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 여행기/'10년 만저우리(만주리)

만저우리(滿洲里 : 만주리) 가는 길

Lesley 2010. 5. 7. 00:09

 

 

  4월 30일 중간고사 끝나고서 5월 1일부터 시작하는 3일간의 노동절 휴가를 즐기려고, 네이멍구(內蒙古 : 내몽고)에 있는 국경도시 만저우리(滿洲里 : 만주리)로 떠났다.

 

  이 날 4시 반쯤 이번 여행길의 동행인 내 후쉐 ‘양’이 내 방에 나타났을 때, 좀 놀랐다. 
  양보다 여행경험이 많은 사람으로서 ‘여행 떠날 때는 짐이 적을수록 좋아.’ 하고 몇 번이나 말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양이 작은 가방(책가방보다 더 작은 미니쌕) 하나만 달랑 들쳐매고 나타날 줄은 몰랐다.  (꽤 큼지막한 책가방에, 역시 책가방만한 크로스백까지 이런저런 물건 꽉꽉 채워서 가져간 나는 도대체 뭐냐? -.-;;)

 

 

미니쌕 하나만 가볍게 들고 나타난 양.(나중에 만저우리에 도착해 찍은 사진 ^^)

 

  양은 부모님 없이 떠나는 장거리 여행이 처음이라면서, '여행 떠날 때는 짐이 적으면 적을 수록 좋다'는 여행자로서의 자세가 아주 단단히 잡혔다. ^^  

 

 

 

 

 1. 하얼빈역에서

 

  하여튼 그렇게 둘이 같이 하얼빈역으로 갔다.
  일단 원래 함께 가기로 했다가 못 가게 된 J군의 기차표부터 환불받았다.  그리고 혹시나 침대표, 아니 잉쭤(硬座 : ‘딱딱한 의자’란 뜻인데, 실제로 딱딱한 편인데다가 좌석 크기나 좌석간 간격도 좁고, 등받이 각도가 90도라서 많이 불편함.)표라도 구할 수 있을까 알아봤다.  우리가 며칠 전 구입한 표가 입석표라서 14시간을 서서 갈 생각을 하니 암담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혹시나 했던 게 역시나...  연휴기간이라 침대표고 일반 좌석표고 전부 매진이란다.  
  양은 우리가 탈 기차가 따롄(大連 : 대련)에서 출발한 기차인데, 하얼빈에서 내리는 사람들이 많을테니 빨리 기차를 타면 좌석을 잡을 수 있을 거라 했다.  그러면서 개표 시작하면 빨리 뛰어야 한다고 몇 번이나 나에게 일렀다.

 

  기차를 기다리느라 하얼빈역의 일반 기차 대합실에 들어서니, 이런저런 생각과 느낌이 들었다.
  작년(2009년) 3월에 하얼빈에 온 뒤로 하얼빈역에 갈 일이 두어 차례 있었지만, 어쩌다보니 죄다 동처(動車 : 일명 ‘CRH(China Railway High-speed)’라고 하는 중국의 고속열차, ‘쓰촨성으로 출발 - 장거리 기차여행 (http://blog.daum.net/jha7791/15790540)’ 참조)를 이용했다.  이 동처는 비싼 돈값 하느라 대합실도 일반 기차의 대합실과 구분된, 제법 깔끔하고 넉넉한 곳을 쓰게 되어 있다. 
  그런데 우리가 타기로 한 기차가 중국 기차 중에서 가장 느리고 저렴한 보통열차여서, 5년 전 배낭여행 때는 며칠에 한 번씩 이용했던 일반 기차 대합실에 5년 만에 들어서게 된 것이다.  뭐든지 엄청난 속도로 변하는 중국이건만, 일반 기차 대합실은 지난 5년간 하나도 안 변한 느낌이었다.  여전히 수많은 사람들이 좁은 공간에 바글거리고, 제대로 된 배낭이나 캐리어조차 없어 쌀푸대에 옷가지와 각종 물품을 집어넣어 등에 짊어진 농민공(農民工 : 원래는 농민인데, 좀 더 높은 수입을 위해 도시로 나와 막노동이나 공장의 3D 업종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들이 힘겨운 삶의 무게에 찌든 얼굴로 기차를 기다리고 있고...  5년 전과 달라진 모습이라면, 그 때는 개표가 시작되면 사람들이 무서울 정도로 마구 몰려들어 역무원들이 고래고래 고함 질러가며 질서를 유지해야 했는데, 이제는 사람들이 이전보다 질서를 더 잘 지키게 되었다는 정도였다. (‘이전보다’ 잘 지키게 되었다는 거지, 아직도 무질서한 편임. ㅠ.ㅠ)
  한편으로는 배낭여행 때의 추억이 떠올라 흐뭇한 기분도 들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중국의 엄청난 빈부격차를 실감하기도 했다.  우리나라도 요즘 빈부격차가 점점 심해진다고 아우성이지만, 적어도 KTX 타는 사람과 통일호 열차 타는 사람들의 옷차림과 분위기가 눈에 띄게 다를 정도는 아니지 않는가... 

 

  하여튼 예정된 시간보다 좀 늦게 개표가 시작되자, 그 많은 승객들이 올림픽 100미터 경주 저리가라 수준으로 치열하게 달렸다.
  나는 양과 후쉐를 한 지 1년 조금 넘었는데, 양이 그렇게 조급하게 구는 건 처음 봤다.  양이 자리를 잡겠다는 일념으로 정신없이 뛰는데, 제법 묵직한 책가방과 크로스백을 몸에 달고서 그런 양을 뒤쫓으려니 숨이 턱턱 차오르고, 육중한 내 몸무게를 감당해야 하는 정강이 뼈가 시큰거릴 정도였다. ㅠ.ㅠ  하여튼 그렇게 죽어라 뛴 덕에 통로를 사이에 두고 한 자리씩 꿰어찰 수 있었다.  잉쭤라는 게 워낙 불편한 자리라 14시간 내내 고생하기는 했다.  그래도 그 콩나물 시루 같은 보통열차 안에서 서서 몇 시간씩 간 사람들을 생각하면, 그 자리도 그저 황송할 뿐이었다. ^^;;

 

 

 2. 만저우리 가는 길의 풍경

 

  그렇게 잡은 자리에 앉아서 자다, 깨다를 반복하며 만저우리로 갔다.
  내가 한 번 잠이 들면 누가 업어가도 모르는 사람인데, 자리가 워낙 불편한데다가, 더웠다 추웠다 하는 통에 제대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꽉 들어차 열차 내부가 후덥지근하기까지 하더니, 내가 깜빡 잠든 사이 사람들이 많이 내린 뒤에는 한기가 들어 몸을 잔뜩 웅크리고 잤다. ㅠ.ㅠ

 

  하얼빈이나 만저우리나 위도가 높은 곳이라 약한 백야(白夜)현상이 나타난다.
  다음 날(5월 1일) 밝은 햇살에 억지로 눈을 떠보니, 새벽 4시도 안 되었는데 이미 날이 다 새어버렸다.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확실히 하얼빈을 포함한 헤이룽장(黑龍江 : 흑룡강)성과는 달랐다.  끝없이 펼쳐진 초원이 차창 밖으로 보였다.  사실은 초원이라고 하기가 뭣한 것이, 중국도 한국처럼 이번 겨울이 유난히 길었던 탓에 5월인데도 푸른색 풀이 나지를 않아 겨울을 난 누런색 풀 밖에 없었다. -.-;;

 

 

아직 겨울풍경에서 벗어나지 못 한 황량한 초원의 모습.(이것이 새벽 4시도 안 된 시간의 풍경...^^;;)

 

  나는 남방의 아기자기한 풍경보다는 오히려 동북지방과 내몽고의 황량함을 좋아한다. (취향도 참 이상하다는 말 들어도, 그게 사실이니 어쩔 수 없음. -.-;;)

  하지만 그것은 잠시 이 지방을 스쳐가는 사람이기에 느낄 수 있는 감상일 것이다.  아마 이 곳에서 계속 사는 사람들은 이 황량함이 지긋지긋 할 듯... 

 

  그리고 이런 허허벌판이 계속 보이면서, 내 핸드폰과 양의 핸드폰이 번갈아가며 전파가 안 터졌다. (우리 두 사람의 핸드폰은 각각 다른 이동통신사의 것임. ^^)

  게다가 전파가 터지더라도, 핸드폰 배터리 닳는 속도가 무척 빨라졌다.  분명히 기차 탈 때까지만 해도 배터리 표시줄이 3개였는데, 통화는 한 번도 안 했고 문자만 몇 개 주고받았을 뿐인데 12시간도 안 되어 그 3개가 다 없어져서 배터리를 갈아야 했다.  아마도 이 지역에 이동통신사의 기지국이 거의 없기 때문일 것이다.  하긴 이동통신사를 탓할 수도 없다.  기차로 달리는 동안 간간히 말 탄 목동이나 겨우 볼 수 있는 허허벌판에 기지국 세우는 것은 낭비일테니 말이다. 

 

 

  만저우리 가는 길에 잠시 멈춘 시골역 옆마을의 풍경.

 

   간간히 보이는 마을에도, 인가(人家) 없는 들판에도 저런 큼직한 물 웅덩이가 종종 눈에 띄였다.  아마 유난히 길었던 겨울 동안 내린 눈이 녹아 생긴 웅덩이가 아닐지...

 

 

기차길 옆 방풍림(혹은 방풍림으로 추정되는 숲... ^^;;)의 모습 

 

  기차를 타고 달리다보면, 누런 겨울풀이 가득한 초원 위에 선명한 초록빛 숲이 뜬금없이 나타나곤 했다.

  배경과 너무 동떨어져 위화감마저 느껴질 정도였는데, 양 역시 같은 느낌이었는지 '저거 분명히 인공적인 거야. 너무 자연스럽지 않다.' 라고 한마디 했다.  우리 생각에, 황사를 막기 위한 방풍림이 아닐까 싶다.  이 내몽고는 우리나라에까지 큰 피해를 주는 황사의 발원지이니 말이다.

 

 

초원에서 빼놓을 수 없는 광경인 목동과 소떼의 모습. 

 

  끝없이 계속될 것만 같은 허허벌판이 차창밖으로 스쳐지나가다가, 좀 지겨워질 무렵이 되면 가끔씩 양떼나 소떼가 보이곤 했다. (기마민족인 몽고족이 살았던 땅에는 당연히 양떼나 소떼가 있어야 제격...! ^^) 

  그런데 나중에 만조우리에 도착해서 묵은 여관의 주인 아줌마 말씀이, 지난 겨울이 유난히 춥고 길었던 탓에 내몽고 지역의 많은 소와 양들이 죽었다고 했다.  그렇다면 저 소떼들은 그 혹독한 추위를 이겨내고 살아남은 용자(!)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