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얼빈 생활기/'09~'10년 흑룡강대학 어학연수기

하얼빈의 자연 냉동고 / 하늘에서 뚝 떨어진 대파

Lesley 2009. 12. 7. 22:33

 

 

  북쪽에 위치한 하얼빈의 날씨는 11월 들어서부터 최고기온이 영하일 정도로 추워졌다.
  덕분에 길거리 다니다보면, 바닥에 비닐이나 나무판자 하나 깔아두고 그 위에 아이스크림(슈퍼마켓에서 파는 그런 일반 아이스크림)을 얹어 파는 광경을 종종 볼 수 있다.  어차피 한낮에도 영하 7, 8도인데, 굳이 전기료 물어가며 냉동고를 이용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 

 

  나 역시 이런 자연 냉동고를 이용하고 있다.
  지금 사는 집의 냉장고의 냉동고가 어째 시워찮아서 고기나 아이스크림이 제대로 얼지를 않는다. (혹은 온도를 조절하는 기능이 따로 있는데, 내가 모르고 있는 건지도... -.-;;)  그래서 학교 앞 중양홍에서 고기를 한 두 근씩 사다가 여러 번 나눠먹을 수 있게 몇 조각으로 토막낸 후, 비닐봉투에 넣어 부엌 옆 베란다 창문 밖에 매달아둔다. 

 

우리집 부엌의 자연 냉동고.

 

  가끔은 고기 뿐 아니라, 아이스크림을 몇 개씩 사다가 저런 식으로 보관한다. ^^

 

 

 

  그런데 지난 주에 그렇게 베란다 창문에 매달아 둔 고기를 꺼내려다가 뜻밖에 횡재를 했다.
  베란다 창문 밖으로 빨래나 화분을 걸쳐놓을 수 있는 지지대 같은 게 있는데, 그 위에 뜬금없이 대파 하나가 있는 것이다...!  아마 윗집의 베란다에 걸쳐놓았던 대파가 떨어진 듯 하다.  여기 하얼빈은 북쪽지방이라 겨울이 일찍 오고 또 길기도 해서, 겨울이 되기 전에 사람들이 배추와 대파를 잔뜩 사다가 집에 쟁여놓고 두고 두고 말려가며 겨울 내내 먹는다. (☞ '하얼빈의 월동준비 - 배추, 파 말리기

(http://blog.daum.net/jha7791/15790600)'  참조)  윗집에서 그렇게 베란다에서 말리던 대파를 밑으로 떨어뜨린 듯 하다. 

 

난데없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대파.

 

  사이좋게 누워있는 대파 패밀리(?)을 소개하자면...

  오른쪽에 제일 커다랗고 하나도 안 다듬은 녀석이 문제의 그 대파다. ^^  여기 중국 동북지방의 대파는 말 그대로 '대(大)파'라,  진짜 큼직큼직하게 생겼다. ^^
  왼쪽의 대강 다듬어 말린 대파 3개는 푸다오 선생 진쥔이 나눠준 것이다. 지난 달에 대파를 25근이나 산 후 혼자서는 다 못 먹는다며 나한테 8개를 줬는데,  한달 내내 먹고 남은 것들이다.
  어찌되었거나 갑자기 생긴 대파를 신나서 부엌 안에 들여놨는데, 최저기온이 영하 20도인 바깥에서 며칠이나 있던 녀석을 따뜻한 실내에 들여놨더니 금새 눅눅해졌다.  시간을 끌면 상할 듯 하여 돼지고기랑 김치 섞어 엉터리 제육볶음 만들면서, 저 큼직한 대파 하나를 통째로 다 썰어 넣어 먹었다.  덕분에 양치질을 하고도 한 동안 입 안에서 대파 냄새가 가시지를 않았다. ^^

 

 

 

  정말이지, 길에 그냥 아이스크림을 내놓고 파는 광경이라든지, 엄청나게 많은 대파나 배추를 바닥에 깔아놓거나 복도 또는 베란다 천장에 매달아놓는 광경은, 하얼빈 같은 북국(北國) 아니면 절대로 볼 수 없는 광경이다.  이제 귀국이 두 달도 안 남았는데, 한국에 돌아가서도 하얼빈의 이런 독특한 겨울 풍경은 두고 두고 기억에 남을 듯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