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얼빈 생활기/'09~'10년 흑룡강대학 어학연수기

흑룡강대학으로 돌아와 보낸 며칠

Lesley 2010. 2. 26. 00:30

 

 

  23, 24일이 라오통쉐(老同學 : 한국어에는 이에 대응하는 말이 없는 듯 함. 신입생을 뜻하는 신통쉐(新同學)의 반대말로 '기존의 학생'을 의미)의 등록기간이었다.

  하지만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25일)까지도 많은 유학생들이 아직 하얼빈으로 돌아오지 않은 모양이다.  사람이 없으니 기숙사는 비교적 조용하고, 물은 펑펑 잘도 나오고, 인터넷 속도도 학기 중에 비해 빠른 편이고, 그렇게 하루 하루가 '특별한 사건' 없이 조용히 흘러가고 있다. (파란만장한 내 하얼빈 생활을 기준으로 했을 때 특별한 사건이 없었다는 뜻임. ^^)

 

 


  지난 학기에 이미 산전수전에 공중전까지 겪은 나로서는 신경 쓸만한 거리도 안 되는 일이지만, 그래도 몇 가지 일이 있기는 했다.

 

  첫째, 내 방 윗방의 화장실 변기 물 내려가는 소리와 샤워기에서 물 떨어지는 소리가 정말 장난이 아니다.
  새로 배정받은 방에서 처음으로 자게 되던 날, 갑자기 천장에서 콸콸~~ 우르르~~ 하는 요란한 소리가 나는데, 난 윗방의 수도관이라도 터져서 내 방 천장이 무너지기라도 하는 줄 알았다. -.-;;  내 방 화장실의 변기도 물 한 번 내리면 소리가 요란하던데, 내 아랫방 사는 사람도 천장 무너지나 보다 하고 겁먹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그래서 '방을 바꿔달라고 할까?' 하는 생각을 했는데, 이 몸은 지난 학기에 이사라는 것에 질린 몸이다.  게다가 원래 소음에 둔감한 편이기도 해서, 그냥 대충 살기로 했다. ^^;;

 

  둘째, 작년에 처음으로 기숙사 입주했을 때와는 달리, 난방이 시원찮다.
  작년에는 난방을 지나치게 틀어줘서 방 안이 너무 건조해, 가뜩이나 안면홍조 앓아 빨간 피부가 더욱 달아오를 지경이었다. ㅠ.ㅠ  방안의 습도를 조절하려 수건 두어 장씩 물에 적셔 널어도, 방 안이 워낙 건조해서 서너 시간이면 바짝 말라버릴 정도였다.  하지만 이번에 기숙사로 돌아와보니, 아직 입주한 사람이 적어 난방비 아끼려 그러는건지, 방 안이 썰렁할 정도이다. (지금 내 방에서 제일 따뜻한 곳이 바로 화장실임. -.-;;)  뭐, 사람들 줄줄이 입주하는 이번 주말쯤부터는 제대로 난방을 해줄 거라 생각한다.

 

  셋째, 학생식당이 정상영업을 하지 않아, 끼니 챙겨먹는 게 귀찮다.
  A취 식당만 일부 영업을 하고 있는데, 툭하면 눈까지 내리니 거기까지 가는 게 꽤 귀찮다.  그래서 C취 학생식당이 문을 연다는 25일이 되기 전까지 라면과 빵을 사다 방에 두고 먹었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25일인 오늘 점심 때 C취 학생식당에 가보니 아직 영업을 안 함. ㅠ.ㅠ)  어제(2월 24일)는 그렇게 사뒀던 식량이 다 떨어졌는데, 공교롭게 폭설까지 쏟아져 학교 앞 마트에도 나갈 수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이, 어떤 영수증 하나 찾을 일 있어 각종 영수증이나 중요한 서류들 모아놓은 것 뒤지다가, 첫 학기 말에 몇 번 이용한 우리 음식을 배달해주는 업체 연락처를 찾았다.  덕분에 떡볶이와 김밥을 공수받아, 쫄쫄 굶는 사태는 면했다. ^^

 

 


  그리고 어제(2월 24일)는 쓰촨성으로 돌아간 진쥔이 전화를 했다.

 

  다시 하얼빈으로 돌아오기 전날에 진쥔네 가족에게 소포를 하나 보냈는데, 그게 어제 오후에 무사히 도착했단다.

  작년 여름 쓰촨성 여행이 미리 계획했던 게 아니라 갑자기 떠나게 된 여행이라, 진쥔의 집에 오래(열흘 하고도 하루 더 ^^) 머물면서도 변변한 선물을 가져가지 못 했다.  그게 마음에 걸려서 한국에 가면 뭔가 다른 걸 보내겠다고 마음 먹었다.  대단한 걸 보낸 것도 아니건만, 진쥔네 가족이 모두 좋아하니 나 역시 좋았다.  좋긴 좋았는데...

 

  진쥔 뿐 아니라 진쥔의 부모님까지 나에게 고맙다는 말씀을 하신다고 하여, 그 분들과 통화하게 될 때에는 살짝 난감했다. ^^;;
  외국어를 듣고 이해하는데에는 그 외국어의 듣기 실력 자체도 중요하지만, 말하는 사람의 목소리가 얼마나 익숙한지도 중요하다.  진쥔의 목소리야 이미 익숙해서 거의 알아들을 수 있었지만, 진쥔 부모님이 하시는 말씀은 알아듣기 어렵다... ^^;;  그것도 직접 얼굴 맞대고 대화하는 게 아니라 전화기 통해 말하려니 더 어려웠다.  그래도 진쥔 엄마의 말씀은 대충 이해하겠는데, 솔직히 아버지 말씀은... ㅠ.ㅠ

 

  이건 나 뿐 아니라 다른 어학연수생들도 하는 말인데, 같은 중국어라도 여자가 하는 말이 더 잘 들리고, 남자가 하는 말은 알아듣기 힘들다.
  대외한어과 전공한 중국학생들 말로는 남자가 여자보다 목소리가 낮다 보니, 남자들이 성조의 기본인 1성을 낮게 발음하여 4개의 성조의 구별이 뚜렷하지 않은 편이라 그렇다 한다.  게다가 자기들도 이유는 모르겠지만, 남자들은 권설음(영어의 R처럼 혀를 굴리는 발음)이 아닌 말도 혀를 굴려가며 발음하는 경향이 있어서, 어떤 때는 같은 중국인인 자기들도 알아듣기 힘들다 한다.


  진쥔이 자기 부모님 말씀 알아들었냐고 묻기에, 느낀대로 솔직히 대답했다.

  그러자 진쥔은 자기 아버지가 하시는 말씀이 표준어이고 엄마가 하시는 말씀은 쓰촨 방언이 많이 섞인 말인데, 왜 아버지 말씀은 못 알아듣고 엄마 말씀은 알아듣냐며 막 웃었다.  헉... @.@  난 진쥔 엄마가 하시는 말씀이 방언인지 전혀 몰랐다...!  방언을 듣고도 내가 배운 표준어와 다르다는 걸 전혀 눈치 못 챌 정도로, 내 중국어 듣기 실력이 형편없나 보다. ㅠ.ㅠ  진짜 이번 학기에는 열공모드로 돌입해서, 중국어 좀 제대로 잡아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