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 여행기/'10년 베이징(북경)

공왕푸(恭王府 : 공왕부)와 허선(和伸 : 화신)

Lesley 2010. 4. 27. 23:12

 

 

 

  4월 16일에는 공왕푸(恭王府 : 공왕부)를 갔다.
  공왕푸 가는 길은 많은 후통(胡同 : 옛 건축물이 있는 골목길) 덕분에 눈이 즐거웠고, 인공호수인 후해(後海) 주변의 풍경도 좋았다.  나는 그런 풍경들을 눈에 담아가며 천천히 공왕푸까지 걷고 싶었지만, 중간에 종루와 고루에 들리며 계단 오르내린 진쥔이 이미 지쳐버렸다. -.-;;  그래서 결국 인력거 타고 공왕푸로 갔다.

 

 

어지간한 대궐만큼이나 호화로운 공왕푸의 모습. 

 

  공왕푸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공친왕(恭親王)의 저택이었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는데, 원래부터 왕부(王府)였던 것은 아니다.

  원래는 청나라 건륭제 때 높은 관직을 지낸 허선(和伸 : 화신)이란 사람의 집이었다.  공왕푸 안의 가이드가 허선에 대해 열심히 설명했고, 내가 못 알아들은 부분은 가이드와 함께 다니는 시간이 끝난 후에 진쥔이 따로 설명해줬다.  하지만 허선이란 이름을 처음 들었기 때문에 큰 관심 두지 않았다.  그저 재물 욕심이 엄청났던 인물이라는 정도로만 이해하고 말았는데...


  나중에 하얼빈으로 돌아와서야 이 허선의 실체(?)에 대해 알고 허걱~~ 했다.

  내 후쉐인 ‘양’ 에게 베이징에서 찍어온 사진을 보여줬는데, 양이 공왕푸 사진을 보고 공왕푸가 뭐 하는 곳이냐고 물었다.  별 관심 두지 않았던 터라 허선의 이름조차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래서 ‘이름은 기억이 안 나는데, 청나라 건륭제 때 돈을 엄청나게 좋아한 사람의 집이었다.’ 라고만 말했다.  내가 생각해도 정말 어설픈 설명이건만, 놀랍게도 양은  ‘허선?’ 하고 단박에 맞췄다.  놀라서 어떻게 허선인 줄 알았냐고 물었더니, 양이 ‘허선은 중국 역사에서 아주 유명해.  청나라 건륭제 때 사람이고 돈을 엄청나게 좋아했다면, 당연히 허선이야.  모든 중국인이 다 알아.’ 라고 했다.
  양의 말을 듣고서야, 비로소 이 허선이란 인물에 대해 호기심이 동했다.  도대체 어느 정도로 돈을 좋아했기에, 그렇게까지 유명할까?  그래서 인터넷을 뒤져봤더니, 과연 모든 중국인이 다 알만한 인물이다...!

 


허선(和伸 : 화신)

 

  청나라 건륭제(乾隆帝)의 총애를 믿고 온갖 부당한 방법으로 엄청난 재산을 모은, 중국 역사상 최고의 탐관오리이다.

  여성스러운 미모를 자랑하는 꽃미남에, 티벳어와 몽골어 등 여러 외국어로 외교문서를 척척 작성하는 능력까지 갖춰서 황제의 총애를 받았다.  나중에는 그의 아들과 황제의 딸이 결혼하게 되어, 더욱 큰 권력을 누리며 재산을 모았다.  하지만 건룡제 사후에 수많은 신하들이 허선을 탄핵 하자, 건룡제의 아들인 가경제(嘉慶帝)가 허선이 집(지금의 공왕푸)을 지을 때 감히 대궐을 흉내내었다 하여 재산을 몰수하라는 명령을 내렸고, 허선의 집을 자신의 동생에게 하사했다.

 

  그런데 몰수된 재산의 양이 정말 어마어마했다.
  집이 2,790채였고(이 2,790이란 숫자가 오타라고 오해하실 분들께 확인시켜드리겠음. 분명히 2,790채, 즉 4자리 숫자가 맞음...!!!), 전당포와 골동품 상점이 100곳이 넘었다. (높은 관직에 있었으면서 전당포와 골동품 상점도 운영했음. -.-;;)  그리고 황금 세숫대야가 233개, 황금 타구(가래와 침 뱉는 그릇)가 120개, 은 타구가 600여개였다. (도대체 세숫대야와 타구를 금, 은으로 만들어 뭘 어쩌자는 건지? @.@)  또한 금과 은으로 된 그릇이 4,000개가 넘게 올라가 있는 식탁 셋트가 32개였다고 한다. -0-;;  그 밖에도 온갖 보석, 비단, 도자기 등 없는 게 없었다 한다.
   

 

(위) 한국 전통 건축물에서는 종루(鐘樓), 고루(鼓樓), 망루(望樓)라면 모를까, 일반 주택을 2층으로 하는 경우가 없는 듯 한데, 그래서 특이해 보였다.
(아래) 저런 긴 복도도 한국 전통 건축물에서는 못 본 듯 하다.

 

 

(위) 이 공왕푸 뿐 아니라 중국 전통 건물에서 내 눈을 제일 잡아 끄는 것은 단청의 색깔이다.  한국의 단청은 붉은색 중심인데, 중국의 단청은 파란색과 초록색을 많이 쓰는 듯 하다.

(아래) 다른 색도 있지만, 역시나 파란색과 초록색이 제일 많이 쓰였다.

 

 

(위) 다양한 창문 모양.

  저 벽에 난 많은 창문들은 각각 다른 방의 창문인데, 창문의 모양이 제각각이다.  이유는 허선이 수많은 재물을 종류별로 다른 방에 보관해놓고, 건물 밖에서도 어떤 방에 어떤 재물을 넣어두었는지 알아보기 쉽게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정말 재물을 좋아하긴 했나 보다. ^^;;

(아래) 다양한 창문들 중 제일 특이했던 거꾸로 매달린 박쥐 모양의 조각이 붙은 창문.

 

 

우리를 담당했던 가이드.

 

  사진에 나온 저 가이드가 담당한 사람은 우리 말고도 많았는데, 거의 산동(山東)성과 광시(廣西)성에서 온 단체여행객들이었다. 

  한눈에도 농촌 또는 소도시에서 온 노인, 주부들로 보였다.  우리식으로 말하면 농촌부녀회에서 주최하는 효도관광 같은... ^^  그런데 광시성 사람들은 역시 남방 사람들이라, 내가 지내는 하얼빈 등 북방 사람들과 생김새가 많이 달랐다.  피부가 좀 더 검고, 체구도 작고, 얼굴형태도 북방 사람들은 달걀형인데 비해 이 사람들은 좀 더 동글동글하게 생긴 편이었다.

 

  그런데 이 가이드, 자기 기준에 안 차는 사람들을 엄청 한심하게 보는 경향이 심했다.

  설명 중 ‘이번 3월에 중국 정계에서 무슨 일이 있었지요?’ 하고 묻었는데 사람들이 대답 안 하고 멀뚱히 쳐다만 보자,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며 ‘양회(兩會)가 열렀었지요.’ 라고 했다. (양회는 매년 중국에서 열리는 최고 정치행사인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와 '전국인민대표대회'를 말함.)  전에 프랑스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했을 때 공왕푸에 들렸다며 ‘프랑스 대통령이 누구지요?’ 라고 묻는데 역시나 아무도 대답을 안 하자, 또 다시 한심해 죽겠다는 표정으로 한숨을 푹~~ 내쉬며 자기가 대답하고... (그래서???  뭐 어쩌라고??? -.-;;)

  나와 진쥔이 보기에는, 사람들이 정말 모른다기 보다는, 나이드신 분들이 많아 빠릿빠릿하게 반응하지 못하는 것 뿐이었다.  진쥔이 ‘사람들이 모든 걸 알면 왜 가이드가 필요하겠어?’ 하고 투덜댔다.  하지만 가이드는 그 후에도 계속 그런 식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