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 여행기/'09년 쓰촨(사천)성

쓰촨성 대지진 유적지 탐방 - 몐주(綿竹 : 면죽)

Lesley 2009. 8. 27. 00:13

 

 

  8월 9일 아침, 진쥔의 엄마가 그 전날 말씀하신대로 우리는 작년 쓰촨 대지진의 피해가 심했던 곳을 탐방하러 나섰다.

  나, 진쥔, 진쥔의 엄마... 그렇게 우리 세 명만 가는 줄 알았는데, 그 날 새벽에야 대만에서 돌아오신 진쥔의 아버지까지 함께 모두들 몐주(綿竹 : 면죽)시에 있는 대지진 유적지로 떠났다. (진쥔의 아버지는 우리가 쓰촨성에 도착하기 전에 대만으로 출장가셨다가, 대만을 강타한 태풍 '모라꼿' 때문에 비행기가 결항된 통에 예정된 날짜를 지나 이 날 새벽에야 겨우 돌아오셨음.)

 

 

  ※ 지진 유적지

 

  작년 5월에 있었던 쓰촨성 대지진 이후, 지금도 쓰촨성 여기저기에서 복구 작업이 한창이다.

  하지만 지진 피해가 유난히 심했던 몇 곳은 복구 작업이 곤란할 정도여서, 중국정부에서 아예 복구를 안 하고 피해를 겪은 모습을 후세에 그대로 전하기로 결정했다.  그래서 청두 근처의 작은 도시나 농촌 몇 군데에 일종의 야외 박물관 비슷하게 지진 유적지라는 구역을 만들었다.

  이 날 우리가 갔던 곳은 그런 여러 지진 유적지 중, 더양에서 약 40킬로미터 떨어진 몐주라는 곳에 있는 지진 유적지였다.

 

 

  몐주시에 들어서자 작은 도시 전체가 공사장이란 느낌이 들 정도로, 여기저기에서 복구 작업이 진행 중이었다.

  그리고 지진 발생 1년이 지났건만 아직 가건물에서 생활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지, 가건물들이 마치 아파트 단지 마냥 잔뜩 모여 있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진쥔은 저런 가건물이 보기에는 괜찮지만, 그 안에서 생활하는 건 무척 힘들거라고 한 마디 하고...

 

 

지진 유적지로 가는 길목에서 본 경찰서 건물

 

  자동차 안에서 유리창 통해 찍은 사진이다. 경찰서도 지진 피해를 입어 여기저기 금이 간 상태인데, 지금도 그 안에서 업무를 보는지는 모르겠다.

 

 

대지진 때의 참상을 드러내는 건물

 

  진쥔 엄마 말씀으로는 당시 땅이 위아래로만 흔들린 게 아니라 옆으로도 흔들려서 피해가 더 심했다고 했다.

  그리고 이 곳이 더운 남방지역이라 사람들이 점심 식사 후 낮잠을 자는 습관이 있는데, 하필이면 그 시간에 지진이 일어나는 통에 건물 안에서 자다가 미처 빠져나오지 못 하고 변을 당한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지진 유적지로 들어오는 입구를 유적지 안쪽에서 찍은 사진

 

  저 입구를 경찰이 지키고 서있었다.

  기준이 뭔지는 몰라도 어떤 사람은 들여보내고 어떤 사람은 못 들어오게 했다.  처음에는 우리도 못 들어오게 했는데, 진쥔 아버지가 뭐라고 얘기하며 사정하자 좀 망설이더니 들여보내줬다.

 

 

폐허가 된 건물 뒤로 보이는 역시나 지진 피해 입은 산

 

  산의 하얀 부분은 원래 절벽이어서 색깔이 그런 것이 아니라, 지진 때 산사태가 나서 무너진 부분이다.

  진쥔 엄마 말씀이, 쓰촨성의 산 풍경이 유난히 아름다운 것은 이 산들이 비교적 젊은 산(즉, 지질학적으로 생성된지 얼마 안 된 산이란 뜻임)이어서 험준하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아름다운 겉모습과는 달리 산 밑의 땅 속은 무척 불안정해서, 지진이 나자 한꺼번에 무너져 내려서 피해가 심했다 한다. 

 

 

텅 비어버린 아파트

 

  한 때 많은 사람들이 살았던 이 아파트 단지는 이제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 되어 버렸다.

  이 곳에 살던 사람들은 더양을 비롯한 주위의 다른 지역으로 떠나야 했다.  물론 그것도 살아있는 사람의 경우에나 가능한 일이었고, 많은 사람들이 아예 이 곳에서 생을 마감해야 했다.

 

 

폐허가 되어 버린 유치원의 모습

 

  한국의 언론에도 보도된 것처럼 대지진 피해자 중 상당수가 학생들이었다.

  학교 건물 자체가 부실공사 때문에 튼튼하지 못 했고, 또 지진이 일어난 시간이 수업이 한창인 때라, 수많은 학생들이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알지도 못 한 채 그대로 건물더미에 파묻혀 아까운 목숨을 잃었다.  이 지진 유적지에도 두 개의 학교가 있었는데, 그 학교도 학교지만 이 유치원의 모습이 가장 마음 아팠다.  이제 겨우 5,6 살짜리 어린 아이들이 점심 식사 후 낮잠을 자다가 한꺼번에 죽었으니...

 

 

처참한 지진 현장에 피어난 야생화

 

  아직도 작년에 일어난 참사의 흔적이 생생하건만, 그 속에서도 여전히 꽃은 피어나고...

  저 꽃 옆으로 흐르는 물은 그냥 보기에도 굉장히 깨끗해 보였는데, 진쥔 아버지가 지진으로 산사태가 나면서 산 속의 광천수가 터져나와 흐르는 거라고 말씀하셨다.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간 대참사 덕분에 오히려 깨끗한 물이 나오게 되었다는 상황이 정말 아이러니했다.

 

 

지진 폐허 속에 뭉혀있는 신발

 

  저 신발들의 주인들은 어디 간 건지...

  그래도 살아 남아 어딘가로 떠나 지내고 있으면 다행이지만, 어쩌면 그 때 죽었을지도 모른다.

 

 

저 위의 유치원 앞 바닥에 있는 어린 아이의 책가방

 

  유치원 앞 폐허에 놓인 주인 없는 책가방을 보니, 참...

  몐주의 지진 유적지 중 어떤 광경 하나 숙연한 기분이 안 드는 광경이 없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숙연하고 씁쓸한 기분 들었던 때가 바로 이 사진 찍는 순간이었다.  책가방의 주인은 어디 가고, 책가방만 홀로 폐허 속에 남겨진 건지... 

 

 

쓰촨성 대지진 기념품을 판매하는 가게

 

  판매하는 상품은 지진 때의 급박한 상황을 보여주는 동영상, 피해자를 구조하는 감동적인 순간의 사진, 지진 기념 우표집 등의 물건이다.   

 

 

쓰촨성에 널린(?) 고양이들

 

  어째서인지 쓰촨성에서는 가는 곳마다 고양이와 마주쳤다.

  원래 고양이가 많은 지역인건지, 어떤건지...  이 두 녀석이 무슨 심산에서인지 우리가 타고 간 자동차 밑바닥에 들어가서는 나오지를 않아서 한동안 출발을 못 했다.  나와 다른 사람들이 발을 구르고 경적을 울려도 소용 없더니만, 발로 타이어를 뻥뻥 차니 비로소 느릿느릿 밖으로 나갔다. ^^

 

 

몐주의 명물이 되어 버린 시계탑의 모습

 

  이 시계탑을 보고 나도 모르게 '앗!'하고 소리쳤다.

  진쥔과 과외수업을 시작한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진쥔이 자신의 디카로 이 시계탑의 사진을 보여줬던 기억이 낫기 때문이다. 

  그다지 멋지지도 않고 특별할 것도 없는 이 시계탑이 전국적으로 유명해진 것은, 지진이 일어난 그 순간의 충격으로 고장이 나서, 공교롭게도 지진 발생 시각인 2시 28분에서 멈춰버린 일 때문이다.  저 시계탑은 지진이 일어난 그 순간에 영원히 묶여버린 셈이다.  정말 영화보다도 더 영화 같은 현실이다.