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얼빈 생활기/'09~'10년 흑룡강대학 어학연수기

너무 귀찮은 빨래하기 / 흑룡강대학의 세탁기

Lesley 2009. 11. 26. 20:10

 


  난생 처음 보는 HSK가 사흘 앞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이번 학기 들어 유난히 복잡한 일들이 많아서 도무지 공부에 열중할 상황이 아니었다. (하긴 독하게 마음 먹었으면 공부 왜 못 했겠냐, 결국 변명이다...ㅠ.ㅠ)  게다가 이런저런 일로 내 마음은 허공을 헤매는 중이고, 정신은 지구에서 안드로메다까지 하루에 12번씩 왕복하는 상황이다.ㅠ.ㅠ  이럴 줄 알았으면 돈이나 아끼게 신청 안 할 걸 그랬다는 생각도 들고... 에구구...

  이제는 어쩔 수 없다.  어차피 내년부터 HSK 형식이 확 바뀌어버린다 한다. 현행 HSK로는 마지막인 이번 시험을, 내 중국어 실력이 현재 어느 수준까지 왔나 확인하고, 앞으로 어느 부분에 중점을 두어 공부해야 하나 점검하는 수단으로 삼아야지...
  그래도 어찌되었거나 시험이 코 앞에 닥쳤는데 벼락치기라도 하자 했으나, 또 다시 내 발목을 잡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세탁 문제...!! ㅠ.ㅠ

 

  수업 끝내고 집에 돌아와 밥을 먹었는데, 추운 밖에 있다 따뜻한 안으로 들어오기도 했고 밥도 먹어 몸이 나른해졌다. 까딱하면 낮잠 자게 되겠구나 싶어, 졸음 쫓을 겸 모아둔 빨래거리를 해결하려 했다.  처음에 세탁기에 물을 받을 때만 해도 세제를 푼 상태라 몰랐는데, 나중에 빨래감을 헹굴 때 보니까 뭔가 이상한 거다.  알고 보니, 물 색깔이 완전히 뿌연 것이 우유빛깔이다. ㅠ.ㅠ 
  요즘 들어 유난히 물상태가 안 좋은 듯 하다.  전에도 가끔 이런 일이 있었는데, 10분 이상 물을 그냥 흘려버리면 괜찮았다.  하지만 오늘은 그런 방법도 소용 없다.  게다가 어제 저녁에는 온수를 쓰려니 녹물이 나와서 한참을 흘려버렸는데도, 색깔이 좀 흐려지기만 했을 뿐 계속 녹물이 나와, 결국 샤워는 포기하고 머리만 감았다. (이 집으로 이사온 뒤 두피에 부스럼 같은 게 자꾸 생기고, 가려운 게 다 이유가 있었던 듯... -.-;;)  아마도 요즘 들어 더 요란벅적해진 학교 주변의 지하철 공사 때문이 아닐까 추측해 볼 뿐이다.

 

  어찌되었거나 그 뿌연 물로 세탁을 계속 해야 하나, 아니면 이미 세제 푼 물로 빨고 헹굼까지 한 번 한 빨래감을 그냥 둔 채 물이 깨끗해질 때까지 기다려야 하나 고민했다.  그런데 마침 지난 학기 친하게 지내다 귀국한 M이 전화를 했기에, 이 일을 어찌해야 할 지 물어봤다.  M 왈, "언니, 언니야 기숙사에서 살 때 사람 없는 9층에서 지내 괜찮았던 거지, 우리는 툭하면 그런 물 나와서 얼마나 짜증났는데요. 한국 오니까 깨끗한 물로 샤워할 수 있어 얼마나 좋은데... 그냥 빨든지, 통에 물 받아서 찌꺼기 가라앉힌 다음에 바가지로 윗물만 떠서 쓰던지 해요."  결국 더러운 물로 그냥 대강 세탁했다... ㅠ.ㅠ

 

  이렇게 오늘 낮에 세탁 문제 때문에 고생한 김에, 중국에 와서 겪은 세탁에 얽힌 사연들을 풀어볼까 한다.

 

 

  1. 흑룡강대학 기숙사 시절

 

  지난 3월에 흑룡강대학에 막 도착했을 때, C취 유학생 기숙사는 모든 게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2월에 있었던 동계 유니버시아드 대회 때 흑룡강대학의 C취 유학생 기숙사를 선수촌으로 썼는데, 선수들이 떠난 후 기숙사 정리를 안 한 상태에서 유학생들을 맞았기 때문이다.

  그 문제점 중 하나가 세탁기를 치워버려서, 학생들이 세탁기 이용을 못 했다는 점이다.  덕분에 한동안 모두들 손빨래 하며 살았다.

 

  그러다가 3,4주쯤 지나서, 드디어 층마다 세탁기가 하나씩 생겼다.  문제는 이 세탁기가 아~주~ 단순한 녀석이라는 점이다. -.-;; 

  많은 유학생들이 사용하는 거라 복잡하고 섬세한 녀석 데려다놓으면 얼마 못 가 고장날 것을 예상했는지, 다른 기능 하나도 없고 작동시키면 무조건 '세탁→헹굼→탈수'의 단계를 다 거치게 되는 무식한 녀석을 가져다 놓았다.  즉, '탈수'만 하고 싶다든지, 세탁 강도를 약하게 한다든지 하는 기능이 아예 없다.

 

  게다가 무식한 게 힘만 좋다고, 세탁 강도는 어찌나 센지... -.-;;

  B는 기숙사 세탁기로 청바지 몇 번 빨았더니 허벅지 부분에 500원짜리만한 구멍이 생겼다. (나중에 의상학과 다니는 이 애의 중국 친구가 그 구멍에 코알라가 그려진 천을 덧대 재봉틀로 박아줬음. ^^)  M은 한국에서는 몇 번을 빨았어도 문제 없었던 티셔츠 앞부분의 그림이, 여기서는 한 번 세탁할 때마다 우수수 떨어져나가는 일을 겪었고...  이번 학기 수업시간 내 짝인 T군은 지금 속옷들의 상태가 엄청 민망한 상태라고 했다. -.-;;  두 학기째 기숙사 세탁기 이용했더니 속옷이 너덜너덜해져서, 귀국할 때 몽땅 버리고 간다 했다.  
  그래도 이런 지나친 세탁기의 성능과 안 좋은 물 상태에 대해 미리 들어서, 귀국할 때 옷을 버리고 갈 생각하고 낡은 옷을 가져온 사람들은 괜찮다.  M같은 경우는 그런 사정을 잘 몰라서 꽤 괜찮은 겨울 패딩점퍼를 가져왔는데, 한국에서는 몇 번이나 물세탁 해도 괜찮았다고 여기서도 물세탁했다가 겨우 한 철 입은 비싼 점퍼 하나 하얼빈에 내버리고 갔다. -.-;;
 

  그래서 나는 지난 학기 내내 돈도 아낄 겸(세탁기는 무료로 이용하는게 아니라, 돈 내고 카드 충전하여 그 카드로 사용함.) 열심히 손빨래를 해댔다.
  처음에는 요령이 없어 청바지까지 무식하게 손으로 빨아 손이 저릴 지경이었는데, J군이 군대에서 쓰는 방법이라며 발로 밟아 빠는 법을 알려줘서, 좀 더 수월하게 빨게 되었다.  그렇게 빤 청바지를 손으로 대강 짠 후 욕실 철봉에 몇 시간 널어두면 물기가 거의 빠진다.  그러면 다시 집게 달린 옷걸이 이용해서 창문틀에 걸쳐두면, 난방 해주는 겨울에는 하룻밤에, 난방 안 해주는 때는 이틀 정도에 다 마른다.
  하지만 그렇게 힘들게 손빨래를 했고, 그리고 내 딴에는 최대한 옷을 안 망가지게 한다고 우리나라로 치면 울샴푸 비슷한 세제 사다가 썼건만...  두 달 쯤 지나고나니 합성섬유로 된 티셔츠나 조끼 같은 건 보풀이 잔뜩 일어나고 소매 끝이 너덜너덜 해져서, 7,8년은 입은 것 같은 꼴이 되었다. -.-;;

 

 

  2. 외주 시절(1) - 첫번째 집

 

  여름방학 시작하고 얼마 안 되어, 기숙사를 나와 학교 밖에 있는 아파트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 아파트에서 만난 세탁기는 기숙사 세탁기와는 비교가 되지 않게 좋았다.  사실 한국에서 봤더라면 '그냥 그렇군' 했을 중간급의 세탁기였다.  하지만 기능이 달랑 하나 밖에 없는 기숙사의 형편없는 세탁기를 보다가 그런 평범한 세탁기를 보니, 세탁기 몸체에서 빛이 나는 듯 했다. -.-;;  세탁 단계를 뛰어넘어 헹굼이나 탈수만 하는 것도 가능하고, 물의 양을 조절하는 것도 되고...
  덕분에 그 집에서 사는 동안 손세탁에서 해방되어, 한국에서도 손세탁 했던 옷까지 세탁기로 빨았다. (이미 기숙사에서 생활하며 다 망가진 옷들이라 굳이 애써서 손빨래 할 필요를 못 느꼈음. -.-;;)

 

 

  3. 외주 시절(2) - 두번째 집

 

  바로 지금 내가 사는 집이며, 내년 2월 초에 귀국할 때까지 계속 살게 될 이 집에서 세탁기를 봤을 때 속으로 '오, 마이 갓'을 부르짖었다...! ㅠ.ㅠ  이 집의 세탁기가 어떤지에 대해서는 이미 포스팅을 했기 때문에('새 집에서의 2박 3일(http://blog.daum.net/jha7791/15790606)') 구구절절 설명하지는 않겠다.


  나중에 푸다오 시간에 공부하다가 진쥔에게 이 집 세탁기 얘기를 했더니, 의외로 진쥔은 '그게 뭐 어때서?'란 반응이었다.

   알고 보니 지금 진쥔이 사는 집의 세탁기도 내가 사는 집의 세탁기와 같은 반자동 세탁기였다. -.-;;   진쥔이 세 낸 집에는 세탁기가 없어서 중고 세탁기를 하나 사게 되었다.  그런데 어차피 지금 준비 중인 대학원 시험 1차 결과가 나오는 3월 또는 4월에 하얼빈을 떠나야 하기 때문에, 가장 저렴한 것을 사려니 그 세탁기를 사게 되었단다.  그리고 자신은 대학 4년 내내 기숙사에서 손빨래 하며 살아서, 그 정도 세탁기로도 만족한단다. (중국학생 기숙사에는, 유학생 기숙사에 있는 그런 허접한 세탁기조차 없다고 함. -.-;;)

 

 

 

  흑룡강대학으로 어학연수 오실 분에게 강력히 권한다...!
  제발 비싸고 좋은 옷이나 새로 산 옷 들고 오지 마시고, 함부로 다뤄도 되는 종류의 옷, 그리고 이미 몇 년 입어 버려도 상관없는 옷을 가져오시기 바란다.  그래야 초강력 세탁기, 안 좋은 수질 상태, 독한 세제 등으로 옷이 망가져 버리게 되어도 아깝지 않다.  어차피 귀국할 때 되면 여기서 구입한 책이라든지(중국 원서를 한국의 서점에서 구입하려면 여기 가격보다 2배 이상 줘야 함.), 가족이나 친구에게 줄 선물 몇 개만으로도 짐이 꽤 늘어난다.  그 때 가방 안에 그런 짐들을 넣을 공간을 확보하려면, 옷 종류라도 처치해야 한다.
  그리고 겨울 패딩점퍼나 코트 등 질이 괜찮은 옷을 버리게 되는 경우에는, 버리기 전에 기숙사에서 청소하시는 푸우위엔 아줌마들에게 '이거 버리려고 하는데 어디에 버려요?'라고 한 번 물어보시기 바란다.  정말로 버릴 장소를 몰라 물어보라는 게 아니고, 아무래도 청소 담담 아줌마들이 경제적으로 넉넉한 분들이 아니라, 그런 옷들을 원하시는 경우가 제법 있기 때문이다. (어차피 한국 학생들이 그런 옷 버릴 때는, 옷의 '기능'에 문제 있어 버리는 게 아니라, 옷의 모양이나 색깔이 망가져 버리는 것이라, 입기에는 문제 없음.)  자신에게 필요없는 물건인데 다른 사람에게 유용하게 쓰인다면,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주는 것도 괜찮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