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 여행기/'09년 쓰촨(사천)성

덕양(德陽) 종고루(鍾鼓樓)에 얽힌 사연

Lesley 2009. 9. 8. 00:48

 

 

  진쥔의 집 근처에 있는 산 위의 종고루는 유명할 것도 특별할 것도 없는, 이름 그대로 종과 북이 있는 누각이다.

  진쥔도 정확히는 기억 못 하던데, 자신이 중학교 때 만들어진 듯 하다고 했다.  중국은 어지간한 곳에는 저런 종고루, 종각, 탑, 성벽 등 그 지역을 한꺼번에 내려다볼 수 있는 곳이 있으니, 전혀 신기할 것이 없다.  게다가 특별히 유서깊은 곳도 아니기에, 더양 도착한 첫날 저녁에 산책삼아 진쥔과 종고루 근처까지 한 번 올라가보고 별 관심 기울이지 않았다.  그러니 굳이 종고루에 대한 내용을 포스팅 할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저 종고루 관련해서 재미있는 사연 두 가지가 있기에, 종고루를 소개할까 한다.

 

 

종고루와 그 앞의 종고루 광장

 

  하얼빈과는 달리 남방인 이 곳에서는 해가 져도  많은 사람들이 돌아다닌다.

  저 동산에 올라가 산책이나 운동을 하고, 가게 밖 의자에 앉아 가벼운 간식이나 맥주를 즐긴다.  이 종고루 광장은 그런 사람들에게 좋은 휴식처가 되는 곳이다.  에어로빅 하는 주부들, 배드민턴 치는 사람들, 작은 호수에서 금붕어에게 먹이를 던져주는 아이들을 언제나 볼 수 있다.

 

 

  먼저 첫번째 사연...

 

  작년 쓰촨성 대지진이 일어나던 날, 마침 한 독일인 관광객이 더양에 왔다가 이 종고루에 들렸다 한다.

  그 사람이 종고루 안에 들어가 그 안에 있는 커다란 종을 쳤는데, 공교롭게도 그 순간 대지진이 일어난 것이다...!  갑자기 건물이 흔들리며 굉음이 들리자, 이 독일인 스스로는 물론이고 옆에서 종 치는 것을 지켜보던 중국인들까지 독일인이 종을 너무 세게 쳐서 건물이 흔들리는 줄 알고 어쩔 줄 몰랐다고 한다. (그 독일인 정말 지못미다...^^)

 

 

  그리고 두번째 사연...

 

  내가 이 포스트 올리기 전에 올린 두 포스트에서 소개한 무후사, 금사 박물관, 두보초당, 영릉을 한 번에 관람한 8월 15일, 그 날 저녁에 더양으로 돌아갔다.

  원래 계획은 더양에서 청두를 오가는 게 꽤 번거로운 일이라, 멍즈뤼 유스호스텔에 주말 내내 머물며 청두를 샅샅이 둘러보고서 일요일 저녁 또는 월요일에 더양의 진쥔 집으로 돌아가려 했다.  하지만 구채구.황룡 여행 중 얻은 고산증과 여름감기로 몸 상태가 영 아니어서, 일단 집으로 돌아와 며칠 쉬고서 다시 청두로 가라는 진쥔의 말을 듣기로 했다.  나 역시 여행 끝에 병을 키워, 하얼빈 돌아가는 기차 안에서 2박 3일 내내 끙끙 앓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더양역에 도착해서 한산한 버스에 자리 잡고 앉아 진쥔의 집으로 돌아가는데, 진쥔이 핸드폰 문자를 보냈다.

  자신은 물론이고 부모님까지 나와 저녁식사를 하려고, 그 때까지 식사를 안 하고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0-;;  사실 청두를 돌아다닐 때, 진쥔한테서 저녁에 더양 돌아오면 밖에 나가 식사를 하자는 문자를 받다.  하지만 내가 8시는 되어야 진쥔네 집 도착하겠기에 먼저들 식사하라고 했고, 진쥔도 알겠다고 했다.  그런데 도대체 이게 어찌된 일인지... ㅠ.ㅠ 

  당황해서 진쥔에게 전화를 해 '기다릴 필요 없다고 했는데 왜 아직까지 안 먹은 거냐, 먼저 먹어라' 라고 했다.  그랬더니 부모님은 이미 밖의 식당으로 먼저 가서 나를 기다리고 계시고(ㅠ.ㅠ), 자신은 내가 내릴 버스 정류장으로 마중을 나오겠단다.


  그 문제로 '어느 정류장에서 내리는지 아느냐', '걱정말아라, 전에 너와 내린 정류장 기억하고 있다', '그럼 됐다, 거기서 너를 기다리겠다' 등의 대화를 주고 받고 전화를 끊었다.

  그런데 통화를 할 때 열린 버스 창문 밖에서 들리는 소음으로 꽤 시끄러워서, 나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였던 모양이다.  전화를 끊고서 아무 생각 없이 얼굴을 들어보니, 버스 안의 모든 승객들이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  큰 소리로 통화한 통에 모두 나의 어설픈 중국어를 듣고, 내가 외국인임을 알게 된 것이다. ㅠ.ㅠ

 

  외국인 관광객을 종종 볼 수 있는 청두와는 달리, 이 작은 도시에서는 외국인이 희귀한 존재여서, 내가 민망해 할 정도로 나를 빤히 쳐다봤다.

  그리고 외국인이 드문 곳에서 흔히 경험할 수 있는 일인데, 모두들 '저 사람은 외국인이라 틀림없이 여기 사정을 모를 거야, 마땅히 우리가 도와줘야 해.' 하는 의무감(?)으로 한꺼번에 나를 돕겠다고 나섰다.  물론 모두 친절한 마음에서 그리한 것을 알고 있고, 나 역시 이 어리버리한 이방인을 걱정해주며 어떻게든 도와주겠다고 나섰던 그 사람들의 마음에 지금도 고마움을 느끼고 있다.

 

  그러나 한번에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질문하기 시작하자 난감해졌다.

  일단 내가 내릴 정류장을 말하라고 묻는데, 정류장 위치만 알지 이름은 몰라서 대답할 수가 없었다.  내가 '종고루 근처의 정류장'이라고 했더니, 이번에는 '신(新) 종고루냐, 구(舊) 종고루냐'라고 묻는데 역시나 대답할 수 없었다.  난 더양에 종고루가 두 개라는 사실을 그 질문을 받고서야 알았으니까... -.-;;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질문에 더듬거리는 중국어로 겨우 대답하며 머리를 쥐어짠 끝에, 진쥔네 집 근처에 법원과 경찰청이 있었던 걸 떠올렸다.  그래서 '법원 근처의 종고루'라고 했더니, 그러면 신 종고루 쪽이란다.

 

  내가 20명 가까이 되는 사람을 혼자 상대하며 낑낑거리는 동안, 버스는 종고루가 보이는 곳까지 왔는데, 내가 내려야 하는 정류장까지는 몇 정거장 남은 상태였다.

  그런데 한 아줌마와 여학생(나중에 버스에서 내려서 물어보니, 고등학생 정도로 보였던 이 여학생은 대학원생이었음 ^^;;)이 자기들과 함께 여기서 내리면 된다고 하는 것이다.  내가 '여기는 내가 내리는 곳이 아니다.' 라고 했더니, 거기에서 내리는 게 맞다면서 자기들이 더 답답해하고 조바심을 냈다.  두 사람의 표정과 분위기가 '아이고~~ 이 외국인은 아무 것도 모르면서 어쩌려고 이래...' 하는 식이었다. ^^;;  

  내가 계속 안 내리겠다고 하자 기어이 내 팔을 잡아끌며 버스에서 내렸다.  덕분에 나는 8킬로 가까이 나가는 큰 배낭 짊어진 채 두 세 정류장 거리를 걸어야 했다. -.-;; 

 

  뭐, 나쁜 뜻으로 그런 것도 아니고, 자기들 딴에는 도와주겠다고 그리한 건데 어쩌겠나...

  덕분에 걷기 운동 했으니 건강에도 좋을테고, 진쥔네 가족 다시 만났을 때 할 재미있는 이야기 거리도 생겼고...^^  두 사람에게 고맙다고 인사하고 내 갈 길 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