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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국영의 발견(5) - 백발마녀전(白髮魔女傳) 2 : 천하무적

Lesley 2008. 8. 24. 01:37

 

  한 때 아시아를 휩쓸었던 홍콩영화가 몰락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한번 대박 터진 영화가 있으면 그 속편을 마구잡이로 찍어대는 홍콩영화계의 풍토일 것이다.

  물론 미국의 헐리웃영화에서도 흥행대작의 뒤를 이어 전편만 못한 속편이 나오는 경우가 종종 있기는 하다. 하지만 홍콩영화의 속편은 그저 '전편만 못한' 수준이 아니라, '이 영화 만드는데 보름이나 걸렸을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주먹구구식으로 마구 만든 저급한 영화라는 점이 문제다.

  백발마녀전은 줄거리, 배우들의 연기, 감각적인 화면 등으로 완성도가 괜찮은 영화였는데, 이 영화가 흥행에 성공하자 바로 그 다음 해 '백발마녀전 2 - 천하무적'이란 제목의 엉터리 속편이 나왔다. 이 속편은 전편에 비해 그 질이 너무 떨어져서 다른 사람들에게 보라고 권하기도 난감한 영화지만, 기왕 전편에 대해 썼으니 속편에 대해서도 쓰겠다.

 

 

  이 영화는 그 제목부터 너무 이상하다. 

  백발마녀전은 어디까지나 멜로 부분이 주된 부분이고 무협은 멜로를 위한 장치일 뿐인데, 뜬금없이 '천하무적'이 뭐란 말이냐... -.-;;  영화를 다 보고나서도 왜 천하무적이란 부제가 붙었는지 알 수가 없다. 임청하가 가공할 무공을 지니고 수많은 사람을 마구잡이로 죽여서 천하무적이라는 건지, 임청하와 장국영의 뜨거운 사랑이 천하무적이라는 건지, 도통 알 수가 없다. 

 

 

  인터넷을 뒤졌더니, 백발마녀전 1편을 너무 괜찮게 보고 2편을 봤다가 너무 짜증났다는 감상문이 줄줄이 올라와 있다.

  그런데 그렇게 2편 보면서 황당해 한 사람들도 '마지막 10분'을 보고 모든 게 용서가 되었다고 했다. 왜냐? 영화 앞부분과 중간부분에 어설프게 잠깐 모습 비췄던 장국영이 마지막 10분에 드디어 제대로 등장하는데, 이 10분이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괜찮은 장면이며 이 영화의 본론이고 결론이기 때문이다. 그 이전에 나왔던 70~80분은 이 마지막 10분을 위한 서론일 뿐이다. -.-;; (역시 장국영이 최고...!!!)

  아무래도 장국영이 너무 바빠 속편에 출연 못 한다고 해서 신인들 한 무더기 데려다가(아이돌 스타로 보이는 젊은 배우들이 7, 8명 무더기로 나오는데, 종려제 빼고는 배우들 이름은 모르겠음.) 영화시간 대부분을 적당히 채우고, 마지막에 장국영을 반짝 출연시켜 제대로 된 장면 10분 정도 보여줬다는 느낌이다. -.-;;  

 

 

'백발마녀전 2 - 천하무적'에서 선보인 임청하의 독특한 머리 모양.

'백발마녀전 1'에서의 평범한 머리와는 달리 구루퍼를 넣은 듯이 동그랗게 말린 앞머리부터 심상치 않음.

마치 영화가 졸속이라는 것을 상징하는 듯 함... -.-;;

 

 

  비록 어설프고 어이없는 줄거리이긴 하나, 그래도 설명하자면...

 

 

  탁일항(장국영)에게 받은 마음의 상처 때문에 세상의 모든 남자들을 증오하게 된 연예상(임청하)은 '한 많은 여인네들의 한풀이 모임'(-,.-) 비슷한 집단을 만들어, 무림을 피로 뒤덮는다.

  즉, 남편에게 학대받고 술집에 팔린 여자 등 남자로 인해 고초를 겪은 여자들을 불러모아 신전 비슷한 곳에서 살면서, 남자들을 납치해다가 여자들을 위해 음악을 연주하게 하거나 여자들이 목욕할 때 때밀이 일을 시키는 등 부려먹는다. 그러다가 남자들이 자존심 세우며 반항하기라도 하면, '여자만 당하고 살아야 한단 말이냐?' 하면서 파리 잡듯이 간단히 죽여버린다. (상당히 과격하고 무서운 페미니즘... -0-;; ) 

  무당파는 무섭게 날뛰는 연예상 덕분에 씨가 마르게 될 판국인데, 그런 무당파의 마지막 남은 젊은 제자가 혼례를 치르게 된다. 철저히 경비를 섰건만, 혼인 첫날밤에 연예상이 와서 신랑은 반쯤 죽여놓고 신부는 납치해간다. 그래서 신랑과 신랑 또래의 무림 각 문파의 젊은이들이 신부를 구하려고 한바탕 계획 세우고, 연예상을 공격하고, 그러다가 신랑만 빼고 전부 죽어버리는 것이 이 영화의 주요 줄거리다. -0-;;

 

  그러다가 영화가 다 끝나가며 관객이 이 영화 관람에 투자한 돈과 시간을 아까워 할 무렵이 되면, 그 때서야 우리의 탁일항이 등장한다...!!!

  (탁일항 역의 장국영은 천설봉의 꽃을 지키고 있는 모습으로 아주 잠깐 달랑 2번, 그리고 이 마지막 10분에 등장하는 게 전부임. 그런데도 비디오 케이스에는 장국영이 임청하와 함께 주인공으로 나옴. -.-;;)

  탁일항이 연예상의 공격을 피하지 않고 큰 부상을 입으면서 10년간 고생해서 꺾은 천설봉의 꽃을 내밀자, 연예상도 그의 마음을 알게 된다. 하지만 이미 불바다가 되어 있던 신전에서 불덩이가 날라와 힘들게 꺾어 온 꽃이 타버린다...! (그게 어떤 꽃인데...! ㅠ.ㅠ)  더구나 연예상에게 묘한 감정을 품고 함께 떠나자고 했다가 거절당해 앙심 품은 여자가 연예상을 칼로 찌른다.

 

 

* 연예상을 찌른 여자는 1편에 나왔던 오삼계의 연인쯤 되는 사람이다.

  오삼계가 명나라를 배신하고 청나라에 투항한 것에 실망해서 오삼계에게 절연을 선언하고 자살을 기도했다가 연예상에게 구조되었다. (남자에게 학대당한 경우가 아닌데, 왜 이 '한 많은 여인네들의 한풀이 모임'에 들어온 건지 알 수가 없음. -.-;;)  보아하니 오삼계가 매국노가 된 원인이었던 애첩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인물인 듯 싶다.

 

 

  신전의 불길이 거세지고 여기저기 무너지지만, 탁일항과 연예상은 전혀 아랑곳없이 격렬하게 키스한다.

  그러면서 연예상의 머리가 다시 검게 변한다. 그렇게 두 사람은 함께 불길 속에 묻힌다...  (특히 머리가 검게 변한 후의 키스신은 왕가위 감독 덕분에 우리나라에서도 유행했던 스텝프린팅 기법으로 촬영했는데, 왕가위의 '열혈남아'의 공중전화 키스신 수준으로 멋짐. ^^)  

 

 

★ 혹시라도 이 영화를 보게 되실 분은 영화가 형편없다고 중간에 꺼버리지 말고, 마지막 10분을 위해 인내심을 갖고 기다리시기 바란다.  아니면 차라리 마지막 10분만 감상하시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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