된다. 어쩐지 내일이 개강일인데도 유학생 기숙사가 너무 한적하다 했더니, 학생 숫자가 많이 줄어서였다. 뭐, 나로서는 나쁠 것 없다. 기숙사에 유학생 우글거려봤자, 시끄럽기나 하고 단수가 자주 될 게 뻔하니까...
하지만 여기서 좀 어이없는 일이 하나 있다. 내가 이번에 기숙사에 입주하면서 욕실 있는 9층이나 10층 방 달라고 했을 때 그 두 층은 이미 예약이 꽉 차서 안 된다고 했는데, 이게 어찌된 일이냐... -.-;; 이렇게 사람이 없는데 9층과 10층이 다 찼을리가 없다. 아무래도 기숙사측에서 유학생들 관리할 때의 편의 생각해서 아래층부터 다 채워넣으려고 빈 방을 일부러 안 준 듯 하다. ㅠ.ㅠ
하여튼 그렇게 A취 갔다가 C취 유학생 기숙사로 막 들어섰을 때만 해도 사방이 조용했는데, 엘리베이터 타고 6층에 내려섰더니 불꽃놀이가 시작됐다.
얼른 방에 가서 디카만 챙겨들고 꼭대기 14층으로 올라가서 사진을 찍었다. 그런데 러시아 남녀 한 쌍이 내 옆에서 불꽃놀이 구경하다가 옥상으로 통하는 계단 올라가는 걸 보고 '옥상문이 열려 있나?' 하며 따라가봤더니, 뜻밖에도 열려 있었다. 옥상에서 내려다 본 학교 주변 광경은 장관이었다. 밤하늘에서는 계속 형형색색의 불꽃이 터지고 있고, 거리에서는 거리에서대로 '연발식 폭죽'(이런 종류의 폭죽을 한국에서는 뭐라고 부르는지 모르겠음. -.-;; 우리나라의 폭죽과 달리 긴 끈에 손가락 크기의 폭죽이 줄줄이 알사탕처럼 쭉 매달려 있어 한 쪽 끝에 불을 붙이면 요란한 소리 내며 연달아 터지는 폭죽임.)이 계속 터지고 있고... 깜빡 잊고 장갑을 안 갖고 와서 사진 찍다가 얼어죽는 줄 알았다. ^^;; (하얼빈은 2월의 마지막 날인 지금도 낮 최고기온이 영하 10도 안팎일 정도로 추움. ^^)
추위에 떨어가면서도 사진을 많이 찍기는 했다.
다만, 디카 상태가 좀 안 좋아서 밤에 찍은 사진은 빛번짐 현상이 심한 편이라서, 이번에 찍은 것들도 역시나 그렇다. ㅠ.ㅠ 그나마 건진 것들을 몇 장 올려볼까 한다.
(위의 사진)
오늘 한국의 수도권은 날씨가 흐려 정월 대보름의 보름달을 보기 힘들 거라고 했는데, 비록 사진으로나마, 그리고 다른 나라의 보름달이나마 보시기를...^^ 하얼빈은 많이 추워서 그렇지, 맑은 날씨라 휘영청~~ 밝고 크게 뜬 보름달을 볼 수 있었다. ^^ C취 유학생 기숙사 옥상에서 내려다 본 쉐푸쓰다오제(學府四道街)의 야경은 정말 멋졌다. 이런 야경을 하얼빈 생활 1년만에 겨우 발견하다니...!
(아래 사진)
쉐푸쓰다오제 곳곳에서, 그리고 그 너머 멀리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불꽃이 터지기 시작하고...
옥상 위에서 이쪽을 봐도, 저쪽을 봐도 온통 불꽃놀이 하는 광경 밖에 안 보인다.
이 사진들은 망쳤다고 하면 망쳤다고 볼 수도 있는 사진들이다.
하지만 빛번짐 현상 때문에 배경인 거리가 흐릿하게 찍히고 터지는 불꽃만 강조되게 나온 것이, 마치 유치원과 초등학교 때 미술 시간에 곧잘 그렸던 데칼코마니 같은 느낌이라, 특별히 간택(?)된 사진들이다. ^^
이 사진들도 내 본의와 내 실제 사진찍기 실력과는 전혀 상관없이, 사진 찍던 순간의 환경 때문에 이리 독특하게 찍혔다.
불꽃 주위에 무슨 달무리를 연상케 하는 동그란 테 모양의 빛이 생겼는데, 이렇게 찍힌 원인은 다름아닌 '연기'이다. ^^ 내가 이 두 사진을 찍은 곳이 공교롭게도 기숙사의 굴뚝이 있던 곳인데, 바람이 내 쪽으로 불어와 굴뚝에서 나오는 연기가 디카를 휘감았고, 그 상태에서 그냥 찍었더니 이런 독특한 사진이 나왔다. ^^
9시가 넘은 지금, 이제 학교 주변에서는 불꽃을 안 터뜨리는지 내 방에서는 불꽃놀이 빛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좀 멀찍히 떨어진 곳에서 불꽃놀이와 폭죽 터뜨리기를 계속하는지 무슨 대포 소리 같은 둔중한 소리가 계속 들리고 있다. 이 포스트 첫머리에 썼듯이, 아무래도 이 밤 내내 저럴 모양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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