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얼빈 생활기/'09~'10년 흑룡강대학 어학연수기

기숙사 푸우위앤 아줌마의 사생활 침해(?)

Lesley 2010. 3. 19. 22:02

  

 


  한국에서 가끔 TV에 외국인이 나와 한국생활에 대해 얘기하는 것을 보면, 꼭 나오는 것 중 하나가 '사생활이 보장 안 된다' 는 거다.
  가령, 서양인들 사이에서는 친숙한 사이 아니면 묻지 않는 '나이는 몇인지, 결혼은 했는지, 자식은 있는지...' 등의 질문을 초면에도 하는 게 그들 눈에는 이상해 보이는 것이다.  또 서양 쪽에서 유학이나 이민 등으로 살아본 사람도 한국에 돌아와서 그런 일을 겪으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왜 이렇게 남의 일에 관심이 많냐(또는 간섭하냐)' 하며 불평하고...


  하지만 중국은 그런 경향이 한국보다 3배쯤 더 한 듯 하다...!
  전에 배낭여행 때도 겪었고, 이번에 어학연수생활 하면서도 겪은 일인데, 초면에 아무렇지 않게 '한국에서 일할 때 급여를 얼마나 받았냐' 는 질문을 해서 나를 당황하게 한다.  서울에 있는 우리집의 평수는 얼마이며 가격은 얼마인지 묻는 사람도 있다.  심지어 내가 묻지도 않았는데 '내가 작년에 얼마에 집을 샀는데, 지금은 집값이 얼마로 올랐다' 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저 별로 안 궁금하거든요? ㅠ.ㅠ)  우리는 초면인 사람들끼리 최.소.한. 돈 이야기는 꺼내지 않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이 일에 대해 문화충격 느끼는 외국인들이 많긴 많은지, 우리 교과서에도 이에 관련한 내용이 실려 있다.

  즉, 중국인들은 전통적으로 농업사회에서 친척이나 이웃끼리 밀접한 관계 맺으며 살았고, 당연히 서로에 대한 관심이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외국인들이 생각하기에는 실례되는 그런 질문을 서로 주고 받지 않으면, 그것이야 말로 서로에게 무관심하고 무례하게 구는 걸로 생각한단다.  이 내용을 배울 때 담임 선생님이 '중국에서도 요즘 젊은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사생활을 존중한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중국인들이 그런 질문을 한다.  다만 특별한 의도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저 습관일 뿐이니, 그런 질문을 받더라도 화를 내거나 하지 말아라.' 라고 하셨다. 

 

 

 

 

  그런데 이런 사생활 침해(?)의 결정판(!)이, 방 안에 사람이 있는데도 기숙사 푸우위앤(服務員 : '직원, 종업원'을 말함) 아줌마들이 마스터키 이용해서 문을 벌컥 여는 것이 아닌가 싶다. -.-;;


  흑룡강대학에서 첫 학기를 보낼 때, 내가 살던 층의 푸우위앤 아줌마는 내가 문 열어줄 때까지 기다리셨다.

  노크하고 아무 반응 없을 때(즉, 내가 방에 없거나 혹은 잠들어버렸을 때)만 자신이 문을 열고 들어오셨다.  하지만 다른 유학생들 얘기를 들어보니, 노크를 한 후 방 안의 사람이 대답할 시간을 안 주고 문을 열거나, 심지어 노크를 아예 안 하고 그냥 문을 여는 경우가 꽤 많은 모양이었다. 


  그런데 이번 학기에 기숙사로 컴백했더니만, 내가 사는 층을 담당하는 아줌마가 그런 분이시다. ㅠ.ㅠ

  사실 이 아줌마는 인상도 좋고, 친절하신 분이다.  흠이라면 그저 딱 하나...  노크하고서 겨우 2, 3초만에 그냥 밀고 들어오신다는 점이다. (이 아줌마가 문 여시기 전에 내가 먼저 열려면, SF영화의 주인공마냥 공간이동을 하거나, 고대소설의 주인공처럼 축지법을 써서 문 앞으로 휘리릭 가는 수 밖에 없음. -.-;;)

 

  지난 화요일(3월 16일), 수업 마치고 막 기숙사로 돌아와 다른 옷으로 갈아입던 중, 노크 소리를 들었다.

  '덩 이샤(等一下 : '잠깐만 기다리세요'라는 뜻)'라고 큰 소리로 말했건만, 언제나 그렇듯이 내가 문 앞으로 가기도 전에 마스터키로 먼저 문을 열고 들어오시는 우리 푸우위앤 아줌마... ㅠ.ㅠ

  졸지에 내복(이미 3월 중순이지만, 하얼빈은 아직도 툭하면 눈 펑펑 쏟아지는 한겨울임) 차림새를 다른 사람한테 보이게 된 나는 무척 당혹스러웠는데, 아줌마는 아~주~ 태연한 표정으로 '이불 갈려고 왔어' 라고 하셨다. -.-;;  나는 허겁지겁 옷을 꿰어차느라 정신이 없는데, 아줌마는 방 안에 들어서서 주위를 둘러보시며 '역시 한국 유학생 방은 깨끗하네' 하며 감탄하시고...  정신없이 겉옷 입던 나는 어색한 미소 날리고... -.-;;

 

  옷을 다 입은 후, 내복 차림을 보인 게 민망해서 서있는 것도 아니고 앉아있는 것도 아닌, 그런 어정쩡한 자세로 있었다.
  하지만 내가 그렇게 어색해하거나 말거나, 아줌마는 침대 시트를 가시면서 '청소를 일주일에 몇 번이나 하느냐, 한국은 많이 발전했는데 조선(북한)은 너무 가난하다, 조선이 그렇게 가난한 건 조선 지도자가 정치를 잘못한 탓이다, 한국 대학생들도 요즘 취직하기 힘드냐, 중국도 취업난 때문에 졸업생들이 전부 대학원 간다' 등등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나가시고...^^;; 
  조금 시간이 지나서야 '내가 70년대에 유명한 조선 영화를 봤는데 정말 재미있었다. 그 때 많은 중국인들이 그 영화를 봤다.'라는 아줌마 이야기에 '혹시 꽃을 파는 여자애 나오는 영화 아니에요?'라고 관심 보일 정도로 마음의 여유를 찾았다. (북한 영화 '꽃 파는 처녀'가 70년대 중국에서 대히트 쳤음)   하지만 이런 반응 보일 정도로 내가 정신줄 수습했을 때에는, 아줌마가 이미 침대 시트 가는 일을 다 끝내셔서 작별인사 남긴 채 나가셨다. (이게 뭥미... 이제 겨우 이야기에 재미붙이려 했는데...ㅠ.ㅠ)       
 
  아줌마, 저 아줌마 참 괜찮은 분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그런데...  노크 하고서 좀 기다려주시면 안 되나요?  10초 기다려달라는 부탁은 드리지도 않을게요.  그저 딱 5초만...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