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11월 3일) 오전에 큰 마음 먹고 중국인이 운영하는 미용실에 다녀왔다.
사실 중국인 미용실 간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6월초였던가, 6월 중순이었던가, 하여튼 그 때도 갔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이번에 처음 간 것 마냥 이렇게 포스트까지 올리게 된 것은, 이번에 간 것은 그 때와는 차원(!)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 때는 덥수룩해진 머리를 살짝 다듬고 숱을 쳐내려 간 것 뿐이고(정말 내 머리숱은 왜 이리 많은건지... 무슨 타잔과 치타가 노니는 정글도 아니고...ㅠ.ㅠ), 이번에는 머리를 제대로 자르고 염색까지 했다.
한국 유학생들의 머리 간수하기
하얼빈에 온지 어언 8개월째... 그 동안 미용실에 3번 다녀왔다.
위에서 쓴대로 살짝 다듬었던 때만 중국인 미용실을 갔고, 파마나 염색 등 거창한 것을 할 때는 버스를 타고 한참 가야 하는 하얼빈공업대학 근처의 한국인 미용실을 찾았다.
찾아가는 것도 불편하고 가격도 좀 더 비싼데, 굳이 한국인 미용실을 찾은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 아무래도 언어가 안 통하는 게 가장 큰 이유다. 서로 언어가 통하는 한국의 미용실에서도 막상 머리 다 하고 나면 '어? 이건 내가 원했던 스타일이 아닌데...' 하는 경우가 종종 생기는데, 하물며 언어도 안 통하는 곳에서는 오죽하랴 싶었던 것이다.
둘째, 그럭저럭 의사소통이 된다 해도 문제인 것이, 한국과 중국은 바로 옆에 있는 나라이건만 선호하는 또는 유행하는 머리 모양이 완전히 다르다는 점 때문이다. 나처럼 옷차림, 머리모양에 전혀 관심없는 사람 눈에도 그 차이가 눈에 확 띌 정도이니... 머리 모양이라는 게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고, 지역마다 유행이 다른 건 당연한 거지만, 하여튼 우리 한국인 눈에는 중국인들의 머리 모양이 어색해보이는 건 어쩔 수 없다. (물론 반대로 중국 학생들 눈에는 우리들의 머리 모양이 이상해보이겠지만...) 실제로 내가 6월에 머리 다듬고 났을 때 사람들의 반응이 '한국식도 아닌 것이, 중국식도 아닌 것이...' 였다. -.-;; 아무래도 전체적인 머리 모양은 한국인 미용실에서 한 한국식인데, 다듬을 때는 중국인 미용실에서 해서 중국식이 가미된 상황이라, 내 눈에도 한국식 머리 모양과 완전히 다른 것도 아니면서, 뭔가 묘하게 달라 보였다.
사실 의사소통 문제와 머리 모양 문제로 골머리 썩히고 싶지 않은 많은 한국 유학생들이 두 가지 방법 중 하나를 택한다.
첫째, 중국에 있는 내내 머리를 계속 길러서, 길게 늘어뜨리고 다니거나 끈이나 핀을 이용해서 머리를 정리한다. (주로 여학생들이 이 경우에 해당함.)
둘째, 한국에서는 무의식 속에 잠재해있던 미용사로서의 소질을, 하얼빈에서 생활하며 밖으로 끄집어내서, 거울을 보며 문구용 가위로 자신의 머리를 자르는 신공을 발휘한다. -.-;; 그나마 여학생들은 앞머리나 살짝 다듬는 게 전부지만, 남학생들이 자신의 머리를 전체적으로 자르는 것 보면 정말 놀랍다. 무슨 60년대 초등학생들 마냥 바가지 스타일로 잘라놓은 건 차라리 놀랍지 않다. 미용기술을 배운 적 없는 사람이 자른 거니, 더구나 자기 머리를 자기가 자른 거니, 형편없는 모양이 나오는 건 당연하니까... 하지만 몇몇 남학생이 미용실 가서 잘랐다고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의 수준으로 자기 머리를 자른 것 보면, 놀랍다 못 해 경이롭기까지 하다...! 앞머리, 옆머리는 그렇다치고 잘 보이지도 않는 뒷머리는 도대체 어찌 자른 것이냐...!
엄청 신중한 '샤오강'에게 머리 맡기기
원래 오늘 가려던 중국인 미용실은 다른 곳이었다.
내 블로그 통해 인연이 닿아 흑룡강대학에서 만난 J씨(내 블로그에 종종 등장한 남편과 아이들이 있는 그 J씨가 아닌 또 다른 J씨... ^^)가 어찌어찌하여 미용실에서 일하는 중국인과 친분을 쌓았다. 마침 J씨와 친하게 지내는 한국 유학생들도 그 미용실에서 파마를 한 적도 있고 하여, 임상실험결과(?)도 충분하니 폭탄 맞은 꼴이 되지는 않겠지 하는 생각에 그리로 가려 했다. 하지만 J씨와 그 중국인이 연락이 되지 않는 통에 포기하고, 먼저번 가서 머리 다듬었던 그 미용실로 가게 된 것이다.
먼저번 다녀오면서 내 머리 맡았던 남자 미용사가 명함을 줬던 기억이 나서, 책상 서랍을 뒤집어 엎어가며 겨우 그 명함을 찾아냈다.
'샤오강'이란 이름의 그 미용사에게 전화를 해서 '6월에 갔던 한국인인데 기억하냐, 오늘 오전에 가서 머리를 자르고 염색하고 싶다, 언제 가면 네 시간이 되겠느냐'라고 했더니, '기억한다, 10시 반에 와라' 했다.
약속 시간에 맞춰서 미용실을 찾아갔더니, 도어맨 비슷하게 문 옆에 서있던 남자 직원이 누구를 찾느냐고 묻는다. 내 중국어 발음이 후져서 그런지 못 알아듣는 그 직원에게 '샤오강'이란 이름을 2, 3번 되풀이하고서야(ㅠ.ㅠ), 겨우 샤오강을 만났다. 사실 그 쪽에서 자신이 샤오강이라 하니 샤오강인 줄 알지, 이 쪽에서는 사람 얼굴 지독히도 못 외우는데다가 몇 달 전에 딱 한 번 만난 사람이라, 어떻게 생겼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
하지만 머리를 자르기 시작하자, 그 사람이 샤오강임이 확실해졌다.
먼저번 머리 다듬을 때도 느낀 거지만, 좋게 말하면 무척이나 신중하게, 나쁜게 말하면 정말 느려터지게 머리를 잘랐다...! 성질 급한 손님 같으면 머리 자르다가 숨 넘어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머리 자르는 속도가 느렸다. ㅠ.ㅠ (먼저번 함께 갔던 B는 내 머리 다듬는 거 기다리면서 '파마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다듬는 건데 뭐가 이렇게 오래 걸리냐'며 지루해 죽으려고 했었음. -.-;;)
머리 길이는 조금만 자르고 숱이 많으니 숱을 쳐달라고 했는데, 한국인 미용사 같으면 숱치는 칼이나 가위로 쓱쓱 쳐내는데 1분이면 충분하다. 그런데 이 친구는 한 번 숱 쳐낸 다음에 내 머리를 빗으로 빗어주고서 몇 걸음 뒤로 물러서서 이리저리 살펴보고, 다시 한 번 숱 쳐낸 다음에 물에 젖어 두피에 달라붙은 내 머리 여기저기를 매만져 모양을 잡아준 후 또 몇 걸음 물러서서 심각하게 살펴보고... 그러니 당연히 속도가 안 난다. ㅠ.ㅠ 하지만 자기딴에는 최대한 잘 해보겠다고 신중한 표정으로 일하는데, 빨리 해달라고 재촉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머리 기장을 겨우 2센티미터 정도 자르고 머리 숱 쳐내는데, 무려 40분이 걸렸다. -0-;;
중국 미용실의 분업과 급여
중국에서는 뭐든지 다 분업인가 보다.
3월에 하얼빈 와서 각종 수속이나 등록하면서, 효율성을 위한 분업이 아닌 그저 '분업을 위한 분업' 때문에 환장하는 줄 알았다. (☞ '만만디... 끝없는 기다림... (http://blog.daum.net/jha7791/15790481)' 참조) 그런데 한 미용사가 한 손님을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지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여기서는 머리 손질하기 전에 감겨주는 사람, 머리 잘라주는 사람, 염색해주는 사람, 염색 후에 머리 감겨주는 사람이 모두 달랐다.
그래도 다행이었던 것이, 흑룡강대학의 사람 미치게 할 정도의 느려터진 분업이 아니라, 다들 빠릿빠릿 하게 움직이며 자신이 할 일을 정확히 해냈다는 점이다.
특히 머리 감겨주는 사람들의 기술은 환상적이었다. 그냥 감겨만 주는 게 아니라 두피를 지압까지 해주는데, 편하게 긴 의자에 누웠겠다, 머리에는 따뜻한 물이 닿아 몸이 기분좋게 늘어지겠다, 두피 지압해줘서 개운한 느낌까지 들겠다, 그냥 그대로 잠이나 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 염색을 담당했던 여자 미용사는 성격도 활발하고 호기심도 많아 한국 여자들의 머리 모양이나 한국 음식에 대해 계속 말을 걸어와, 서툰 중국어로 나름 재미있게 대화도 나눴고...
그런데 다 끝나고서 계산할 때보니, 미용사들이 급여를 성과급으로 받는 모양이었다.
계산대의 직원이 나한테 거스름돈을 준 후 내가 지불한 요금을 항목별로 적은 영수증 같은 것을 쓰기에, 나한테 주려나 보다 하며 기다렸다. 그런데 다 쓰고서는 샤오강에게 내밀었다. 그러자 샤오강이 주머니에서 도장을 꺼내 그 영주증 같은 것에 찍고는, 다시 그 계산대의 직원에게 돌려줬다. 아마도 자신이 담당한 손님이 지불한 금액에 따라, 즉 자신이 이 미용실의 매출에 기여한 수준에 따라 급여를 다르게 받는 게 아닌가 싶다.
지난 주부터 미용실에 가려고 벼르고 있었지만 항상 이런저런 일이 생겨서 가지 못 했는데, 미용실 다녀오니 큰 숙제 하나 해치운 느낌이다. ^^ 최근 이런저런 일로 심란하기도 했고, 공부도 많이 게을리 했는데, 머리 모양도 바꿨겠다, 심기일전하여 열공모드로 돌입할까 한다.
'- 하얼빈 생활기 > '09~'10년 흑룡강대학 어학연수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얼빈 생활 중 중국어에 얽힌 번거로움 (0) | 2009.11.09 |
---|---|
흑룡강대학 학생식당에서 한국음식 먹기 (0) | 2009.11.06 |
신종플루 무료(!) 예방접종 (0) | 2009.10.30 |
네이트온을 통한 피싱에 걸려들다...! (0) | 2009.10.28 |
중국의 주입식(?) 문학 교육 방법 (0) | 2009.10.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