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 여행기/'10년 베이징(북경)

베이징(北京 : 북경)으로 떠나던 날

Lesley 2010. 4. 18. 15:28

 

 

  4월 13일부터 17일까지 베이징을 다녀왔다.

  겨우 며칠짜리 여행이건만, 언제나 그렇듯이 내 주변에서는 크고 작은 사건.사고가 끊이지를 않는다.  이번 여행도 초장부터 모험으로 가득찼다. 아무래도 '사건.사고, 모험, 파란만장' 이라는 단어들이 나를 무진장 사랑하는 모양이다.  -.-;;

 

 

 

 1. 4월 중순에 몰아친 눈보라 ㅠ.ㅠ


  지난 화요일(4월 13일) 오전 8시 58분에 출발하는 베이징행 기차를 타려고, 6시도 안 되어 일어났다.
  다소 지나치게 부지런 떤 감이 없지 않은데, 굳이 그렇게 일찍 일어난 것은 학생식당에 가서 ‘제대로 된 밥’을 먹기 위해서였다.  저녁 5시 반이나 되어야 베이징에 도착하는데, 그때까지는 기차 안에서 간단하게 빵 정도나 먹게 될 것이기에, 아침을 든든히 먹으려 했다.


  하지만 그렇게 새벽 댓바람부터 일어나 창 밖을 내다보고는 ‘허걱~~’ 했다.

  아무리 하얼빈이 북쪽의 추운 지방이라고 해도, 4월 들어서는 슬슬 기온이 오르는 중이었는데(그래봤자 낮 최고기온 영상 4, 5도 정도로 올라갈 뿐이지만... -.-;;), 이 날은 새벽부터 눈이 잔뜩 내리는 중이었다.  그냥 함박눈이 펑펑 내린다는 수준이 아니라, 무슨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수준의 눈보라가 심하게 몰아치고 있었다.

  지난 겨울을 하얼빈에서 나면서 눈 내리는 풍경을 수시로 봤지만, 이렇게 퍼붓는 눈보라는 처음이었다.  처음에는 내 방 유리창에 성에라도 잔뜩 낀 줄 알았다.  바깥 풍경이 깨끗이 보이지 않고, 마치 흔들려 찍힌 사진처럼 모호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자세히 쳐다보니 뭔가 하얗고 얇고 거대한 천 같은 것이 공중에서 아주 천천히 흔들거리는데, 그게 바로 눈보라였다. -0-;;
  결국 학생식당 나가는 건 포기하고, 마침 며칠 전에 미리 사놨던 컵라면 하나 먹고서 짐 챙겨들고 나갔다.

 

 


 2. 중국 학생과 기차역까지 동행

 

  C취의 남문 밖으로 나가 택시를 잡는데, 정말 장난이 아니었다.
  눈이 너무 심하게 오는 통에 버스도 제대로 운행이 안 되는데다가, 중국은 8시가 출근시간이어서, 사람들이 잔뜩 쏟아져나와 택시 잡느라 모두들 난리법석이었다.  그 눈보라를 뒤집어써가며 도로가에 30분 넘게 서있었는데도, 도무지 택시를 잡을 수 없었다. 

 

  그 때 마침 눈에 띈 중국 남학생이 하나 있었다.
  커다란 캐리어를 옆에 두고 있는 것이, 나처럼 기차역에 가려는 듯 했다.  이런 비상상황에서는 아무래도 외국인보다는 현지인이 대처를 잘 하겠지 싶어서, 빌붙기로 했다. ^^;;  기차역에 가느냐고 물었더니, 그렇단다.  함께 가도 되느냐고 했더니, 선선히 그러자 했다. (사실, 둘이 같이 가면 택시비가 절반으로 줄어드니, 그 쪽에서도 거절할 이유가 없음. ^^)  속으로 ‘내가 운이 좋구나.’ 했는데, 그 날 정말 운이 좋았던 건 내가 아니라 그 남학생이었다.  유감스럽게도 그 남학생은 택시 잡는데 별 도움이 되지 않았고, 결국에는 내가 택시를 잡아 함께 탔기 때문이다. -.-;;
 
  그런데 이 남학생과 함께 기차역 가며 벌어졌던 작은 사건이 하나 있다.
  내 중국어 발음이 안 좋다 보니, 중국인과 이야기를 할 때 내가 한 두 마디만 해도 상대방은 내가 외국인임을 눈치 챈다.  그런데 이 남학생은 내 쪽에서 먼저 말 붙여서 함께 기차역 가자 했을 때도, 택시 안에서 짤막한 대화 나눌 때도, 내가 외국인이라는 것을 아는 듯한 티를 전혀 내지 않았다.  그래서 ‘아, 이제 이렇게 간단한 대화 할 때 정도는 내 발음이 그럴 듯하게 들리나보다.’ 생각하며 좋아했다. 
  그러나 ‘혹시나’ 했던 것은 ‘역시나’ 로 끝나버렸다.  기차 출발 20분 전에 겨우 기차역에 도착해서 허겁지겁 대합실로 들어섰다. (중국 기차역은 언제나 사람이 우글거리고, 구조도 복잡하고, X레이로 짐 검사를 받아야 하는 등 탑승절차도 번거로워서, 시간을 넉넉하게 잡고 나가야 함.  한국에서 기차타는 것 생각하고 기차출발시간에 딱 맞춰서 나갔다가는, 기차 못 탈 수도 있음. -.-;;)  거기에서 헤어지면서 그 남학생이 나에게 즐거운 여행 되기를 바란다고 덕담을 건넸는데, 그 뒤에 덧붙이는 말이 “그런데 일본인이에요, 한국인이에요?” 였다...! ㅠ.ㅠ  그러면 그렇지...  평소에 안 좋았던 발음이 갑자기 좋아져서, 중국인으로 취급받을 정도가 될 리가 없지... OTL 

 

 


 3. 황당한 유스호스텔의 방침

 

  기차 안에서 진쥔의 전화를 받았다.
  진쥔이 베이징에 올라온 1차 목적은 어디까지나 대학원 시험이니만큼, 시험 후의 여행 계획을 짤만한 형편이 안 되어, 내가 숙소를 알아보기로 했다.  부지런히 인터넷 사이트도 뒤지고 한국과 중국의 여행안내책 뒤진 후에, 베이징에 있는 유스호스텔을 몇 군데 점찍어 놓았다.  진쥔은 자기가 그 유스호스텔에 전화해서 위치나 가격 등을 정확히 알아보겠다며, 전화번호를 알려달라 했다.  나 역시 내가 본 여행안내책이 2년 전 것이라, 지금은 상황이 변했을테니 그게 좋겠다고 생각하고 전화번호를 알려줬다.

 

  그런데 나중에 진쥔이 다시 전화해서 하는 말이 정말 황당했다.
  천안문 근처에 있어서 여기저기 둘러볼 때 편할 듯 하여 내가 1순위로 찍은 유스호스텔 측에서 하는 말이, 중국인과 외국인은 같은 방에 묵을 수 없단다. -.-;;  황당해진 진쥔이 왜 안 되냐고 물었더니, 이유 설명은 없고 ‘도미토리는 중국인과 외국인이 함께 묵을 수 없고, 2인실의 경우는 가능하지만 360위안을 내야 한다.’ 라고 했단다. (참고로 그 유스호스텔 2인실의 원래 가격은 200위안임...!!! -0-;;)  나중에 진쥔을 만났을 때 '혹시 중국에 그런 법률이 있냐?' 라고 물었더니 '그런 게 있을 리가 없잖아...!' 라고 하던데, 도대체 이게 어찌된 영문인지... -.-;;
  그래서 2순위로 찍은 곳에 전화했더니, 거기는 유스호스텔이 아니라 일반 호텔이란 식으로 말하더란다.

  도대체 베이징의 유스호스텔계에 무슨 일이 생긴 것인지... -.-;;

 

  결국 3순위인 베이징역 바로 건너편에 있는 ‘베이징청스(北京城市) 유스호스텔’로 낙찰 봤다.
  내가 아직 기차 타고 가는 동안, 진쥔이 먼저 그 곳으로 가서 방을 살펴보고 괜찮아 보인다며 체크인을 했다.  나중에 베이징역에 도착해서 마중나온 진쥔과 가보니, 지난 여름 쓰촨성 여행 때 묵었던 청두의 멍즈뤼 유스호스텔('멍즈뤼(夢之旅) 유스호스텔과 팬더카드(http://blog.daum.net/jha7791/15790567)' 참조) 보다 훨씬 좋았다.  멍즈뤼 유스호스텔도 가격 대비 시설이 괜찮은 편이긴 했지만, 공용 화장실과 샤워실이 좁아서 사용하기에 조금 불편했다.  그런데 여기는 공용 화장실과 샤워실임에도 널찍널찍 한대다가 시설도 훨씬 좋았다.

  진쥔은 자기가 보기에 좋아서 일단 투숙했지만, 내 마음에 안 들면 하룻밤만 지낸 후 다른 곳으로 옮기자고 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도 대만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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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우리가 머물렀던 2인용 보통실 : 공용 화장실과 욕실 쓰는 방. 아늑하고 깨끗함.

       ※ 2인용 호화실이라고 해서, 별도로 화장실과 욕실이 딸린 방이 있음.

(아래 왼쪽) 우리방이 있는 객실 복도

: 진쥔이 무조건 조용한 방을 달라 해서 100미터는 될 법한 긴 복도의 맨 끝에서 두번째 방을 배정받음. ^^

(아래 오른쪽) 우리방이 있는 3층에 위치한 당구장, 식당, PC방

: PC방은 절대 추천하고 싶지 않음.  인터넷 속도가 어찌나 느린지, 페이지 한 번 바뀌는데 1분은 걸림. -.-;;

 

 

 

  숙소에 짐을 내려놓고 잠시 쉰 후, 진쥔과 나가서 베이징 들리는 여행객이라면 거의 들린다는 유명한 취엔지더(全聚德)로 가서 저녁으로 베이징카오야(北京鴨)를 먹었다. (취엔지더와 베이징카오야에 대해서는 다음 포스트에서 설명하겠음. ^^) 

  베이징 여행의 첫날은, 비록 처음은 심상치 않게 시작했지만, 끝은 제법 괜찮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