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드라마, 연극

난징! 난징! (南京! 南京!) - 1

Lesley 2009. 5. 18. 00:48

 

 

  중국 하얼빈에 온 뒤로 처음 올리는 영화 감상문입니다. ^^

   
  지난 주 금요일(5월 8일) 중간고사가 끝난 후 성 소피아 성당 근처에 있는 영화관으로 가서 '난징! 난징! (南京! 南京!)'을 보고 왔습니다.
  이 영화는 1937년 중일전쟁 때, 일본군이 당시 중국의 임시수도였던 난징(南京, 남경)에서 저지른 '남경 대학살'을 소재로 하고 있습니다. 저의 후쉐인 흑룡강대 한국어과 학생 '류징'의 말로는 신중국(1949년 국공내전에서 승리한 공산당이 중화인민공화국을 수립한 후의 중국을 신중국이라고 함) 건립 60주년인 올해는 중국에서 애국심에 호소하는 영화가 많이 상영되고 있다는데, 이 영화도 그런 영화 중 하나로 최근 중국에서 엄청난 흥행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영화입니다.

 

 

 

 

 

 

 

 

 

  먼저 영화의 소재인 '남경 대학살'에 관하여 찾은 자료를 뭉뚱그려 설명하자면...

  

  우리나라에서는 '남경 대학살(南京 大虐殺)'이라고 하지만, 중국에서는 '남경 대도살(南京 大屠殺)'이라고 한다.  1937년 12월 13일부터 1938년 초까지 몇 달 동안 중국의 남경에서 일본군이 저지른 엄청난 민간인 학살 사건을 남경 대학살이라 한다.

 

 

  1937년 여름, 중일전쟁을 일으킨 일본군은 파죽지세로 천진, 북경, 상해를 차례로 점령했다. 그들의 다음 목표는 당시 국민당 정부의 임시수도였던 남경(南京)이었다.
  일본군 9만명이 남경을 포위하고 격렬히 공격하여 남경이 함락될 상황에 처하자, 함락 5일전 총통 장개석(蔣介石)은 정부를 이끌고 중경(重慶)으로 퇴각했다.  
상류층이야 정부를 따라 피난 떠날 수 있었지만, 남경에 남겨진 약 70만명의 시민과 군인들은 12월 13일 새벽에 성벽을 타고 넘어온 일본군을 속수무책으로 맞게 되었다. 

  남경을 점령하고 6주일간 일본군은 무기력증에 빠진 중국군과 민간인들을 상대로 잔혹한 살육행위를 저질렀다. 백기를 들고 항복하는 군 포로들은 물론이고 수천, 수만명의 민간인 젊은이들을 총검술 훈련 혹은 '목베기 시합'의 대상물로 삼아 무자비하게 살해했다. 여자들의 경우에는 어린 소녀, 노파 할 것 없이 무차별 강간한 뒤 살해되었다.  사람을 산 채로 파묻는가 하면, 배를 가르거나 사지를 자르기도 했고, 산 채로 연료를 쏟아부은 뒤 불태워 죽이기도 했다. 일부 일본군은 누가 먼저 100명을 죽이는가를 놓고 돈을 건 내기까지 하면서 시민들을 무차별 학살했다.
  그리하여 남경에 잔류했던 70만 인구 중 거의 절반에 가까운 30만명이 끔찍하게 학살당했다.

 

 

  나중에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극동군사재판(IMTFE)의 전문가들이 발표한 바에 따르면, 1937년부터 1938년까지 남경에서 26만 명 이상의 민간인들이 일본 군인들에 의해 살해된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영국 쪽 조사에서는 당시 사망자가 35만 명을 넘어선다고 추정하기도 했다. 미국 새너제이머큐리지는 그 당시 남경의 사망자들이 손을 잡는다면 남경에서 항주까지 약 322km나 이어질 것이며, 사망자들이 흘린 피의 양은 1,200t에 이르고, 그 시체는 2,500량짜리 기차를 가득 채울 것이며, 시체를 포개놓는다면 74층 빌딩 높이에 달할 것이라고도 했다.


  일본군이 남경에서 중국인에게는 물론이고, 같은 동맹국이며 유대인을 상대로 역시 끔찍한 전쟁범죄를 저지른 독일의 나치에게조차 충격을 줄 정도로 엄청난 만행을 저지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중일전쟁이 시작된 이래 천진, 북경, 상해는 비교적 손쉽게 함락시켰으나, 남경의 경우 중국군의 사수의지가 워낙 강해서 고전 끝에 승리했다. 그래서 승리한 일본군의 희생도 무척 컸다. 남경 대학살은 이러한 일본군 희생에 대한 피의 보복으로 분석된다. 
  둘째, 당시 중일전쟁에서 연전연승하던 일본군이었지만, 중국 영토 깊숙히 들어가면서 전선은 길어지고 전쟁은 장기화되며 점점 초조해지고 지쳐갔다.  당장 인구에서 중국에게 밀렸기 때문에, 일본군이 군사요충지를 점령했더라도 다음 공격 목표를 향해 진군하면 다시 중국군에게 재점령 당하는 일이 반복되면서, 인적, 물적 자원이 고갈되고 군사들은 끝없는 전투에 염증을 느끼게 되었다.  따라서 중국인들의 항전의사를 철저히 꺾을 필요성과 지친 군사들의 긴장을 풀어줘야 할 필요성을 동시에 느낀 일본군 지휘부는 군사들을 통제하지 않고 제멋대로 날뛰도록 방치했다.

 

  그러나 이렇게 명백한 증거가 있고 국제적으로도 큰 충격과 분노를 일으킨 사건이건만, 일본에서는 일부 양심적인 지식인을 제외하고는 지금도 많은 정치가, 학자, 산업 각 분야 지도자들이 남경에서 대학살이 벌어졌다는 사실 자체를 부인한다. 심지어는 교육자들조차, 역사 시간에 유대한 학살에 대해 가르치지 않으면 불법으로 간주되는 독일과 달리, 수십 년 간 조직적으로 남경 대학살에 대한 언급을 교과서에서 삭제했다.
  사실 남경 대학살이 진행되던 1937년 12월에 일본 국내에서는 이 사건이 아예 보도되지 않았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에야 비로소 이 사건이 일본에 알려지게 되었는데, 당시 패전 직후여서 비참한 상태였던 일본에서 신문 1면을 차지한 것은 국제사회에서 지원되는 식량의 종류와 배급일자였다.  남경 대학살 관련 기사는 조그맣게 보도되면서 일본 국민들에게 관심을 끌지 못 했고, 시간이 흐르며 아예 잊혀져버렸다. 

  이렇게 남경 대학살이 묻혀버린 것은, 일본 지도층에서 책임 회피를 위해 철저히 진상을 숨긴 탓도 크다. 30만명에 달하는 남경 대학살 희생자의 숫자를 수백명 또는 수십명으로 축소하는 경우도 많고, 아예 남경 대학살이란 사건이 일어났다는 사실 자체를 부인하는 경우도 있다. (대표적인 예가 일본의 한반도 강점이나 독도및 정신대 문제 관련해서 망언을 일삼아 우리 한국 국민를 분노하게 했던 3선 도쿄 도지사 이시하라 신타라(右原愼太郞)이다.  이 사람은  "일본이 남경에서 대학살을 저질렀다는 이야기는 중국인들이 꾸며낸 거짓말이며, 남경 대학살은 20세기 최대의 거짓말"이라고 주장했음.)

 

 

 
  그 다음, 이 영화를 어떻게 보게 되었는지 설명하자면...


  저와 후쉐(互學 : 互相學習 의 줄임말로, 다른 언어 쓰는 사람끼리 상대방에게 자기 언어 가르쳐주며 함께 공부하는 것)를 하는 한국어과 학생 '류징'에게 괜찮은 중국 드라마와 영화를 추천해달라고 했더니, 이 영화를 소개해주며 꼭 보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저의 푸다오(補導 : 과외) 선생인  '진쥔'에게 몇 년 전에 중국을 배낭여행 했던 것에 대해 말하던 중 남경 대학살 기념관에 들렸다고 얘기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무심코 '난징! 난징!'을 보고 싶다고 했더니, 그 영화 볼 생각 있으면 자신이 영화관에 데려가주겠다면서 함께 갈 생각 있는 친구들을 데려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한국인 친구 3명과 진쥔과 함께, 중간고사를 끝낸 금요일에 영화를 보러 가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영화 보러가기 이틀 전, 저에게 이 영화를 추천해줬던 '류징'과 그 친구 '궈린'이 저를 맛있는 훠궈(샤브샤브 비슷한 요리)집에 데려가 훠궈를 사줬습니다.  그 자리에서 푸다오 선생과 함께 '난징!난징!'을 보러 갈거라고 했더니만, 이미 그 영화를 본 적이 있는 류징이 아주 자~~연~~스~~런~~ 태도로 영화 내용을 말해주는 사태가... ㅠㅠㅠㅠㅠㅠ 어흐흑...OTL
  그 친구는 곧 영화 볼 사람에게 영화 줄거리를 얘기해주면 김을 빼놓게 된다는 생각 없이, 자기 딴에는 저에게 정보를 주겠다고 얘기한 겁니다.  다소 느릿한 한국어로 진지한 표정 지으며 열심히 설명해주는 사람에게 '앗, 안 돼!  말하지 말아요...!'라고 할 수도 없어서 그냥 들었습니다. ㅠ.ㅠ   나중에 이 얘기를 다른 사람들에게 말했더니 박장대소하고... ^^

 


  
  중국 영화관과 영화표 가격


  금요일 점심 1시 반에 모여서 학교 근처에 있는 상점으로 학생 할인권을 구입하러 갔습니다.
  중국에 와서 신기했던 것 중 하나가, 영화관이나 KFC 같은 패스트푸드점의 할인권을 영화관 또는 KFC 매장에서 직접 나눠주거나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상점에 가서 구입해야 한다는 점이었습니다.  가령 어떤 세트메뉴가 원래 20위안이라면, 상점에 가서 할인권을 15위안에 사서 그 할인권 들고 KFC에 가서 내밀면 해당 세트메뉴를 먹을 수 있는 식입니다.

  중국은 한국과 달리 대학생도 학생할인을 받을 수 있는데, 할인폭이 생각보다 커서 놀랐습니다.  원래 60위안(한화 약 12,000원) 정도 한다는 영화표값이 학생증을 내보이면 달랑 11위안(약 2,200원)밖에 안 되니 말입니다.  (그런데 무슨 놈의 영화표값이 이리도 비싼지... 상대적으로 물가 비싼 우리나라에서도 8,000원인데, 웬 12,000원? -.-;;  그래서 저렴한 해적판 DVD가 판을 치는 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음.)

 

 

  영화관 이름은 모르겠는데, 우리나라로 치면 롯데 씨네마처럼 백화점 안에 있는 영화관이었습니다. 영화관 시설도 롯데 씨네마 수준은 되었습니다. 직원이 모니터로 좌석 배치도를 보여주며 남은 자리 중 원하는 좌석을 고르라고 하는데, 5명이 서로 여기가 괜찮다 거기는 아니다 하며 설왕설래 하다가 다소 오른쪽으로 치우진 좌석 5개를 골랐습니다. ^^

 

 

☞ 영화 배경과 영화 보게 된 계기만 설명하다가 정작 본론을 꺼내지도 못 한 채, 스크롤의 압박을 피해 이번 포스트를 마무리 짓습니다. ^^   허구한 날 숙제와 빨래에 치여 사는 신세인지라, 언제 '난징! 난징!'의 두번째 포스트를 올릴 수 있을런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이번 주 안에는 꼭 올리겠습니다.

 

 

난징! 난징! (南京! 南京!) - 2(http://blog.daum.net/jha7791/157905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