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번 이사도 꽤나 파란만장했지만, 이번에도 만만치 않았다.
(하기야, 파란만장하지 않고 순조로우면, 그게 나의 하얼빈 생활일리가 없지... -.-;;)
계약 단계에서 생긴 문제
'중국에서 이사하기(3) - 다시 집 구하기(http://blog.daum.net/jha7791/15790596)' 에서 소개한, 복부인이나 부동산업자인 줄 알았다가 교수님으로 밝혀진 그 집주인인 '왕 교수님' 부부와 10월 7일에 계약을 하기로 약속 했다. 그래서 그 전날인 6일에 집세 및 야진(押金 : 갑금, '보증금'이란 뜻)으로 지불할 돈을 찾으러 은행에 갔다.
그런데 한국에서 송금했다는 돈이 한 푼도 안 들어온 것이다...!
도대체 어찌된 일인가 은행 직원에게 문의했더니, '10월 1일부터 시작된 국경절 휴가를 맞아 9일까지 외화가 중국은행으로 들어오지 못 한다'는 것이다. 그런 사실을 모르고, 한국의 은행과는 달리 중국의 은행은 1년 내내 하루도 쉬지 않는다는 점만 믿고서, 하필이면 딱 10월 1일에 송금을 받았으니... ㅠ.ㅠ
돈이 없으니 어떻게 계약을 하겠나...
왕 교수님에게 사정을 이야기하고 계약을 뒤로 늦추는 수 밖에 없는데, 몇 번을 전화해도 전화를 안 받고, 핸드폰 문자를 보내도 답장도 없고, 나는 '이러다가 이 계약 파토나는 것 아닌가'하는 불길한 예감에 점점 초조해지고... ㅠ.ㅠ 계약을 도와주기로 한 진쥔에게 이러이러해서 계약 못 한다고 문자 보냈더니, 진쥔은 '네가 이미 계약금을 냈으니 집주인도 사정 이해할 거다. 걱정 말아라.'라는 답장을 보냈는데, 그 답장을 봐도 별로 안심이 되지 않고...
다음 날 새벽에야 답장이 왔는데, 하필이면 그 날 왕 교수님 부부가 그 집을 비우고 다른 곳으로 이사하는 통에 너무 바빠서 전화를 못 받았다 했다. 어찌되었거나 왕 교수님이 양해를 해줘서, 개학 첫 날인 12일 저녁에 계약을 하는 걸로 다시 약속을 잡았다.
중국에서의 두 번째 월세 계약
진쥔과 미리 만나서 함께 약속된 시간에 계약을 하러 갔다.
가는 길에, 아직 왕 교수님을 만난 적 없는 진쥔에게 왕 교수님에 대해 미리 귀뜀을 했다. 성격은 무척 좋은 것 같은데, 말하는 걸 엄청나게 좋아한다고... ^^ 그러자 진쥔은 '그러면 계약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릴지도 모르겠다'며 은근히 걱정하는 눈치였다.
그런데 의외로 속전속결로 계약을 끝냈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의 집주인과는 달리, 이번 집주인 부부는 미리 계약서를 만들어놓고 우리를 기다렸기 때문에 일을 빨리 끝낼 수 있었다. 물론 빨리 끝낸 건 빨리 끝낸 거고, 그 짧은 시간 동안에도 왕 교수님은 청산유수 같이 온갖 이야기를 쏟아내셨다. ^^ 엄청 빠른 말투로 이야기를 하다가 남편에게 그 이야기에 관련된 질문을 하면 남편이 뭐라고 대답하려는 사이, 왕 교수님이 다른 화제로 돌아서버려서 가엾은 남편은 대답할 기회가 없었다... -.-;;
그 와중에 나는 왕 교수님이 입고 있는 빨간색 내복 바지에만 눈길이 가서 , 그렇잖아도 속사포처럼 빠른 교수님 말씀에 도무지 집중이 되지 않았고... ^^
나중에 그 집을 나오며 '빨간 내복 바지 때문에 웃음 참느라 힘들었다'라고 했더니, 진쥔이 깔깔 웃으며 '빨간 내복 바지도 웃겼지만, 빨간색 꽃무늬 털 실내화가 더 웃겼다' 라고 했다. 내가 '나는 실내화는 못 봤다'고 했더니, '그렇게 재미있는 걸 왜 못 봤냐?' 하며 타박하고... (도대체 나는 왜 꼭 제일 재미있는 장면을 놓치는 거냐... ㅠ.ㅠ)
성가신 외국인 주숙등기
먼저번 이사 때도 외국인 주숙등기 하는 것 때문에 푹푹 찌는 여름에 파출소를 2번이나 가야 했는데, 이번에 다시 이사를 하게 되어 또 다시 파출소를 찾게 되었다.
이번 집주인 부부는 먼저번 집주인에 비해 상대적으로 시간이 넉넉한 편인데다가, 또 외국인에 대한 배려심도 있는 분들이어서, 외국인 주숙등기에 대해 무척 협조적이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수월하게 외국인 주숙등기를 할 수 있겠구나 싶었는데, 역시나 여기는 모험으로 가득 찬 하얼빈이라 한 큐에 끝나지 않았다. ㅠ.ㅠ
14일 점심 때 왕 교수님 부부와 함께 학교에서 조금 떨어진 파출소를 찾았는데, 외국인 주숙등기를 담당하는 경찰관이 없다고 오후 4시 반에 다시 오라 했다.
먼저번 이사 때도 담당자가 없어서 파출소 찾았다가 허탕쳤는데, 중국 파출소에서는 원래 이렇게 담당자가 자주 자리를 비우는 건지, 아니면 내가 지지리도 운이 없는 건지... ㅠ.ㅠ 그래도 다행인 것이, 왕 교수님 부부가 어떻게든 오늘 끝내자면서 4시 반에 다시 파출소 앞에서 만나자 하셨다. (먼저번처럼 무작정 집주인의 처분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었으면 정말 짜증났을 것임.)
다시 4시 반에 파출소로 가서 담당 경찰관을 만났는데, 전혀 예상 못 했던 문제가 생겼다.
중국에서는 유학생이 원칙적으로 기숙사 생활을 해야 하고, 외주(기숙사 밖에서 생활하는 것)을 할 경우에는 반드시 학교측의 동의서가 필요하다. 나 역시 먼저번 이사 때 유학생 사무실에서 이 동의서를 받아다가, 주숙등기 할 때 파출소에 제출했다. 그런데 나는 이 동의서가 처음 학교 밖으로 나올 때만 필요한 건 줄 알았는데, 주숙등기 할 때마다 제출해야 한단다...! 그러니 당장 학교로 가서 동의서를 받아오라 했다.
그런데 유학생 사무실과 파출소 업무 마감시간이 모두 5시인데, 파출소에서 유학생 사무실까지는 걸어서 편도로만 20분 이상 걸리고, 이 때가 이미 4시 40분이였다. -.-;; 덕분에 모처럼 운동 제대로 했다. 편도로만 20분은 걸리는 거리를 왕복 20분에 주파했으니 말이다. (더구나 그 20분에는 유학생 사무실에 머물며 동의서 받아낸 시간까지 포함이 되니, 실제로는 15분도 안 되는 시간에 파출소와 유학생 사무실을 뛰어서 왕복한 셈이다. ㅠ.ㅠ)
먼저번에 동의서 받을 때 내가 자기 중국어 제대로 못 알아듣는다고 떽떽거리며 대놓고 나를 무시했던 유학생 사무실의 젊은 남직원도, 내 모습에 놀랐던지 평소와는 달리 군소리 없이 빨리 동의서를 만들어줬다.
그도 그럴 것이, 요즘처럼 쌀쌀한 날씨에 땀까지 흘려가며 거칠게 숨 몰아쉬며 유학생 사무실로 뛰어 들어와서는, 숨 넘어가는 듯한 말투로 지금 경찰관이 나를 기다리고 있으니 당장 동의서 써달라고 '요청'이 아닌 '요구'를 했으니, 당황했을 것이다. ^^ (다급한 상황에 부딪치니, 평소에는 잘 안 나오던 중국어가 너무 술술 나와서 나도 놀랐음. 물론 그렇잖아도 부정확한 중국어인데, 마음까지 급하니 문법이나 발음은 완전히 무시해버린 전투 중국어였지만... ^^)
어찌되었거나 그렇게 동의서 받아다가 파출소에 제출해서 무사히 외국인 주숙등기를 끝내고, 진쥔의 생일을 축하하는 저녁식사를 하러 갔다.(공교롭게 이 날이 진쥔의 생일이었음.)
파출소와 유학생 사무실 사이를 뛰어다닐 때는 정신이 하나도 없어서 미처 못 느꼈는데, 그렇게 뛰어다녔으니 갈증이 나는 게 당연했다. 저녁식사를 하기로 한 고기집(추석에 진쥔과 갔던 그 고기집이었음)에 도착해서야 심한 갈증을 느끼고 맥주 한 잔을 원샷했더니, 중국 아이들이 다 놀라워하고... ^^ (중국 대학생들은 한국 대학생처럼 술 마실 기회가 많지도 않고, 특히나 여학생들은 거의 술 마실 일이 없음.)
앞으로도 청소와 이삿짐 나를 일이 남아있기는 하지만, 일단 복잡한 서류 문제들이 모두 해결되어 마음은 편하다. 사실, 청소와 이삿짐 나르기도 꽤 귀찮은 일이지만, 그래도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이 그저 몸으로 때우기만 하면 되는 일인데, 계약서 쓰는 일이나 외국인 주숙등기보다 더 힘들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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