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얼빈 생활기/'09~'10년 흑룡강대학 어학연수기

하얼빈 생활 중 재미있었던 작은 추억들

Lesley 2009. 12. 14. 20:43


  이 블로그 자주 드나드시는 온라인 벗님(바그다드카페님 ^^) 덕분에, 지난 3월 하얼빈에 도착한지 얼마 안 되었을 때 J군에게 벌어졌던 일이 떠올랐습니다.
  생각해보니 그 일 말고도, 그 동안 자잘하고도 재미있는 사건들도 제법 있었던 듯 하여, 그런 몇몇 사건들을 모아서 포스팅 해볼까 합니다.

 

 


 1. 화장실에 갇힌 J군

 

  먼저 위에서 언급한 J군의 사건...

☞ J군에 대해서는 하얼빈 생활기 중 초기 포스트인

   '룸메이트에 얽힌 사연(上) (http://blog.daum.net/jha7791/15790490)' 를 참조

 

  우리가 하얼빈에 막 왔을 때에는, 아직 푸다오도 후쉐도 구하지 못 했을 때라 모두들 학교 수업 빼고는 개별적인 일정이 없어서, 한국학생들끼리 몰려다녔습니다.
  그래서 식사도 대여섯명씩 뭉쳐서 우르르 몰려다니며 먹었는데, 한 번은 식사하러 가려고 모인 장소에 J군만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이 사람 저 사람 번갈아가며 전화해도 안 받기에, '피곤하다고 하더니만 잠들었나봐.' 하며 우리끼리 가서 밥을 먹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보니, 그 시간에 J군은 화장실 갇혀있었답니다. -.-;;

 

  중국의 자물쇠는 한국의 자물쇠와 다릅니다.

  한국 자물쇠는 잠금장치를 한 바퀴만 돌리면 잠기는데, 중국 자물쇠는 두 바퀴도 아니고 두 바퀴 반을 돌려야 합니다.  그리고 열 때에는 두 바퀴 반을 돌린 후, 다시 반바퀴를 거꾸로 돌려야 열립니다. (나 역시 기숙사 나와 학교 밖으로 이사 갔을 때, 그렇게 두 바퀴 반을 돌리는 현관문을 못 열어 생쇼를 했더랬지요... ㅠ.ㅠ)

  J군이 화장실로 들어갈 때는 어떻게 그냥저냥 잠겼는데, 나오려니 도무지 문을 열 수가 없더랍니다.  우리가 몇 번 전화를 했기에 방 안에 두고 온 핸드폰이 울리는 소리는 들었다는데, 화장실에 갇힌 상태니 받을 수가 있나... (정말 지못미다... -.-;;)
 
  핸드폰도 없고, 공교롭게도 아직 그 애 룸메이트 될 사람이 없어서 혼자 살 때라, 다른 사람에게 도움 청할 방법이 없고... 

  처음에는 한국어로 '도와주세요' 했는데 대답하는 이는 아무도 없고...^^;;  그 층이 중국정부 장학생들 사는 층이라 아프리카나 중앙아시아 출신 학생들이 많아서, 나중에는 'Help me'라고 소리쳤다고 합니다. ^^
  그래도 아무런 소용이 없자, 손재주가 있는 J군...  마침 화장실에 있던 물건들을 이용해서 자물쇠를 해체했습니다. -.-;;  그런데 겨우 해체했더니만. 해체한 부분은 자물쇠의 겉부분일 뿐이고 잠금장치는 그 안에 따로 이중으로 되어 있어서 손을 댈 수가 없더랍니다. -0-;;
  그래서 고민을 하다가 영화에 흔히 나오는 장면, 주인공이 악당을 피해 화장실에 숨었다가 천장의 환기구 통해 탈출하는 장면을 떠올린 겁니다.  변기 뚜껑 닫고 그 위에 올라 환기구를 여는데는 성공했는데, 도무지 자기 몸이 들어갈 크기가 아니더랍니다. ^^;; (나중에 우리 만나서 하는 말이 '영화는 다 거짓말이다. 그 크기로는 몸집 작은 여자애들도 못 빠져나간다'라고 하더군요. ^^)


  다시 목이 터져라 'Help me'를 외쳤는데, 다행히 그 층에 사는 다른 나라 유학생이 지나가다가 그 소리를 듣고 프론트 데스크에 말을 해줬습니다.  덕분에 J군은 2시간 만에 화장실에서 나왔습니다. 
  그리고 J군은 나중에 이 사건을 '중국어 말하기 대회'에서 이야기하여, 자신이 참가한 등급 학생들 중 1등을 했습니다. ^0^ 

 

 

 2. B가 일으킨 '우리 자자' 사건

 

  지난 학기 마치고 귀국한 B는 성격이 활발하여 낯을 가리지 않습니다.
  지난 학기 흑룡강대학의 대외한어과와 한국어과 학생 중 B를 모르는 사람이 없다는 소문이 들 정도로, 중국학생들을 폭 넓게 사귀었습니다.

 

  그런 B가 의상학과 다니는 '쥬뺘오'란 친구와 QQ(중국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메신저 프로그램) 번호를 교환하고, 가끔 QQ로 대화를 나누곤 했는데...
  어느 날, 그 날도 한참을 QQ로 얘기하다보니 시간도 늦었고 피곤하기도 해서, '피곤하다. 이제 우리 자자'라고 했는데, 상대방은 '허걱~~~~'하는 반응을...!! (참고로 쥬뺘오는 남학생임.)   쥬뺘오가 '우리 자자'라는 표현에 기겁한 거지요. ^^  물론 쥬뺘오는 B가 이상한 의미로 그런 말을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B가 외국인이라 중국어 서툰 것도 알고, 앞뒤 상황을 봐도 그런 야릇한 의미가 아니라는 것은 알 수 있었던 거지요.
  어쨌거나 쥬바뺘오는 정색 하면서 그런 말은 오해 불러일으킬 수 있으니 하면 안 된다고 말해줬고, B는 저한테 전화해서 '언니, 나 또 사고쳤어요~~~'라고 하고... ^^

 

  나중에 푸다오 선생인 진쥔에게 이 사건을 이야기 해줬더니, 중국에서는 보통 '우리 쉬자'라고 하지 '우리 자자'는 표현은 안 쓴다고 합니다.

  그렇게 말하면 다른 뜻으로 오해받기 쉽다고...  한국에서처럼 '자자'란 말에 '쉬자'란 의미가 들어있지 않은 모양입니다. 

 


 3. '함께 잠을 잔다'의 의미는?

 

  이 사건도 바로 위의 B가 겪은 것과 비슷한 사건입니다. (아니, 안 비슷한가... -.-;;)
 
  진쥔이 아직 졸업하기 전, 이사 날짜를 잡고서 이사 도와줄 친구들에게 이사 후에 카레덮밥을 대접한다고 함께 중양홍에 가서 재료를 사자 했습니다.

  다녀오는 길에, 내가 그 무렵 흑룡강 대학에 막 도착한 미국 정부에서 보낸 어학연수생들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진쥔 역시 미국에서 온 어학연수생들에 대해 알고 있었습니다.

 

  진쥔의 말인즉슨, 한국이나 일본처럼 중국어 학습자층이 두껍지 않은 미국에서는, 정부 차원에서 중국어 학습자를 키워낸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미국 정부가 키워내는 어학연수생들이 여름에 겨우 2달 정도만 연수를 받으러 온다 합니다.  아무래도 미국 정부에서 흑룡강 대학에 많은 돈을 주고 공부시키는 학생들이라, 흑룡강 대학에서도 굉장히 신경을 많이 쓴다 했습니다.  일단 외국인끼리 한 방을 쓰는 일반 어학연수생들과는 달리, 이 미국 학생들은 중국 학생(그것도 그냥  중국학생이 아니고, 대외한어 전공자 중 최고 수준의 학생들)과 1:1로 짝이 되어 한 방에 머물며 함께 공부하고, 함께 쇼핑 다니고, 함께 밥 먹고,  함께 잠을 잔다(이 부분 주의!)고 했습니다.  그래서 겨우 2달 연수를 받는데도 중국어 실력이 빠르게 향상된다고 했습니다.

 

  문제는 진쥔의 말 중 '함께 잠을 잔다'는 부분이었습니다.
  내가 '함께 잠을 잔다는 의미가...' 하며 말꼬리를 흐렸더니, 내가 무엇을 생각하는지 눈치 챈 진쥔이 빨개진 얼굴로 "무슨 생각 하는 거야? 룸메이트인데 당연히 동성끼리지...! 학교에서 남학생이랑 여학생을 한 방에 배정해 줄 리가 없잖아...!" 라고 말하고... (이 때 진쥔의 표정이 어찌나 복잡한 표정인지 뭐라고 표현할 수가 없음. 굳이 설명하자면 '당황스러움 + 어이없음 + 웃김 + 난처함'이 뒤범벅된 표정이었음.  -.-;;)

 

  나    : 미안해~~~ 나 한국에 있을 때는 정상이었는데, 하얼빈 오고서 점점 이상해지는 것 같아~~~

  진쥔 : 도대체 하얼빈의 무엇이 너를 그렇게 이상하게 만들었는데...!

  나    : 나도 몰라~~~ -.-;;


  이 곳에 와서 일부 남자 유학생들이 이성관계에서 처신을 잘 못 해서 자기 나라 망신 다 시키는 걸 몇 번 본 터라, 나도 모르게 그런 엉뚱한 상상을 했습니다.

  아니, 이쯤 되면 상상이라고도 못하고, 망상이라고 하는 게 맞을 듯... ㅠ.ㅠ  나 역시 진쥔의 말을 듣고 보니, 내가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망상을 했나 싶어 어이가 없고...  이 무렵 하얼빈 날씨가 미쳐서 수시로 폭우가 쏟아지고 천둥번개가 꽝꽝 거리더니만, 아무래도 내가 그런 날씨 탓에 잠시 정신줄을 놓았던 듯 합니다. ㅠ.ㅠ

 

 

 4. tou(비친다)와 hou(두껍다)

 

  지난 여름 쓰촨성 여행을 가서 진쥔의 집에 머물 때, 진쥔과 진쥔 엄마와 함께 외출을 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진쥔과 내가 한 전동 자전거에 같이 탔는데, 진쥔이 모는 전동 자전거의 전기가 거의 떨어져가서, 내가 진쥔 엄마가 운전하시는 전동 자전거 뒤편으로 옮겨 탔습니다. (쓰촨성은 하얼빈과는 달리 전동 자전거나 오토바이를 일반 가정에서 통근 또는 통학용으로 타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음.  그리고 한국과는 달리 여자들도 출퇴근용 또는 장보기용으로 전동 자전거나 오토바이를 타는 경우가 많음.)

 

  그런데 원래 이 날 진쥔은 자기 엄마가 사주신 티셔츠 입었다가, 옷감이 얇아 살이 너무 비친다고 다른 티셔츠로 갈아입고 외출을 했습니다.

  딸과 나란히 전동 자전거 몰다가, 뒤늦게 딸이 입은 티셔츠가 자신이 사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아신 진쥔의 엄마 ...

 

  진쥔 엄마 : 왜 내가 사준 옷 안 입었니?
  진쥔        : 너무 비쳐서(tou) 못 입어요.
  진쥔 엄마 : 그게 두껍다고(hou)?  

                 (전동 자전거 모터 소리와 바람 가르는 소리에, tou를 hou로 잘못 알아 들으신 상황임. ^^;;)
  진쥔        : 두꺼운 게 아니라 비친다구요.
  진쥔 엄마 : 여름옷인데 그 정도는 되야지, 안 두꺼워.
  진쥔        : 두꺼운 게 아니라 비친다니까요...!
  진쥔 엄마 : 하나도 안 두껍던데...
  진쥔        : 비친다구요, 비친다고...!!!  왜 못 알아들어요?  엄마 중국인 아니에요??? 

                 (계속되는 엄마의 사오정식 반응에, 진쥔이 왕짜증 난 상황임. ^^)

 

 
  귀국까지 아직 한 달 반이 남아 있습니다, 한 달 반이라는 시간이 길다면 길다고 할 수 있는 시간이건만, 또 한 해가 저물어가고 있기 때문일까요?  어째 이 곳에서 겪었던 자잘한 일들이 자주 떠오르며 추억에 잠기게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