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얼빈 생활기/'09~'10년 흑룡강대학 어학연수기

혹시 신흥종교나 다단계 업체일까...?

Lesley 2010. 4. 3. 17:56

 

 

 

  한동안 비교적 조용했던 내 생활에 변화(그게 좋은 변화이든, 나쁜 변화이든... ^^)의 조짐이 살짝 보인다.

 


 

  
  한 3주일 전쯤에 수업 들으러 가다가 C취와 B취를 연결하는 지하통로에서 '스진원(石錦文)'이라는 중국 남학생과 마주쳤다. (헉... 이 남학생 성이 '돌 석(石)'이라니, 어쩌면 좋아... ㅠ.ㅠ)
  그 쪽에서 먼저 나에게 뭐라고 말을 걸었다.  하지만 상대방이 나를 중국인으로 알고 말을 빨리 한데다가, 마침 귀에 이어폰 꽂고 음악 들으며 걸어가던 중이라 무슨 말인지 전혀 못 알아들었다.  내가 외국인인 걸 곧 눈치 챈 그 쪽에서는 자기를 흑룡강대학 바로 옆의 하얼빈이공대학 학생이라고 소개하며, 전화번호를 교환하자고 했다.  그렇게 서로 전화번호 주고받고서, 나중에 연락하자 하고 헤어졌다.

 

  그러다가 지난 주였던가...  뜬금없이 나를 자기 집으로 초대해서, 나를 '허걱~~' 하게 만들었다. -.-;;
  부재중 전화가 온 걸 뒤늦게 보고 무슨 일이냐고 문자 보냈더니, 대뜸 '우리집에 손님으로 오지 않겠어?' 하는 답장을 보내는 것이다.  학교 안 어디선가 만나자고 했다면, 기꺼이 만났을 것이다.  하지만 딱 한 번 만났을 뿐이고, 그것도 겨우 2분 정도 얘기 나눴을 뿐인데, 대뜸 자기 집으로 초대를 하다니...! (네가 어떤 사람인줄 알고 내가 너희 집에 가니...??? -0-;;)

  만일 한국에서 만난 사람이 그런 식으로 행동했다면 '이거 아주 수상한 인간이구만~~' 하며 그 문자 무시해버리고, 두 번 다시 연락 안 했을 것이다.  하지만 외국인을 접해본 적이 없는 중국인 중에 호기심에 그렇게 갑자기 바싹 다가오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는 걸 알고 있기에, 좋은 말로 완곡하게 거절했다.

 

  그런데 오늘(4월 3일) 오전에 진원이 다시 연락을 해서는, 베이징에서 온 친구와 학생식당에 있다며 함께 점심을 먹자 했다.
  먼저번에 갑자기 자기 집으로 초대한다고 제의해서 나를 놀라게 했던 것처럼, 이번에도 전화해서는 '30분 후에 만날 수 있겠냐?' 라고 하여 '얘 성격이 원래 이렇게 급한가...' 하고 생각했다.  어찌되었거나 어차피 오늘은 특별한 일도 없는 주말이겠다, 또 학교 안 학생식당이라면 낯선 사람과의 만남의 장소로 딱이겠다, 그러마 하고 나갔다.

 

  원래도 사람 얼굴이랑 이름을 지독히 못 외우는 나인지라, 딱 한 번 만난 진원을 어찌 찾나 싶었는데, 다행히 그 쪽에서 먼저 나를 찾아냈다.      
  진원과 베이징에서 왔다는 친구(남자일 줄 알았는데, '양차이스(楊采什)'라는 대학 졸업한지 2년 되었다는 아가씨였음. 그런데 什를 shen이 아닌 shi로도 발음한다는 걸 오늘 처음 알았음. ^^;;)를 만나 함께 식사 하며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차이스가 올해 한국에서 개최되는 무슨 회의에 참석할 예정이라고 하기에, '그래서 진원이 한국인인 나를 차이스에게 소개해 줄 생각으로 내 전화번호를 묻고 연락한 거구나.' 싶었다.
  두 사람 모두 친절하면서도 진중해서 인상이 좋았기 때문에, 차이스가 '내일 우리집에서 같이 점심 먹자.' 하고 초대하는 것을 받아들였다.   


  점심 먹으며 서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등 나름 유쾌한 시간을 보냈는데, 식사가 끝나갈 무렵 조금 당혹스러운 일이 있었다.
  그렇잖아도 식사 중, 두 사람이 인생을 풍요롭게 하고 생활 수준을 높이기 위해, 독일 유학을 다녀오고 사회적으로도 성공한 어떤 사람이 주최하는 무슨 강연회 같은 곳에 나간다는 말을 했다.  거기에서 몸에 좋은 음식(가령 여기 북방 사람들은 잘 안 먹는 해산물)을 먹는 법을 배우고, 패션이나 피부관리에 대해서도 배우고, 사람들끼리 서로 교류하는 법을 배우고, 인생에 도움이 되는 좋은 이야기를 듣는다 했다.

  다만 그 강연회 참가비가 1000위안(한화 약 17만원)이라기에 '대졸자 초임으로 1000위안을 받는 경우도 제법 있다는 하얼빈에서, 정말 비싸구나!' 하고 속으로 생각하며 놀랐다. (사실, 강연회 참가비가 17만원이면 한국에서도 꽤나 부담되는 액수 아닌가...)  하지만 여기가 빈부격차가 워낙 심한 나라여서,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들었다.
  그런데 나한테도 같이 가자고 권하는 것이다... ㅠ.ㅠ  '나는 그런 방면으로 별로 관심이 없고, 또 중국인이 하는 강연회라 가봤자 거의 알아듣지 못 할 것이다.' 라고 에둘러서 거절했다. (설사 내가 그 쪽에 엄청나게 관심이 있다한들, 자그마치 17만원씩이나 하는 참가비를 어떻게 낸단 말이요... ㅠ.ㅠ)  하지만 '괜찮다, 그런 모임에 자꾸 나가서 중국인들과 사귀고 중국인들의 말을 들어야 너의 중국어 실력이 향상되고, 또 너의 생활이 더 풍요로워지고...' 하며 계속 권했다.  한 번 생각해보겠다는 말로, 일단 그 상황을 넘겼다.  
 
  이거 혹시 무슨 신흥종교나 다단계 같은 거 아닐까 하는 불안한 느낌이 잠깐 들었다.
  대학 때 고등학교 동창이 오래간만에 연락해서 반가운 마음에 만났다가, 졸지에 다단계 업체에 끌려가서 2시간 정도 감금(!) 당한 채 그 업체의 교육(?)을 받았던 악몽도 떠올랐다. (우리집에서는 지금까지 이 사건에 대해 전혀 모름.  부모님한테 얼마나 멍청하게 굴었으면 그런 곳에 다 끌려갔냐는 소리 들을까봐, 지금까지 집에는 이 사건에 대해 입 꾹 다물고 있음. ㅠ.ㅠ)  하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너무 오버하며 앞질러 나가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진원과 차이스가 생각하기에 좋은 강연회여서, 그저 한 번 권해본 것일 수도 있으니까... (그런데 그 강연회라는 게 얼마나 좋아야 참가비 17만원이 아깝지 않게 느껴질 수 있는 걸까? -.-;;)


  어차피 식사 초대는 이미 받아들였으니, 일단 내일 가보려 한다.

  가서 좀 더 이야기를 해보면 어떤 상황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분위기가 영 아니다 싶으면 적당한 핑계 대고서 안 만나면 그만이고, 나중에 문제 될 소지 없으면 좋은 인연 이어가면 되는 거고...

  부디 다음 번 이 블로그에 올라오는 포스트가 '역시 내가 너무 오버한 거였다.  점심 먹으러 가서 아주 유쾌한 시간을 가졌다.' 는 내용이기를 바란다.  이미 지난 1년간 내 하얼빈 생활은 충분히 스펙터클 했다.  거기에 새로운 스펙터클함이 더해지는 것은 절대로 바라지 않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