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얼빈 생활기/'09~'10년 흑룡강대학 어학연수기

역시 다단계 업체였다. ㅠ.ㅠ

Lesley 2010. 4. 6. 22:42

 


 
  진원과 차이스(☞ '혹시 신흥종교나 다단계 업체일까...?(http://blog.daum.net/jha7791/15790679)' 참고)는 역시 다단계 업체에 포섭(?)된 사람들이었다...! ㅠ.ㅠ

 

 


  바람이 엄청나게 부는 일요일(4월 4일 - 날짜부터가 뭔가 심상치 않음. -.-;;), 버스를 타고 학교에서 조금 떨어진 아파트 단지 앞으로 갔다.
  아파트 1층에 위치한 집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다단계 업체일지도 모른다'는 내 예감이 들어맞았음을 알았다.  깔끔하게 꾸며놓기는 했지만, 한 눈에 일반 가정집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벽의 선반을 가득 채운 것은 온갖 세제와 건강식품이었고, 거실의 베란다 쪽으로 큼직한 책상이 하나 있어서 그 집의 주인장으로 보이는 30대 후반의 여자가 앉아 전화를 받고 있었다.  나 말고도 7, 8명의 중국 대학생들이 있었다.
  차이스가 나를 소개했고, 호기심 어린 눈으로 나를 쳐다보는 대학생들과 함께 그 주인장의 책상 앞에 반원을 이루고 앉아 한 명씩 자기 소개를 했다.  눈치를 보니, 두세명은 그 곳에 드나든지 꽤 오래 된 듯 하고, 나머지는 나처럼 처음 왔거나 또는 겨우 한두 차례 와 본 듯 했다.

 

  그렇게 앉아서 무심코 책상 뒤로 보이는 베란다를 쳐다보니, 베란다 유리창에 빨간색으로 큼지막하게 '안리(安利)'라고 써있었다.

  그 옆에는 역시 빨간색으로 Amway라고 쓰여 있었다. (즉, 그 곳은 다국적 기업인 암웨이 관련해서, 회원들이 집단으로 숙박하고 교육받는 곳이었음. -.-;;)
  속으로 '꽤나 귀찮게 되었구나...' 하고 있는데, 그 주인장은 아주 능숙하게 이야기를 끌어나갔다.  자기와 마주보고 앉은 대학생들에게 차례로 고향은 어디고, 어느 학교에서 무엇을 전공하고 있으며, 취미는 무엇인지 물었다.  그리고 학생들의 대답에 따라 '아, 네 고향은 XX가 유명하지?', '오, 그 영화 나도 봤어. 주인공 000가 참 멋있더라.' 하며 학생들의 입에서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이어지게 유도를 하는데, TV에 나오는 어지간한 MC는 저리 가라 할 수준으로 능숙했다.
 
  그 곳에 모인 학생들의 태도는 두 가지로 갈렸다.
  처음 또는 겨우 한두 번 와 본 사람은 아직 익숙하지 않아 그런지 조금 수줍어 하는 인상이었고, 외국인인 나에게 큰 호기심을 보였다.  그래서 그 주인장이 특정 학생에게 뭔가 자세히 물어서 자기들끼리만 대화하는 분위기가 되면, 다른 학생들은 나에게 고개를 돌리고 한국에 대해, 또는 유학생들의 공부나 생활에 대해 질문을 했다.  나 역시 성심성의껏 대답을 한 후 중국에 대해 이것저것 질문했다.  (솔직히 그런 상황에서도 그 학생들과 나눈 대화는 나름 즐거웠음. ^^;;)
  하지만 이미 장기간 드나든 학생들은 마치 사이비 종교에 빠진 사람 같았다.  주인장이 인생의 선배가 후배에게 한 수 알려주는 태도로 교훈적인 이야기(사회생활에서 성공하고 싶으면, 학창시절에 공부만 할 게 아니라, 좋은 친구도 사귀어야 하고 취미 생활도 한 두 가지 정도 있어야 하고...)를 해주면, 내가 듣기에는 너무 뻔한 이야기건만, 그 애들은 엄청나게 감탄한 표정으로 '오~~' 또는 '슈앙(爽 : '좋아, 멋지다, 끝내준다'는 뜻)' 이라고 합창을 했다. -.-;;   또 주인장이 '멍상(夢想 : '꿈, 이상'의 뜻)'에 대해 열변을 토하자, 대학생들도 그에 호응해서 '나의 멍상은...', '나의 멍상을 실현하기 위해서...' 라고, 하나같이 멍상 타령하면서 눈을 반짝 빛냈다.
  이 날, 거짓말 안 보태고 '오~~', '슈앙', '멍상' 이란 말을 50번 이상은 듣지 않았나 싶다. -.-;;
 
  그렇게 그 주인장의 이야기를 2시간 가까이 듣고는, 차이스가 세제와 숟가락을 들고 와서 우리 앞에서 실험을 선보였다.
  2개의 숟가락에 식용유를 묻힌 후, 암웨이의 세제와 일반 세제를 그 2개의 숟가락에 각각 묻힌 다음에 물로 씻어냈다.  즉, 같은 양의 물로 씻어냈는데도, 암웨이의 세제는 깨끗이 씻겨나가고, 일반 세제는 여전히 숟가락에 묻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더니 '이런 일반 세제를 쓰면 아무리 깨끗이 헹구어도 세제가 남아있어, 음식 먹을 때 우리 몸으로 그 세제가 들어간다.  또 헹구는데 물도 많이 들어 물을 오염시킨다.  우리 제품을 판매하는 것은 그냥 판매가 아니라, 점점 심해지는 중국의 환경문제를 해결하고 사람들의 생활수준을 개선하는 일이다.' 하고 열변을 토했다. -.-;;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피곤해졌다.
  유학생들의 수준에 맞춘 학교 선생님들의 또박또박하고 다소 느린 중국어를 듣다가, 일반 중국인들의 빠른 말을, 그것도 한 두 사람이 아닌 10여명의 목소리를 번갈아가며 들으려니, 신경을 잔뜩 곤두세우고 집중해서 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며칠 전부터 감기 걸린 탓에 몸상태도 안 좋았다.  생각 같아서는 그냥 기숙사로 돌아가 잠이나 자고 싶은데, 슬슬 점심식사 준비하는 분위기가 되었다.  애초에 점심 약속이라는 명목으로 왔으니, 그 상황에서 먼저 일어서기도 곤란했다. 
  물론 그 곳의 분위기가 내가 대학 시절 속아 끌려갔던 다단계 업체처럼 뭔가 강제로 붙들어두는 분위기였다면, 점심이고 약속이고 간에 억지로라도 탈출(?)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강압적인 분위기는 아니었다.

 

  그렇게 강압적인 분위기가 아니어서 겁이 나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마음이 많이 불편했다.
  그 곳에서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어차피 어설픈 중국어 구사하는데다가 중국 사정 잘 알지도 못해서 영업에 전혀 도움 안 되는 외국인을 왜 굳이 데려왔는지, 슬슬 감을 잡았기 때문이다.  그 곳에 온지 얼마 안 되어 아직 긴가민가 하는 대학생들에게 '이렇게 외국인조차 우리 제품을 믿고 여기까지 찾아왔잖아.' 라고 보일 생각인 듯 했다. (즉, 나는 선전용 얼굴마담이었음. -.-;;)

 

  점심은 친환경을 표방하는 업체의 점심답게, 아주 친환경적으로 나왔다.
  중국의 식탁답지 않게 고기 요리는 아예 없고, 건강을 생각해야 한다면 죄다 두부, 감자, 양파, 양배추 등 채소 요리만 올라왔다. (식탁에서 뱀 한 마리가 기어나오지 않을까 겁이 날 지경이었음. -.-;;)  그리고 보통 중국 요리에 비해 기름기가 적었다.  소화가 잘 되어야 건강에 좋다며 밥도 일부러 질게 했을 정도였다.
  그리고 흑룡강대학 다닌다는 광동성 출신의 1학년 남학생이 내가 젓가락질 하는 것보고 '외국인이 젓가락을 정말 잘 쓴다.' 하고 감탄한 일이 있었다. ^^;;  내가 한국인, 일본인, 베트남인은 원래 중국인처럼 젓가락 쓴다고 하자, 눈 동그렇게 뜨고 '오~~' 하면서 뜻밖이라는 반응 보였다.  하얼빈철도학원 다닌다는 다른 남학생이 한국 드라마에서 봤다면서, 한국인은 밥 먹을 때는 젓가락 대신 숟가락을 쓰지 않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대답했더니, 얼른 주방에 가서 숟가락을 가져다 줬다. ^^;;

 

  하여튼 그렇게 점심까지 먹고서, 마침 무슨 일로 핸드폰 알람 맞춰놓은 것이 울리기에, 마치 누가 급한 일로 나에게 전화한 것처럼 가장하고 작별인사하고 나왔다. 
  그 쪽에서도 강제로 붙들거나 하는 일 없이, '잘 가라, 또 놀러와라' 등의 말로 좋게 보내줬다.  나를 흑룡강대학까지 바래다 줄 남학생까지 하나 붙여주었다.  그래도 오며가며 외국인 유학생과 스치기라도 한 적 있는 흑룡강대학이나 하얼빈이공대 학생들과는 달리, 작은 사립학교(중국에서는 사립대학은 정식 학교가 아닌 경우가 많음.)에 다녀서 외국인을 접할 기회가 없었던 '장징선'이라는 그 남학생은 호기심 넘치는 얼굴로 온갖 질문을 했다.  '한국의 주식은 쌀인가, 밀인가' 하는 소박한 질문부터 시작하여 '한국과 조선(북한)은 언제 통일되는가' 하는 엄청난 질문까지... (남북통일이 언제 되는지 알면 내가 왜 하얼빈에서 이러고 있겠수...  미아리 고개에 '왕꽃선녀님' 간판 하나 내걸고서, 다음 대선 또는 총선에 나가려는 정치인 상대로 돈 왕창왕창 벌고 있겠지... -.-;;) 

 

 


  기숙사로 돌아와서는 너무 피곤해서 몇 시간 자고서, 밤에 중국친구인 '양'과 '주뺘오'에게 문자를 보내 중국에서 안리(암웨이)에 대한 인식이 어떤지 물었다.
  알고보니 두 사람 모두 나처럼 끌려가서 교육(?)을 받은 경험이 있었다. -.-;;  양은 '자기들은 다단계가 아니라고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다단계가 맞다. 위험할 수 있으니 그들과 만나지 말아라.' 라는 답장을 보내왔다.  주뺘오는 복잡한 문제라 한 마디로 대답할 수 없다며 당장 QQ(우리나라로 치면 네이트온에 해당하는 중국에서 가장 많이 쓰는 메신저 프로그램)에서 만나자는 답장을 보냈다.  QQ에 접속했더니, 주뺘오가 '그들의 평판은 별로 안 좋다, 그들은 사람들을 세뇌시키는 이상한 사람들이다, 왜 잘 알지도 못 하면서 그런 곳에 너 혼자 갔느냐, 미리 나한테 연락해서 가도 괜찮은지 물어보거나 아니면 나와 함께 가자고 해야 했다, 다음부터는 꼭 먼저 나한테 물어봐라' 등등 한바탕 설교를 했다. (마치 내가 초등학생이고, 나보다 훨씬 어린 주뺘오가 마치 내 선생님 같았음. ㅠ.ㅠ)

 

  원래도 파란만장한 나의 하얼빈 생활이었지만, 이제는 정말 별의별 일을 다 겪는다.
  뭐, 큰 일은 없었으니 다행이기는 한데, 그래도 앞으로는 좀 더 조심해야 할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