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얼빈 생활기/'09~'10년 흑룡강대학 어학연수기

흑룡강대학 기숙사의 몽골 가족

Lesley 2010. 3. 26. 15:19

 

 

 

  지난 수요일(3월 24일), 늦잠 자는 통에 그만 8시 수업을 못 들어갔다.
  그 전날 갑자기 생긴 야식을 먹게 되어 소화 좀 시키고 잔다고 늦게까지 버틴다는 게, 그만 가장 졸린 시간을 넘기고 나니 아예 잠이 오지 않았다. (나처럼 언제 어디에서나 잘 자는 사람에게도 1년에 두세 번 정도는 이런 일이 있음. ^^)  책도 읽다가, 인터넷도 하다가, 붓글씨도 쓰다가... 그렇게 별 짓 다 했는데도 새벽 4시가 다 되어서야 잠들었다.  덕분에 아침에 알람 소리 듣고도 도무지 일어날 수 없어서 그냥 내쳐 잔 것이다.

 

  어차피 늦은 거 그냥 빠지고 10시 수업이나 들어가자 마음 먹고서, 그 날 있던 서예수업 위해 붓글씨 연습을 했다.
  그런데 갑자기 복도에서 어린 아이가 우는 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인가 싶어 나가봤더니, 내 방 맞은편에 사는 몽골 유학생의 딸이 복도를 이리저리 뛰면서 울고 있었다.

 

  그 울고 있던 여자 아이의 오빠인 '총총(본명이 아니라 중국식으로 지은 이름 같은데 한자로는 어찌 되는지 모르겠음. 총명할 총(聰)인가?)'은 지금 초등학교 1학년인데, C취 유학생 기숙사의 명물이다.
  대부분 20대인 유학생들이 우글거리는 곳에 어린 아이가 있으니, 당연히 눈길을 끌 수 밖에 없다.  각 나라에서 온 유학생들도, 기숙사의 중국인 직원들도, 어리다는 이유 하나로 총총을 귀여워해주고 응석을 받아준다.  덕분에 총총은 당돌한 면이 없지 않은 아이가 되었고... (흑룡강대학에서 보낸 첫번째 학기에, 총총이 내 중국어 발음 이상하다고 무시한 적도 있음. ㅠ.ㅠ)  그리고 역시 어린 아이다보니, 외국어를 배우는 속도나 발음의 정확성이 장난이 아니다.  그 애가 중국어 말하는 것만 봐서는 중국 아이들과 도통 구별을 할 수 없을 정도다.  게다가 흑룡강대학 기숙사에 러시아 학생 다음으로 한국 유학생이 많아 수시로 한국어 듣게 되고, 종종 한국인과 몽골인이 룸메이트로 배정받는 경우가 있어서 총총이 그런 방 드나들며 한국인과 어울리는 경우도 많아서, 한국어도 곧잘 구사한다. (그런데 'AC~' 같은 말은 도대체 어떤 한국 유학생이 가르쳐준거냐...ㅠ.ㅠ)

 

  전에 외국에 나가서까지 가족끼리 뭉치는 몽골인들에 대한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원래 유목민족인 몽골인은 가족단위로 장거리 움직이는데 익숙해서, 해외로 일하러 가거나 또는 유학 가는 경우에도 자녀를 동반하는 경우가 많다 했다.  그래서 한국에 들어온 외국인 노동자 중 몽골인의 비중은 그다지 높지 않은데, 외국인 노동자 부모 따라 온 외국인 자녀 숫자 1위는 몽골인이란다.  덕분에 서울에 몽골정부가 최초로 해외에 인가해 준 정규 몽골학교까지 생겼고, 몽골 대통령 부부가 공식 방한했을 때 대통령 부인이 그 학교를 방문하기도 했다 한다.


  총총의 엄마인 몽골 유학생은 내가 흑룡강대학에 처음 왔을 때만 해도 총총만 데리고 있었는데, 지난 학기부터는 총총의 여동생인 딸도 데려왔다고 한다.

  이번에 내가 C취 기숙사로 돌아와 새로 방을 배정받고 보니, 공교롭게도 내 방 맞은편이 그 세 식구가 지내는 방이다.  덕분에 그 식구들 만나러 온 다른 몽골 유학생들이 내 방으로 잘못 찾아와서는 '여기 몽골인 없어요?' 라고 묻는 경우도 있고... ^^  나는 이국땅에서 내 한 몸 건사하며 사는 것도 어떤 때는 힘든데, 아이를 둘이나 데리고 공부하는 그 몽골 유학생 정말 대단하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좀 짱인 듯... ^^


  어찌되었거나 우는 아이의 옷차림과 헝클어진 머리 모양을 보니, 막 잠에서 깨어나서 엄마와 오빠가 안 보이니까(중국은 초등학교, 대학교 모두 8시에 수업 시작하니, 쿨쿨 자는 아이 그냥 두고 모자가 각자 등교한 듯) 겁먹고 우는 듯 했다.
  '내 방 가서 텔레비젼 보자.', '과자 먹을래?' 등등 내 딴에는 열심히 달랬건만, 아이는 오히려 더 큰 소리로 울었다. -.-;;  사정 모르는 사람이 봤으면, 내가 때려서 그 아이가 우는 줄 알았을 거다. ㅠ.ㅠ  결국 우리 층 청소하시는 아줌마( ☞'기숙사 푸우위앤 아줌마의 사생활 침해(?) (http://blog.daum.net/jha7791/15790673)'에 등장하신 분 ^^)가 나타나서 안아주며 달래시니, 그제서야 울음을 멈췄다.  그 아줌마가 '이 애가 이 층 사는 사람들과는 친숙한데, 너는 이제 막 와서 낯설어 그런다.' 라고 하셨다.

 
  나중에 수업 들어가서 짝꿍에게 그 얘기를 하며 '내가 무섭게 생겼는지 더 울더라.' 라고 했더니, 짝꿍 왈 '누나, 일찍 일어나 수업 들어왔으면, 그런 일 없었잖아요.' ^^;;
  그 날 저녁에 기숙사 공동주방에 쓰레기 버리러 가면서 보니, 총총과 총총 여동생이 복도에서 훌라후프 가지고 놀고 있었다.  나에게는 귀에 선 몽골어로 뭐라고 떠들며 놀다가, 그래도 총총은 전에 나와 몇 번 얘기를 한 기억이 나는지 씩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하지만 총총 여동생은 여전히 나를 무서워하는 눈치고... ㅠ.ㅠ  (나 나쁜 사람 아니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