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얼빈 생활기/'09~'10년 흑룡강대학 어학연수기

중국에서 이사하기(3) - 다시 집 구하기

Lesley 2009. 10. 2. 01:02

 


  드디어 이사갈 집을 구했다...! ㅠ.ㅠ


  비록 지금 사는 집에 비해 비싸기는 하지만, 하여튼 집을 구했다.

  덕분에 영하 20도는 기본이고, 제법 추운 날은 영하 30도, 최악의 경우에는 영하 40도까지 떨어진다는 매서운 하얼빈의 겨울에, 길바닥에 텐트 치고 사는 상황은 면한 셈이다. (휴우~ ← 안도의 한숨 ^^)

  이사한지 겨우 2달 조금 넘었을 뿐인데, 또 다시 집을 구하러 다닐 생각을 하니 너무 지겹고 귀찮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최후의 대안이라고 생각한 기숙사조차 이번 학기에 유난히 유학생들이 많이 와서 빈 방이 없다 하니, 좋든 싫든 무조건 집을 구해야 했다.

 

  그리고 어차피 이사할 거라면, 학교 안에 있는 자수로(家屬樓 : 가속구, '직원 아파트')로 가기로 결심했다.

  사실 자수로의 집은 학교 밖의 집에 비하면, 같은 조건일 경우 집세는 오히려 더 높다.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학교에 가까울수록 수요가 많아서 집세가 비싸지는데, 이건 '학교에 가까운 집'이 아니라 아예 '학교 안에 있는 집'이니 말이다.

  하지만 곧 다가올 매서운 추위를 생각하면 내가 사는 곳과 교실 거리가 가까운 게 나을 거라고 생각했다. 자수로는 A취에서 B취에 걸쳐 있어서, 자수로에 집을 구하면 지금 사는 집에서 A취의 교실 갈 때에 비해 거리가 최소한 절반은 줄어든다.

 


  
  첫 번째 후보


  일단 자수로를 돌아다니며 집을 세놓는다는 광고를 훑어서, 후보를 하나 찾아냈다.

  다만 그 집의 광고가 나의 이사문제가 불거져나오기 전부터 계속해서 새로 나붙었다는 점이 만음에 걸렸다.  공급보다는 수요가 많은 자수로의 집이 그 때까지도 안 나간 것을 보니, 뭔가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찌되었거나 지난 화요일(9월 29일) 저녁에 '중국 병원에 가다(http://blog.daum.net/jha7791/15790520)' 에 등장했던 J씨와 함께 집을 보러 갔다.

 

  집주인은 베이징으로 출장간 상태고, 현재의 세입자인 여학생이 우리를 반갑게 맞아 집을 보여줬다.

  그 여학생은 이제 대학 3학년인데, 일과 학업을 함께 하고 있어서 기숙사보다는 외주하는 게 편해 그 곳에서 산다 했다.  아마 외국인을 처음 봤거나 혹은 봤더라도 잠깐 스쳐지나가는 식으로 본 게 전부인 듯 했다.  나와 J씨에게 굉장히 친절했고, 내가 집 관련해서 질문을 하면 대답 하는 그 쪽이 오히려 더 호기심으로 눈을 빛냈다.  우리가 집을 다 보고 나갈 때는 악수까지 청했다. ^^;;

  하지만 그 여학생이 친절히 대해준 건 대해준 거고, 역시나 그 집은 문제가 있었다.  다음의 이유 때문에 계약하기가 망설여졌다.
 
  1. 현재의 세입자들이 바깥에서 신던 신발을 그대로 신고 살아서, 집 전체가 무슨 멧돼지들이 진흙 묻은 발로 휘젓고 다닌 보리밭마냥 더러웠다. (즉, 청소하려면 며칠은 걸릴테고, 나는 초죽음이 될 것이 분명함. -.-;;)
 
  2. 이 집이 엘리베이터 없는 건물의 7층에 있다. ㅠ.ㅠ  (지금 사는 집 역시 엘리베이터 없는 7층이어서 너무 힘이 들어, 새로 이사갈 집의 조건 중 하나가 5층 이하여야 한다는 점임.)
 
  3. 꼭대기층이어서 난방을 해도 많이 추울 것 같다. (지금 사는 7층 집은 그나마 바로 위에 8층이 있음.)

 

  4. 창문이 이중창이긴 한데 샷시가 아니고 나무로 된 창틀인데다가, 오래되어 그런지 뒤틀리기까지 해서, 한겨울에 우풍이 장난 아닐 듯 하다. (함께 간 J씨는 이 창문을 가장 마음에 걸려했음.)

 

  5. 욕실 배수구에 문제가 있어 보인다. (그렇잖아도 중국은 주방이나 욕실의 배수 상태가 한국보다 안 좋은 편인데, 이 집 욕실 배수구는 유난히 안 좋았음.)


  그래서 이 집은 일단 뒤로 제쳐두고 다른 집을 알아보기로 했다.

 

 

 

  두 번째 후보


  두 번째 후보는 집을 구한다는 광고지 붙이려 나갔다가 우연히 마주친 아줌마의 집이다.

  이 아줌마와 얽힌 사연이 꽤나 재미있는데... ^^

   
  지난 일요일 오전, 자수로 단지내로 들어가 한편으로는 여기저기에 집을 구한다는 광고지를 붙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집 세놓는다는 광고를 찾아 다녔다. 
 
  ※ 내가 붙인 광고지에 얽힌 사연

 

  그런데 이 때 내가 붙인 광고지는 사실 지난번 이사 때 집 구하러 다니면서 붙이려고 컴퓨터로 쳐서 출력해놓고는, 갑작스레 지금 사는 집을 계약하게 되는 통에 사용 못 한 것을 재활용한 것이다. -.-;; 
  먼저번 이사 준비하면서 필요 없어서 버리려고 했더니, 지난 학기 마치고 귀국한 M이 '언니, 혹시 모르니까 버리지 말아요. 그냥 갖고 있어요.' 라고 했다.  내 생각에는 다시 그 광고지를 쓸 일이 있을까 싶었지만, 종이 10여장이 무게가 나가는 것도 아니고, 나중에 광고지 뒷면을 연습장으로라도 쓸까 하여 그냥 남겨뒀다.  그런데 이렇게 다시 쓰게 될 줄이야...  M한테 선견지명이 있나 보다. ^^;;


  하여튼 그렇게 자수로를 돌아다니다가, 세를 구하는 광고와 세를 놓는 광고가 잔뜩 붙은 자수로 벽면 앞에서 나처럼 집 구하려는 두 중국 여학생에게 어떤 아줌마가 자기 집에 세들지 않겠냐고 권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 

  하지만 가격이 안 맞아서 그 여학생들은 그냥 가버리고, 원래 외출하는 길이었던 듯 한 그 아줌마도 자리를 떴다.  얼른 아줌마를 뒤쫓아가서 '조금 전 학생들과 이야기 하는 것을 들었다. 지금 세입자를 구하냐' 하고 물었더니, 아줌마도 당장 반색하고... ^^
 
  그런데 내 눈에 비친 이 아줌마의 인상은 한 마디로 '중국판 복부인' 이었다. -.-;;

  요즘 날씨가 제법 쌀쌀해졌지만 그래도 낮에는 20도 정도 되는데, 벌써부터 모피로 된 옷을 두르고 다니는 등 좀 요란벅적하게 차려입으셨고, 얼굴도 얌전해보이는 인상은 아니었고...  그래서 나는 이 아줌마가 부동산 중개업자나 그런 비슷한 일을 하는 분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어찌나 수다스럽던지...

  나보고 일본 유학생이냐고 묻더니, 한국인이란 대답에 자기는 일본인보다 한국인이 훨씬 좋다고 했다. (내가 일본인이라고 대답했으면, 틀림없이 '한국인보다 일본인이 더 좋다'라고 하셨을 것 같음...^^  간사한 성격이란 뜻이 아니라, 그만큼 언변이 좋았음.)  그리고 자신의 아버지가 언어학 분야의 전문가인데, 아버지의 책이 학교 앞 큰 서점에 있을 정도로 유명하다며, 내가 그 아줌마 집에 세든다면 중국어 공부할 때 아버지의 도움 받을 수 있게 해주시겠단다. (아니, 무슨 대단한 논문 준비하는 대학원생도 아니고, 겨우 어학연수 와서 무슨 언어학 전문가의 도움까지 받냐... -.-;;)

  어쨌거나 이 아줌마와 서로 전화번호 교환하고 헤어졌다.

 

  첫 번째 보러 간 집이 마음에 안 들었기 때문에, 이 아줌마에게 연락해서 수요일(9월 30일) 아침에 다시 J씨와 함께 집을 보러 갔다.

  그런데 내가 복부인이나 부동산 업자가 아닐까 생각했던 그 아줌마, 알고보니 흑룡강대학의 컴퓨터학과 교수님이시란다...!! -0-;;   전혀 그렇게 안 보이던데, 정말 놀랐다.  그리고 이 수다스러운 교수님은 이 날도 never ending story를 펼치셨다.

 

  나는 그저 집의 임대 조건에만 집중해 이야기를 해서 얼른 집 문제를 해결했으면 하는데, 이 교수님의 수다는 한도 끝도 없었다.

  다시 언어학 전문가라는 아버지 이야기를 꺼내시며, 계약을 하는 날 나에게 아버지 책을 한 권 주겠다 하셨다.  그리고 중국인은 인연을 중요시 한다면서, 나를 처음 봤을 때 나의 첫인상이 너무 좋았는데 이게 인연 아니냐며, 나중에 내가 귀국한 후에 다시 중국에 와서 자신을 찾으면 이런저런 일을 도와줄 수 있다 하셨다.  또한 그 집 아래 층에 살았다는 러시아 유학생들이 밤마다 어찌나 시끄럽게 구는지 학교 안 파출소에 전화해서 신고한 적도 있다면서, 다른 러시아 유학생들이 집을 구한다며 연락해왔지만 자신은 조용한 아시아 출신 유학생에게 집을 내주기를 원한다 하셨다.
  아무래도 같은 아시아 사람끼리 통하는 게 많지 않겠느냐고 하시더니, 거기에서 갑자기 이야기 방향을 한국 드라마 쪽으로 꺽으셨다.  대장금에, 여인천하에...  여인천하 이야기 하실 때는 '여인천하의 황후(전인화가 맡았던 문정왕후)가 얼굴도 예쁘고 위엄도 있다.'며 전인화의 표정과 자세를 흉내내시는데... ^^  한편으로는 처음 만났을 때는 꽤 극성맞아 보인다는 인상 받았던 이 교수님이 나름 귀여워 보이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도대체 내가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


  이 집은 전날 본 집보다 조금 더 비싸긴 했지만, 다른 조건들이 어제의 집보다 훨씬 좋았다.
  시설도 어제 본 집보다 괜찮아서 추운 겨울을 잘 날 수 있을 것 같았다. 또 아무래도 주인이 살던 집이어서 깨끗하게 쓴 편이라 그냥 빗자루질, 대걸레질 두어번 하는 것으로 청소를 끝낼 수 있을 듯 했다.  그리고 겨우 4층 밖에 안 된다는 점도 마음에 든다. (만일 한국에서 4층 올라가야 하는데 엘리베이터 없었으면 잔뜩 투덜거렸을텐데, 중국에서는 그저 감사한 마음만 들 뿐임...-.-;;)

  그 전 날에 이어 이 날도 함께 가 준 J씨도 이 정도면 깔끔하고 괜찮다고 하고...

 

  장기간 살 것도 아니고 4개월만 살 예정이니, 더 이상 스트레스 받지 않도록 그냥 계약하기로 했다.

  괜히 고르고 고르다가 지금 사는 집 비워줘야 하는 때에 세를 못 구해 거리에 나앉으면 곤란하니까...  그래서 계약은 다음 주에 하기로 하고, 그 동안 다른 사람에게 집을 내주지 못 하게 계약금을 걸고 왔다. 

  


  여기에 쓰지 않은 것까지 이런저런 사연이 많았지만, 그래도 이렇게 마무리 지으니 정말 개운하고 좋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