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 여행기/'10년 만저우리(만주리)

특종 : 량첸살인기 - 언론계에서 엄청난 실수와 과도한 욕망이 만나면?

Lesley 2015. 11. 8. 00:01


 

  지난 달 말에 '특종 : 량첸살인기' 를 봤다.

  사실은 이런 영화가 있는 줄도 몰랐다.  그런데 헐리웃 영화 '마션' 을 보러 영화관에 갔다가 이 영화의 예고편을 보게 되었다.  정작 마션은 기대에 못 미쳤는데(내가 좋아하는 멧 데이먼이 나온다고 해서 개봉하기 전부터 기다렸더니 기대치가 너무 커졌던 모양... ㅠ.ㅠ), 예고편으로 접한 이 영화는 느낌이 괜찮아서 바로 다음 날 다시 영화관으로 가서 봤는데...  다행히 느낌이 들어맞았다.  마션보다 이 영화가 훨씬 좋았다...! ^^   





  '특종 : 량첸살인기' 는 두루두루 환영받을 영화는 아니고 호불호가 갈릴 영화다.

  영화의 장르가 중간에 바뀌기 때문이다.  차라리 서로 다른 두 장르가 적절히 섞인 영화라면, 영화 완성도가 좀 더 탄탄하고 흥행에도 좀 더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앞부분은 언론계의 추악한 면을 우습게 풀어낸 블랙코미디인데, 뒷부분에서 갑자기 스릴러로 변해버린다.  실제로 포털 사이트 영화란의 짤막한 평을 보면, 끝까지 일관성 있게 현실을 풍자하고 비판하는 블랙코미디로 갔으면 좋았을텐데, 후반부에서 영화 장르가 확 변해서 황당했다는 반응이 제법 보인다.


  잠깐 삼천포로 빠지자면... 

  공교롭게도 이 영화의 주인공 '조정석' 이 비중 높게 출연했던 드라마 '더킹 투하츠' 역시 장르가 변화무쌍(!)했다. (조정석 출연 작품은 다 이런가... ^^;;)

  분명히 처음에는, 남한 국왕의 동생(이승기)과 북한 고위공직자의 딸(하지원) 사이의 정략결혼을 소재로 한 로맨틱 코미디물이었다. (드라마 설정상, 지금처럼 남북이 분단되었고 북한은 공산주의를 채택한 상태이기는 한데, 조선왕조가 망하지 않아서 남한은 입헌군주제 국가가 되었음.)  그런데 중간부터, 남녀 주인공이 정말로 사랑하게 되었지만 남북분단이라는 현실 때문에 산전수전 겪으며 마음 고생하는, 진지하고 애절한 멜로물로 바뀌었다.  그러더니 끝에서는 미국이고 중국이고 다 믿을 수 없으니 두 강대국의 간섭을 배격하고 우리 민족끼리 자주통일을 이루자는, 묵직한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드라마로 변신해버렸다. -.-;;

  하지원과 이승기라는 톱스타들을 앞세우고도 시청률이 그냥 그랬던 데에는, 다른 여러 이유도 있기는 한데...  결국, 가장 큰 이유는 홍길동의 둔갑술처럼 여러 차례 변한 드라마의 정체성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언론계의 어두운 점을 다루었다는 점에서, 전에 포스팅한 '뱅뱅클럽' 과 상통하는 점도 있다.

  ☞ 뱅뱅클럽(The Bang Bang Club) - 사진기자의 치열한 삶, 그리고 윤리의식(http://blog.daum.net/jha7791/15791210)

  물론, 두 영화 사이에 차이가 있기는 하다.   뱅뱅클럽은 언론계 중에서도 특히 사진기자가 취재를 하는 데 있어서 윤리의식의 문제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런데 '특종 : 량첸살인기' 는 기자라는 '언론계의 특정 종사자에 관한 문제' 가 아니라 '거대화된 현대 언론계 자체의 문제' , 즉 언론계가 공권력 못지 않은 힘을 갖고서 그 권력을 본래의 목적을 넘어서서 남용하는 상황에 초점을 맞춘다.  풀어서 쓰자면, 시청률과 광고수익을 위해 때때로 진실이 아닌(혹은 진실이 아닐 수도 있는) 사실을 마구잡이로 보도하는 상황을, 때로는 해학적으로 때로는 날카롭게 그려낸다.


  


  ◎ 해고 위기의 기자, 특종 덕분에 기사회생하다!


  허무혁(조정석)은 한 케이블 방송국(연합뉴스나 YTN처럼 보도 중심 방송국)의 그냥 그런 기자다.

  나중에 영화가 중반부로 들어섰을 때 방송국 간부들이 허무혁에게 하는 말로 보아서는, 입사 동기들은 차례로 승진했지만 혼자만 말단기자로 남아 이런저런 설움을 겪으며 고생했던 모양이다.  그게 능력부족 때문인지 혹은 윗사람들 비위를 못 맞췄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런 허무혁이 모처럼 대기업의 비리사건이라는 괜찮은 뉴스 하나를 터뜨렸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 대기업이 이 방송국 최대 광고주인 또 다른 대기업과 사돈지간이었다.  그 일로 광고주가 광고를 다 끊어버리겠다고 협박해서 방송국이 벌집 쑤셔놓은 꼴이 된다. (뉴스의 당사자도 아니고 그 당사자의 사돈 눈치까지 봐야 한다니...  에잇, 더러운 세상! -.-;;)  결국, 방송국 측은 광고가 떨어지는 걸 막기 위해 허무혁에게 장기휴가(...라지만 사실상 해고의 전 단계임.) 처분을 내린다.


  새 직장을 알아보느라 끙끙거리던 허무혁은 무심코 뒤진 주머니 속에서 전에 써두었던 메모를 발견한다.

  그 메모는 다른 기자에게 걸려온 전화를 대신 받아서 써둔 것이고, 그 전화는 전국을 떠들썩하게 하고 있는 연쇄살인사건에 대한 제보다.  하지만 언론사로 걸려오는 제보전화가 한두 건도 아닐테고, 또 졸지에 해고당할 처지로 몰렸기 때문에 정신이 하나도 없기도 해서, 그 동안 깜빡 잊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해고 위기에 처했다고 해도 기자로 살아온 가락이 있어서 그랬는지, 아니면 어차피 이제는 출근할 일도 없으니 시간이 남아돌아 그랬는지...  어쨌거나 허무혁은 제보자인 불법체류자 클라라(이름은 영어권 이름인데 실제로는 동남아시아 쪽에서 온 외국인임.)를 만나러 간다.


  아마 허무혁도 큰 기대 없이 갔을텐데, 막상 가보니 특종 냄새가 솔솔 풍긴다!

  클라라의 말인즉슨, 자기가 사는 다세대주택에 연쇄살인범으로 보이는 남자가 산다는 것이다.  뉴스에 보도된 바에 따르면 연쇄살인범은 빨간색 소형차를 타고 다니며 살인을 저지르는데, 마침 그 남자도 그런 차를 갖고 있다.  더구나 그 남자가 손이나 옷에 피를 묻히고 다니는 것도 본 적이 있다고 한다.

  허무혁이 몰래 그 남자의 집안으로 들어가 살펴보니, 놀랍게도 스릴러 영화에 나오는 연쇄살인범의 집안 모습과 비슷하다.  벽에는 신문에서 오려낸 연쇄살인사건 관련 기사들과 살해당한 피해자의 사진이 덕지덕지 붙어있고, 소름끼치게도 사람을 죽일 때 자기 심정이 어떠했는지를 묘사한 메모까지 있다.  게다가 어디서 구했나 수혈용 혈액팩까지 있고, 목욕탕인지 부엌인지에는 아예 피가 한 가득 담긴 대야와 사람의 장기로 보이는 것까지 있다!  


  자, 이쯤 되면 허무혁 아니라 그 누가 봐도 그 남자가 연쇄살인범이 틀림없는 것 같다!


  허무혁은 남자의 방에서 가져온 메모(사람을 죽일 때의 심정을 묘사한 글)를 첨부해서 기사를 쓴다.

  방송국 간부들은 허무혁의 기사가 엄청난 특종이 될 것을 예상하며 뉴스 첫머리로 보도하게 한다.  아니나 다를까, 그 기사가 나가자 방송국 전화고 인터넷 홈페이지고 전부 난리가 난다.  방송국은 방송국대로 대박 시청률을 기록하고, 허무혁은 허무혁대로 하루 아침에 특종기사 뽑아낸 기자로 전국에 이름을 드날린다.


  그렇게 해고당할 뻔했던 기자 허무혁은 대형 특종보도로 기사회생한다.

  하지만 인생은 언제나 예측불허...




  ◎ 특종인 줄 알았는데 오보라니...


  허무혁은 경찰서에 전화를 했다가 당황한다.

  범인으로 추정되는 남자가 사는 집안을 살펴봤던 바로 그 날 밤, 허무혁은 근처의 경찰서에 전화를 걸어 범인이 사는 곳을 신고했다.  그리고 자신이 전화를 건 후 얼마 안 되어, 형사들을 태운 여러 대의 자동차가 그 경찰서에서 급히 출동하는 것을 직접 보기까지 했다.  그러니 지금쯤이면 범인이 체포되었을 거라 생각하며, 다른 기자들이 냄새 맡고 달려들기 전에 먼저 경찰의 수사상황을 취재해 후속보도를 준비하려던 참이었는데...

  알고 보니 허무혁의 신고전화는 그냥 씹혔고(-.-;;), 형사들은 다른 제보를 받고 출동한 것이다.  범인은 그 경찰서가 위치한 서울 마포에 살고 있는데, 정작 형사들은 애먼 사람을 범인으로 알고 저 멀리 광주까지 출동한 것이다.  허무혁 입장에서는 정말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힐 지경이다.  저 바보 같은 경찰들은 어째서 바로 코 앞에 차려준 밥상도 찾아먹지 못 하고, 엉뚱한 곳에 가서 밥상을 찾느냔 말이다. 


  허무혁은 급한 마음에 직접 범인을 미행하게 되는데, 여기서 반전이 일어난다.

  범인이 살인을 저지를 때의 심정을 적은 글이라 생각해서 뉴스에 내보내기까지 했던 메모, 알고 보니 그 메모 속 글은 연극의 대사를 적은 메모였다...! -.-;;  그리고 허무혁과 클라라가 연쇄살인범이라 생각했던 남자는 연극배우였다...! -0-;;  

  연쇄살인사건으로 세상이 뒤숭숭하던 때, 이 남자가 공교롭게도 '량첸살인기' 라는 중국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동명의 연극에서 주연을 맡았다.  그런데 그 주연이 연쇄살인범 역할이라, 생생한 연기를 위해서 집안을 연쇄살인범 소굴마냥 꾸며놓았던 것이다.  집안에 널려있던 흉기니 피니 하는 것들은 전부 연극 소품이었고... 

  사실은 이 영화를 보기 전에 영화 제목에 '량첸살인기' 라는 말이 들어가는 것을 보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혹시 영화 속 연쇄살인사건의 가해자 또는 피해자가 중국인인가 하며 좀 의외라고 생각했더랬다.  그런데 그 궁금증이 이런 식으로 풀렸다. ^^;;




  ◎ 오보는 또 다른 오보를 낳고...


  허무혁은 자신의 특종이 어처구니 없는 오보라는 사실을 방송국 간부들에게 밝히려 한다.

  그러나 아무 것도 모른 채 먼저번 특종기사에 이은 후속기사를 재촉하는 간부들과 마주 앉고 보니, 차마 입이 안 떨어져 머뭇거린다.  그러자 간부들은 하무혁의 애매한 태도를 엉뚱하게 오해한다.  특종보도로 유명해진 허무혁을 다른 언론사에서 스카우트하려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터라, 허무혁이 다른 곳으로 옮겨가려 한다 여긴 것이다.  간부들은 취재비라는 명목으로 두둑한 돈봉투를 챙겨주는가 하면, 승진 기회 및 높은 연봉을 제안하며 후속기사를 서둘러 쓰라고 종용한다.

  자신의 특종이 오보일 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은 아예 생각도 안 하고 오히려 온갖 사탕발림 해가며 후속기사를 기대하는 간부들 앞에서, 허무혁은 도무지 사실을 말할 수 없다.  그 상황에 처한다면 누구인들 안 그렇겠는가?


  엎친 데 덮친다고, 허무혁 명의로 또 다른 거짓 특종이 터진다.

  문 이사(방송국 간부 중 한 사람)가 엄청난 상황 속에서 반쯤 멍해진 허무혁에게 수를 써서, 허무혁의 스마트폰에 저장된 동영상(연쇄살인범인 줄 알았던 연극배우의 자동차를 미행하면서 찍은 동영상)을 손에 넣어 뉴스로 내보낸 것이다. -.-;;  정작 범인을 잡아야 할 경찰은 속수무책인 가운데 기자가 위험을 무릅쓰고 범인을 미행하여 찍었다는 동영상이 보도되자, 허무혁의 명성(!)은 더욱 높아진다.

  이제 허무혁은 처음의 특종보도가 오보임을 도무지 밝힐 수 없는 처지가 된다.  판이 너무 커졌기 때문에 진실을 밝혔다가는 언론계에서 영원히 매장당할 판국이다.


  궁지에 몰린 허무혁은 어떻게든 그 단계에서라도 일을 수습해보려고 거짓말을 한다.

  마치 범인이 편지를 써서 자신에게 보낸 것처럼 꾸며서, 그 거짓편지를 방송국 간부들에게 보인 것이다.  거짓편지의 내용인즉슨, 범인이 지금 사건 제보자를 납치했는데, 만일 방송국에서 계속해서 연쇄살인에 대해 보도한다면 그 제보자를 죽여버리겠다는 것이다.  허무혁 생각에는, 범인이 제보자를 죽이겠다고 협박하면 아무리 특종에 목을 매는 방송국 간부들이라도 후속보도를 포기할 것 같았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이 세상에 사람 목숨보다 중요한 게 어디 있나?  그러니 일단은 무서운 연쇄살인범에게 붙잡힌 사람의 안전부터 생각할 수 밖에 없겠지 하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허무혁의 생각일 뿐, 시청률에 혈안이 된 백 국장(이미숙)의 생각은 아니다. -.-;;  그래도 다른 간부들은 제보자가 인질로 잡혔다는 말에 난감해하며 더 이상 보도하기 힘들겠다는 반응을 보인다.  하지만 백 국장, 이 카리스마 넘치고 냉철한 아줌마가 범인을 두고 하는 말 좀 들어보소...  "그 동안 온갖 사건 다 겪어봤지만 이 범인은 달라.  섹시해.  대담해.  아주 멋진 놈이야." (도대체 왜 이러세요, 국장님!   제발 정신 좀 차리세요! -0-;;)  결국 백 국장의 결정으로, 허무혁이 범인을 사칭해서 쓴 거짓편지마저 특종으로 보도된다. -.-;;


  우리의 허무혁 기자는 한류스타만큼이나 유명한 사람이 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방송국에서 쫓겨날 처지의 무명기자였건만, 이제는 라디오의 시사 프로그램에까지 출연한다.  인터넷 게시판마다 허무혁 이야기가 넘쳐나고, 다른 언론사 기자들도 대단한 특종을 연이어 터뜨린 허무혁에 관한 기사를 쓸 정도다.  허무혁 덕분에 방송국 시청률이 마구 치솟더니, 나중에는 접속자가 지나치게 많아져서 방송국 서버가 아예 다운되기까지 한다.

  이렇게 방송국에 혁혁한 공을 세웠으니, 마침내 허무혁은 차장으로 승진한다!  방송국 동료들은 깜짝파티까지 열어주며 허무혁에게 박수갈채를 보낸다.


  하지만 연쇄살인사건 담당 형사들은 허무혁을 의심쩍게 생각한다.

  직접 수사에 나선 자신들도 모르는 사항을 어디선가 자꾸 하나씩 알아내어 특종을 터뜨리니, 당연히 수상할 수 밖에...  그래서 허무혁에 대한 뒷조사에 들어간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첫 번째 특종보도에 나온 범인의 살인 심정을 묘사했다는 메모가 사실은 '량첸살인기' 라는 중국소설 속 한 대목이라는 점이 밝혀진다. 


  이제 대한민국에는 량첸살인기 광풍(!)이 분다.

  대부분의 한국인이 그 존재조차 몰랐던 량첸살인기는 엄청나게 유명해진다.  일부 철없는 네티즌들은 량첸살인기의 주인공 량첸 대령의 연쇄살인 행각을 멋지다고 치켜세운다.  그나마 량첸 대령을 찬양하는 건 좀 낫다.  연쇄살인범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다니 한심하기는 하지만, 량첸 대령은 어디까지나 소설 속 인물이라 현실 세계에서 정말로 누군가를 죽인 것은 아니니까.

  하지만 엄청난 사건이 터지면 으레 그렇듯이, 량첸 대령과 같은 방식으로 현실에서 연쇄살인을 저지르는 살인범마저 영웅시하는 사람들까지 나타난다.  마침내 인터넷에 연쇄살인범의 팬카페마저 등장한다. (한 마디로 온 나라가 미쳐가는 중... -.-;;) 

   



  ◎ 진범의 등장 / 별안간 바뀐 영화 장르


  허무혁은 자신에 관한 기사에 붙은 댓글을 읽던 중에 이상한 댓글을 보게 된다.

  마치 허무혁이 거짓말 하는 것을 다 알고 있다는 식의 댓글을 보니 섬칫한 기분이 든다.  그래서 그 사람의 주소를 알아내어 찾아갔다가 실제 연쇄살인범인 한승우(김대명)를 만나게 된다. 


  자, 이 영화의 장르가 '블랙코미디' 에서 '스릴러' 로 변하는 시점이 바로 이 장면부터다.

  차라리 영화가 처음부터 끝까지 블랙코미디로 나갔더라면 좋았을텐데, 참 아쉬운 일이다.  워낙 갑작스러운 장르 변화라, 설사 스릴러 부분이 치밀했더라도 어색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이 스릴러 부분은 초반부 및 중반부에 나온 블랙코미디 부분에 비해 구멍이 송송 뚫려 있다.  그래서 영화의 전체적인 완성도에 금을 하나 남긴 듯해서 더욱 아쉽다.


  각설하고, 다시 영화 내용으로 돌아가서... 

  정신상태가 불안정해 보이는 한승우는 처음에는 허무혁에게 호의적인 태도를 보인다.  마치 지금껏 허무혁을 위해 살인한 것마냥 말하면서, 앞으로도 량첸살인기의 내용을 그대로 따라 살인을 계속하겠다고 말한다.  살인을 그만 두고 자수하라고 허무혁이 말하자, 당신도 거짓말을 하지 않았느냐, 나 덕분에 유명해지고 돈도 많이 벌지 않았느냐고 소리친다.  허무혁은 자신의 실수, 우유부단함, 비겁함이 초래한 결과에 몸서리 치며 어쩔 줄 몰라한다.

  그 와중에 경찰은 한승우가 꾸며놓은 덫에 걸려, 서두호라는 엉뚱한 인물을 범인으로 단정하고 지명수배한다.  허무혁이 방송국과 경찰 모두에게 서두호는 범인이 아니고 진범은 따로 있다고 말하지만 소용없다.  방송국 측은 대한민국의 모든 언론사가 서두호의 지명수배를 속보로 보도한 마당에 자신들만 보도하지 않을 수 없다며 허무혁의 말을 묵살하고, 경찰은 눈에 보이는 것에만 현혹되어 허무혁의 말을 믿어주지 않는다.  





  ◎ 이러니하고 씁쓸한 결말


  어찌어찌하여 진범 한승우가 죽음을 맞게 되는데, 그 죽음이 진실과 다르게 평가된다는 게 또 문제다.

  한승우 때문에 하마터면 죽을 뻔한 서두호를 살려낸 사람은 허무혁이다.  그런데 서두호가 자기 얼굴에 씌여졌던 두건(혹은 비닐봉투였던가?  벌써 기억이 가물가물~~ ^^;;)을 벗은 타이밍이 참 기막혔다.  서두호는 막 저승 문턱까지 갔다가 겨우 살아나서 제 정신이 아닌데, 그런 상황에서 손에 칼을 든 허무혁과 칼에 베이고 찔려 피투성이가 된 한승우를 보고 오해를 한다.  즉, 허무혁을 자신을 죽이려 한 연쇄살인범으로, 한승우를 자신을 살려주려 한 사람으로  착각한 것이다. -.-;; 

  그래서 원래대로라면 죽고나서도 세상 사람들에게 온갖 욕을 잔뜩 먹었을 한승우가, 오히려 잔인한 연쇄살인범에게서 서두호를 구하려다 대신 죽은 의인(!)으로 둔갑한다. -0-;;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량첸 대령과 그를 모밤한 살인범을 칭송하던 글이 넘쳐나던 인터넷에는, 이제 한승우를 '이 각박한 세상에 정말 보기 드문 의인' 으로 추모하는 글이 잔뜩 올라온다.


  허무혁은 이제라도 특종보도가 오보였음을 밝히려 한다.

  하지만 백 국장은 허무혁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고 있는 것처럼, 허무혁의 말을 끝까지 듣지도 않고 잘라버린다.  그리고 냉정하게 말한다.  "우리는 진실을 보도하는 게 아니야.  뉴스란 게 그런 거잖아.  그들(대중)이 진짜라고 믿으면 그게 진실인 거야."


  이 대목에서 전에 알고 지냈던 이가 떠올랐다.

  미혼남녀 이야기만 들으면, 정작 그 미혼남녀는 부탁한 적도 없건만 쌍지팡이 짚고 나서서 선 자리를 주선하려던 사람이다.  당사자들의 의향에 상관 없이 선 자리를 주선하려는 것도 문제지만, 그 미혼남녀를 자신도 직접적으로 알지 못 하고 그저 이야기만 전해들었으면서 앞뒤 안 가리고 덤벼든다는 게 더 큰 문제였다. (요즘 인터넷에서 쓰는 말로 표현하자면, 오.지.라.퍼...!  -.-;;)  사람 소개라는 것은 공적으로든, 사적으로든 함부로 하는 게 아니라는 생각을 가진 나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행동이었다.  다른 사람이 그 일에 대해 넌지시 물어본 적이 있다 한다.  그런데 이 오지라퍼(!)의 대답 좀 들어보소~~  "나야 소개만 할 뿐이고, 계속 만날지 아닐지는 당사자들이 결정할 일이다."  뭐, 아예 틀린 말은 아니다.  결국 당사자가 최종결정을 하는 게 맞다.

  하지만 사람들이 업무상 필요한 사람이든 결혼상대든 간에 지인을 통해 소개받으려는 이유는 '저 지인은 나와 친분이 있으니, 그런 지인이라면 당연히 검증된 사람을 소개해주겠지.' 라고 기대하기 때문이다.  즉, 별 사람이 다 있는 이 위험한 세상에서 최소한의 안전장치는 갖출 생각으로 지인에게 소개를 받는 것이다. 

  그런데 스스로도 만나본 적 없는 사람을 그저 한 다리 건너들은 정보만 가지고 '놓치기에 너무 아까운 사람이다.' 라고 판단하며 다른 사람에게 마구잡이로 붙여주려 하니, 이런 황당하고 무책임한 짓이 어디 있나...!  세상일이라는 게 알 수 없는 거라서 그 미혼남녀 중 하나가 이상한 사람일 수 있다. (정신병력이나 전과를 숨기고 있다든지, 이미 기혼자인데 미혼자인 척 한다든지, 가족관계나 직업에 대해 거짓말을 했다든지, 카드빚이라도 잔뜩 지고 있다든지, 혹은 변태라든지... -.-;;)  소개받은 남녀 사이가 깊어진 상태에서 뒤늦게 그러한 문제가 불거진다면 뭐라고 할 건가?  "그 인간이 그렇게 이상한 지 나도 몰랐어.  어쨌거나 난 소개만 했을 뿐이고, 그 사람과 사귀기로 한 건 네 결정이었잖아.  그러니까 난 몰라." 하고 뒤로 빠질 생각인가?


  이 영화 속 백 국장이 생각하는 언론의 역할이란 게, 위에 나온 오지라퍼의 생각과 비슷하다.

  즉, 백 국장에 의하면, 언론의 역할 또는 임무는 그저 새로운 뉴스를 빨리 입수해서 대중에게 보도하는 게 전부다.  그 뉴스를 믿고 안 믿고는 어디까지나 대중의 몫이다.  이 논리를 좀 더 발전시키면, 대중이 잘못된 뉴스를 진실로 믿고 그에 따라 그릇된 행동을 하더라도 그것은 전적으로 대중의 책임일 뿐이라는 이야기가 된다.  언론사가 그 뉴스를 무조건 믿으라고 대중에게 강요한 적도 없고, 또한 요즘처럼 국민의 전반적인 교육 수준이 높아진 상황에서는 정상적인 성인이라면 자기가 알아서 그 뉴스에 대해 판단을 내리면 되니 말이다.  언론사는 그저 뉴스를 전달해주는 역할만 할 뿐,  그 뉴스를 받아들이느냐 무시하느냐는 전적으로 대중의 선택이며 그에 따른 행동도 대중의 책임일 뿐이다. 

  정말 끔찍한 생각이며 무책임한 논리다.  거짓이 진실로 둔갑하도록 판을 벌여놓은 것에 대해서는 전혀 책임을 안 지고, 자신들의 보도 때문에 잘못된 믿음을 갖게 된 사람들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다니...  이런 논리대로라면, 누군가 사기를 당했을 때도 그에 대한 책임은 사기꾼이 아닌 사기당한 사람이 져야 한다는 말이 된다.  그렇지 않은가?  사기꾼이 목에 칼 들이대고 협박한 것도 아니고, 사기꾼의 감언이설을 믿은 것은 어디까지나 사기당한 사람의 판단이며 결정이니 말이다. 

  유감스럽게도 언론의 이런 무책임한 행태는 21세기인 지금에도 선진국, 후진국 할 것 없이 일어난다.  그저 그런 일이 얼마나 자주 일어나는가, 그런 일에 대한 제도적인 예방책이나 언론계의 자정능력이 어느 수준인가 하는 차이만 있을 뿐...  




  ◎ 허무혁 아내는 왜 나왔고, 한승우는 왜 그렇게 비중이 낮았나?


  허무혁의 아내와 불륜 상대로 추정되는 화가는 도대체 왜 나온 거냐? -.-;;

  아무리 생각해봐도 허무혁 아내가 영화 속에 반드시 나와야 하는 이유를 도통 모르겠다.  설마, 눈에 보이는 게 다 진실은 아니라는 교훈을, 아내와 그 화가의 일로 강조하고 싶었나?  사람 생각하는 게 다 거기서 거긴지, 포털 사이트 영화란을 훑어보면 허무혁 아내가 나온 게 뜬금없다고 생각한 사람이 꽤 많은 것 같다. 


  차라리 두 사람의 분량을 전부 없애고, 대신 연쇄살인범인 한승우의 비중을 높였더라면 영화 후반부가 탄탄했을 것이다. 

  지능이 다소 낮아보이던 한승우가 도대체 어떤 이유에서 살인을 저지르게 되었는지, 영화만 봐서는 알 수가 없다.  시나리오의 한승우 부분이 처음부터 허술했던 것인지, 아니면 시나리오에는 그 부분이 설명되어 있는데 시간 관계상 편집되었는지...  그러니 없어도 그만 있어도 그만인 허무혁 아내 분량을 전부 쳐내고, 한승우의 과거사와 어떤 계기로 연쇄살인을 일으키게 되었는지에 대해 좀 더 자세한 설명이 있었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 기타


  첫째, 영화 앞부분에서 연쇄살인범으로 오해받고 붙잡혔던 사람은 유명한 탈옥범 '신창원' 을 패러디한 듯하다.

  신창원이 탈옥하고 몇 년 만에 붙잡혔을 때, 신창원이 입고 있던 화려한 색상의 상의(마치 모자이크처럼 여러가지 색깔로 가득 찬 옷)가 화제가 되었다.  그냥 화제만 된 게 아니라 어이없게도 그 옷이 날개 돋힌 듯 팔려서, 나중에는 돈이 있어도 못 사는 상황까지 갔다. (도대체 범죄자랑 똑같은 옷을 입고 싶어하는 심리는 뭘까?  나 같으면 기왕에 잘 입고다니던 옷이라도 유명 범죄자가 입은 것과 똑같다고 하면, 찜찜한 생각에 그 옷을 내다버릴 것 같은데... -.-;;)

  영화 속에서 형사들이 잘못된 정보 때문에 한밤에 광주까지 출동해서 붙잡았던 사람은, 신창원 옷만큼 알록달록하지는 않지만 비슷한 무늬와 색상으로 된 옷을 입고 있었다.  내가 장담하는데 이건 분명히 신창원 패러디다. ^^


  둘째, 후반부에서 진짜 연쇄살인범인 한승우 역을 맡은 배우 김대명을 보고 놀랐다.

  몇 달 전에 본 공포 단막극 '붉은 달' 에서서 사도세자 역할로 나왔던 그 배우다.  ☞ 2015 사도세자, 혜경궁(2) - 단막극 '붉은 달'(http://blog.daum.net/jha7791/15791235)  요즘 인기를 끄는 남자배우상(훤칠한 키, 우락부락한 근육보다는 잔근육 붙은 늘씬한 몸매, 중성적인 느낌을 주는 꽃미남형 얼굴)은 아니지만 기억에 남는 배우다.  붉은 달이 비록 1회성짜리 드라마였지만, 남들은 못 보는 귀신을 보며 차차 미쳐가는 사도세자의 모습을 인상 깊게 연기했기 때문이다.  개성있는 연기파 배우로 성장하리라 기대되는 배우다. 



뱅뱅클럽(The Bang Bang Club) - 사진기자의 치열한 삶, 그리고 윤리의식(http://blog.daum.net/jha7791/15791210)

2015 사도세자, 혜경궁(2) - 단막극 '붉은 달'(http://blog.daum.net/jha7791/157912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