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정체가 들통나다
만저우리를 떠나기 직전, 한 가지 재미있는 일이 있었다.
내가 외국인임을 몰랐던 숙소 주인장 아줌마가('만저우리(滿洲里 : 만주리) 시내의 풍경 (http://blog.daum.net/jha7791/15790706)' 참조) 마지막 순간에 그만 그 사실을 알게 되셨다. ^^;;
원래 12시 이전에 체크아웃 해야 하는데, 인심 좋은 아줌마가 기차 시간 될 때까지 우리 짐을 아줌마 침실에 두도록 배려해주셨다.
계속 만저우리 시내 돌아다니다가 저녁에 짐 찾으러 갔더니, 아줌마가 자신도 곧 기차역에 가야 한다며 같이 가자고 하셨다. 그래서 아줌마가 하던 일 마무리 지으시는 동안, 우리는 마침 아줌마 방의 TV에서 나오는 한국 드라마 '소문난 칠공주'를 보게 되었다. 양이 드라마 주인공들 관계에 대해 묻기에 대답하고 있는데, 공교롭게도 그 순간에 아줌마가 그 방 앞을 지나치시며 어설픈 내 중국어를 들으신 것이다..!
아줌마가 의아한 표정으로 '너 무슨 족(族)이니?' 하고 물으셨다. (나 소수민족처럼 생겼나보다...^^;;)
내가 당황스러움을 숨기느라 웃으면서(내가 내 얼굴을 못 봐서 그렇지, 틀림없이 어색해보이는 웃음이었을 게다. ^^;;), '아줌마가 맞춰보세요.' 라고 하자, 잠깐 고개를 갸웃하시더니 '혹시 한국인이냐?' 하셨다. 그렇다고 하자 '어쩐지~~~' 하시며 전에도 어떤 한국인 2명과 일본인 1명이 놀러와서 그 숙소에서 묵은 적이 있었단다. 외국인을 안 받아줄 줄 알고 정체를 숨긴건데, 전에 다른 한국인들과 일본인이 묵은 적 있다 하시는 걸 보니, 괜히 나 혼자서 오버한 셈이다. ^^;;
그러더니 아줌마가 '아, 맞다' 하고 급하게 방 밖으로 나가시기에, 왜 저러시나 했는데...
한국에 드나들며 장사를 한다는 사람한테서 선물받았다는 한국 화장품을 들고 오셔서, 진짜인지 가짜인지 봐달라 하셨다. ^^ 내가 진짜이고 괜찮은 화장품이라고 하자, 좋아하셨다. ^^
2. 진쥔의 대학원 합격
만저우리에 머무는 동안 진쥔에게서 문자가 날아왔는데, 결국 대학원 시험에 합격했단다...!
대학 4학년 때 이미 한 차례 시험 봤다가 떨어져서 재수를 한데다가, 그저 자신의 전공이어서 열심히 한다기 보다는 정말로 중국 문학 쪽으로 관심과 열정이 많은 걸 알기에 꼭 붙었으면 했다. 그래서 잘 될 거라고 격려하고 응원하면서도, 지원한 학교가 진쥔의 전공 쪽으로는 최고인 곳이라 은근히 걱정했다. 더구나 4월에 베이징에서 만났을 때, 막 끝낸 2차 시험 면접을 망쳤다고 해서 '이거 이러다가 또...' 하는 생각도 들었고... 하지만 기어이 붙었다. ^^
3. 하얼빈에 도착
5월 3일 저녁에 기차를 타고 밤을 새워 달려, 다음 날 아침 9시쯤 하얼빈역에 도착했다.
만저우리 갈 때만큼이나, 하얼빈 돌아가는 길도 만만찮게 고단했다. 14시간 동안 잉쭤에 앉아 가는 것은 여행이 아니라 무슨 극기훈련 같았다. ㅠ.ㅠ
그런데 기차가 하얼빈역에 들어설 때 양이 '저것 봐!' 하기에 무슨 일인가 했더니, 철로 옆에 개나리가 피어있었다.
올해 들어 하얼빈에서 처음 보는 봄꽃이었다. 아무리 북쪽이어도 그렇지 5월 4일이 되어서야 봄꽃을 처음 보게 되다니... ㅠ.ㅠ 하지만 제법 따뜻했던 이 날 이후로 다시 날씨가 변덕 부리는 통에 모처럼 피어났던 개나리가 전부 시들었다. -.-;; 그 후로 봄꽃을 다시 못 보다가, 5월 중순 다 지나가는 요즘에 와서야 갑자기 교정 여기저기에서 복사꽃과 정향꽃이 피어난 게 눈에 띈다.
택시 타고 학교 도착했더니 9시 반인데, 나도 그렇고 양도 그렇고 10시에 시작하는 수업이 있었다.
하지만 간밤에 불편한 자세로 잠 설친 나는 어깨와 엉덩이가 불편해서 오전 수업은 그냥 땡땡이 치고, 1시 반에 시작하는 '한어와 중국문화' 수업이나 들어가기로 했다. (이 수업은 내가 흑룡강대학에서 지금까지 수강한 과목 중 제일 좋아하는 수업임. ^^) 하지만 '의지의 한국인' 이 아닌 '의지의 중국인' 인 양은 오전 수업은 중요한 전공 수업이라 빠지면 안 된다며, 기숙사에 가서 책가방 챙겨 수업을 들어가겠다 했다. -0-;; 다만, 오후에 있는 영어 수업은 단어를 못 외웠기 때문에 들어가봤자 수업 못 따라갈 거라며, 땡땡이 치겠다 했다. ^^;;
서비스 컷! - 후룬호에서 양이 촬영한 내 모습 ^^
후룬호에서 뿐만 아니라, 만저우리 시내을 빼고는 어디를 가더라도, 매섭게 몰아치는 칼바람 때문에 고생했다.
바람막이 점퍼의 모자를 뒤집어쓰고도, 저렇게 얼굴을 제대로 못 들고 다녔다. ㅠ.ㅠ 후룬호에 간 날 최고기온이 영상 20도였지만, 바람이 어찌나 거세고 차던지 손이 빨갛게 변할 정도로 얼어서 사진 찍을 때 애먹었을 정도다. (영상 20도나 되는 날씨에 손이 어는 경험을 다 해보다니, 참... -.-;;) 만저우리 가실 분들은 한여름이라면 모를까, 겨울은 당연한 거고 봄이나 가을에 가시더라도 장갑 한 켤레 챙겨가시기를...
만저우리에 대해 가장 크게 남은 인상은 궈먼도 아니고 몽고 음식도 아니다. 새파란 하늘과 인정사정 없이 몰아치는 모래 섞인 바람이다. ^^
이번 만저우리 여행도, 먼저번 베이징 여행처럼 제대로 된 준비 없이 갑작스레 다녀온 여행이었다.
하지만 역시 먼저번 베이징 여행만큼 재미있고 의미있는 여행이었던 듯 하다. 베이징이나 상하이 같은 대도시야 살아가면서 다시 갈 기회가 얼마든지 있겠지만, 만저우리 같이 외진 곳에 있는 국경도시는 언제 또 가볼 기회가 있겠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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