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얼빈 생활기/'09~'10년 흑룡강대학 어학연수기

하얼빈 생활 중 중국어에 얽힌 번거로움

Lesley 2009. 11. 9. 00:11

 

 

  타국살이를 하자면 이런저런 어려움이 있지만, 당연히 가장 큰 어려움은 '언어 문제'이다.
  고국살이에서는 그저 일상적인 자잘한 일일 뿐인 것들이, 그 놈의 언어 문제 때문에 타국살이에서는 '자잘한 일'이 아닌 '번거로운 일'이 되기 일쑤이다.  어떤 일을 처리하려 할 때에는, 그 전에 반드시 미리 전자사전 두들기고 인터넷을 검색하여 일 처리에 필요한 단어나 표현을 숙지해야 한다.  그나마 단어나 문장 몇 개 찾아 그 발음 몇 번 되풀이하여 외우는 걸로 해결되는 거라면 비교적 간단한 상황이다.  전자사전이나 인터넷에서도 적절한 단어를 못 찾거나, 혹은 단어는 찾았어도 그걸 응용해서 적절하게 표현하는 법을 알 수 없는 경우에는 일이 꽤 복잡해진다.  한국에서 같으면 한 두 문장만으로 간단히 끝낼 수 있는 말을, 아주 장황하게 풀어서 말해야 하는 경우가 한 두 번이 아니다.

 

  이번 포스트에서는 그 동안 겪은, 일상 속에서 일어나는 자잘한 일 한 번 처리하기 위해 중국어로 산전수전 다 겪는 상황 몇 가지를 소개할까 한다.

 

 

 

1. 은행에서 통장 정리하기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중국의 은행 ATM은 통장정리 기능이 없다. 그래서 현금카드 이용해서 계속 예금을 인출하고 나면, 통장을 한 번 정리할 필요를 느끼게 된다.

 

  지난 학기말에 통장정리를 하러 학교 가까이에 있는 중국은행에 갔다.

  그런데 막상 은행 안에 들어가 전자사전을 찾아보니 '통장정리'에 해당하는 단어가 없는 것이다. -.-;;  그러니 어쩌겠나, 내가 원하는 바를 쭉 풀어서 설명하는 수 밖에... 
  한국에서 같으면 '통장정리 해주세요.'라는 간단한 문장으로 끝낼 수 있는 일을 '나는 이 통장 안에 돈이 얼마나 들어있는지 알고 싶습니다.'라고 간접적(?)으로 말해야 했다.  내 통장을 정리해주던 중국은행의 여직원은 자기 딴에는 웃음을 참으려고 이까지 악물었지만, 결국 못 참고 쿡쿡거리며 웃을 뿐이고... ㅠ.ㅠ
 
  지난 학기 마치고 귀국한 M이 귀국하기 전에 겪은 일도 떠오른다.

  M이 중국은행 계좌를 해약하고 그 안의 돈을 모두 인출하려고 은행에 가서는 '실례합니다. 나는 외국인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말해야 할 지 모르겠습니다. 나를 도와주십시오. 이것(이 친구는 입문반이라 '통장'이란 단어를 몰라서 그냥 '이것'이라고 표현했다 함. ^^;;) 안의 돈을 전부 나한테 주십시오.' 라고 거창하게 말했다고 해서, 내가 엄청나게 웃으며 놀렸다. 

  그런데 입문반인 M이나 중급반인 나나, 결국 실제상황에서 쓰는 중국어는 거기서 거기인 듯 하다. ^^;;

 


2. 인터넷 수리하기

 

  지금 살고 있는 집으로 이사한 다음 날 인터넷에 문제가 생겨서(☞ '새 집에서의 2박 3일 (http://blog.daum.net/jha7791/15790606)' 참조) AS 직원을 불러 수리를 받았다.
  마침 집주인이 다른 일로 이 날 집에 왔기에 인터넷에 문제 생겼다고 말했더니, 주인이 흑룡강대학 안의 인터넷 서비스 사업자인 중국연통에 직접 전화를 해줘서, AS 직원 부르는 문제는 손쉽게 해결했다.  하지만 AS 직원은 몇 시간 후에나 온다는데, 바쁜 집주인이 그 때까지 기다릴 수가 없어서 나 혼자 AS 직원을 상대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사실 문제 자체는 아주 간단했다. 

  한국에서 같으면 '컴퓨터가 랜선이 연결되지 않은 것으로 인식하거나, 네트워크 주소를 잡지를 못 한다.' 라고만 얘기하면 될 상황이었다.  하지만 중국어로 설명하려니 그렇게 간단하게 말할 수가 있나... 
  더구나 그 전날 인터넷 봐주러 오셨던 J씨 남편분에게 들으니, 사용자들이 컴퓨터 설정 잘못해서 인터넷이 안 되는 경우도 많아서, AS 기사를 전화로 불러도 '네가 뭔가 잘못 설정한 것이지, 우리 인터넷은 문제 없다' 는 식으로 잘 안 오려고 한다는 말을 들었다.  그러니 인터넷 회선에 문제가 있는 거지, 내 컴퓨터는 아무 문제 없음을 설명해야 하는 게 난감했다.
  그래서 또 열심히 전자사전과 인터넷 뒤져서 '인터넷을 쓸 수가 없다. 하지만 이것은 내 컴퓨터의 문제가 아니라, 인터넷 회선의 문제이다.  왜냐하면 친구 컴퓨터를 가져와 시험해봤는데, 그 컴퓨터도 인터넷을 쓸 수가 없었다. 그 컴퓨터는 그 친구 방에서는 인터넷 쓰는데 아무 문제 없었기 때문에, 이것은 당신들 인터넷 회선의 문제가 분명하다.' 라고 장황하게 문장을 만들어, AS 기사가 오기 전에 열심히 반복해서 외웠다. (AS 기사와 얼굴 맞대고서, 저 장황한 문장을 쓴 종이를 들고 그대로 읊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

 

  그런데 이렇게 열심히 긴 문장을 외웠건만, 완전히 헛수고였다.
  들어오자마자 무슨 검사기 같은 것을 인터넷 회선에 대고 검사하는 AS 기사에게 '인터넷을 쓸 수가 없다. 하지만 이것은 내 컴퓨터의 문제가 아니라...' 까지 말한 순간, AS 기사는 '워 예 즈다오(我也知道 : '나도 알고 있다'라는 뜻)'라는 단 한 마디로, 거창하게 펼쳐질 내 설명을 막아버렸다...! -0-;;  한편으로는 진땀 흘려가며 버벅거리는 중국어로 설명할 일을 피해서 좋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렇게 열심히 만들어 외운 문장을 써먹지 못 해 허무했다. ㅠ.ㅠ

  

 

3. 오리털점퍼 수선하기

 

  지난 11월 3일 '중국 미용실에 가다(http://blog.daum.net/jha7791/15790613)' 에도 썼듯이 오전과 점심을 머리 새로 하느라고 미용실에서 다 보내고서, 오후에는 고장난 오리털점퍼 수선한다고 열심히 돌아다녔다.

 

  하얼빈으로 올 때, 이미 하얼빈에서 어학연수 경험있는 이들이 인터넷에 올린 글을 보고, 작정하고 헌 옷만 들고 왔다.

  이 곳의 수질이 많이 안 좋은데다가 세제도 독한 편이라, 몇 번 세탁하면 옷이 금새 상한다 했다.  그래서 여기에서 입던 옷을 귀국해서는 못 입으니, 아예 곧 버릴 생각하고 있는 헌 옷만 가져 와서 입다가 귀국할 때 버리는 게 낫다고들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차피 귀국할 때는 여기서 구입한 책이나 다른 물건들로 가져가야 하기 때문에, 옷이라도 버려야 늘어난 짐을 넣을 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고 했다.

 

  그렇게 버릴 생각으로 들고 온 옷 중 하나가 오리털점퍼(흔히 '다운재킷'이라 부르는 그 옷)이다.
  아직 입을만하기는 한데, 소매 부분이 많이 낡은데다가 벌써 6년이나 입었으니 본전은 확실히 뺐다 싶어서, 여기서 입다가 버릴 생각으로 가져왔는데...  버릴 생각하고 입어서 좀 함부로 다뤘던지, 아직 많이 추웠던 3월~4월 초에 입다가 지퍼 끝부분이 고장나 버렸다.

 

  그래서 지난 학기 이 오리털점퍼의 드라이 클리닝을 맡겼던 C취 남문(南問) 밖에 있는 세탁소를 찾았다.
  집에서 전자사전 두들기며 열심히 만들어서 연습해 간 '내 오리털점퍼의 지퍼가 고장났다. 이 지퍼를 버리고, 새 지퍼를 이 옷에 달고 싶다.' 라는 문장을 쭉 읊었더니만, 주인 아줌마 왈 "여기서는 못 고친다." ㅠ.ㅠ  내가 '헉...!' 하는 표정을 짓자, 주인 아줌마가 안심하라는 듯이 달래는 표정으로 덧붙이기를,  "여기서는 못 고치지만, 푸장청(服裝城 : 복장성, 흑룡강대학 앞에 있는 옷, 신발, 가방 등을 파는 큰 상가)에서 고칠 수 있다.  거기에 위롱푸(羽絨服 : 우융복, '오리털점퍼, 다운재킷'이라는 뜻) 만드는 곳이 있으니, 거기 가봐라." 라고 하셨다.

  아줌마는 아주 간단하게 '푸장청의 위롱푸 만드는 곳'이라 하셨는데, 그 넓고 복잡한 푸장청 어디에서 위롱푸 만드는 곳을 찾느냔 말이다...ㅠ.ㅠ  이미 날은 어둑어둑해지고 있고, 마침 '징신'에게 과외수업 받을 시간도 다 되어, 다음 날 수소문해서 가는 수 밖에 없겠구나 싶었다.

 

  그런데 그대로 오리털점퍼를 들고 과외수업 받으러 갔더니, 괴외선생 징신이 B취 학생식당 옆에 위롱푸 지퍼를 수선할 수 있다고 알려줬다.

  과외수업 끝마치고 B취 학생식당으로 가봤더니, 그 동안 눈여겨 보지 않아 몰랐는데, 과연 식당 옆에 조그마한 가건물 비슷한 게 붙어 있었다.  그 안에서는 부부로 보이는 아저씨와 아줌마가 각각 신발과 옷을 수선하고 계셨다.  안으로 들어가 아까 세탁소에서 읊은 문장을 또 다시 반복하자, 아줌마가 "지퍼를 뜯어버리면 옷이 망가져서 못 입게 된다." 하신다. ㅠ.ㅠ

   내가 맥빠지는 기분으로 '그럼 못 고치는 거냐' 했더니(이 순간 이미 나는 머리 속에서 주판알을 정신없이 튕기고 있었음. 오리털점퍼를 새로 사야할 것 같은데, 중국산 오리털점퍼의 가격은 얼마일까 하면서... ^^;;), 아주 시원스럽게 딱 한 마디 '커이(可以, '가능하다')'고 대답하셨다. ^0^

 

  아줌마가 지퍼의 고장난 부분(지퍼 제일 아랫부분)을 잘라내고, 그 부분을 대체할 부품(?)을 끼워넣어주셨다.

  작업하시면서 '일본인이냐, 한국인이냐?' 라고 묻기에 한국인이라고 대답했더니 '조금 전에 하는 말을 들으니 중국어 참 잘한다.'고 칭찬하셨다. (아줌씨, 지퍼 새로 달아달라는 그 문장은 집에서 10번도 넘게 연습한데다가, 아까 세탁소에서 '실전 모의고사(!)'까지 치르고 왔는데, 못 하면 어떻게 해요...ㅠ.ㅠ)  하마터면 새 오리털점퍼 살 뻔했는데, 단돈 3위안(한화 약 555원)으로 수선해서 입을 수 있게 되어 다행이다.
 

 


  무언가 문제가 터졌을 때 그 상황을 속시원히 말 할 수 없는 것처럼 답답한 상황이 또 있을까 싶다.

  그렇잖아도 급한 상황에서 말까지 안 통하면, 정말 환장할 것 같은 심정이 된다... ㅠ.ㅠ  그래도 여기 유학생들 모두 어순 뒤죽박죽, 발음 엉망인 전투 중국어로라도 어떻게든 문제를 해결하려 애쓰며 하루 하루 살아가고 있다.  한편으로는 그 과정에서 겪는 스트레스도 만만친 않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렇게 일상 속에서 좌충우돌하면서 중국어 단어 하나, 중국어 문장 하나씩 더 익혀가고 있다.
  내가 이 포스트 올리는 이 순간에도, 기숙사에서, 유학생 사무실에서, 그 밖의 학교 안 어딘가에서, 또는 학교 밖 어딘가에서 문제 해결하기 위해 머리 쥐어짜가며 열심히 중국어 문장 만들고 있을 유학생들...!  모두 화이팅이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