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드라마, 연극

흐르는 강물처럼(A River Runs Through It)

Lesley 2010. 3. 30. 18:36


  온라인 벗님들 중 한 분이 운영하시는 블로그 이름이 '흐르는 강물처럼'이다.
  내가 인상깊게 봤던, 로버트 레드포드 감독의 1992년 작품 '흐르는 강물처럼(A River Runs Through It)'과 같은 이름이라 처음부터 눈길이 갔다. (정작 그 분은 그 영화랑 상관없이 블로그 이름을 그리 지으셨다고 했지만 말이다... ^^)  마침 어찌어찌하여 최근 그 블로그 이름에 대한 댓글을 주고받은 적도 있고 하여,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내친 김에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에 대해 포스팅 해볼까 한다.

 

 

이 영화를 안 봤어도 이 멋진 포스터를 탐내는 사람이 제법 있었음. ^^

 


  이 영화는 실존인물인 노먼 맥클레인(Norman Maclean, 1902~1990)의 자전적 소설을 원작으로 하여 만들어졌다.

  영화는 강물 위로 흐르는 주인공 노먼(크레이그 셰퍼)의 나레이션(단, 노먼의 나레이션은 감독인 로버트 레드포드가 맡음)으로 시작한다.  "내가 어렸을 때 아버지가 '노먼, 너는 글쓰기를 좋아하지.  언젠가 때가 되면 우리 가족의 이야기를 쓸 수 있겠지.  그 때 비로소 우리가 어떤 일을 겪었는지, 왜 그리 되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라고 하셨다." 라는 나레이션으로, 이 영화가 한 가족의 사연임을 알 수 있다.

 

 

 

  플라잉 낚시를 통해 신과 대자연과의 교감을 가르치는 아버지 

 

  노먼은 장로교 목사인 아버지, 어머니, 동생 폴(브래드 피트)과 함께 미국 중부의 몬태나주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노먼의 아버지 맥클레인 목사는 그저 성경 밖에 모르는 고지식하고 딱딱한 목회자가 아니다.

  문학에 조예가 깊고, 노먼이 "우리 가족에게는 종교와 플라잉 낚시 사이에 확실한 구분이 없었다." 라고 회상할 정도로 플라잉 낚시를 누구보다 좋아하는 사람이다.  특히 플라잉 낚시에 관해서라면, 예배시간에도 예수의 제자들이 고기 낚는 일을 하였음을 하도 강조해서, 교인들로 하여금 예수의 제자들이 평범한 어부가 아니라 플라잉 낚시꾼이라고 믿게 만들 정도다.

 

  맥클레인 목사에게 플라잉 낚시란 인간이 위대한 자연을 접하며 신과 교감하는 수단이다.

  노먼은 이에 대해 "장로교도인 아버지는 인간은 원래 불완전한 존재이며, 오직 신의 리듬을 익힘으로써 힘과 아름다움을 회복한다고 믿으셨다.  아버지에게는 구원 뿐 아니라 송어 같은 미물까지 모든 선한 것들은 은총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었다.  은총은 예술을 통해 얻어지고, 예술은 그리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라고 설명한다.  이러한 아버지의 영향으로 노먼과 폴 형제도 어려서부터 몬태나의 대자연 속에서 플라잉 낚시를 익혀나갔다.
 

 

 

  너무 다른 두 형제 - '안정적인 열정'과 '불안정한 열정'

 

  그런데 이 두 형제는 플라잉 낚시를 사랑한다는 점과 삶에 대한 열정을 갖고 있다는 점 빼고는, 성격이나 취향이 전혀 다르다.

 

 

  아버지의 성향을 많이 닮은 큰 아들 노먼은 세상의 질서 안에서 자신의 문학적 재능을 발휘한다.


  '세상의 질서 안에서' 라고 표현했다 하여, 노먼이 속물적인 인물이란 뜻은 아니다.

  노먼은 반듯한 심성을 갖고 있고,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문학적 재능을 꽃 피우고 싶어하는 열정을 갖고 있다.  그래서 동부의 명문대학 다트머스에서 영문학을 공부하면서 일찌감치 신입생들에게 낭만주의 시를 강의하는 일을 맡았다.  그리고 영화 말미에서는 시카고 대학에서 강사 지위와 대학원 입학 허가를 동시에 얻는 등 자신의 꿈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가는 열정과 의지를 지닌 인물이다.

  비록 영화에는 안 나오지만, 노먼은 훗날 시카고 대학의 영문학 교수가 되어서 여러 문학 작품을 남겼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이 '흐르는 강물처럼' 의 원작 소설이다. 


  그리고 동생의 방종한 생활태도를 못마땅해하지만, 형으로서 동생에게 관심을 갖고 도와주려고 애를 쓴다.

  술에 취해 싸움을 벌여 경찰서에 갇힌 동생을 빼내오면서 '내 도움이 필요하면 말 해.' 라고 한다든지, 시카고 대학으로 가게 되었을 때 동생에게 함께 가자고 한 것은, 형으로서 언제나 위태위태해 보이는 동생을 잡아주기 위한 몸짓이다.

 

 

  그에 비해, 작은 아들 폴은 세상의 질서에 반항하는 야성적인 인물이다. (브래드 피트가 맡은 인물다움. ^^)

 

  폴은 세상의 잣대와 상관없이, 사람에게나 자연에게나 공평하고 따뜻하게 대하는 열린 마음을 갖고 있다.

  아직 인종차별이 심했던 시절인데도 인디언 여자와 대놓고 연애를 하여 다른 사람들의 눈총을 받는다.  그런가 하면 망나니 같은 닐(노먼의 애인이며 나중에 노먼의 아내가 되는 제시의 오빠)에 대해 형 노먼이 드러내놓고 못마땅해 할 때도 닐을 도와주자고 한다.
  그리고 플라잉 낚시와 몬태나의 대자연을 너무나 사랑한다.  그래서 형과는 달리 몬태나에 있는 대학으로 진학을 했고, 짧은 일생 전부를 몬태나에서 보낸다.  시카고 대학의 대학원으로 가려는 노먼이 함께 가자고 제의했을 때도, 자신은 몬태나를 절대 떠나지 않을 것이라 답한다.  대학 공부를 마치고 몇 년만에 돌아온 노먼이 폴과 함께 낚시를 하러 가서 낚시줄을 던지는 폴을 보며 "내가 떠나있는 동안 동생이 예술가가 되었음을 알았다." 라고 독백할 정도로, 자연과 이미 하나가 되는 경지에 오른 인물이다. 


  하지만 세상의 질서에 반항하는 사람들이 다 그렇듯이, 언제 어디에서 깨질지 모르는 불안정함도 지니고 있다.

  즉, 형 노먼이 가진 '안정적인 열정' 에 비해, 동생 폴이 지닌 것은 '불안정한 열정' 이다.  신문기자의 신분으로 불법도박장을 드나들며 나날이 쌓여가는 도박빚에 눌려 지내고, 곧잘 술에 취해 싸움을 벌이곤 한다.  부모가 그런 자신을 걱정하면서도 어떤 식으로 도와줘야 하는지 몰라 불안하게 쳐다본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자신은 아무 것도 눈치채지 못한 것 같은 느긋한 태도를 보인다.  부모가 은근히 걱정하는 기색을 보이려들면, 별 것 아니라는 식으로 은근슬쩍 넘겨버린다.  형 노먼이 자신을 걱정하여 충고를 할 때에는 노먼의 말을 자르고, 참다 못 한 노먼이 화를 낼 때에는 함께 낚시 가자는 말로 형을 달래며 그 상황을 대충 넘긴다.  결국 이런 불안정함 때문에 젊은 나이에 비참하게 세상을 뜨게 된다.

 

 

 

  예술작품 같은 폴, 그러나 인생은 예술작품이 아니다...


  폴이 죽기 얼마 전, 세 부자는 오래간만에 함께 낚시를 간다.
  그 곳에서 폴은 급류에 휘말리며 분투한 끝에 커다란 물고기를 낚아, 아버지와 형을 감탄하게 한다.  폴은 그렇게 잡은 물고기를 들고 멋진 폼으로 어머니에게 보일 사진을 찍는다.  그런 동생에 대해 노먼은 "그 순간 폴은 마치 이 세상의 모든 규칙을 초월하여 서있는 예술작품 같았다." 고 묘사한다.  또한 "그리고 나는 인생은 예술작품이 아니고, 그런 순간이 영원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라고 덧붙인다.  너무 아름답고 완벽해 보여서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닌 것 같은 동생에게서 오히려 불안함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노먼은 폴의 죽음을 알리는 경찰의 연락을 받고도 크게 놀라지 않는다.  동생이 평범하게 살 수 없음을 알고 있었고, 평범하게 살 수 없는 이상 그렇게 죽을 수 밖에 없음을 마음 깊은 곳에서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순간 폴은 마치 이 세상의 모든 규칙을 초월하여 서있는 예술작품 같았다."

"그리고 나는 인생은 예술작품이 아니고, 그런 순간이 영원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폴의 죽음은 노먼과 맥클레인 목사에게 두 가지 화두를 던졌다.

  첫째는 '가족이라고 해서 서로 전부 이해할 수 있는가' 다.  그리고 둘째는 '제대로 이해를 못 한다면 어떻게 사랑할 수 있는가' 다.
  폴이 죽은 후 맥클레인 목사는 노먼에게 폴의 죽음에 대한 일을 반복해서 묻는다.  결국 노먼은 "제가 폴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은, 폴이 훌륭한 낚시꾼이었다는 점 뿐입니다." 라고 대답한다.  그러자 맥클레인 목사는 "너는 그 보다 더 많이 알고 있다. 폴은 아름다웠다." 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작은 아들에 대해 언급하지 않게 된다.

 

 

 

  완전한 이해 없이도 완전한 사랑을 할 수 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이제는 제시와 결혼하여 자식들까지 대동한 노먼과 다른 교인들 앞에서, 맥클레인 목사가 마지막 설교를 한다.

  "우리는 가장 가깝고 가장 이해해야 하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 한 채로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완전한 이해 없이도 완전한 사랑을 할 수 있습니다."  작은 아들의 삶의 방식을 이해하지 못 했고, 그런 삶의 방식을 찬성하지도 않았으며, 어떻게 아들을 건전한 삶으로 이끌어야 하는지 알지도 못 했지만, 그래도 그런 아들을 사랑했다는 뜻일 것이다. 

 

  아버지의 마지막 설교를 경청하는 노먼의 얼굴이 클로즈업 되며, 화면은 바뀌어 늙은 노먼이 홀로 강에서 플라잉 낚시를 하는 모습이 보인다.

  그리고 그 위로 노먼의 마지막 나레이션이 겹친다.  "내가 젊었을 때 사랑했지만 이해는 하지 못 했던 사람들은 이제 거의 죽었다.  아내인 제시조차...  하지만 나는 아직도 그들과 교감하고 있다. …(중략)…  강은 나를 사로잡고 내 몸 속을 흐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