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얼빈 생활기/'09~'10년 흑룡강대학 어학연수기

회자정리(會者定離) - 1

Lesley 2009. 7. 25. 20:29

 

  

  만난 사람은 반드시 헤어지게 된다는 불가의 말처럼, 최근에 좋은 관계였던 사람들과 두 차례 이별하는 일을 겪었다.

 


  먼저 여기서 가장 친하게 지냈던 한국친구들인 B, M이 21일 화요일에 하얼빈을 떠났다.


  두 사람은 일단 북경으로 가서  며칠 동안 함께 돌아다니다가, 헤어지기로 했다.

  M은 그 곳에서 먼저 귀국하고, B는 청도(靑島) 근처에 있는 작은 도시로 가서 중국친구 일가를 만난 후 귀국하기로 했다.  그런데 언제나 온갖 사건 사고를 몰고 다니던 두 사람이라(그 중에서도 특히나 B...!), 떠나기 직전 며칠과 하얼빈을 떠나는 바로 그 순간까지도 정말 요란벅적했다. ^^;;
 
  먼저 17일에 두 사람은 지금까지 살던 방의 퇴실수속을 밟고서, B는 친구를 찾아 단동(丹東)으로 가고 M은 프론트 데스크에 얘기해서 떠나는 날까지 나와 함께 지내는 걸로 했다.

  혼자서 넉넉히 쓰던 방에 두 사람이 지내려니 조금 어수선했는데, 한편으로는 사람 사는 맛이 나는 것 같기도 해서 재미있기도 했다.  그리고 B가 돌아온 19일 밤부터 21일까지는 아예 세 명이서 지냈더니, 그 북적거림이 보통이 아니었지만 웃긴 사연도 여러 개 있었다.

 

  우선 전에 M이 말하기를, B가 때때로 중국어로 잠꼬대를 한다고 하여 그냥 웃고 말았는데, 내가 직접 들어보니 한편으로는 놀랍고 다른 한편으로는 정말 웃겼다. ^^ 

  원래 나는 한 번 잠들면 누가 업어가도, 옆집에서 불이 나도 모를 정도로 깊게 자는 사람이다.  하지만 바로 옆에서(침대 2개를 붙이고 세 명이 나란히 누워 자서, 서로 바로 옆에 붙어 자는 상황이었음.) 다른 사람이 잠을 자면서 '부야오, 부야오(不要, 不要 : '안 돼' 또는 '필요없어'에 해당하는 중국어)하며 중얼거리니, 잠결에도 웃기기도 하고 조금 무섭기도 하고... ^^

 

  그리고 또 하나는 한국 드라마 '화양난즈'...!

  M과 함게 방을 쓰는 동안 M이 화양난즈를 엄청나게 좋아하며 꼬박꼬박 챙겨보는 걸 보고 조금 놀랐는데, 나중에 B까지 내 방에 합류하자 화양난즈 하는 시간에는 아주 TV에 들어갈 기세로 둘이서 정신없이 봤다. ^^  덕분에 화양난즈에 전혀 관심없던 나도 졸지에 옆에서 조금씩 보며, '쟤는 누구야?', '저 애가 금잔디 좋아하는 거야?'하며 관심 보일 정도가 되었는데...

 


 ※ 화양난즈(花樣男子)

 

  화양난즈란 '꽃 같은 남자(한마디로 '꽃돌이'? ^^)'라는 뜻인데, 일본만화를 원작으로 하는 우리나라 드라마 '꽃보다 남자'의 중국어 제목이다.
  그 동안에도 해적판 DVD 또는 불법 다운로드 등을 통해서 중국 젊은이들(물론 여기 말하는 젊은이들의 대부분은 여학생들임. ^^;;) 사이에서 상당한 인기를 끌었던 모양인데, 최근 TV에서 정식으로 방영하면서 다시 한번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는 중이다.  내가 3월에 하얼빈 막 도착했을 때만 해도 한국 드라마의 제왕은 '궁'이었는데, 이제는 궁을 저만큼 밀어내고서 이 화양난즈가 선두를 달리는 중이다.

 

  어느 정도냐 하면...
  언젠가 B와 학생식당에 밥 먹으러 갔다가 사람이 너무 많아 중국 여학생 2명이 앉아 식사하던 4인석 테이블에 합석하게 되었다.  우리가 한국어로 대화하자, 그 두 여학생 중 한 사람이 대뜸 '통쉐(同學 : 우리말의 '학우' 쯤 해당하는 말), 한국인이에요?' 라고 물어 그렇다고 했더니, 그 다음 질문이 '그럼 화양난즈 봤어요?' 였다. -.-;;  내가 안 봤다고 하자 눈에 띄게 실망스런 기색 보였던 두 여학생이, B가 자기는 봤고 너무 좋아한다고 하자 금새 입이 벌어지며 '꺄악~~~~'하며 이민호가 잘 생겼다는 둥, F4 중 누구를 가장 좋아하냐는 둥 난리가 났다. ^^;;  내가 '나는 화양난즈를 안 봤지만, 이민호는 별로 안 좋아하고 김범이 좋다.'라고 했더니, '거침없이 하이킥'도 봤다며 발까지 동동 구르고... ^^

 


  어찌되었거나 한 동안 내 방을 북적북적거리게 했던 두 사람은 21일 오전에 북경으로 떠났다.

  (그런데 떠나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아~~ 주~~ 스펙터클했음. -.-;;)

 

  C취 남문에서 두 사람을 전송하고서 며칠간 세 명이 북적거리며 사느라, 그리고 그 동안 M과 B가 짐 싼다고 몇 번이나 캐리어를 뒤집었다 엎었다 하는 통에 엉망이 된 방을 청소했다. 
  그런데 이게 웬 일?  두 사람 그렇게 요란벅적하게 몇 번이나 짐을 싸더니만, 놓고 간 게 한 두개가 아니었다.  먼저 내 여행안내책에서 칼로 잘라내기까지 한 북경 부분을 그냥 두고 갔다. -0-;;  그리고 B는 성경책도 내팽개치고 갔고, 누구 것인지 알 수 없는 칫솔도 방 한 구석에서 굴러다니고 있고...  한편으로는 웃음도 나오고, 한편으로는 대체 무슨 정신들로 떠난걸까 한숨이 나오면서도, 하여튼 잘 갔겠거니 하고 있었는데...

 

  그 날 저녁 B가 북경에 잘 도착했다고 전화해서 하는 말이, 하마터면 비행기 못 탈 뻔했단다. -.-;;   
  말 많고 탈 많았던 비행기표(http://blog.daum.net/jha7791/15790521)를 팔았던 그 여행사에서 보내준 자동차를 타고 공항에 도착했더니만, 여행사에서 일을 잘못 처리하여 두 사람의 이름이 여권과 다르게 표기되어 본인 확인이 안 되더란다. -.-;;  그래서 비행기 탑승을 거부당한 것이다.  그래서 B가 여행사에 전화해서 진땀 흘려가며 상황 설명했던 모양인데, 모국어도 아니고 외국어로 그 상황 설명하는 게 어디 쉽나...  더구나 당장 비행기 놓치게 된 상태라 마음은 다급하니, 제대로 설명하기가 더욱 더 힘들었을테고... 
  결국 또 다시 진쥔에게 전화해서 도움을 청하고, 진쥔이 여행사에 연락해서 어찌어찌 겨우 해결되어 비행기를 탔다고 했다.  그렇잖아도 진쥔은 먼저번 비행기표 사건으로 시간을 많이 뺐긴데다가, 최근 나의 이사 문제로도 동분서주하며 고생 많이 했는데, 이 날 또 우리 일에 휘말렸으니 정말 미안해 죽는 줄 알았다.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다고 문자 보냈더니만, 그쪽에서는 '괜찮아, 우리는 친구잖아'라는 답장을 보내줘서, 오히려 더욱 더 미안해지고... ㅠ.ㅠ)

 

  하여튼 꽤나 요란벅적하게 하얼빈에서 생활했고, 하얼빈에서 떠날 때도 역시나 요란벅적하게 떠난 두 친구가 한국에서 잘 지내기를 기원한다. (두 사람 모두 한국에서 나 없다고 울지 말고, 잘 먹고 잘 살아라...!  그리고 나 귀국하면 꼭 다시 만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