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얼빈 생활기/'09~'10년 흑룡강대학 어학연수기

하얼빈에서 겪은 통장 및 카드 분실(?) 사건

Lesley 2009. 8. 27. 14:39

 

 

  쓰촨성에서 하얼빈 돌아온지 얼마나 되었다고 또 사고 쳤다.
  도대체 하얼빈에서의 내 생활은 왜 항상 이 모양인건지... ㅠ.ㅠ

  이번 포스트의 제목이 '통장 및 카드 분실(?)사건'인데, 왜 '분실'이란 단어에 물음표가 들어갔느냐... 정확히 말하자면, 분실했다고 말하기가 뭣한 그런 상황이기 때문이다.

 

 

 

  쓰촨성으로 여행 떠나기 전에, 통장과 카드를 집에 남겨두고 갔다.
  나는 분명히 항상 통장과 카드를 보관하던 곳에 두고 간 듯 한데...  지난 금요일 하얼빈에 도착해서는 통장과 카드 같은 건 전혀 신경 안 쓰다가, 월요일에야 은행 가려고 통장과 카드를 찾았다.  오늘부터 토요일까지 다음 학기 등록금을 내야 하기에, 은행에 가서 현금이 얼마나 되나 확인하려 했던 것이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도 통장과 카드의 행방을 알 수가 없었다...! ㅠ.ㅠ

 

  나중에는 혹시나 내가 여행 간 사이 도둑이 들어 통장과 카드만 들고 간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고...

  그런 불길한 생각이 들자 안 되겠다 싶어서 분실신고 하려고, 얼른 흑룡강 대학 바로 옆에 있는 중국은행에 갔다.  그런데 내 계좌번호를 보더니, 그 곳에서 만든 통장이 아니라 그 곳에서 처리가 안 된단다. (아니, 왜? 똑같은 중국은행인데, 어떤 지점에서 만들었든 그게 무슨 상관인데??? -0-;;)  하얼빈의 중국은행 지점 중 가장 큰 곳(바꿔 말해서 하얼빈에서는 본점 같은 곳)에 가야 한다고 해서 택시까지 잡아 타고 홍쥔루(紅軍路 : 홍군로)에 있는 중국은행으로 갔다.  나는 마음이 급해 죽겠는데, 지하철 공사 때문에 도로는 꽉꽉 막혀서 택시는 좀처럼 속력을 못 내고...

 

  그런데 달리 생각해보면, 누군가 내 통장과 카드를 훔쳐갔다면 이미 돈을 몽땅 인출했을 가능성이 컸다.

  1주일 전에 훔쳐간 건지 2주일 전에 훔쳐간 건지도 알 수가 없는데, 그렇게 오래 전에 훔쳐갔다면 벌써 돈 죄다 인출해서 도망쳤을 게 아닌가?  그렇다면 지금 와서 이렇게 조바심 낸다고,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이미 돈을 다 인출했다면, 지금에 와서 분실신고 한들 돈을 되찾을 수 있는 것도 아닌데...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그때까지 초조했던 마음이 갑작스레 평온(?)해지면서, 될대로 되라는 심정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 유난히 외국인 승객의 중국어 수준에 신경 써주며 또박또박 정확한 발음으로 말을 걸어주던 택시 기사 아저씨와 쓰촨성에서 겪은 이런 저런 일에 대해 수다를 떨면서, 꽉꽉 막히는 도로 위에서 시간을 보냈다. (한 마디로 말해서, 너무 큰 일 겪어서 이미 정신줄 놓아버린 상황... -.-;;)

 

 

 

  하여튼 그렇게 목적지 도착해서 은행 직원과 대면하게 되었다.

  30살 전후의 젊은 여자 직원이었는데, 내가 외국인이라는 것을 알고는 말을 천천히 또박또박 하며 굉장히 친절히 대해줬다.  이 날은 운이 좋았다.  택시 기사도 은행 직원도 모두 친절하게 외국인을 배려해주는 사람들이였으니 말이다.  이렇게 통장과 카드를 잃어버렸을지도 모르는 정신 없는 상황에서 '너는 중국 살면서 왜 중국어도 모르니' 식으로 짜증내는 사람 만났으면, 정말 뚜껑 열리고 중국에 대해 오만가지 정이 다 떨어졌을 거다. (나도 귀국하면 한국말 잘 모르는 외국인들한테 엄청 친절하게 대해줘야지...! ^^)

  분실신고 하는 과정에서 통장 안의 금액을 확인해줬는데, 다행히도 누가 통장과 카드를 훔쳐간 건 아닌지 돈은 그대로 있었다. (아마도 내가 먼 길 떠나면서 내 딴에는 잘 보관해둔다고 어디에 꼭꼭 숨겨놓고서는, 못 찾는 모양이다... ㅠ.ㅠ )

 

 

  그런데 돈을 도둑맞지 않은 것도 다행이고, 그 직원이 친절하게 대해준 것도 고마운데, 예상 못 한 상황에 부딪쳤다. 

  나는 한국에서 그렇듯이, 여기에서도 분실신고 하면 곧장 새 통장과 카드를 발급받을 수 있을지 알았다.  전화로 신고한 것도 아니고 신분증 들고 직접 은행에 간 거니 본인확인도 되었겠다, 당연히 그리 될 줄 알았다.  하지만 분실신고 처리하는데 무려 1주일이 걸린다는 것이다...! -0-;;  그 1주일 동안 새 통장과 카드를 발급해 줄 수도 없고, 내 돈을 인출할 수도 없단다.
  내가 이번 주에 다음 학기 등록금 내야 해서 돈이 필요하니 사정 좀 봐달라고 했지만, 난감한 표정으로 '은행 컴퓨터 씨스템의 문제라 우리도 어쩔 수 없다. 학교에 사정 얘기해서 늦게 등록금 내게 해달라고 해라.' 하고 말할 뿐이었다. ㅠ.ㅠ

 

  다음부터는 조심해서 잃어버리는 일 없도록 하라고 걱정스런 표정으로 충고해주는 은행 직원에게 인사하고 밖으로 나오는데, 갑자기 참을 수 없는 허기가 엄습해왔다. -.-;
  통장과 카드를 못 찾아서 너무 당황한 나머지 아침도 못 먹고 생쇼를 벌였더니, 일을 처리할 때는 조급하기도 하고 긴장되기도 해서 몰랐는데, 일이 다 끝나고나니 너무 배가 고팠다.  어찌나 허기가 지는지, 정말 길거리의 돌맹이라도 주워 먹고 싶은 심정이었다. ㅠ.ㅠ  버스 정류장 근처의 가판대에서 파는 초코 아이스크림 하나 먹고 났더니만, 그나마 허기가 좀 가셔서 내 머리 속에서 땅바닥으로 떨어지려던 정신줄을 겨우 다시 잡을 수 있었다.

 

 

 

  어제 흑룡강 대학의 유학생사무실에 찾아가서 이 문제를 얘기하고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물었더니, 역시나 내가 예상했던대로 늦게 등록금 내도 괜찮다고 한다.
  사실, 남들 등록금 낼 때 함께 처리 못 하고 따로 늦게 처리해야 하는 게 귀찮아서 그렇지, 등록기간 넘으면 등록 못 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은 안 했다.  지난 학기에도 보니 등록기간 며칠 뒤, 심지어는 몇 주일 뒤나, 아예 한 학기 절반이 지나간 상태에서 뒤늦게 등록하는 학생도 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늦게 등록하는 학생을 받아주면, 수업 진행하는 선생님 입장에서는 상당히 난감할 것이다.  이미 진도 웬만큼 나간 상태에서 새로운 학생을 받으면, 당연히 그 학생도 수업 따라오기 힘들테고, 선생님도 신경 많이 쓰일테고...  하지만 학교 입장에서는 어학연수생 받는 것이 꽤 짭짤한 돈벌이 수단이다 보니, 돈만 싸들고 오면 무조건 OK란 식이다. 

  전에 한비야씨의 중국견문록 보니, 그 때만 해도 등록기간 넘겼다는 이유로 등록을 안 시켜주는 장면이 나올 정도로 학사관리가 엄격했다.  아마도 지금은 연수생을 받는 학교가 너무 많아서 학교들끼리 연수생 쟁탈전이 벌어지다 보니, 학생 관리가 느슨한 듯 하다.  연수생을 포함한 외국 유학생은 중국 대학 입장에서는 꽤 괜찮은 수입원이니 말이다.


 
  하여튼 난 31일까지 통장에 돈이 있음에도 돈을 뽑을 수 없는 그런 상황에 처해있다. ㅠ.ㅠ

  다행히 쓰촨성 여행 때 가져간 여행 경비 중 일부를 남겨왔으니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다른 사람들한테 돈 빌려달라고 아쉬운 소리 하며 돌아다닐 뻔했다.
  방학 시작하자 마자 중양홍에서 지갑 잃어버렸다가 다행히 곧 되찾은 일을 겪더니만, 방학 끝나가면서는 통장과 카드를 못 찾는 일이 벌어지고...  부디 이 사건이 중국에서 '돈' 관련해서 겪는 마지막 사건이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