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얼빈 생활기/'09~'10년 흑룡강대학 어학연수기

새 집에서의 2박 3일

Lesley 2009. 10. 20. 00:16

 

 

  '중국에서 이사하기(3) - 다시 집 구하기(http://blog.daum.net/jha7791/15790596)' 에 이번에 이사한 집을 구하기 전에 보러 갔던 집이 얼마나 엉망진창인지 썼다.
  그랬더니 내 블로그에 자주 들리는 왕요우(網友 : 망우, 직역하면 '인터넷 친구'인데, '인터넷을 통해 사귄 친구'라는 뜻도 되고 '네티즌'이라는 뜻도 됨.) 한 분이 '만일 그 집을 계약했더라면 이사한지 얼마 안 되어, '새 집의 문제점'이라는 제목으로 포스트 올리게 되었을 것'이라는 농담 반 진담 반의 댓글을 다셨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내 딴에는 탁월한 선택이라고 생각한 새 집에도 여기저기 구멍이 숭숭 뚫려 있어서, 결국 '새 집의 문제점'을 주요 소재로 하는 포스트를 올리게 되었다. ㅠ.ㅠ
  하기야 이번에 이사한 집에 대해 '탁월한 선택'이라는 말을 쓰기가 뭣한 것이, 최소한 반년 단위로 집을 세주는 중국인들의 습관상 4개월짜리 집을 구하기 힘들어서,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저 첫번째 보러 갔던 집에 비해서는 훨씬 낫다는 것만 생각하고 이사를 했는데... 

 

 

먼저 새 집의 문제점을 살펴보자면...

 

1. 방음이 잘 안 된다.

 

  사실 이것은 큰 문제점은 아니다. 

  내가 소음에 민감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어떤 상황에서도 잠을 잘 수 있는 스타일의 사람이다. (심지어는 옆집에 불이 나서 우리 식구는 물론이고 온 동네 사람들이 자다 말고 밖으로 뛰쳐나갔는데, 나만 그 사실을 모른 채 쿨쿨 자고서 다음 날 아침에야 알게 된 적도 있음. -.-;;) 

  또 방음이 제대로 안 된다고 해봤자, 여기가 혈기왕성하고 시끌벅적한 거 좋아하는 젊은이들 가득한 기숙사가 아니어서, 기껏해야 아침이나 저녁에 TV 소리, 화장실 물 내리는 소리, 현관문 여닫는 소리 들리는 정도이다. (오히려 칠칠치 못 한 내가 툭하면 무언가를 나무로 된 바닥에 떨어뜨리기 일쑤라, 아래층에서 '저 위의 한국인은 왜 저렇게 시끄러운거야' 하고 불평하지 않을까 걱정됨, -.-;;)
 
2. 각종 설비가 많이 낡았다.

 

  이게 제일 큰 문제다.
  첫번째 보러 간 집의 상태가 '오, 마이 갓!'이란 소리가 절로 나올 상황이어서, 그런 집을 보고 다음 날 본 이 집은 너무 좋아보여 각종 설비를 세세하게 살피지 않고 계약했다. (고시원 방에서 살던 사람에게는 15평짜리 아파트도 대궐로 보이는 것과 같은 이치임. -.-;;)  하긴 세세히 살펴봤다 하더라도, 급하게 이사해야 하는 내 입장에서는 어차피 다른 선택권이 없었을 것 같지만...

 

  우선, 가스레인지나 온수기가 하도 오래되어 조작법이 복잡해 한 번 이용하려면 번거롭다.
  특히 온수기의 경우에는 집주인인 왕 교수님이 사용방법을 가르쳐주는 것도 모자라서 나에게 실습(?)까지 시켜주셨건만, 사용방법을 제대로 기억 못 해 이틀간 뜨거운 물을 못 쓰는 황당한 일이 생겼다. -.-;;  결국 오늘(10월 19일) 왕 교수님의 남편인 이 교수님이 문제 있는 열쇠를 바꿔주러 오신 김에 다시 사용방법을 알려주셔서, 겨우 뜨거운 물을 쓸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변기가 고장난 상태라 물이 내려가지 않아, 큰 통에 물을 받아 변기 안에 부어야 한다.
  다른 곳으로 출장가신 왕교수님이 26일에 돌아와 수리공을 시켜 고쳐준다 하셨다. (교수님들, 집 보러 갔을 때 제대로 확인 안 한 저도 잘못이지만, 교수님들도 집을 세놓기 전에 미리 고쳐놓으시면 누가 잡아먹기라도 하나요... 어흐흑... ㅠ.ㅠ)

 

  하지만 가장 대박은 세탁기이다...!
  만일 가전제품 박물관이라는 곳이 있다면, 그 곳에 다소곳이 앉아계셔야 할 고전적으로 생기신 양반이, 이 누추한 곳에 나와 함께 머물고 계시다. -.-;;  

  이 집 주인장께서는 이 세탁기가 일본 제품이라 튼튼하고 좋다고 엄청 강조하시던데, 일본 제품도 일본 제품 나름이지, 나의 초딩 저학년 시절에 우리 집에 있었던 '반 자동식 세탁기'라니...! ㅠ.ㅠ  이사한 다음 날 이 집 인터넷에 문제 생겼을 때, 나를 도와주러 오신 남편 따라서 함께 온 J씨는 아예 그런 세탁기를 본 적도 없다 했을 정도니... ㅠ.ㅠ  
  전 자동식 세탁기 밖에 모르는 세대를 위해 설명하자면, 반 자동식 세탁기라 함은 '세탁'과 '탈수'만 자동이고 나머지는 사람의 손을 거쳐야 하는 세탁기를 말한다.  물을 세탁기 안에 넣는 것도 사람이 수도꼭지 켜서 넣어줘야 하고, 빨래한 구정물 빠져나가게 하는 것도 저절로 되는 게 아니라 사람이 다이얼을 돌려줘야 한다.  한 번 세탁할 때마다 몇 번씩 헹궈야 하니, 결국 몇 번씩 수도꼭지 틀었다 잠갔다 해야 하고, 배수 다이얼도 몇 번씩 돌려줘야 한다. ㅠ.ㅠ  그리고 그렇게 세탁 끝내고서는 세탁통 안에 들어간 빨래감을 꺼내서, 그 옆에 탈수통으로 옮긴 후 탈수 다이얼도 돌려줘야 탈수가 된다. ㅠ.ㅠ

  즉, 세탁 시작할 때 버튼 몇 개 눌러 설정해놓으면 그 다음은 혼자 알아서 하는 요즘 세탁기와는 달리, 세탁기 앞에 지켜서서 세탁기와 함께 사이좋게 빨래를 해야 한다. (이렇게 함께 빨래하며 시간 보내다가, 이 고물 세탁기와 사랑에 빠질지도 모르겠음. -.-;;)

 

3. 인터넷 상태가 안 좋다.

 

  인터넷도 이 집의 설비에 속하겠지만, 인터넷이 내 인생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고려해서 다른 항목으로 빼서 설명하겠다. ^^;;

 

  사실 이것은 딱히 이 집의 문제라기 보다는 흑룡강대학 전체의 문제이다.
  나도 그렇고 다른 한국인 유학생들도 그렇고, 처음 흑룡강대학 와서는 중국은 PC방 빼고는 인터넷 속도가 다 이 모양인 줄 알았다.  속도가 엄청 느린 것도 느린 거지만, 저녁 시간에는 아예 인터넷 접속이 안 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알고보니 흑룡강대학의 인터넷 회선에 문제가 있는 것이지, 중국의 모든 대학 인터넷이 이 모양은 아니었다. 유학생들 만큼이나 흑룡강대학 인터넷 상태에 불만 많은 중국학생들 말인즉슨, 중국연통이 흑룡강대학 내부 인터넷 사업에 대해 독점권을 갖고 있다 보니 설비 투자를 전혀 안 해서 이 모양이란다.

(고딩 때 '정치.경제' 과목 시간에 배운 '독과점의 폐해'를 이런 식으로 실감하게 되다니... -.-;;)

 

  그나마 지금 내가 사는 자수로(家屬樓 : '가속구', 중국의 학교, 회사 등에 소속되어 있는 직원용 아파트를 뜻함.)는 학생 기숙사보다는 인터넷 상태가 나은 거라고 한다.  하지만 이미 학교 바깥의 인터넷 맛을 알아버린 나에게는 전혀...ㅠ.ㅠ

  이사온 첫날은 주인장이 인터넷 ID를 잘못 가르쳐 준 덕에 인터넷 접속을 못 했고, 둘째날은 잠시 접속 성공했다가 곧 인터넷 회선에 문제가 생겨 또 다시 접속을 못 했다. ㅠ.ㅠ  다행히 오늘 서비스 직원이 와서 봐준 덕에 문제를 해결하기는 했는데, 역시나 학교 밖의 집에 살 때보다 인터넷 상태가 안 좋다.  덕분에 그렇잖아도 비정상적인 방법 통해 힘들게 블로그 접속하는데, 이제 더 힘들어지게 생겼다. ㅠ.ㅠ

 

 

그래도 어떻게 나쁜 점만 있겠나...  좋은 점을 살펴보면...

 

1. 집주인 부부가 친절하다.

 

  물론 사람은 겪어봐야 안다지만, 지금으로서는 집주인 부부의 인상이 좋다.
  먼저번 살던 집의 주인에 비해 외국인에 대한 배려심도 있고, 그 귀찮은 외국인 주숙등기 때도 적극적으로 협조해줬다. 
 
2. 여기는 4층이다.

 

  엘리베이터 없이 7층을 오르락내리락 했던 것에 비하면, 4층 오르내리는 것은 식은 죽 먹기다.
  먼저번 집에 살 때 장이라도 한 번 보는 날에는, 양 손에 물건이 잔뜩 담긴 비닐봉투 들고 7층 올라가는게 무슨 등산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3. 학교 안에 위치해있다.
 
  사실 이게 가장 큰 장점이다.
  이제 10월 중순인데 벌써 첫 눈이 내릴 지경이니, 곧 다가올 매서운 겨울에 수업 들으러 가려면 집에서 교실까지의 거리가 가까울수록 좋다.  또한 기숙사 나와 살면서 직접 밥 해먹는 일에 은근히 시간과 노력을 많이 빼았겼는데, 이제 학교 안에 들어왔으니 학생식당 이용하며 쉽게 끼니를 해결할 수 있다.

 

 


  이사하는 과정에서 온갖 일을 다 겪으며 신경이 곤두섰고, 이사하고 나서는 이틀 정도를 심란하게 보냈다.
  하지만 이제는 어느 정도 적응이 되었고(정확히 말하면 짜증낸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기에, 어쩔 수 없는 부분은 내 정신건강을 위해 그냥 포기하기로 했음. -.-;;), 4년이 아닌 4개월을 살 것이기에 그냥저냥 안빈낙도의 정신으로 살려고 한다. (안빈낙도라는 말을 처음 만들어낸 사람이 누구인지 모르겠지만, 이런 이상한 상황에서 쓰라고 만든 말은 분명히 아닐텐데...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