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얼빈 생활기/'09~'10년 흑룡강대학 어학연수기

신종플루 때문에 다시 방학을 맞다.

Lesley 2009. 9. 17. 00:13

 


  뭐 이런 황당한 상황이 다 있는지...
  개학한지 겨우 2주일 되었을 뿐인데, 또 다시 방학을 맞게 되었다.  그 놈의 신종플루 때문에 학교측에서 유학생들에게 무려 한 달짜리 방학을 줬다...!! -0-;;

 


  
 1. 개학 2주만에 받은 방학

 

  어제 올린 포스트 '결국 여기도 신종플루 발생...! (http://blog.daum.net/jha7791/15790587)' 에도 썼듯이 흑룡강대학에서 2명의 신종플루 환자가 발생했다.

  그래서 14일 하루 중국학생들은 전체 휴강에 들어가서, 기숙사 대청소 및 소독으로 분주한 하루를 보냈다.  우리 유학생들은 유학생대로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수업을 받았다.

 

  그렇게 하루가 지난 15일 오전에는 수업이 없어 집에서 숙제를 하고 있었다.
  그 때 오전에 수업이 있어서 등교한 T군이 전화해서 하는 말이, 신종플루 때문에 오후부터 유학생들 모두 방학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방학이라는 게 1, 2주일짜리가 아니라 무려 한달짜리란다...! -0-;;  선생님들이 수업하다 말고 회의 들어가, 학교로부터 그런 방침을 전달받아 학생들에게 전했다 했다.  그리고 덧붙이기를, 나처럼 기숙사에서 살지 않는 학생들에게 체온계를 나눠줬다고 했다.  다만 나는 오전 수업을 신청하지 않아 그 자리에 없어서, 자신이 대신 받아뒀다고 했다.

 

  제법 어수선한 심정으로 T군과 T군의 중국친구를 만나 점심을 먹으며 얘기를 들어봤다.
  중국학생들의 경우는 정상적으로 수업을 한다 했다.  어제는 중국학생들만 휴강하고 기숙사를 소독하고 우리 유학생들에게는 특별한 조치가 없어서, 유학생들이 불만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상황이 거꾸로 되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귀국하고 싶은 학생들은 유학생 사무실로 와서 비자 신청하라고 했다니, 일이 꽤 심각한 모양이었다.

 

 

 2. 점점 동요하는 학생들 

 

  어차피 이 날이 A취에서 '징신'과 하는 푸다오 수업이 있는 날이기에, 일단은 직접 학교로 가서 상황을 살펴보기로 했다.
  A취의 유학생 강의동으로 갔더니, 이 날부터 10월 11일까지 방학을 하며 방학 기간 동안 학교 밖으로 나가는 학생들은 각별히 건강 주의하라는 공고문이 붙어 있었다.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유학생들도 제법 눈에 띄었고, 청소하시는 아줌마들은 소독약이 들어간 분무기를 들고 다니며 이 강의실 저 강의실에 뿌렸다.  무슨 소식이라도 얻어들을 수 있을까 하여 유학생 사무실을 기웃거렸더니, 귀국하겠다며 비자 신청하러 온 러시아 학생들만 바글거리고...

 

  징신과 푸다오 공부를 하는데, 후쉐인 '양'이 전화를 했다.
  뜻밖에도 자신과 자신의 룸메이트들이 우리집에 와서 하룻밤 지내도 되느냐고 물었다.  신종플루 때문에 너무 무서워서 기숙사에서 잘 수 없다고 했다.  그렇게 하라고 대답하고 끊기는 했는데, 이 애들이 너무 예민하게 구는 게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나중에 J군에게 들으니, 양과 그 룸메이트들이 잔뜩 겁먹을만 했다.  양의 기숙사에도 환자로 추정되는 학생이 있다는 소문이 있어 학생들이 공황상태인 모양이었다.

 


 3. 줄잇는 탈출

 

  저녁에는 지난 학기에 태극권 수업 함께 받았던 '샤오위'와 만나 저녁을 먹었다.
  그런데 샤오위는 지금 방송국에서 실습 중인데(샤오위는 신문방송학과 졸업반임) 실습이고 뭐고 몰래 도망칠 생각이라면서, 짐 나르는 것 좀 도와달라 했다. -.-;;  전염병이 도는 학교에 있으면 위험할 것 같아, 학교측의 허락 없이 기숙사를 나가 하얼빈 외곽에 있는 외삼촌댁으로 가려 한다고 했다. 
 

  사실 샤오위와 그 얘기를 하는 동안에도, 교정은 이미 짐싸들고 총총히 나가는 중국학생들로 가득했다.

  물론 그 학생들도 무단결석 무릅써가며 학교를 빠져나가는 학생들이었다.  그래서 교문 밖에서는 많은 학생들이 기차역이나 버스터미널로 가려고 한꺼번에 쏟아져나온 통에, 택시 잡는 게 하늘의 별따기였다.
  내가 학교에 막 들어왔던 점심 때만 해도 러시아 유학생들이나 마스크 쓰고 다녔다.  하지만 저녁이 되자 중국학생들도 줄줄이 마스크를 썼고, 마스크를 미처 못 구한 학생들은 입고 있는 점퍼의 옷자락을 끌어다가 입과 코를 막고 다니는 지경이었다.  일부 중국 여학생들은 세상이 끝나기라도 한 것처럼, 서로 끌어안고 흐느껴 울고 있고...

 

  샤오위가 짐 가지러 기숙사로 올라간 동안 나는 아래층에서 기다렸다. (해당 기숙사에 살지 않는 방문객은 주말에만 기숙사 안에 들어갈 수 있음.)
  그런데 어떤 중국 여학생 한 명이 잔뜩 겁에 질린 채, 수위 아줌마에게 자기 방 룸메이트 중 하나가 열이 난다고 말했다.  아줌마가 그냥 감기일 수도 있으니 일단 상태를 지켜보자 했더니, 그 여학생이 흥분해서 목소리를 높이며 뭐라고 했다.  워낙 빠른 말이라 전혀 알아들 수 없었지만, '그러다가 그 애가 정말 신종플루면 우리는 어떻게 하라구요?' 라는 뜻인 것을 대강 짐작 할 수 있었다.  

 

  그렇게 샤오위를 기다리는 동안, 또 다시 양이 연락을 했다.
  양과 그 룸메이트들도 전부 집에 가려 이미 버스터미널에 나왔다며, 우리집에 오지 않을테니 기다리지 말라고 했다.  '너희도 몰래 빠져나가는 거냐?' 라고 물었더니, 그게 아니라 중국학생들도 방학했단다.  몰래 빠져나가는 학생들이 워낙 많아서, 학교측에서 할 수 없이 중국학생들에게도 방학 처분 내렸다 했다. (나중에 들으니 흑룡강성 당국에서도 병이 확산되는 걸 막으려고, 학교측에 빠른 조치를 요구한 모양임.)

 

 

 4. 어수선한 내 기분... ㅠ.ㅠ 


  샤오위의 짐을 교문 밖까지 옮겨주고 택시 타고 떠나는 걸 지켜본 후 돌아오는데, 정말 어수선한 기분이었다.

  너무 안일한 생각인지는 모르지만, 사실 나는 신종플루 자체는 그렇게 대단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신종플루보다 신종플루로 인해 급속히 퍼지는 공포감이 더 문제인 듯 싶다.  이미 많은 중국학생들이 공황상태이고, 유학생들은 중국학생들보다는 침착한 분위기지만 그래도 불안해하는 건 어쩔 수 없고... 

 

  지금 하얼빈에서는 흑룡강대학 학생들은 기피대상 0순위다.

  얘기를 들으니, 하얼빈의 사설학원에 HSK 관련 수업을 신청하러 갔던 학생들이 흑룡강대학에서 공부한다는 이유로 퇴짜 맞았다고 한다.  그리고 그 학원이나 하얼빈의 다른 학교에서는 자기네 학교 유학생들에게 흑룡강대학쪽으로는 가급적 가지 말고, 흑룡강대학 학생들과 접촉하는 일도 피하라고 했단다. (아니, 우리 흑룡강대학이 무슨 범죄의 온상지고, 우리 흑룡강대학 학생들은 죽을 죄라도 지은 범죄자들이냐? ㅠ.ㅠ)

 

  어서 빨리 이 상황이 수습되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