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얼빈 생활기/'09~'10년 흑룡강대학 어학연수기

중국의 주입식(?) 문학 교육 방법

Lesley 2009. 10. 26. 13:23

 


  '제갈량(諸葛亮)의 출사표(出師表)(http://blog.daum.net/jha7791/15790595)'에서 썼듯이, 이번 학기 들어서 푸다오 수업 시간에 고전문학 작품 읽기 연습을 하고 있다.  거기에 마침 영화 '호우시절'에 나온 두보의 춘야희우(春夜喜雨)(http://blog.daum.net/jha7791/15790609)에도 관심을 갖게 되면서, 푸다오 선생인 '진쥔'이나 후쉐인 '양'과 고전에 관해 얘기할 기회가 많아졌다.
  그러다가 전혀 생각 못 한 사실 하나를 알게 되었다.

 

 

 
  전에는 진쥔이 이백, 두보 등의 유명한 시는 통째로, 제갈량의 출사표도 발췌식으로 절반 이상 외우고 있는 것을 보면서, 대단하다는 생각은 했어도 특이하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아무래도 전공이 '대외한어(對外漢語 :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중국어교육과)'인 만큼, 중문학에 대해 잘 아는 게 당연하다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 전공은 둘째치고라도, 진쥔 스스로가 고전문학 작품에 관심이 많은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 방면의 책을 많이 읽어 그런가 보다 했을 뿐이다.

 

  그런데 중문학과는 거리가 먼 양(양은 법학과 2학년 학생임)마저, 내가 '춘야희우' 이야기를 꺼내자마자 그 시의 앞부분 몇 줄을 더듬거리는 일 없이 죽 외우는 것이다...!  그러고보니 전 학기에 진쥔에게 배운 중국 현대시에 나오는 어떤 단어 뜻을 잘 몰라 양에게 물어봤을 때도, 제법 긴 그 시를 단숨에 외웠던 기억이 났다.
  그리고 C취 유학생 기숙사에 살 때, 기숙사 근처 슈퍼마켓에서 아르바이트 뛰는 정치학과 여학생 한 사람과 친분을 쌓았었다.  그런데 이 학생도 무슨 이야기 끝에 백거이와 이백의 시를 아주 쉽게 암송하며 인용했었다.

 

  그렇게 전에는 무심코 지나쳤던 일들이 갑자기 한꺼번에 내 머리 속으로 몰려들면서, '어? 설마 내 주위의 중국학생들은 전부 문학소녀들인가? (-.-;;) '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래서 푸다오 시간에는 진쥔에게, 후쉐 시간에는 양에게, 어떻게 그렇게 시나 다른 고전문학을 잘 외우고 있느냐고 질문을 했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중국 학생들은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나온 고전문학 작품 중 대부분을 외워야 한단다...! -0-;;

  진쥔의 말인즉슨, 학교에서는 선생님이 무작위로 아무나 지적해서 외우게 하여, 못 외우면 교실 뒤로 나가 서있게 하거나 외울 때까지 며칠이고 반복시킨단다.  집에서는 집에서대로, 부모님들이 강제로 붙들어 앉히고 시를 외우게 한다 했다.  그리고 양에게 '한국에서도 시를 외우게 하는 선생님이 있기는 하지만 어쩌다 한 두 개 정도 외우게 할 뿐이고, 보통은 굳이 외우라고 하지는 않는다.'라고 하자, 양은 '시를 배우는데 어떻게 안 외우고 공부할 수 있냐?'고 놀라워했다. (나는 죄다 외워야 하는 중국의 상황이 더 놀라운데... -.-;;)  

 

 


  처음에는 '우리나라도 주입식 교육이 어쩌고 저쩌고 하지만, 중국은 우리보다 훨씬 심하군.' 하고 생각을 했는데, 곰곰히 되씹어가며 생각해보니 문학 교육에 있어서는 중국쪽 방식이 맞는 듯 하다. 


  중.고등학교 시절 국어시간에 얼마나 많은 시와 향가, 고려가요, 시조 등을 배웠던가...!  그러나 지금 내 머리 속에 남아있는 것은 몇 개나 되는지...  그나마 기억나는 것도 '대강 이러한 내용이었던 듯 하다' 정도지, 외우고 있는 건 현대시 중에서는 '조지훈'의 '승무'와 '김소월'의 '진달래꽃', 고전 시가 중에서는 정몽주의 '단심가', 이방원의 '하여가' 가 전부인 듯 하다. -.-;;
  하긴 시 속에 깃들어 있는 느낌을 음미하기 보다는, '이 시의 종류는 무엇이고, 율격이 어떻고, 음보는 어떠하며...' 등과 같은 시험을 위한 분석만 죽어라 배웠으니, 시 내용을 기억 못 하는 게 당연하다.  그렇게 딱딱하게 배우다보니, 지금 생각하면 교과서의 시 중 주옥같은 시들이 꽤 많았건만, 그 당시에는 그저 지겹다는 생각 밖에 안 들었다.

 

  물론 중국학생들이 중.고등학교 시절 그렇게 시를 외워대는 게, 무슨 시의 참 맛을 알아서는 절대로 아니다.  그저 선생님과 부모님이 시키니까 어쩔 수 없이 외운 것 뿐이다.  하지만 그렇게 강제로라도 외운 덕에, 좀 더 나이 들어서 시험을 위해서가 아닌, 순수하게 시 자체를 감상할 수 있게 되었을 때, 머리 속에 들어있는 시를 끄집어 낼 수 있지 않나... 

 

  그러고보면 중국학생들은 외국어 공부할 때도 본문을 통째로 암기하는 방법을 쓴다.
  흑룡강대학의 한국어과 학생들 보면 2학년만 되어도 그 수준이 상당해서, 한국 유학생들이 감탄한다.  그런데 얘기를 들어보니,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그 전날 배운 본문을 외우게 하여 못 외우면 '너는 앉아서 수업 들을 자격이 없어.' 하며 교실 뒤로 나가 서있게 한단다. -0-;;  그러다보니 자존심 상하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학생들은 죽어라 본문을 외워야 한다.  그러면서 처음에는 무작정 외웠던 것이 나중에는 자연스레 중국어와 완전히 다른 한국어 어순이 머리에 박히고, 입에 배어서 유창한 한국말을 하게 되는 것이다.
  사실 우리 어학연수생들을 가르치는 중국인 선생님들도 '중국어 실력 빨리 향상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본문을 통째로 외우는 것이다. 그러니 본문 좀 외워라.'라고 입이 닳도록 말씀하신다.  그리고 나 역시 선생님들 말씀이 맞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렇게 잘 알고 있음에도, 오늘도 결국 실행에 못 옮기고 있는 나... ㅠ.ㅠ

  오늘부터라도 짤막한 녀석들부터 한 번 외워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