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얼빈 생활기/'09~'10년 흑룡강대학 어학연수기

귀국 전날, 그리고 귀국하던 날

Lesley 2010. 1. 28. 12:39

 


 1. 집주인 부부와의 작별
  
  귀국 전날인 월요일(1월 25일), 원래 낮 12시쯤 남은 짐들을 근처에 사는 J씨네로 옮기고, 2시에 집주인과 만나 수도세나 전기세 등 각종 요금을 정산한 후 보증금 돌려받고 집을 비우려 했다. 
  그런데 어찌하다 보니, 밀리고 밀려서 저녁 8시 반에야 주인을 만나게 되었다.  그런데 첫만남 때 좀 요란벅적한 차림새로 중국판 복부인이 아닐까 싶었던 집주인 왕 교수님과 그 남편 이 교수님이 이 날은 나를 당황시키셨다.  다만 기분 나쁜 당황스러움은 아니었고, 오히려 감동스러운 당황스러움이랄까? ^^

 

☞ 이 왕교수님 부부에 대해서는

   중국에서 이사하기(3) - 다시 집 구하기(http://blog.daum.net/jha7791/15790596)  

   다사다난한 두번째 이사(http://blog.daum.net/jha7791/15790602)

 

  서로 줄 것은 주고 받을 것은 받아 일을 마무리 한 후, 두 교수님이 이불도 없는데 어떻게 잠을 잘거냐고 물으셨다. (침구류는 이미 J씨네 다 줘버린 상황이었음. ^^)

  내가 ‘오늘 밤은 중국친구(진쥔)네 집에서 자고, 내일 그 친구와 함께 공항에 갈거다’ 라고 했더니, 이렇게 어두운데 여자 혼자 돌아다니는 건 위험하다며 바래다 주겠다 하셨다.  가까운 거리라 상관없다고 사양했건만, 두 분이서 기어이 내 노트북 가방과 기내용 캐리어를 하나씩 챙겨들고 앞장서 나가셨다.  한편으로는 고맙고 감동도 받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사실 조금 난감하기도 했다. ^^;;
  진쥔의 집으로 가는 길에 몇 번이나 ‘이제는 됐다.  여기부터는 나 혼자 가겠다.’ 했지만, ‘상관없다, 귀국 전날 혼자 다니다가 사고 당하면 어떻게 하냐?  우리집에 외국 유학생이 세들다니, 이것도 다 인연이다.’ 하며 결국은 진쥔이 사는 아파트 건물 앞까지 데려다주고 가셨다.

 

  왕 교수님은 처음 만났을 때 나의 버벅거리는 중국어를 인내심 갖고 들어주셨고, 이 교수님은 집에 문제 생기면 오셔서 친절하게 잘 해결해주셨다.

  이런 좋은 집주인 만나기는 중국에서 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흔치 않은 일일 것이다.  내가 외국에서 혼자 자취하며 직접 밥 해먹고 사는데 지치지만 않았으면, 두 교수님이 권하시는 대로 2월에 하얼빈 돌아와서 그 집에서 계속 살아도 좋을 것 같은데, 정말 유감이었다.

 

 

 

 2. 떠나는 날까지 사고 치다 -.-;;
  
  귀국날인 1월 26일 아침에는 진쥔이 '자러'(진쥔과 대학 4년 내내 룸메이트였던 친구)가 다니는 교회에 주기로 골라놓은 물건들을 내어가려, 그 교회에서 젊은 남자 두 명이 왔다.

  두 남자가 6층에서 1층으로 집을 옮기는 동안, 자러는 남자들이 쉽게 물건을 내갈 수 있도록 진쥔의 방에서 물건들을 빼내어 현관 근처까지 옮겼다.  그런데 내 딴에는 자러를 도와주겠다고 나선 것이, 오히려 사고를 친 셈이 되어 버렸다. -.-;;


  남자들이 짐을 몽땅 내어간 후, 자러가 진쥔에게 뭘 물어보더니, 곧 둘이서 방과 거실을 돌아다니며 무언가를 찾는 듯 했다.

  그 후에 자러가 나에게 ‘우리 엄마 옷 봤어?’ 라고 묻는데 내가 어리둥절해 하자, 하얀색 큰 봉투에 싸여있던 옷이라고 설명했다.  그 말 듣고 순간 속으로 ‘허걱~~’ 했다.   내가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아마 내가 그 남자들한테 준 것 같은데...’ 했더니, 자러는 ‘대단하다’ 면서 막 웃고... ㅠ.ㅠ  내가 어떻게 하냐고 했더니, 자신도 곧 교회로 갈테니 그 때 돌려받으면 된다며 괜찮단다.
  이거, 이거...  남의 물건을 내 멋대로 교회에 기부해버렸으니, 참...  이래서 전날 밤에 진쥔이 짐정리로 바쁠 때 내가 돕겠다고 나섰더니, 진쥔이 부엌 바닥 대걸레 닦기, 쓰레기 봉지 현관문 밖에 내놓기 같은 일거리만 줬나 보다. -.-;;

  

 


 3. 진쥔과의 작별
  
  진쥔이 탈 비행기의 출발시간이 내가 탈 비행기보다 2시간쯤 빨라서, 공항에서 작별 기념으로 사진 몇 장 찍고서는 짐 검색 받으러 들어가는 진쥔을 전송했다.
  진쥔과 만나 함께 한 기간이 1년도 안 되었지만 정도 많이 들었고 언제 다시 만나게 될 지 알 수가 없어, 헤어질 때 많이 힘들 줄 알았다.  하지만 그 동안 헤어지는 연습을 상상 속에서 여러 번 해서 그런지, 정작 헤어지는 순간에는 밝게 웃으며 헤어졌다. ^^;;
 
  그렇게 진쥔과 헤어지고서 국제선 쪽으로 가서 탑승수속 시간을 기다리는데,  진쥔이 검색대를 무사히 통과했다는 핸드폰 문자를 보냈다.
  진쥔이 비행기 안에 들고 탈 짐이 꽤 많은데 물건 대부분이 먹거리였다. 한국산 김치·부침가루·소고기 다시다, 홍창(紅脹 : 중국 동북지방 특산품인 소세지인데, 우리나라 슈퍼마켓에서 파는 그런 소세지가 아니라 독일 수제 소세지에 가까움), 잣(역시 이 동북지방 특산품), 러시아산 초콜릿 등등 아주 한 보따리였다. ^^ 

 

 

먹을 것만 가득한 진쥔의 가방 ^^  

 

  그래서 나는 공항에서 걸려서 문제가 생길지도 모른다고 했고, 진쥔은 국내항공은 국제항공보다 검색이 덜 엄격해서 괜찮을 거라 하면서도 내 말 듣고 은근히 걱정하는 기색이었다.  그런데 다행히도 다른 건 무사히 통과했고, 한국 김치와 부침가루만 따로 빼내라 하여 검색 받았는데 그것들도 결국 통과되었단다. ^^
 

 

 

 4. 하얼빈 태평공항의 북한 기념품 판매점


하얼빈 태평공항 국제선 탑승구 앞에 있는 북한 물건 판매점.

 

  국제선 탑승구 앞에서 북한 그림과 조각품, 그 밖의 각종 기념품을 판매하는 코너가 있었다.

  한국인 관광객이 많이 드나들어서 북한 물건을 판매하는 모양인데, 가격이 만만찮았다.  가격이 만만찮아도 정말 북한 물건이 맞기나 하면 모르는데, 솔직히 살짝 의심이 들었다. ^^;;  청금상련 등 혜원 신윤복의 작품을 모사한 그림도 있었는데(드라마 '바람의 화원' 덕분에 신윤복 그림 이름을 다 외우게 되었고... ^^), 내가 그림을 볼 줄 몰라 그런지는 몰라도 솔직히 좀 조잡해 보였다.

  좀 더 촬영하고 싶었지만, 판매점의 책임자인 듯 한 저 아저씨가 찍지 말라고 제지해서 딱 2장 밖에 못 찍었다. (그래도 아저씨의 초상권을 위해 얼굴은 가려주는 센스~~~ ^^)

 

 

 

 5. 발전하는 우리 인천공항
  
  비행기 안에서 내 캐리어를 짐칸에 넣으려는데, 이미 다른 짐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서 제대로 넣지 못하고 낑낑거렸다. ㅠ.ㅠ

  그러자 내 자리 옆에 앉은 어린 중국학생이 ‘내 짐은 모두 옷이라 구겨져도 상관없으니 대충 옆으로 밀어두고, 당신 짐을 넣어라.’ 라고 영어로 말을 거는데, 영어 발음이 좋고 말하는 게 유창했다. (사실 그 학생의 영어를 알아들은 건 아니고, 앞뒤 상황을 보니 대강 그런 말인 듯했음. 하여튼 외국에서 생활하면서 늘어나는 건 짐승 수준의 눈치와 본능 뿐... ^^;;)

 

  내가 중국어를 조금 할 수 있다고 하여, 비행시간 동안 대화를 하게 되었다.

  그 학생은 지금 고등학교 2학년이고 호주 시드니에서 유학 중인데(어쩐지~~ 영어 잘 하더라니... ^^), 방학을 맞아 하얼빈의 집으로 돌아왔다가 다시 시드니로 돌아가는 길이라 했다.  한국 아이돌 그룹인 ‘슈퍼 주니어’와 드라마 ‘꽃보다 남자’에 대해 말을 하는데, 내가 원래 연예계쪽으로는 깜깜절벽이라 좀 난감했다.  내가 ‘꽃보다 남자’를 안 봐서 내용을 모른다고 했더니, 어떻게 한국인이 그 드라마를 안 볼 수 있느냐며 그 학생이 눈을 동그랗게 뜨는데... ^^;;

 

  이 학생이 나처럼 아시아나항공의 비행기 타고 인천으로 가는 이유는, 하얼빈에서 호주로 직접 가는 비행기가 없어서 인천공항에서 비행기를 갈아타야 하기 때문이란다.
  그러고 보니 하얼빈 태평(太平)공항에서 비행기 탑승 기다릴 때, 그리고 탑승하려고 줄 설 때 주위의 중국인들 하는 얘기 들어보니 ‘일본 나고야 가야 하는데 인천공항에서 갈아타야 한다.’, ‘인천공항에서 싱가폴항공으로 갈아탄다.’ 라고들 했다.  하얼빈 태평공항이 명색이 국제공항이건만, 중국에서도 외진 지방의 공항이다.  게다가 하얼빈이 베이징이나 상하이처럼 해외 오갈 사람들이 많은 도시도 아니어서, 하루에 오가는 국제항공편이 5, 6편 밖에 안 된다.  첫 학기 같은 반이었던 일본 학생들도 일본에서 하얼빈으로 오는 항공편이 없어서, 인천공항에서 비행기를 갈아탔다 했다.  전에 몽골에서도 오가는 국제항공편이 매우 적어, 어지간한 나라로 가려면 일단 우리나라 인천공항으로 나와서 비행기를 갈아탄다 했는데, 하얼빈 역시 그런 상황인 셈이다.

  우리 인천공항이 국제항공계에서 나름 중요한 위치 차지한 듯하여 꽤 뿌듯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