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5일에는 오전에 중국미술관을, 오후에는 중국군사박물관을 다녀왔다.
원래 이 날은 그 전날 시간이 늦어 못 간 공왕푸를 가려 한 날인데, 아침부터 날씨가 잔뜩 흐린 것이 어쩌면 비가 올지도 모르겠다 싶었다. 그래서 실외보다는 실내에서 무언가 구경하는 게 나을 듯 하여, 미술관과 박물관을 가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중국군사박물관은 생각만큼 볼거리가 많지 않았던 데다가(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전시 품목 숫자는 무척 많았지만 너무 오래되고 전부 비슷한 것들이어서 실망함.), 단체관광 온 엄청나게 많은 노인들에게 치여 각종 무기나 전쟁 관련 자료보다 사람을 더 많이 본 듯 하다. ㅠ.ㅠ 그래서 군사박물관은 따로 포스팅하지 않고 넘기고, 구경 잘 한 중국미술관에 대해서만 써볼까 한다.
중국미술관 전경
이 날 날씨가 스산한 탓인지 어째 보통 때처럼 찍고 나니, 구닥다리 디카의 작은 화면으로 봐도 뭔가 제대로 찍힌 느낌이 나지 않았다. 이왕 그리된 거, 좀 색다르게 찍어보자 싶어서 푸른색톤으로 찍어봤다. ^^
1. 서예 전시실
쑨샤오원(孫曉文)의 작품 전시회가 있었던 서예 전시실
이 날 중국미술관의 서예 전시실에서 쑨샤오원(孫曉文)이라는 여류 서예가의 작품 전시회가 있었다.
진쥔은 쓰촨에서 서예 실력 인정받는다는 아버지 영향으로 서예에 관심이 많고, 나도 이번 학기 서예 강습 받으면서 조금은 관심이 있어, 찬찬히 둘러봤다.
부채를 이용한 작품
두보(杜甫)의 춘야희우(春夜喜雨)
심하게 흘려쓴 서체라 처음에는 잠깐 눈길 주고 지나치려 했는데, 그 때 내 눈에 확 들어온 세 글자, 바로 雲俱黑...!
‘앗, 혹시?’ 하며 전진하던 발걸음 후진시켜 찬찬히 보니, 이 작품의 내용이 내가 너무 좋아하는 '춘야희우(春夜喜雨)' 였다...! ^0^ 작년 여름 쓰촨 여행할 때 청두(成都)를 다녀온 후, 서로의 블로그 자주 오가는 벗님 블로그에서 이 시와 이 시 관련한 한국영화 ‘호우시절’ 에 대한 포스트를 접했다. (''호우시절'과 두보(杜甫)의 춘야희우(春夜喜雨) (http://blog.daum.net/jha7791/15790609)' 참조) 그 후로 춘야희우는 내가 아는 얼마 안 되는 한시 중 최고 자리를 차지했다. ^^ 내가 더 안 움직이고 이 작품 앞에만 서있자, 다른 작품을 살펴보던 진쥔이 다가와 ‘춘야희우네?’ 하더니, 나를 보고 ‘아하, 역시 그랬던 거군.’ 하는 표정으로 씩 웃고... ^^
2. 유화 전시실
유화 전시실은 5층에 세 곳, 1층에 두 곳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1층은 나 같은 형이하학적인 사람은 뭐가 뭔지 알 수 없는 추상화만 가득해서 이번 포스트에 넣지않고, 내 마음에 딱 드는 구체적인 그림들이 전시된 5층 그림만 소개하겠다. ^^;;
(위) 우연히 한국 관광객들을 봤던 전시실.
저 전시실에서 50대 정도로 보이는 한국인 아줌마 세 분이서 소곤소곤 그림에 대해 논하며 열심히 그림 감상하시는 걸 봤다. 다들 그림에 일가견 있으신 분들인지, 나로서는 외계어처럼 들리는 온갖 ‘~~파’, ‘~~양식’ 등의 용어 써가며 진지하게 구경하셨다. ^^
(아래) 미술관 건물 모습을 푸른색톤으로 색다르게 찍은 김에, 갈색톤으로 찍어본 전시실.
우리가 가장 마음에 들어했던 전시실이다. 내가 아직 다른 전시실 둘러보는 동안 먼저 이 전시실로 갔던 진쥔이, 뒤늦게 그 곳으로 들어서는 나에게 조금 흥분한 얼굴로 ‘여기 정말 재미있어.’ 라고 했다. 과연 평범한 사람들이 도무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추상적이지 않으면서, 그렇다고 너무 뻔하다는 느낌 주지 않는 독특한 작품들이 쭉 전시되어 있었다.
埃及寫生(旅行中) : 趙望雲의 1957년 작품.
전시실 중 한 곳은 이 짜오망윈(趙望雲)이라는 화가의 작품만 모아놓았다.
이 작가는 1900년대 초반에 태어나서 1950년대에 그 당시 중국인으로 드물게 해외, 그것도 이집트를 여행한 경험이 있다. 그래서 그 당시의 경험을 화폭에 옮겨 여러 작품을 남겼다. 만일 이 화가가 서양화가였다면, 이 화가의 작품을 그냥 대충 보고 넘겼을 것이다. 하지만 신비로운 느낌을 주는 이집트의 풍경과 사람들의 모습을 동양화로 표현했다는 게 정말 이채로웠다.
이 그림을 보고나서야, 우리나라 성경에서 왜 이집트를 ‘애급’ 이라고 표기하는지 알았다. 한자로 ‘埃及’이라고 하는 걸 우리식으로 발음하니 애급인 것이다. ^^;; 그러고 보니 이 그림은 이래저래 성경을 떠올리게 하는 그림이다. 어린이용 성경 중 ‘예수 일가가 이집트에서 이스라엘로 돌아가는 부분’ 의 삽화로 쓰면 딱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으니 말이다. ^^
埃及寫生(上市) : 趙望雲의 1956년 작품.
시장에 간다는 上市라는 부제목이 붙은 이 그림의 주인공들은, 아마도 아버지-딸 아니면 시아버지-며느리인 듯 싶다.
密雲 : 鐘涵의 1990년 작품.
이 그림도 우리가 무척 마음에 들어했던 그림이다.
한바탕 엄청난 폭풍을 동반할 듯한 두꺼운 구름이 다가오자, 사공들이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절박한 표정으로 노를 젓고 있다.
醉顔 : 洪凌의 2008년 작품.
醉顔은 ‘색에 취하다’라는 뜻인 듯 한데, 단풍이 가득한 가을산의 풍경을 제목 그대로 '색에 취해버릴 것처럼' 화려하고 강렬하게 표현했다.
肖像 : 王沂東의 1989년 작품.
누구의 초상이라는 설명 없이, 제목이 그냥 ‘초상’이다. ^^
이 그림이 기억에 남는 이유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그림이라기 보다는 마치 사진 같다는 느낌 받을 정도로 사실적이라는 점, 둘째는 그림을 정면에서 보든지 또는 양쪽 측면에서 보든지 간에 그림 속 주인공의 시선이 내 쪽을 똑바로 향하는 것 같은 느낌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조금은 무서운 느낌도 없지 않았음...^^;;)
갈망화평(渴望和平) : 王向明과 金莉莉의 1985년 작품.
이 그림의 제목은 ‘평화를 간절히 원한다.’는 의미인 ‘갈망화평’이다.
기존의 여러 그림을 짜깁기 한 것 같은(사실 짜깁기 된 그림 중 내가 정확히 아는 건 피카소의 게르니카 하나 밖에 없었지만...^^;;) 이 그림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척 독특하다는 느낌을 주어 우리 눈길을 잡아 끌었다.
갈망화평(渴望和平)의 각 부분을 크게 찍은 모습.
(왼쪽) 전에 영화 ‘송가황조(宋家皇朝)’ ('송가황조(宋家皇朝) - 송씨 가문의 세 자매 (上) (http://blog.daum.net/jha7791/14983291)' 참조)에서 장만옥이 분한 송경령(宋慶齡)의 대사 중 ‘어지러운 시대에 죽는 것은 남자이고, 상처받는 것은 여자이다.’ 라는 부분이 있었다. 이 ‘갈망평화’ 중 이 부분을 보자마자 그 대사가 떠올랐다. 윗부분에 망연자실한 분위기로 서 있는 여자들은 전쟁터로 끌려가는 남편 또는 아들의 뒷모습을 보고 있는 듯 하고, 아랫부분에 그려진 늙은 여인은 결국 아들이 전사했다는 소식 듣고 아들의 초상화를 안고 비탄에 잠긴 듯 하다.
(오른쪽 위) 스페인 출신의 유명한 화가인 피카소의 게르니카이다. 이 게르니카는 전쟁의 참상을 드러낸 그림으로 유명한데, 이 '갈망화평' 중 일부를 차지하고 있다.
(오른쪽 아래) 왼쪽 상단에 얼굴을 옆으로 돌리거나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고 있는 여자들이 있고, 오른쪽 상단으로는 흰색 옷을 입은 채 교수형 당하는 남자들이, 아래에는 군인들에게 총살당하는 남자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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