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얼빈 생활기/'09~'10년 흑룡강대학 어학연수기

파란만장했던 6월 20일

Lesley 2009. 7. 10. 01:06

 

 

  중국에 온 뒤로 단 하루도 평범한 날이 없었던 듯 한데, 그 중에서도 지난 6월 20일 저녁과 밤은 정말 이런 저런 사연이 많았던 날이다.

 

 

 

  먼저 비행기표 예약과 수령에 얽힌 사건...

 

  여기에서 가장 친하게 지내는 한국인 친구들인 B와 M이 7월 중순에 귀국하는데, 귀국하기 전에 두 사람이 며칠간 북경을 여행하기로 했다.

 

  그런데 여행계획을 짜고 비행기표를 예약하는 과정에서 여러가지 문제가 있었다.  

  우선순위로 생각하는 게 다르다보니, 두 사람 모두 자기 딴에는 잘 해보겠다고 애를 쓰는데 상대방과 손발이 안 맞아 일이 진행되지 않는 짜증스런 상황이 며칠이나 계속되었다. 

  그 과정에서 내 푸다오 선생인 진쥔은 두 사람의 북경행 비행기표와 B의 귀국 비행기표를 중국 사이트 통해서 예약하는 것을 돕느라, 몇 번이나 B와 M의 방을 드나들게 되었다.  모두들 인터넷으로 비행기표 예약하는  것을 아주 간단하게 생각했는데, B와 M이 외국인이라는 것과 중국에서 통용되는 신용카드가 없다는 것 때문에 일이 계속 꼬였다.  나는 나대로 중요한 시험 앞둔 진쥔이 계속 그 일에 시간 뺐기는 것을 보면서, 미안하다 못 해 곤혹스런 기분마저 들 지경이 되었고...

  그렇게 오랜 시간 지지부진했던 일이 다행히도 토요일인 6월 20일 오후에야 좋은 방향으로 해결되었다.

 

  그래서 그간 받은 스트레스도 풀 겸 학교 밖 식당에 가서 저녁 먹기로 했다.
  하지만 6시 반이면 온다던 비행기표 배달하는 아저씨(우리나라로 치면 퀵서비스 같은 일 하시는 분이 아닌가 싶음.)는 감감 무소식이었다.  기다리다 못 한 B가 여행사에 전화해서 "우리는 진작 나갔어야 하는데 비행기표 기다리느라 지금까지 못 나갔다. 더는 기다릴 수 없으니, 더 늦을거면 차라리 내일 배달해달라."라고 했다.  그러자 여행사 직원이 "안 된다. 무슨 일이 있어도 당신들이 오늘 꼭 비행기표를 수령해야 한다. 안 그러면 예약한 비행기표가 취소된다."라고 했다. (도대체 왜?  -.-;; )
  그렇게 또 다시 기다리고 기다리다가 8시가 넘어가자 이제는 모두들 지쳐서 짜증이 날 판국이 되어, 그 배달 직원이 오거나 말거나 그냥 식당으로 가기로 했다.  그 쪽에서도 오늘 반드시 배달을 해야 한다니, 기숙사에 도착해서 우리가 없는 것을 알면 휴대폰으로 연락할테고, 그러면 우리가 있는 식당으로 오라고 말하면 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또 6시 반까지 온다던 사람을 8시 반 넘어서까지 기다렸으니, 기다릴만큼 기다렸다는 생각도 들었고...
 
  그런데 우리가 기숙사 1층 로비를 막 나서려는데, 퀵서비스 직원 차림새의 아저씨가 급히 들어서서 프론트 데스크로 가는 것이었다...! 
  한 눈에 우리가 기다리던 사람이라는 것을 안 우리는 우르르 몰려갔다.  그리고 막 프론트 데스크의 직원들에게 뭔가 물으려던 아저씨를 붙들고 "덩 이샤!(잠깐 기다려요)", "웨이, 웨이! (이봐요, 이봐요)", "어어어어~~~" (← 이 소리 낸 사람은 바로 나...! 너무 흥분하니까 한국말이고 중국말이고 전부 안 나와서... -.-;;) 하면서 한꺼번에 아우성 치고...  갑자기 세 명의 여자가 무섭게(?) 달려들자 아저씨가 좀 놀란 표정으로 B의 이름을 확인하고는 비행기표를 건내줬다.

  M과 B가 비행기표와 항공보험표에 적힌 사항을 꼼꼼히 살피는 동안, 프론트 데스크의 매니저가 나에게 B와 M이 구입한 비행기표가 어느 항공사 것인지 물었다. (프론트 데스크에서도 항공권 구매대행 업무를 보기 때문에 그런 듯 함.)   그 매니저는 언제나 굉장히 절도 있고 도도한 표정을 지어서, 다른 사람들이 좀 어려워하는 편이다.  그런데 자신들에게 다가와 뭔가 물으려던(아마도 M과 B의 방 번호를 물으려 했을 것임.) 배달 직원을 다짜고짜 끌고가버린 우리의 과격한(?) 행동에 너무 놀라, 보통 때와는 달리 얼떨떨한 표정이었다. ^^;;

 

 


  맥주와 함께 토요일 밤을...

 

  그렇게 비행기표를 무사히 수령해서 흑룡강대학 옆에 있는 쉐푸쓰다오지에(學府四道街)로 나갔을 때는 이미 9시가 넘어,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게 생활화 된 중국답게 이 음식점 저 음식점 모두 문닫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나와 B와는 달리 동북지방요리인 춘빙(春餠)을 아직 못 먹어본 M을 위해 춘빙집에 가려 했으나, 이미 식당 청소까지 다 끝내가는 중이라 포기했다.  아쉬운대로 훠궈(중국식 샤브샤브)집을 가려 했으나 거기도 10시에 문 닫는다 하고...  한국식 자장면집을 기웃거렸지만, 거기도 문 닫을 준비가 한창이었다.

 

  이제 문제는 '이 식당 음식이 맛있나?' 가 아니라, '이 식당 늦게까지 문 여나?' 였다.

  결국 전에 M과 내가 한 번 가 본 적이 있는 24시간 하는 미셴(米線 : 우동처럼 통통한 굵기의 쌀국수를 샤브샤브 국물과 라면 국물 중간쯤 되는, 여러 야채나 고기 들어간 국물에 넣어 끓여 먹는 음식)집에 갔다.  사실 전에 우리가 먹은 미셴 맛은 영 아니올씨다~~~ 였다.  굉장히 느끼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쩌겠나... 이미 9시 반이 넘었고, 이제 갈 곳은 거기 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매운 맛이면 느끼함이 덜 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담백한 맛, 약간 매운 맛, 아주 매운 맛' 3가지로 구분된 것 중 '약간 매운 맛'으로 주문했다.

  다행히 제대로 주문해서, 이번에 나온 미셴은 지난 번에 먹은 것과 완전히 다른 맛이었다.  우리 한국인 입맛에 잘 맞았다. ^^  그렇게 늦은 저녁으로 미셴을 먹으며 맥주 두 병도 곁들여 마시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게 되었는데...

 

  어찌어찌하다 보니, 이야기 범위가 점점 넓어졌다.
  각자 그 동안 말하지 못 했거나 지나가는 이야기로 흘려 말했던 사연 하나씩 털어놓고...  이 지구상의 60억이나 되는 인구 중 3명이 우연히 자기 나라 땅도 아니고 머나먼 이국땅에서 만나 친하게 된 기적과도 같은 인연에 감탄하며...  여기에서 만난 중국인들에 관하여 논하고... (이 두 친구 역시 내 푸다오 선생 진쥔을 완소에, 진국으로 인정했음. 푸다오 선생을 고를 때 두 명의 후보 중 진쥔을 택했던 나는 좀 짱인 듯...? *^^*)  우리의 앞날에 관하여 얘기하고...  서로에 대해 그 동안 느꼈던 감정들에 대해 말하고...

  하여튼 이 날 밤 온갖 소재의 이야기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이야기가 남북통일과 세계평화까지 안 간 것이 이상할 정도였다... ^^

 

  이렇게 이야기가 길어지면서 처음에 시켰던 맥주 2병은 옛날 옛적에 동나버렸다. (원래 계획은 이 맥주 2병으로 가볍게 끝내는 것이었음. -.-;;)

  B가 술을 전혀 안 마시기 때문에 M과 나만 그 후에 추가 주문해서 마셨는데, 한 병씩 계속 주문했더니만, 나중에는 맥주 가져오는 여종업원이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웃고, 옆 테이블에서 술 마시던 하얼빈이공대 다닌다는 중국 남학생들에게 한국 여자들의 주량은 대단하다는 소리까지 듣고... ^^;;

  그런데 역시나 울적한 기분에 막 퍼마신 술이 아닌, 허심탄회하게 이런저런 얘기하며 장시간에 걸쳐 기분 좋게 마신 술이라 그런지, 뒷끝이 없어 좋았다.  새벽 2시 반이 다 되어 잠자리에 들었다가 아침 7시 반쯤에 저절로 깨었는데, 놀랍게도 숙취가 전혀 없었다.  숙취는 커녕, 그 즈음 며칠이나 비가 와서 쌓아두기만 하고 못 빨았던 꽤 많은 빨래거리를, 아침도 안 먹었는데 어디에서 그런 힘이 솟아났는지 한 번에 해치워버렸다. (그러고보니 온라인 벗님 중 한 분은 그렇게 아침 댓바람부터 정신없이 빨래를 해치운 것 자체가 취기가 가시지 않은 증거라 하셨음. ^^)

 

 

  비행기표 관련한 사건은 여기에 쓰지 않은 사연까지 합치면 그 과정이 정말 파란만장 했는데, 지나고나니 나름 괜찮은 추억거리가 된 듯 하다.

  그리고 그 일로 끊임없이 중국 여행사와 통화를 해야했던 B는, 덕분에 눈에 띄게 전화 회화실력이 늘었으니, 이것도 큰 수확인 셈이고... ^^

  물론 밖의 식당에서 여자 세 명이 밤 늦게까지 그러고 있었던 게, 한국과는 달리 밤에 인적이 드문 중국에서는 다소 위험한 일이기는 했지만, 허구한 날 그러는 게 아니라면 한 번 정도는 괜찮은 경험일 듯 하다. (그렇다고 이런 경험을 적극 권장하는 것은 절대 아님.  어지간하면 야심한 시각에 음주하는 것은 안전하게 자기 방에서 하시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