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다사다난한 나날을 보내고 있어서, 언제였던가 기억도 가물가물한데, 하여튼 지난 달 언젠가 여기에서 친하게 지내는 M양이 몸이 안 좋아 병원에 가게 되었습니다.
어찌어찌 하다 보니, 저와 M의 같은 반 학우인 J씨, J씨의 남편, 이 부부의 어린 두 아들까지, 일개 소대가 움직이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 어른, 아이가 한 덩어리가 되어 햇볕 쨍쨍 내리쬐는 더운 날씨에 흑룡강대학 정문 나서서 도로 건너편에 있는 '중국인민해방군 제211의원'(중국에서는 우리나라와 달리 종합병원을 '의원'이라고 함.)에 갔습니다.
병원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이 병원은 그냥 병원이 아니라 우리나라로 치면 '국군통합병원' 쯤 되는 군대에서 운영하는 병원입니다. 흑룡강대학 근처에서는 하얼빈의대 부속의원 다음으로 괜찮은 병원이라기에 갔는데...
확실히 우리나라 병원과는 여러모로 달랐습니다.
병원이라는 곳은 엄연히 무슨 패션쇼장 같은 곳과는 다르니 번쩍거릴 필요까지는 없지만, 그래도 페인트칠조차 안 된 맨 시멘트벽에, 여러 색깔의 굵고 얇은 전선조차 그대로 드러난 천장, 여기저기 타일이 벗겨진 바닥 등... 어째 병원이라기 보다는 무슨 수상쩍은 음모가 진행되는 비밀장소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또한 우리나라 간호사들은 요즘 거의 안 쓰는 간호사 캡을, 간호사들이 쓰고 있는 모습도 신기해보였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M이 진찰받게 된 과의 이름이 좀... 아마 우리나라로 치면 정형외과에 해당하는 곳이 아닌가 싶은데, 그 이름이 바로 꾸커(骨科 : 우리 식으로 읽으면 '골과'임. 발음이 어째 좀... -.-;;)였습니다.
복도의 벤치에 앉아 한참을 기다리다가 간호사가 M의 이름을 부르자, 은근히 긴장하고 있던 M과 J씨의 남편이 급히 진찰실로 들어가고 저도 J씨 부부의 큰 아들 손목을 붙잡고 얼른 두 사람을 뒤따랐습니다. (J씨는 잠들어버린 둘째 아들을 안고 1층 대기실 의자에 앉아있어서, 나머지 사람만 2층 진찰실로 올라온 상황임.)
과거 중국에서 석사 과정을 마쳤고 곧 이 곳에서 박사 과정을 밟을 예정인 J씨 남편의 통역으로 진찰을 받았는데, 의사가 엑스레이 사진을 찍어보자 했습니다.
엑스레이 사진 찍으려고 다시 4명이 우르르 그 건물을 나서서 옆 건물로 몰려갔습니다.
지난 달부터 유난스레 변덕스러운 하얼빈 날씨가 이 날도 한 몫을 해서, 햇볕 쨍쨍했다가 한 5분에서 10분 장대비가 쏟아졌다가 그렇게 오락가락하는 동안, 우리는 엑스레이실을 찾아갔습니다.
M은 한국에서 엑스레이 찍기 전에 의례 그러하듯이 목걸이와 귀걸이 등 금속으로 된 장신구를 떼어내어 저에게 맡겼습니다.
그러고는 옷 벗고 가운으로 갈아입으라는 말을 기다리는데... 놀랍게도 평상복 입은 모습 그대로 엑스레이 사진을 찍었습니다...! -0-;; 그저 안경 벗으라는 말과 움직이지 말라는 말이 전부였습니다.
원래 병원에만 가면 잔뜩 긴장한다는 M이 로보트 같이 딱딱한 태도와 표정으로 사진 찍는 동안, 당황한 제가 J씨 남편에게 "아니, 여기는 원래 옷 다 입고 엑스레이 찍어요?"하고 물었습니다. J씨 남편 왈 "중국 엑스레이는 엄청 강해서 옷을 다 뚫을 수 있는 모양이죠." ^^;;
엑스레이 사진을 들고 다시 아까 진찰을 했던 의사에게 갔습니다.
사진을 살펴본 의사 말인즉슨, 특별한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고, 과거 교통사고를 당한 부위인데다가, 외국에 나와 살다보니 바뀐 환경에 적응을 못 해 그런 듯 하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당장 특별한 치료를 받을 필요는 없고, 한국으로 돌아가 교통사고 때 치료받았던 병원에 가서 다시 한 번 진찰 받아보라 했습니다.
그렇게 꽤 오랜 시간을 병원에서 보내고 나와서 J씨 가족과 작별하고, M과 저는 잠시 서점에 들려 각자 필요한 것을 사고 그 옆에 있는 중앙홍에 들렸다가 학교로 들어섰는데...
꽤 바빴던 하루가 그렇게 수습이 되나 했더니 또 사건이 터졌습니다.
중앙홍 근처에 있는 작은 문을 통해 학교로 들어서서 넓디 넓은 흑룡강대학을 절반은 가로 질렀는데, 문득 앞에 눈에 익은 뒷모습이 보였습니다.
중국학생들 기말고사 때문에 꽤 오래 못 만났던 제 후쉐인 '양'과 그 친구들이어서 서로 반갑게 인사를 하는데, 옆에 서있던 M이 갑자기 소리를 지르더니 자기 가방을 정신없이 뒤졌습니다. 무슨 일이냐고 했더니, 나중에 한국 돌아가 보험처리 할 때 필요한 엑스레이 사진을 서점에 두고 왔다는 겁니다. -0-;;
양 일행에게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둘이 정신없이 뛰어 왔던 길을 되짚었습니다.
하필이면 중앙홍에서 나올 때 막 멈췄던 비가 다시 쏟아지기 시작해서, 우산도 없는 우리는 입고 있는 후드티의 모자 뒤집어쓰고 서점으로 갔습니다.
다행히도 엑스레이 사진이 든 봉투는 누가 가져가지 않고, M이 놓아두었던 계산대 위에 그대로 있었습니다. 계산하는 직원이 자기가 쓰는 컴퓨터 마우스의 패드 대신 이용하고 있더군요. ^^;;
그렇게 다사다난했던 하루를 마감하며 물먹은 솜마냥 지친 몸을 이끌고 기숙사로 돌아왔습니다.
객지 생활하면 가장 서러운 때가 아픈 때라는데, 정말 병원 갈 일만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말도 안 통하는 곳에서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 설명하는 일도 난감하고, 나중에 보험회사랑 보험처리가 가능한지 놓고 줄다리기 벌여야 하는 것도 난감하지만(M이 유학생보험 든 보험회사에서는 병원에서 아무 문제 없다 했으니 보험처리 못 해준다 하고, M은 몸이 아프니 어디가 아픈지 알려고 엑스레이 사진을 찍은 건데 그것을 보상 안 해주면 어쩌라는 거냐고 화를 내고...), 무엇보다 솔직히 이 곳 병원이 그다지 미덥지가 못 해서 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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