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얼빈 생활기/'09~'10년 흑룡강대학 어학연수기

막 나가는(?) 푸다오 / 중국 대학원 시험 교재

Lesley 2009. 12. 3. 19:56

 

 

  지난 일요일(11월 29일) 오전 중에 HSK를 치렀더니 너무 피곤해서, 그냥 자고만 싶었다.

  하지만 저녁에 J군이 나와 우리들의 후쉐인 '양'에게 한 턱 쏜다고 하여 낮잠을 잘 수가 없었다.  몸이 천근 만근 같은 것이, 침대에 한 번 누우면 약속 시간 때까지 못 일어나고 계속 자게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억지로 눈 뜨고 버티다가, 저녁에 두 사람을 만나 쉐푸쓰따오제(學府四道街)에 나가 오래간만에 훠궈를 먹었다.  추운 날씨에 뜨끈뜨근하고 매콤한 국물요리인 훠궈를 잔뜩 먹었더니, 그렇잖아도 피곤한 몸이 더 늘어졌다.  집에 와서는 대강 씻고 시체처럼 뻗어서 자느라 다음 날인 월요일(11월 30일) 오전 수업도 빼먹고, 해가 중천에 뜬 때에야 겨우 일어났다. -.-;;

 

  그렇게 늘어지게 잤더니 머리도 멍하고 몸도 찌뿌뚱 하여, 월요일 오후 진쥔과의 푸다오 수업 시간에 해가야 하는 작문숙제는 겨우 절반 밖에 못 했고, 읽기 예습은 아예 못 했다. -.-;;

  이렇게 아무 것도 준비 안 하고 푸다오 수업 받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해서, 그 날 하루 푸다오를 그냥 넘길까 하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지난 주 2번의 푸다오를 모두 못 해서(월요일은 진쥔의 사정으로, 금요일은 내가 HSK 벼락치기 하느라고...) 진쥔 얼굴을 1주일 내내 못 봤기 때문에, 진쥔 얼굴이나 보자 하며 갔다. (원래 푸다오 받으러 가는 목적은 공부인데, 이건 어째 좀... ^^;;)

 

 

 


  그런데 1주일만에 만났더니만, 그 동안 나와는 달리 열심히 대학원 시험 공부하던 진쥔의 상태도 나랑 똑같이 변해있었다. -.-;;
  대학원 시험이 한 달 반도 안 남았건만, 진쥔의 집에 일이 생겨 그 일처리에 필요한 서류 때문에 몇 번이나 관공서 드나들면서, 그만 공부의 맥이 끊겨버린 것이다.  그렇다고 원래 공부에 썼어야 하는 시간을 투자한 그 관공서 일은 잘 되었느냐, 그것도 아니다. -.-;;  나도 두 차례 이사한면서 외국인주숙등기 때문에 중국 경찰서 갈 때마다, 그 느려터진 일처리에 아주 학을 떼었다.  그러면서도 '원래 우리나라 일처리가 유별나게 빠른거지.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는데, 여기서는 여기에 맞게 적응하며 살아야지.' 하며 스스로를 달랬다.  하지만 진쥔의 입에서 '도대체 관공서의 일처리는 왜 항상 이 모양이냐, 공무원들이 밥만 축낸다' 라는 소리가 터져나오는 걸 보니, 중국의 상황에 익숙한 중국인들조차 중국 관공서의 엄청 느리고 복잡한 일처리에 속에서 열불이 나는 모양이다. ^^;;

 

  어찌되었거나 그 일에 발목 잡힌 진쥔은 지난 주 내내 공부를 못 했고, 덕분에 이제는 공부가 아예 하기 싫어져 버렸다...!

  이 날 하는 행동을 보니 푸다오 수업도 하고 싶은 마음 없는 듯 했다.  평소 같으면 내가 푸다오 내용이랑 상관없는 이야기를 꺼내면, 우리 대화가 지구를 벗어나기 전에 진쥔이 이야기 방향을 다시 원래 공부하던 쪽으로 돌리곤 했다.  하지만 이 날은 오히려 진쥔이 나서서 우리 이야기를 지구를 벗어나 아예 안드로메다로 향하게 했다. -.-;; 

  푸다오 받기 싫은데 오래간만에 진쥔 얼굴이나 보자고 간 나나, 역시 대학원 시험 공부고 푸다오 수업이고 다 하기 싫어서 나를 말동무 삼으려는 진쥔이나...  (학생도 선생도 모두 공부하기 싫어졌으니, 이를 어쩌면 좋단 말인가... ㅠ.ㅠ)


  결국 이 날은 푸다오 수업 진도 안 나가고, 진쥔이 최근 구입했다는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 중 여불위(呂不韋)가 나오는 부분과 진쥔의 대학원 시험 교재를 살펴보는 걸로 때웠다. ^^;;

  진쥔이 사기를 함께 읽자고 하기에 '나는 읽기 싫으니까, 네가 읽어.  그러면 나는 들을게.' 라고 했더니 진쥔 표정이 딱 이렇게 → -.-;; 변했다. (이제 아주 막 나간다~~~ ^^;;)  그래도 여불위가 나오는 부분은 한글판으로 읽어본 적이 있어서, 그 부분을 처음 읽어본다는 진쥔이 중간에 해석이 막힐 때면(현대 중국어로 번역된 책이 아니라, 고문(古文)을 현대 중국어로 해석하며 읽어야 함) 옆에서 나름 코치(?)도 했고...  그렇게 여불위 나오는 부분을 진쥔이 90%, 나는 10% 정도 번역한 후에, 진쥔이 공부 중인 대학원 시험 교재를 살펴보게 되었는데... 

 


  대학원 시험 교재를 뒤적이다가 너무 재미있는 것을 발견했다.  바로 '정치' 과목 중 '올바른 연애, 혼인관의 수립'이라는 항목이다...! ^^

 

문제의 '올바른 연애, 혼인관의 수립' 부분...!! 


  '정치'라고 하기에 당연히 중국의 정치제도나 정치사나 그런 게 나오는 줄 알았더니만(실제로 대부분은 그런 내용임), 이런 특이한 것도 포함되어 있을 줄 몰랐다.

  '애정의 본질과 연애 중의 도덕'이라는 소항목 아래를 훑어보니, '연인끼리 서로의 인격을 존중해야 한다', '애정이라는 것도 결국 도덕의 구속을 받는다', '한 사람을 사랑하고, 다른 사람에게서 사랑을 받는 데에 대해서, 서로 책임을 져야 한다'라고 하는데, 그만 빵 터져버렸다. ^0^  진쥔은 원래 작년까지만 해도 이런 부분은 시험범위에 포함되지 않았는데, 도대체 누가 이런 쓸데없는 걸 시험범위에 집어넣었는지 모르겠다며 너무 싫다고 했다.  내가 '네가 나중에 결혼해서 부부싸움 하게 되면, 이 책 보면서 해결방법 찾는거냐?'라고 했더니, 진쥔도 막 웃고... ^^

 

  올해부터 대학원 시험 정치 과목에 뜬금없이 연애와 혼인에 대한 것이 포함된 이유가, 가정을 중국식 사회주의의 최소단위로 여기고, 그 최소단위부터 기강을 잡아보겠다는 의도 때문인 듯 하다.  하지만 이미 세상이 많이 바뀐 지금, 이런다고 학생들이 눈이나 꿈쩍하려나 모르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